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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22 - [티스도리의 여행이야기] - 홋카이도(북해도) 여행 이야기 (20) 오타루(小樽) 운하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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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03 - [티스도리의 여행이야기] - 홋카이도(북해도) 여행 이야기 (22) 오타루 외곽, 주택가 탐방

2016/07/09 - [티스도리의 여행이야기] - 홋카이도(북해도) 여행 이야기 (23) 스이텐구,오타루 오르골당,사카이마치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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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19 - [티스도리의 여행이야기] - 홋카이도(북해도) 여행 이야기 (25) 삿포로 맥주박물관 헛탕, 북오프(BOOK-OFF)


박물관 헛탕, 그리고 로우손의 메론빵을 죄다 쓸어온 이후로 약 30분을 호텔에서 쉬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삿포로역으로 나왔죠. 삿포로역의 JR 여행센터(트윙클플라자)로 향했습니다.



영업 종료 시간인 6시에 임박한 시간. 카와이한 안내원 처자들도 업무 마무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6시 칼퇴하는 직장에서 민원인 응대를 수년간 해본 바, 여러모로 마무리중에 민원인이 오면 기분이 썩 좋지 않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친절히 응대해 주곤 했지요. 뭐 여튼 그렇답니다.



번호표를 뽑습니다. 평성 28년 4월 10일. 6시에 임박한 시간까지 총 158명의 여행객이 다녀갔습니다.


카와이한 처자가 어떻게 왔냐고 묻습니다. 되도않는 일본어로 하코다테에 가려 한다 합니다. 언어가 잘 통하지 않으니 시간표를 보여주고 이거 저거 요런식으로 물어보고 또 물어봅니다. 왕복 표를 이야기 한다는걸 편도로 알아듣고 이야기 해서 착오가 있었지만, 결국은 왕복 지정석 표를 발권받는데 성공합니다.



오전 9시 30분에 삿포로를 출발해서 오후 1시 24분에 하코다테에 도착하는 호쿠토(北斗) 열차와

오후 6시 49분에 하코다테를 출발하여 10시 33분에 삿포로에 도착하는 슈-퍼 호쿠토(北斗) 열차입니다.


뭐 그렇습니다. 삿포로에서 하코다테까지는 철도를 기준으로 약 320km. 우리나라 서울역에서 동대구역까지가 323km정도라 그러니, 서울에서 대구정도의 거리를 가는겁니다.


고로 3일차는 사실상 대부분의 시간을 기차에서 보내게 되는것이죠.


뭐 여튼, 그건 3일차 일이니.. 일단 삿포로역에서 지하철 난복선(南北線,남북선)을 타고 스스키노로 향해봅니다.



여러 쇼핑센터와 전철역 버스센터가 맞물려있는 복잡한 삿포로역 중심에서 남복선을 타기 위해 걸어갑니다. 마치 신도림역이나 청량리역에서 환승을 하기 위해 열심히 걷는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난복선 삿포로역 승강장에 도착. 


삿포로역에선 도자이선과 난복선이 교차합니다. 바로 다음역인 오도리역에선 도호선까지 해서 삿포로 내 모든 지하철 노선이 경유합니다. 제가 갈 스스키노역은 오도리역 바로 다음이니, 약 두정거장만 가면 되는군요.



참고하시라고 삿포로시 지하철 노선도를 올려봅니다. 



여튼 요금표를 보고 200엔짜리 티켓을 발권합니다.


작년에 후쿠오카에서 열심히 뻘짓을 한 덗에 아주 능수능란하게 현지인마냥 티켓을 발권받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선 이미 근 10년전에 1회용 교통카드로 대체된 티켓이지만, 일본에선 아직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충분히 자살이 가능해 보이는(...) 난간형 스크린도어


일본에선 홈도어라고 합니다. 스크린도어를 자살방지의 목적도 있지만, 냉난방의 효율 그리고 열차풍을 막아주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를 하곤 하는데 이건 뭐... 그냥 난간 휀스 수준입니다.



탑승을 기다리는 현지인들. 어딜 가도 줄은 잘 섭니다.



그리고 차례대로 탑승.


오도리역에서 다수의 인원이 빠져나가고, 스스키노역에서도 비등한 수준의 인파가 하차합니다.



스스키노로 향합니다.


스스키노가 대체 뭘 하는 곳인지 설명글을 빼먹었군요. 스스키노는 삿포로에 소재한 유흥가입니다. 도쿄 이북 최대의 유흥가라 불릴 정도로 일본 내에서도 꽤나 유명한 공간인데요. 뭐 술을 곁들일만한 여러 고급음식점들 그리고 그게 그거처럼 보이지만 다양한 컨셉의 바(BAR)가 있다고 합니다.



화려한 간판이 지나가는 행인들을 유혹합니다.


일요일 저녁시간대인지라 그렇게 미어터진다(?)는 수준은 아녔습니다만, 그래도 친구들끼리 놀러나온 경우가 꽤 많이 보였답니다.



고급 선술집, 고급 와규집, 가라오케 등등 돈없는 여행객 혼자 들어가는게 사실상 불가능한 장소입니다.



클럽, 바(BAR), 가라오케, 빠칭코, 그 외에도 게임센터등이 보이곤 하는군요.



빠칭코 역시 일본의 여러 콘텐츠들과 융합되어 매번 새로운 컨셉의 기기가 탄생하곤 합니다.


아이돌, 영화, 애니메이션 기타등등 빠칭코와 융합될 콘텐츠는 무궁무진 합니다.



유흥가에 빠지지 않는게 양카. 


크라운입니다. 차고를 낮추고, 네온등처럼 불이 들어오는 번호판을 달고 있습니다. 이 번호판을 스스키노에서 여러번 봤고, 다음날 하코다테에서는 불이 켜지지 않은 번호판을 봤습니다만, 일본 내에서 불법이 아닌지 궁굼하네요.



거대한 QR코드도 보입니다. 


과연 뭘까.. 하고 찍어봤습니다만, 코스프레 풍속업소 체인점이네요. 어떤 업소에선 학교처럼 카와이한 처자들이 교복을 입고 손님을 맞이하는 컨셉이고, 다른 업소에선 여동생 컨셉, 유부녀, 사내연애를 비롯한 OL, 바니걸 무녀 간호사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비롯한 전통적인 코스프레까지..


물론 일어가 능통하다면 모를까 외국인은 받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에선 '유사성매매'로 다 잡혀가고도 남을 업종이고, 속인주의로 인해 처벌받습니다. 고로 QR코드 찍은김에 사이트 구경만 하고 넘어가도록 합시다.



뭐 근처에 널린게 다 그런식의 업소입니다.


돈없는 외쿡인 관광객이 어디 들어가긴 뭐한 업소들인지라.. 짧은 스스키노 구경은 마무리하고 비교적 건전한 곳으로 다시 돌아가 보도록 합니다.



스스키노를 떠납니다.


한국인 여행 후기를 보면 클럽에 출입해서 놀다가 왔다는 이야기들도 나오는걸로 봐선 충분히 놀만한 곳이 많습니다만, 돈없는 나홀로 관광객에겐 그저 사치일 뿐..ㅠㅠ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다누키코지 상점가가 있습니다.


확실히 토요일에 비한다면 인파가 그리 많진 않더군요. 상점가에서 조금 더 위로 올라오면 오덕빌딩이 있습니다. 지난번에 무심코 찾아갔던 빌딩이 오덕빌딩이라 불리는 그 곳이였단 이야기를 했었는데, 이번엔 작정하고 찾아가 보았습니다.



삿포로의 밤거리. 나홀로 여행객은 쓸쓸히 거리를 걷습니다.



그렇게 방문한 오덕빌딩. 그리고 북오프. 어둠이 짙게 깔린 시간대임에도 꽤나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서적이나 음반이 주로 취급하는 품목입니다.


퇴근길에 와서 만화책을 읽다가 구매해 가는 사람들이 꽤나 많네요. 



결국은 올라가서 음반 하나 지르고 내려옵니다.


현찰로 바꿔간 돈이 30만원 수준인지라, 웬만한 지름은 카드를 이용했답니다.



지하 1층부터 멜론북스 

1층은 평범한 드러그 스토어입니다

2층은 코스튬 의상을 판매하는 ACOS(아코스)와 애니메이트

3층은 らしんばん(라신반,나침반)이라 불리는 중고굿즈 판매점

4층은 C-labo(씨라보,씨랩)라 불리는 카드 전문점과 가발 전문점 MAPLE(메이플)

5층은 게이머즈가 입점해 있습니다.


바로 옆 토라노아나와 북오프까지 이 범주에 포함시키곤 합니다. 여튼간에 이 빌딩의 이름은 마루다이(丸大)입니다만, 그렇고 그런 업종이 몰려있어 일본에서는 통칭 오타비루(ヲタビル)라 부른다 합니다.



입구부터 어지러울 수준의 전단지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습니다.



카와이한 처자들도 아무렇지 않게 물건을 구매하며 지갑을 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상당히 맞선 풍경이겠지만, 미국의 헐리우드급은 아녀도 문화강국이라 불리는 일본이라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네요. 포켓몬GO!가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끄는 모습 역시 포켓몬이라는 콘텐츠가 있기에 가능한 일인데, 우리나라 꼰대 관료 아저씨들은 우리도 비슷한거 만들면 된다며 또 헛짓거리 하시는 모습입니다.



중고품 매입 단가표인지 아니면 가격표를 매겨둔건진 모르겠습니다만 여튼 가격표입니다.



오덕빌딩 건물 4층에는 마사지숍이 가발전문점과 함께 입점해 있습니다.


1,2층의 시끌벅적한 분위기와는 달리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라신반 입구 앞. 러브라이브! 영상을 틀어주고 있는데 사람들이 모입니다.


코토리쨩이 어쩌고 하면서 남녀 가릴거 없이 품평을 하고 있는 모습들이네요. 더이상의 지름은 파탄을 불러일으키는 일이라 생각하고 결국 빌딩을 나왔습니다.


그나저나 밤 8시가 넘는 시간까지.. 밥을 먹지 못했네요..ㅠㅠ



밤에 보는 삿포로 시계탑. 뭔가 음산하긴 합니다만, 그래도 시계탑의 시계는 흘러가고 있습니다.



늦은 저녁, 시계탑 뒤의 마츠야에서 해결합니다.


마츠야. 저렴한 가격대에 가성비 좋은 음식이 참 먹을만 합니다. 삼겹살 정식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삼겹살처럼 굵게 썰어서 먹는 삼겹살이 아닌 대패삼겹살이네요.


그렇게 2일차 여행기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홋카이도(북해도) 여행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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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부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시계탑 1층에는 시계탑의 역사를 확인 할 수 있는 역사관이 있습니다. 비록 한국어 설명은 빈약하지만 그래도 간간히 간단하게 작성되어 있더군요. 간단하게 몇가지만 추려서 써 보도록 하겠습니다.



시계탑의 연혁


시계탑은, 현재의 북해도대학의 전신인 삿포로 농학교의 연무장으로서 1878 년에 세워졌습니다. 연무장은, 강의실, 표본실, 실내체육장, 각종 행사장의 기능을 함께 갖춘 건물이었습니다.

1903 년부터 1940 년대 초까지는 교육단체의 사무소, 부속 도서관, 문화 활동의 장소로 이용되었고, 제 2차 세계대전 중인 1943 년부터 전후의 1948 년까지는 군용시설, 각종 민간단체 사무소로 사용되었습니다. 그 후 1950 년부터 1966년까지 시립도서관으로 사용되었고, 도서관 이전에 따라 1967 년에 복원 공사를 하였습니다. 1970 년에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일본 구 제국대학 중 한군데인 북해도대학의 전신, 삿포로 농학교의 연무장 건물이던 우리의 시계탑은 1878년에 세워졌으며, 여러 용도변경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합니다.


근 150년 가까이 된 서양식 건물인 우리의 시계탑은, 학교 캠퍼스 내 부속건물이던 셈이죠.



그 외에도 북해도 대학의 전신인 개척사 가학교와 여학교등의 소개도 이어집니다.


북해도 개척사의 가학교로 1872년 개교한 초기의 학교 졸업생들은 북해도 개척과 관련된 사업에 의무적으로 종사를 하게 했답니다. 일본의 북해도 개척 당시 나름대로 큰 일을 했던 사람들은 이 가학교 출신이겠지요. 비슷한 시기에 일본에서 두번째로 여학교를 개교하기도 했답니다.


다만 가학교는 얼마 지나지 않아 폐교가 되었고, 약 2년 뒤 삿포로시로 자리를 옮기며 삿포로 학교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개교를 합니다. 지금의 시계탑이 있는 자리 일원이 바로 삿포로 학교가 옮겨온 부지입니다.



1876년 3월. 농과대학이 개설하며 본격적으로 삿포로 농학교라는 명칭으로 출범합니다. 


미국 매사추세츠 농과대학의 학장이였던 미국인들을 교사로 고용하면서 본격적인 근대 고등교육기관으로의 면모를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 미국인들이 당연히 메사추세츠 농과대학에 근무했던 교직원들인 만큼 당시 미국의 농업기술이나 메사추세츠 농과대학의 커리큘럼을 그대로 가지고 오기도 했답니다.



개교 당시 삿포로 농학교의 모습



150년의 세월을 버티며 우뚝 서있는 연무장. 시계탑 건설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개교 당시 고용된 미국인 교장 클라크는 나름대로 학생들이 거주하는 기숙사라던지 연무장 강당 등 농학교의 시설 확충에 관심이 많았답니다. 그리고 그 뒤에 부임한 휠러 교장대리가 구체적인 연무장을 포함한 여러가지 학교 건물의 건설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고 하네요. 


초창기 계획안 상으론 연무관 건물은 종루가 달린 2층 벽돌건물을 구상하고 있었지만, 결국 계획의 축소로 인해 2층 목조건물로의 건축이 결정되었다 합니다. 그렇게 1878년에 5월에 최종적인 건축허가가 나왔고, 그 해 6월 착공에 돌입합니다.



그렇게 농학교 연회장은 착공 4개월만에 완공되었고, 대학 본관으로의 역활도 겸했다 합니다.


다만, 처음 농학교 연무장 건물엔 시계가 없었습니다. 당시 개척장관이던 쿠로다 기요타카가 연무장 종루에 시계를 달아보라는 명령을 내려 탑시계를 장착하게 된 일이죠. 농학교 교장 직무대리인 휠러는 미국의 하워드社에 시계를 주문하였고 1879년 6월에 주문했던 시계는 도착했습니다.


다만, 시계 사이즈가 연무장 종루보다 훨씬 큰지라 다른 건물에 대신 설치를 하는 방안이 고려되었고, 결국은 교장대리 휠러의 설득 끝에 연무장 종루를 뜯어 고쳐서 탑시계를 달게 됩니다. 그렇게 1881년 8월 12일에 시계가 가동되기 시작했다 하는군요.


P.S 쿠로다(구로다) 기요타카는 일본의 2대 총리를 역임한 정치인. 우리에겐 운요호 사건을 매개로 한 불평등 조약인 강화도 조약의 주역으로 이름이 알려진 인물.



당시 농학교의 교육과정은 메사추세츠 농대의 커리큘럼을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고로 100%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였고, 당시 일본 최고의 영문학자도 배출했다 하는군요. 여튼간에 이게 일본인이 쓴 영문인지 미국인이 쓴 영문인지 그냥 봐선 모를 정도로 아름다운 필기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시 농학생들은 오전에는 4교시의 학습과 1교시의 복습시간, 오후에는 현장실습 위주의 수업을 받았다고 합니다. 요즈음 학교와 별 다를 것 없이 운동회 그리고 학예회까지 진행했다 하는군요.



札愰農學校創基25年祝典 (찰황농학교창기25년축전)


농학교 설립 25주년 축전 당시 사진. 재학생 그리고 교직원들이 지금의 시계탑 앞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했습니다. 명치(메이지)34년이면 서기 1901년이죠. 쇄국정책을 펼치던 조선과 달리 서구문물을 빠르게 받아들이던 일본은 이 시절 사진 기록들도 우리나라보단 꽤 많이 남아있습니다.




당시 농학교 모형.


셔터스피드가 영 좋지 못했던지라.. 강의동과 관측대 그리고 실습을 위한 공간들도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지금은 고층 빌딩으로 뒤덮인 시계탑 근처입니다만, 그시절엔 작은 단층 가옥들 위주였네요.



보수공사 당시 떼어낸 건축 초기 자재들 역시 폐기처분 하지 않고 잘 보관하여 전시중입니다.



150년의 세월을 삿포로 시민들과 함께했다 보니 여러 문학작품 그리고 음반속에서도 시계탑과 관련된 내용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시계 기술자이던 이노우에 키요시씨는 96년 99세의 나이로 타계하기까지 약 반세기동안 시계탑 유지보수를 위한 봉사활동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삿포로를 대표하는 시계탑은 많은 시민들의 보살핌으로 오랜 세월 유지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2층으로 올라갑니다. 옆에는 장애인용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건물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엘리베이터 박스를 만들었더군요. 몸이 불편한 사람일지라도 손쉽게 2층으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작은 공연장을 바라보고 있는 나무의자. 


그리고 반대편에서는 시계탑의 구조와 구동 원리를 설명하는 영상이 상영중입니다.



족히 30년은 넘어보이는 영상이지만, 관람객들은 집중하면서 아주 흥미롭게 보고 있습니다.



시계부분으로 올라가는 나무계단.


추를 달고 있는 로프가 보입니다. 물론 150년의 세월을 함께한 로프는 아닐테구요.. 분명 노후화가 되었을테니 못해도 대여섯번 이상은 교환해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작은 모형으로 커다란 시계의 구동모습을 똑같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작은 톱니가 움직이면서 큰 톱니도 움직이고 그렇게 로프를 감고 풀어가면서 시계바늘은 돌아갑니다.



시계탑 관람을 하고 나오니 4시에 가까워 지더군요.


고로 다시 호텔로 돌아갑니다. 호텔에서 잠시 쉬다가 또 열심히 돌아다녀야죠.


7부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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