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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이어집니다.


하두 노잼이라 하시니 빠르게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건물 내 기념실이라 소개된 방에 들어왔습니다.


이 건물이 옛 홋카이도 개척사 시절부터 현역 도청사로 쓰이던 시절까지 도지사 및 개척사의 장관이 업무를 보던 집무실이라고 합니다. 그 시절 그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더군요.



어느 동네나 그렇듯 역대 장관 및 도지사들의 사진이 걸려있습니다.


하다하다 조그마한 읍사무소 회의실이나 읍장 집무실에 가도 전임자들 사진이 다 걸려 있죠.



이래저래 천 관리도 주기적으로 해주고 있겠죠. 그래서 그런지 쇼파가 깔끔합니다.


테이블 위에는 재떨이가 하나쯤 올려져 있을 법 한데...



도지사가 집무를 보던 책상에는 지구본이 하나 놓여져 있습니다.


자세히 볼 수 없고, 쭉 돌리는 일도 불가합니다만, 깨알같은 일본어 천지입니다.



약 백여년 가까운 세월을 버틴 책상은 아무리 관리가 잘 되었다 한들 세월의 흔적이 보입니다.



도지사에게 찾아온 손님을 접대하던 자리입니다.



각료들을 모아두고 회의를 하던 테이블. 그리고 유심히 역대 도지사 사진을 보는 스시남 아저씨들.



장식장이 구석에 있습니다만, 아래 수납장 유리는 깨져있는 상태군요.


한쪽은 아예 깨져서 속이 텅 보이고, 한쪽은 종이테이프로 붙여 둔 상태입니다.



이어서 북방영토관을 관람하던 중 경상도 사투리가 들리더랍니다.

그렇습니다. 한국인 관광객 아저씨들과 가이드 아주머니가 계셨습니다.


한국어 설명이 빈약한지라 옆에 꼽사리 끼어 설명 좀 들을까 싶어 거리를 두고 따라갔습니다만, 지도를 보고 설명을 해 주곤 다 봤다며 자리를 뜨더군요..



박물관 분관으로 들어가니 북해도 지역에서 발굴된 커다란 암모나이트 화석도 보이구요.



우리내 역사책에서도 쉽게 볼 수 있던 토기그릇과 인형, 그리고 함께 발굴된 석기도 보입니다.



유즈노사할린스크 우리에겐 사할린으로 잘 알려진 가라후토 자료관에 왔습니다


졸지에 우리나라도 피해를 입었던 러일전쟁. 그리고 일본 입장에서 전쟁 및 사할린 점유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그런 공간이더군요. 아직도 일본은 멀었습니다.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의 사진.



우리내 전쟁기념관 전시품들과 조금은 비슷하기도 합니다.


총알이 관통된 개인용품들 그리고 당시 군인들의 소지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최종 관람을 마치고 1층으로 다시 내려옵니다.


후문도 있긴 합니다만, 오직 정문으로의 출입만 가능합니다. 그리고 여러 관광객들을 보았지만, 불이 꺼진 장애인 화장실의 불까지 켜가면서 화장실 사진을 찍어가던 관광객도 있더군요. 한국사람도 중국사람도 아니고 일본사람이였습니다. 세상엔 별별 사람들이 있다지만 젊은 관광객이 화장실 사진을 찍던 모습이 유난히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동안 박물관 이야기만 하니 재미도 감동도 없으셨을텐데 고생 많으셨습니다. 다시 일상이 담긴 글들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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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부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붉은 벽돌의 구 도청사 건물 1층에 소재한 홋카이도 역사 자료 갤러리로 향합니다.



문서관 내에 소재한 작은 전시실입니다만, 아쉽게도 우리말 안내는 없습니다.


다만, 한국어 안내 책자는 출입구에 비치되어 있더군요. 다음번 리모델링 때엔 꼭 일어와 영어 설명 옆에 한국어 설명도 같이 병기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홋카이도(북해도) 개척 전 부터 개척사를 거쳐 현세에 오기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미 여러번 강조하고 지나쳤던 부분입니다.



열람용 책자가 아닌 가이드북 아니 팜플렛이라도 하나 만들어 줬다면 좋을텐데 말입니다.


열람실에서 쭉 둘러보고 책자 역시 정독하고 왔습니다만, 하나하나 다 기록하고 쓰자니 노잼이라는 반응이 많고 호응도 썩 좋지 못하니 기억에 남는 부분만 짚고 넘어가도록 하죠.



빨간 벽돌로 지어진 1911년 이후 아카렌가의 모형입니다.




처음엔 그냥 재건축 당시 나온 벽돌인 줄 알았는데, 도로 위에 깔렸던 목재라 합니다.


1924년 홋카이도에서 최초로 깔린 카카타마리 포장도로의 기반이 되었던 나뭇조각들입니다. 지금이야 아스팔트나 콘크리트를 기반으로 도로를 포장합니다만, 이시절엔 그럴만한 기술도 없었고 나무를 보도블럭 깔아놓듯이 깔아두었다 합니다.



개척 전 북해도 지도.


여러 소수민족이 살고 있었던 꽤 큰 섬은 개척이라는 명목 하에 일본국 영토로 자리잡았습니다. 물론 그 위의 러시아령 사할린 역시나 일본의 야욕이 닿았던 땅이지요. 2층 이야기가 나올 때 다시 한번 더 얘기하고 넘어가도록 합시다.



의외로 100년 가까이 된 건축물임에도 지하실까지 존재하는 듯 보입니다.



후세에 와서 인위적으로 만든 공간은 아닌 것 같아 보이는군요.


지하실은 어떤 용도로 활용되고 있는지 따로 설명이 된 부분이 아닌지라 잘 모르겠습니다.



비록 도청은 뒤에 새로 지은 건물로 옮겨갔지만, 공무원들이 활용중인 공간은 꽤 남아 있습니다.


요렇게 관광객의 출입을 금한다는 표지판이나 팻말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2층으로 올라왔습니다.


국제교류, 도산품 전시실이 눈에 띄더군요. 일단 들어가 보았습니다.



홋카이도와 교류중인 지자체의 특산품 그리고 서로 주고받은 선물을 전시하는 공간입니다.



많고 많은 나라 중, 우리나라에서만 세군데의 지자체와 자매결연을 맺은 상태였습니다.


그 외에도 바로 위에 붙은 러시아의 사할린을 비롯해서 캐나다 사할린 중국 미국의 여러 州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었습니다.



대마도는 우리땅?


2005년 부산광역시와 자매결연을 맺은 뒤 경상남도 그리고 서울특별시와 차례로 자매결연을 맺었습니다. 다만 자국 영토인 대마도도 노란색으로 색칠해 두고 화살표에 같이 박아두었습니다.


우리 선조들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섬이고 부산에서 매우 가까운지라 부산사람들은 배를 타고 대마도로 당일치기 해외여행에 나가곤 합니다만, 자국 나가사키현 쓰시마시를 부산광역시에 편입시켜 주셨습니다.



2010년 10월 15일. 

서울특별시와의 친선교류 행사 당시 서울시에서 선물한 금관 장식입니다.



부산에서는 자개로 광안대교를 그려놓은 접시를 선물했네요.



사할린에서 보내온 선물도 보입니다. 이렇게 크고 작은 답례품들이 전시되어 있더군요.



대권주자에서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진 5세훈..


우리가 잘 아는 그 정치인 입니다. 무상급식 캐삭빵으로 한순간 사라진 정치인 오세훈 말입니다. 변호사 시절 TV에 출연하면서 다져온 인지도와 깔끔한 인상으로 국회의원 그리고 시장까지 올라갔던 촉망받던 정치인입니다만, 4월 총선에서 정치 1번지라 불리는 서울 종로 지역구에 출마하여 재기를 노렸지만 더불어민주당 전 당대표를 지냈던 정세균 후보에게 압도적으로 패하고 맙니다.


방문 당시가 선거철이던지라 과연 오세훈이 재기를 할 것인지 관심을 가지고 사진을 찍었습니다만 여론조사 내내 앞서다가 크게 지는 모습을 보여주며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정세균의 주가를 올리는 결과를 보여줬습니다.


10부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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