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킥보드 수리가 완료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천안에 다녀왔습니다.


약 3주만에 수리가 끝난 킥보드를 받아오고 마침 생각이 난 김에 1년 다니고 6년 휴학한 뒤 자퇴원서를 작성했던 모교라면 모교인 상명대에 다녀왔네요. 작년에 자퇴원서를 작성하고 이메일로 제출하며 방문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럼 최근 방문이 언제인가 곰곰히 생각해 보니 재작년이네요.


삼각떼를 타게 된 이후로는 사실상 처음 다녀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작은 정문. 허전한 주차장.


낮에 찾아오면 주차장에 차들로 가득차고 돌아다니는 학생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만, 저녁에 오니 그런 모습은 쉽게 볼 수 없습니다. 정문 주변 대학가에도 사람이 몇명 돌아다니기는 하지만, 그리 번화한 모습은 아닙니다. 농구단 랩핑이 되어있는 학교 셔틀버스의 모습도 그대로고, 정문 근처의 모습은 뭐 하나 바뀐게 없습니다.





정문에서 바라보면 멀리 본관이 보입니다.


캠퍼스 설립 당시 지어진 건축물인데, 지금은 본관보다도 지상 10층 규모의 한누리관이 이 학교의 랜드마크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우측 도서관 건물에는 우체국이 존재합니다. 처음 이 학교에 왔던게 8년 전 일이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건 없어보이는 느낌입니다.



학교 맨 꼭대기 한누리관에 도착했습니다.


시간이 늦어 출입은 불가합니다. 이 학교에서 가장 큰 건물이다보니 대다수의 수업과 실습도 이 건물에서 진행했었고, 교수연구실과 대다수의 학과 사무실도 이 건물에 자리잡고 있었던것으로 기억합니다. 최상층에는 뉴욕핫도그와 교직원 식당이 있어 사실상 한 건물 내에서 학교 생활의 거의 모든것을 해결 할 수 있는 수준의 건물이였습니다.


그래봐야 수업을 들었던 기억보다는 휴학원서 가지고 8층에 올라갔던 기억이 더 많이 남아있습니다.



조금 일찍 왔으면 좋았겠건만... 날이 어두워지니 간단한 구경을 마치고 돌아가기로 합니다.


본관 뒷편 주차장에 세워져 있었던 흰색 비스토는 아직도 건재했습니다. 농구단 랩핑이 된 버스 말고 일반적인 도색의 버스였던 BH120F는 보이지 않더군요. 독도 조형물도 있고 좐선배라 불리던 사람 모양의 조형물도 있습니다만, 날이 어두워서 그런 조형물들은 다 보고 오지 못했네요. 


버스커버스커가 승승장구 하던 모습을 보며 들어왔던 학교를 결국 졸업하지는 못했습니다. 학과 이름도 스마트정보통신공학과라고 길어졌다고 합니다. 느지막에 중도하차의 아픔을 딛고 방통대에 입학해서 다시금 1학년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번 도전은 부디 실패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아프지 않았더라면, 혹은 중간에라도 복학했더라면 지금의 저는 무얼 하고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지금의 제가 알고 있는 사람들도 알지 못했을테고 저 차도 당연히 없었을테고 여러모로 지금의 삶이 만족스럽지는 않더라도 지금 알고 지내는 이들을 알지 못했을테니 전혀 후회하지는 않니다.


나중에 시간이 된다면 낮에 와서 구경하고 가기로 합시다. 이미 자퇴한 학교 뭐하러 보러 가냐 하는데, 그냥 근처만 오면 한번쯤은 둘러보고 가고 싶은게 사람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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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29세 도태남의 처절한 삶의 기록. sinc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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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송은 역시 개꿀탁송 1666-8648>>


모처럼만에 업무일지로 찾아뵙습니다.


보통 특별한 일이 있어야 업무일지를 작성합니다만, 오늘은 크게 특별한 일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업무일지를 작성하는 이유는 오늘은 업무상 특별한 일은 없었지만 모처럼만에 일이 잘 풀렸고, 흔치 않은 조합으로 출고된 차를 타게 되어서 업무일지를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잘 풀렸습니다. '서산-천안-문경-대구-천안'을 별다른 시간 지체 없이 돌았습니다. 마지막 코스였던 대구에서 천안행 오더를 수행하면서 들렸던 휴게소, 그리고 도착 이후 들렸던 전에 살던 자취방과 관련된 이야기도 담겨있습니다.



대구에 떨어진 시간은 약 2시 20분 즈음... 3시 출발 천안행 오더가 올라와 잡았습니다.


일찍 오지 말고 시간을 맞춰서 오라고 하네요. 거리는 가까웠지만 마침 점심도 먹지 않았던 참이라 점심을 먹고 매매단지로 올라가니 시간이 딱 맞아 떨어졌습니다. 남대구ic 근처. 성서공단에 밀집되어있는 중고차 매매단지 중 한 상사에서 차를 받았습니다. 


천안까지 함께 갈 차는 올 뉴 프라이드(UB) 해치백. 그냥 널리고 널린 가솔린이겠거니 하고 봤더니만, 디젤입니다.



1.4 WGT U2엔진과 6단 수동변속기가 맞물린 올 뉴 프라이드 디젤입니다.


디자인같은 외적인 요소는 제외하고 사실 같은 디젤모델만 놓고 본다면 엑센트(RB)가 프라이드보다 상품성도 그렇고 모든 면에서 우월합니다. 이전세대 모델들과는 정 반대의 상황입니다. 가격차이도 그리 크지 않습니다.


우선 프라이드 디젤은 자동변속기 모델이 없었습니다. 수동변속기 모델에 디럭스와 럭셔리 두가지 트림만 운용되어 선택의 폭도 그리 넓지 않았습니다. 반면 엑센트 디젤의 경우 6단 수동변속기와 함께 5단 자동변속기의 선택이 가능했고, 최근에는 7단 DCT가 적용됩니다. 휘발유 모델과 별 차이 없는 트림 및 옵션구성으로 선택의 폭이 더 넓었지요.


뭐 프라이드 디젤도 크게 답답함이 없는 차량이긴 합니다만, 기계식(WGT)과 전자식(VGT)의 차이와 200cc의 배기량 차이에서 나오는 힘의 차이는 그냥 간과하고 넘어가지는 못할 수준입니다. 여튼 동급의 엑센트 대비 별다른 메리트가 없었던 프라이드 디젤을 왜 신차로 내린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새 주인을 찾아 천안으로 갑니다.



가던 길.. 잠시 휴게소에 정차합니다.


차는 3시에 받았는데, 6시 맞춰서 천안으로 오라고 하네요. 국도를 타자니 시간이 애매하고, 중간에 내려서 국도를 타던지 그냥 고속도로로 올라가던지 하고 추억의 칠곡휴게소로 향했습니다.



파란색 프라이드 해치백. 육안상으로는 이게 디젤인지 가솔린인지 구분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예전에 비스토에도 끼우고 다녔던 15인치 알루미늄 휠. 럭셔리 트림에 기본 적용되는 사양입니다. 물론 디럭스는 깡통휠이 적용되며, 17인치 휠은 옵션으로도 선택이 불가능합니다. 디자인은 개인적으로 프라이드가 훨신 더 마음에 들지만 저같으면 그냥 엑센트 위트 탈래요.....



상품화를 거친 차량인지라 엔진룸은 깔금합니다.


엔진 커버에는 CRDI 16V가 자랑스럽게 적혀있고, 에어크리너 커버 위로는 비닐도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우측 휀다정도만 교환의 흔적이 보이고 그 외 별다른 사고나 교환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추억의 칠곡휴게소(서울방향).


지난해 여름으로 기억합니다. 울산에서 올라오던 길에 홍삼 사기를 당했고, 정확히 그 다음주에 혹시나 싶은 마음에 이 휴게소에 들어왔다가 똑같은 수법으로 홍삼을 팔던 모습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를 했었습니다. 경찰도 수년간 그런 신고만 들어왔었지 직접 실체를 확인하기는 처음이라고 하더군요. 여튼 요즘도 있으려나 모르겠네요.



저 위 테이블에서 간단한 조서를 작성했었는데...


그 뒤로 칠곡휴게소에 간간히 들어오지만, 그 당시의 기억은 생생합니다. 그리 좋은 추억은 아니지만,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이 휴게소에서 쉴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는 않기에 오늘은 그 당시 주요 장소 몇군데를 거닐어 보고 화장실에 다녀오기로 합니다.





화장실에 다녀온 뒤 슬슬 휴게소를 나가려 하던 찰나에 뭔 그림이 그려진 차가 있기에 다가가보니 이타샤네요.



스파크 LPG 오토. 카드캡쳐 사쿠라(카드캡쳐 체리)


뭐 도로 위에서 이타샤 보기가 쉬운 일은 아니고 하니 사진이나 찍고 갈 생각으로 가까이 가서 둘러보는데 차주분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시더니 저를 바로 알아보시네요. 불명예스러운 일로 한 이타샤 동호회에서 제명당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는 들려오는 소식은 없었는데 , 꽤 오래간만에 것도 우연찮게 만나뵈어 잠시 커피 한잔 마시고 왔습니다.


커피 한잔 마시고 내비게이션을 보니 예상 도착시간이 5시 58분이 찍혀있네요. 중간에 신탄진이나 청주에서 국도로 우회할랬더니만 그냥 고속도로를 타고 올라가기로 합니다.



열심히 달리고 달리니 노을이 지기 시작합니다.


아직 동지까지도 한참 남았는데 벌써 다섯시면 해가 지기 시작합니다. 프라이드 디젤은 그래도 생각보단 잘 나가네요. 토크빨로 치고나가는 맛이 있습니다. 여튼 해가 빨리 떨어지는 겨울은 활동에 많은 제약이 따릅니다.



조금 더 올라오니 완전한 밤에 가까워집니다.


조금 느긋하게 올라오니 예상 도착시간을 거의 정확하게 맞출 수 있었습니다. 도착지는 상명대 삼거리 앞 정비소. 상명대를 다녔음에도 그 앞에 정비소가 있었나 싶더군요. 뭐 당시에 제가 유심히 보지 않았을 확률도 있었겠거니 하고 로드뷰를 찾아보니 2013년 즈음에 와서 공터에 카센터 건물이 생겨났네요.



차는 바로 오자마자 리프트로 올라가고... 저는 회수해야 할 서류를 받아서 돌아갈 채비를 합니다.


이 근처를 지나다니던 일은 가끔 있었지만, 이 근처를 목적지로 놓고 온 것은 올 봄에 휴학원서 내러 왔던 이후로 처음입니다. 2학기도 얼마 남지 않았고, 또 다시 봄이 찾아오면 신입생들로 넘쳐나겠죠. 이 근처만 오면 그냥 우울해집니다. 여튼 일을 하면서도 온전히 학교 앞에 떨어지기는 처음이네요.



퇴근하는 차량들로 상명대삼거리 근처는 붐빕니다.


횡단보도 근처로는 학생들이, 도로 위로는 천안시내 방향으로 들어가려는 차들이 붐비고 있습니다. 이제 겨우 여섯시가 넘었지만 날도 어두워졌고 킥보드를 타고 학교까지 올라가기는 무리라는 판단에 약 6년 전 살았던 원룸 건물이나 보러 넘어갑니다. 





천안시 동남구 안서동 241-15 의상타운 403호.


도로명까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지번주소는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6년 전과 비교한다면 1층 상가도 싹 다 바뀌었고, 건물 앞 도로는 4차선으로 확장되었으며 건물 주인도 바뀌었습니다.


현재는 1층 상가에 식당과 피자집 공인중개사 사무소가 존재하지만 제가 살던 당시만 하더라도 치킨집,세탁소,핸드폰가게가 있었습니다. 의상타운이라는 건물의 이름도 사모님의 성함에서 '의'를 주인아저씨의 성함에서 '상'을 따다가 만들었던 이름이라는데 주인이 바뀐지 5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계속 유지되고 있습니다. 상명대 정문 근처에는 사장님의 자녀 이름을 딴 '영선타운'이 있었으나, 그 건물은 새 주인이 바로 이름을 바꿔버렸습니다.



제가 살던 시절과 달라진 부분이라면 상가 말곤 출입구에 버튼식 자동문이 생겼다는 부분입니다.


한번 올라갔다 오려 했으나 비밀번호를 모르니 그냥 앞에서 보고만 갑니다.



깔끔하게 4차선으로 확장된 진입로.


가로수로 있었던 은행나무는 모두 잘려나갔지만 전반적인 환경은 많이 좋아졌습니다. 혹시나 하고 옛 글들을 뒤져보니 건물에서 촬영했던 확장 전 도로 모습이 촬영된 사진이 있네요.



정확히 6년 전, 제가 들어가 있었던 그 방은 다른 누군가가 살고 있습니다.


건물 꼭대기의 불켜진 창문이 제가 살던 403호의 베란다 창문입니다. 모처럼만에 잘 풀려서 기분좋게 일을 하고 돌아가는 길에 당시의 추억들이 떠오르며 우울해지는 기분입니다. 6년 전 이 즈음에 느꼈던 패배감과 우울감이 그 당시 수준까진 아니지만 근래들어 다시 느껴지고 있습니다. 저 집에서 사용하던 노트북으로 지금 현재도 글을 작성하고 있지만, 당대 최신의 노트북이 지금은 구닥다리가 된 만큼 저 역시 별다른 구색을 갖추지 못하고 점점 구닥다리가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슬퍼지기만 하네요.


자꾸 과거에 얽매이지 않아야 하겠지만 다시 보고싶어 찾아오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그저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정도만 알고있던 그 당시에 탁송기사로 돌아다니면서 먹고 살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으니 말이죠. 투병의 연속이던 당시의 나와 지금의 나는 그저 나이만 먹은 존재인건지. 그때는 그래도 많이 아팠다고 항변이라도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별다른 핑계거리도 없는데 남들은 이미 졸업장을 받고 후련하게 떠나간 이 자리를 후련치 못한 마음으로 찾아오는 중도포기자이자 떠돌이 탁송기사인 내가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생각이 깊어지는 밤입니다.



정확히 6년 전 이 시기에. 방구석에서 우울감과 무기력함에 젖어 계속 들었던 노래. 주니엘(JUNIEL)의 나쁜사람입니다.


집구석에 박혀서 폐인으로 지내며 이 노래만 들었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그저 정상적으로 지내는 척만 하며 박혀 지냈던 그 시절을 이 노래와 함께 다시 회상합니다.


P.S 말이 업무일지지 그냥 일하다가 다니던 학교 앞에 떨어졌다고 주저리 주저리 쓴 글이네 결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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