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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여행기. 5부에서부터 이어집니다.





미나미야마테 구경을 마치고 비교적 큰 도로가로 나왔습니다.


코앞으로 나가사키항과 여객터미널이 소재해 있고, 왕복 6차선 수준의 대로가 지나갑니다. 이 대로를 건너 외벽에 다른 마감재 없이 콘크리트 상태로 세워져 있는 건물 '나가사키 피스 뮤지엄'(나가사키 평화 박물관)으로 향하기로 합니다. 



나가사키 피스 뮤지엄의 입구입니다.



따로 입장료는 없다고 하네요. 들어가서 문을 두드리니 자원봉사를 하고 계신 분이 맞이해 주십니다.


그리곤 한국어로 된 설명서를 하나씩 건네주시네요.



요약하자면 나가사키 피스 뮤지엄은 1995년 8월에 건립을 추진하여 2003년에 개관한 박물관입니다.


나가사키현 출신의 유명 가수인 사다 마사시(佐田雅志)의 제안으로 시작되어 2003년 개관한 뒤 현재는 여러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다고 합니다. 분쟁지역과 관련된 주제를 다루고 있긴 합니다만, 분쟁 현황이라기 보단 평화로운 모습을 보여주는데에 집중한다고 하더군요. 여러모로 그렇답니다.



군함도(하시마섬)도 있습니다.



이 박물관과 밀접환 관련이 있는 사다 마사시씨의 사진이 걸린 공간도 있습니다.


1952년생인 그는 젊은 나이에 도쿄 근교의 치바로 상경하여 가수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현재도 왕성하게 활동중이라 합니다. 젊은날에 다큐멘타리 영화를 촬영하며 300억이 넘는 빚을 지게 되었는데, 그 빚도 스스로 공연과 방송활동을 하며 근래에 와서 다 갚았다고 합니다. 여러모로 대단한 사람입니다.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데 작은 선물을 주시네요.


평화를 상징하는 휴대폰 고리입니다. 작은 선물에 감동하고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기로 합니다. 다음 목적지는 '국립 나가사키 원폭사망자 추도 평화기념관' '원폭 자료관'으로 불리는 공간입니다. 추모관이 소재해 있고, 당시 원자폭탄 투하지 근처로 공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물론 차로 약 4km정도 이동을 해야합니다.


그런고로 성당 구경 당시 주차했던 주차장에서 차를 꺼내와 이동합니다.



일본 오토바이도 번호판을 꺾고 다니더군요.


애초에 우리나라 자동차 오토바이 튜닝문화나 양카문화가 사실상 일본 문화가 건너왔다고 보는게 맞으니, 오토바이 번호판을 꺾어놓고 다니는 것 역시 일본에서 넘어왔다고 보는게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국립 나가사키시 평화회관과 국립 추모관 건물입니다.


주차비가 매우 저렴합니다. 차량을 주차해둔 뒤 건물 주변부터 구경합니다.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를 날리는 동상도 세워져 있습니다.



대체 어디로 들어가서 관람을 시작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서 경비아저씨게 물어보고 들어갑니다.



입구라는 화살표를 따라갑니다.



한참 걸어서 내려갑니다.



국립 나가사키 원폭사망자 추도 평화기념관.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추모관의 역할과 함께 원폭 피해자와 관련된 자료도 보관하고 있습니다.


입장료는 성인 기준 200엔. 단시간 코스와 30분의 추모코스로 돌아 볼 수 있습니다.



촬영은 좋으나 플래시를 터뜨리지 말라고 적혀있네요.



원폭 사망자 이름 영정 검색 장치는 한국어도 지원합니다.


8951명의 사망자의 이름과 영정 그리고 사연이 담겨 있습니다. 한국인 희생자들을 찾아보았고, 경남 사천 출신으로 나가사키의 제련소에서 강제노동을 하다가 참변을 당한 희생자와 부인의 이야기를 가슴아프게 보았습니다. 



피폭체험기와 증언 역시 한국어로 큰 위화감 없이 번역되어 있었습니다.


지하에 소재한 추모관을 거쳐 지상으로 다시 올라옵니다.



추모관 지상에는 원폭 피해자들이 애타게 찾았던 물이 고여있습니다.


추모관에서 250m 떨어진 곳이 원폭낙하 중심지라고 하네요. 좀 이따가 찾아가 보기로 합시다.



추모관에 들어가기 전부터 저 앞에서 계속 대화를 나누던 스시남-스시녀 커플.


추모관을 나와서까지도 같은 자리에서 같은 자세로 대화를 나누고 있더군요.



저 멀리 다리건너 보이는 공간이 원폭 투하 중심지 근처로 조성된 공원입니다.


일요일임에도 중학생정도로 보이는 학생들과 노란 모자를 쓴 초등학생들이 견학을 왔네요. 중앙공원으로 내려가기 전 조선인 희생자 추모비가 있더군요. 조선인 희생자 추모비를 한번 더 참배했습니다.



조총련계 재일 조선인이 설명문을 작성하여 두음법칙이 무시된 부분이 조금 있습니다.


나가사키현과 그 근처에서 강제노동을 당하던 조선인만 약 10만명. 원자폭탄 투하로 2만여명의 조선인이 피폭당했고 그 중 1만명의 조선인이 폭사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70년대 후반에 나가사키에 거주중인 우리 교포들과 모금활동에 참가한 일본인들로 하여 작은 비석을 세우게 되었답니다.



일제에 의해 낮선 타국에 끌려와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한 우리 선조들을 위한 추모비입니다.


고향땅을 밟지 못하고 타국에서 생을 마감한 우리 선조들이 애타게 찾았을 물. 후손들이 챙겨와 그들을 위해 바치고 간 모습입니다.



한국에서 가져온 삼다수도 보이고, 참이슬 소주도 목캔디와 말랑카우도 보입니다.


잠시동안 추모의 시간을 가지고, 다시 관람에 나섭니다.



1945년 8월 9일 11시 2분.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시간입니다. 아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동상으로 만들어 두었습니다.



이곳이 원자폭탄이 투하되었던 중심지라고 합니다.


위령탑이 세워져 있고, 원으로 둥글게 표시되어 있네요.



원폭 투하로 건물은 사라지고 기둥만 남았다고 합니다. 이 기둥은 철거 없이 놔뒀네요.



해태로 보이는 석상이 있습니다. 그리고 코 위에 무언가가 올려져 있네요.



平和


아마 아까침 지나가던 학생들이 적어서 올려놓지 않았나 싶습니다. 평화를 깬 건 일본이였고, 민간에서는 평화를 위한 노력이 보입니다만, 일본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가 아쉽기만 할 따름입니다.


7부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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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스도리

만 29세 도태남의 처절한 삶의 기록. sinc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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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스도리의 큐슈 여행 이야기. 그 아홉번째.


한국 당진 시민이 방문 해 본 일본의 당진 가라쓰(唐津) 그 두번째 시간입니다.



후쿠오카의 하카타에서 버스를 타고 가라쓰로 이동을 한 티스도리.. 가라쓰의 중심지 오오테구치(大手口)에 위치한 버스센터(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일본의 당진, 가라쓰 버스터미널은 말 그대로 복합 쇼핑센터입니다.


인구가 12만 남짓 정도 되는 중소규모 도시임에도 복합 멀티플렉스 문화공간의 터미널이 지어져 있네요. 한국의 당진과 마찬가지로 상권이 외곽으로 옮겨가면서 이 곳 역시 재개발이 예정되어 있다고 합니다. 최근에 지어져서 그런지 시설도 좋고, 한국어 안내도 어느정도 되어 있더군요.


복잡하고 젊은사람이 더 많았던 후쿠오카 시내완 달리.. 가라쓰는 한적했습니다. 종종 보이는 사람들도 어르신들이 대부분이고.. 차나 몇대 지나가지 시내엔 사람이 썩 많진 않더군요.


큰 손과 입을 나타내는 오오테구치의 터미널 근처엔 유서깊은 서양식 건물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구) 가라쓰은행 건물이라고 하네요.



아주 조금만 걸어가면 서양풍의 건물이 보입니다.


명치(메이지) 43년 착공하여, 45년(1912년) 완공된 이 건물은 일본 건축계의 거장인 다츠노 킨고(辰野金吾)의 작품입니다. 사가현 가라쓰시가 고향인 그는 영국에서 선진 건축문물을 배워 와 일본에서 처음으로 건축사무소를 세웠던 인물입니다.


참고로 다츠노 킨고는 일본의 중앙은행인 일본은행과 도쿄역사를 비롯한 일본의 주요 건축물과, 한국의 옛 서울역사 등 굵직한 건축물의 설계 과정에 관여를 했던 사람이지요. 



당 진 은 행 협 회(唐 津 銀 行 協 會)

당 진 수 형 교 환 소 (唐 津 手 形 交 換 所)


동판으로 된 옛 명패가 남아 있습니다. (구) 가라쓰은행은 사가은행에 통합되었고, 1997년까지 이 오래된 건물에서 업무를 보았다 합니다. 현재는 이 건물 뒤로 새 건물을 지어서 은행 업무를 보고 있습니다. 



좌 하 은 행 (佐 賀 銀 行) 당진 지점 (唐津 支店)


사가은행에 통합 된 뒤로는 사가은행 당진지점 명패를 달았습니다. 100년 전부터 은행이 있던 이 근처로 신용협동조합이나 우리나라로 치자면 새마을금고나 축협정도 되는 금융기관들이 몰려있었습니다.



입구입니다. 당연하게도 무료입장이지요.


2002년 시 지정 문화재로 관리가 되기 시작했고, 2008년부터 약 3년에 걸친 복원작업으로 현재의 모습을 보이게 되었답니다. 사실 도쿄역 건설에 바빴던 다츠노 킨코가 그의 애제자였던 다나카 미노루에게 디자인을 맏겼고, 다츠노 킨코는 가라쓰은행 건축에 감수로 참여를 했다고 하더군요.



우리나라에 남은 왜구가 세워두고 간 근대 건축물들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은 다 갖췄습니다.


적벽돌과 화강암으로 마무리를 한 모습이지요. 다츠노는 자신의 고향땅에 세워지는 건물보단 수도 한복판의 역사를 짓는 데 바빴지만, 그래도 고향이기에 신경을 쓴 모습입니다. 



실내로 들어왔습니다. 사진은 찍어도 된다고 하는군요.


외국인 관광객이 거의 오지 않는 곳이라 외국어 설명은 없었습니다. 고로 그냥 눈으로 보고 아는 한자로 때려맞춰서 이해를 하는 수 밖에 없더군요. 제가 관람차 건물에 들어왔을 때는 다른 은행의 간부급으로 보이는 아저씨들이 견학을 왔더군요. 쭉 둘러보고 버스에 타더랍니다.



왼쪽 흉상이 다츠노 킨코, 오른쪽은 소네 카츠오 입니다.


다츠노 킨코야 위에서도 충분히 얘기 했으니 소네 카츠오(曽禰達蔵)에 대해서 한번 언급을 해야겠지요. 사실 소네 카츠오가 두 살 많은 형이긴 한데.. 같은 가라쓰 출신으로 함께 건축학을 공부하였고 당시 해군 진수부를 거쳐 미쯔비시에 입사하여 정년 퇴임한 후 다츠노와 함께 건축사무소를 개설합니다.


소네 카츠오 역시 일본 건축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고, 게이오대학 도서관을 비롯하여 공공기관 및 미쯔비시 계열의 많은 건물 설계에 관여했다 하네요. 



엔틱한 창구.. 지금 은행 창구들은 개방된 분위기를 주지만 폐쇄적인 분위기를 보입니다.


뭔가 돈을 맏기러 왔다가 돈을 뜯기는 기분을 느낄 것 같습니다만.. 겉모습만 당시 서양의 건축양식을 따른게 아니라 실내 역시 동양스러움보다는 서양스러움이 느껴집니다.



건물의 제원표입니다.


구 가라쓰은행


주소 : 佐賀県唐津市本町1513-15 
준공 : 1912년 (메이지 45년)

설계자 : 다나카 미노루 (타츠노의애제자)

부지면적 :  1,431.73㎡ 
연면적 : 906.99㎡ 
층수・높이:지상 2층, 지하 1층 
건축 : 벽돌 
용도 : 2F:전시시설 
    1F:다목적홀, 휴식공간

    B1F:레스토랑 가라쓰영빈관

영업시간 : 오전 9시 오후 6시

휴관일 :  12월 29일 ~ 12월 31일



건물 전경 아래에 보이는 왼쪽에 콧수염 아저씨가 은행의 설립자인 오시마 코타로


가운데는 흉상에서 봤던 다쓰노 킨코


오른쪽 인물은 킨코의 제자였던 다나카 미노루


오시마 코타로는 가라쓰시의 주요 관광지인 오시마저택의 주인이기도 했습니다. 탄광 기술자이자 사업가로 많은 돈을 벌어들였던 그의 저택 역시 중요 역사자료로 보존되어 있답니다.




가라쓰에 탄광이 개발되던 시기이다 보니 석탄을 떼우는 벽난로가 구비되어 있습니다.


빨간 삼각별 로고로 유명한 삼능(三菱) 미쓰비시에서 탄광 개발을 했었고 당시 미쓰비시 합자회사의 사옥으로 쓰였던 건물은 현재 가라쓰시 민속자료관으로 쓰이고 있답니다. 얼마 전 군함도라 불리는 하시마섬의 세계 문화유산 등재 건으로 일제의 강제징용과 관련된 이야기가 다시 한번 대두되었는데, 가라쓰 탄광 역시 조선인 강제징용의 역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사가현 가라쓰탄광에 끌려 간 피해자 김종선은 다음과 같이 증언하였다. <훈련기간이 끝나면 밥값이 높아 지고 거기에다가 강제저금,공채,국방 ...


구글링을 해서 얻은 검색결과인데 북한 로동신문 사이트 검색결과라 자세한 확인은 불가하네요.


우리 조상님들의 피와 땀 그리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스며있는 벽난로입니다. 



안으로 들어와도 집기류는 다 치워진 상태이고, 의자만 보입니다.



건축 · 설비 유지 보전 추진 협회(롱라이프 빌딩 추진위원회)의 BELCA賞을 받았답니다.


말 그대로 고건축물 보존 위원회에서 우수 표창을 받았다는 얘기지요.



벽난로는 자세히 보면 사용했던 흔적이 보입니다.


요즘에도 석탄으로 난로를 떼우는지는 모르겠는데 여기저기 그을린 흔적이 보이는걸로 봐서는 날이 추워지면 벽난로를 가동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2층으로 올라갑니다.



영업 당시 사용했던 도장들을 전시해 두었습니다.


이렇게 은행에서 사용하던 집기류를 전시하고, 타츠노 킨코에 대한 소개와 그가 설계한 다른 건물들에 대한 설명이 대부분입니다. 다만 한국어는 고사하고 영어 안내문도 없으니.. 한자를 보고 때려맞추는걸로 이해를 했습니다. 집에 와서 확인하니 얼추 맞네요.



타츠노 킨코의 또 다른 작품인 일본 동경에 소재한 일본은행 건물.



가라쓰시 관광 홍보영상을 틀어줍니다. 마침 가라쓰성이 나와서 사진을 찍었네요.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막아두었습니다.



이게 대체 뭔가 하고 봤더니만 전등 스위치더군요.


그시절 전등 스위치까지도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었답니다.



밖으로 나와 가라쓰 시청으로 향해봅니다.


한국의 당진과 비교했을 때, 시청과 터미널이 서로 바뀐 분위기입니다. 여기는 한국이 아니라 일본이니 이국적인 풍경을 보이는건 당연하겠죠. 시청 앞으로 인공 연못이 보입니다.



그리고 작은 망루도 하나 보이네요. 정말 주변에도 공원처럼 잘 꾸며놓았습니다.



시청 앞 토요타렌트카 당진지점.


구글 스트리트뷰로 보았을 때는 86도 있었던 것 같은데..;; 86은 없더군요. 일본은 이런식으로 자동차 메이커가 자사 차종으로 차량 대여사업을 펼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답니다. 


뭐 대한민국 자동차의 대표주자인 현대기아차도 자회사인 현대캐피탈을 통해 리스사업을 하고 있고, 신차 출고시 개인 장기렌트의 장점을 홍보하며 최근들어 개인이 렌트카 번호판을 다는 경우가 있는데 현대캐피탈 소속이 아닌 여타 대기업 렌트카회사 소속 차량입니다.



가라쓰 시청 입구입니다. 신사에서 볼법한 도리를 볼 수 있네요.


한적한 중소도시 가라쓰는 시청도 한산합니다. 한국의 당진시청은 크고 화려하고 차도 많은데.. 일본 가라쓰시청은 애초에 출장소가 두세곳에 소재한것도 있지만 조용한 분위기입니다.


참고로 제주 서귀포시 그리고 전남 여수시와 자매결연을 맺은 가라쓰입니다.


P.S 광주광역시 역시 한자 표기가 같은 중국의 광저우시와 자매결연을 맺었는데 당진시는 가라쓰시와 교류를 하고픈 마음이 없는건가 싶습니다. 리그베다 위키(현 나무위키)를 봐도 가라쓰시와 당진시는 아무런 관계도 아니라는 사실에 의아해 하는 분위기던데 말이죠. 사실상 두 도시 모두 북쪽으로만 바다를 접하고 있고 당진의 아산만과 가라쓰의 가라쓰만, 그리고 화력발전소까지 닮은 구석이 너무나도 많은 도시입니다.



시청 앞 안내원 한사람.. 그리고 저기 건물에서 나오는 민원인 한명.. 끝!


한산할 시간대인 어정쩡한 오전에 가서 그런건진 몰라도 참 사람보기 힘들었습니다.



우리나라로 따지자면 한솥도시락? 여튼 그런 느낌의 도시락 체인점 호토모토입니다.


한국에도 대도시를 중심으로 몇군데 체인점이 있지요. 시청 앞에 있었는데, 아침을 먹기도 점심을 먹기도 애매한 시간대임에도 도시락을 사러 온 손님이 최소 두명은 있었습니다.


10부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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