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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커 일기입니다. 전통적으로 이런저런 공사가 시작되는 3~4월은 철근차들의 성수기라고 합니다. 이렇게 장마 전까지 쉴 새 없이 움직이다가 장마철에 주춤하고 가을부터 추워지기 전까지가 또 성수기라고 합니다. 여튼 3월 초만 하더라도 사무실의 배차 비중이 엄청 줄어 손가락 빨고 다녔습니다만, 본격적인 성수기가 시작되니 슬슬 바빠지네요.

 

여튼 오늘은 반 강제 차박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캠핑을 가거나 일부러 차에 이불을 깔고 주무시는 분들이 많으신데, 저 역시 이 트럭을 새로 구입하고 며칠 지나지 않았던 시점에서 그런 느낌의 차박을 해보기도 했습니다만, 지금은 생계형 차박입니다. 즉 살아남기 위해 차박을 한다고 보면 되겠죠.

 

여기서 살아남기 위한 차박이라는 의미는, 말 그대로 하차지에 빨리 도착하여 빠르게 하차하기 위한 목적을 가졌다는 의미입니다. 빨리 하차하고 빨리 회차하여 당일착 오더를 받아 움직이는 게 여러모로 유리합니다. 당일착 오더가 남아있는 상태에서 빨리 회차한다면 종전에 저보다 앞에 있던 다른 차량들의 배차 순번을 모두 앞지르고 오더를 받아 나가는지라, 순서대로 배차되는 야간 상차 배차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차지합니다.

이게 한대 두대 오는 현장이나 공장이면 몰라도 여러대의 차량이 오는 경우 재수 없으면 하차도 정오에 가까워진 시간에나 할 수 있습니다. 하차가 늦어지면 회차도 늦어지고, 이미 당일착 오더는 다 빠지고 익일착 야상이나 하나 받고 끝나는 그런 최악의 상황을 겪게 될 수 있다는 얘기지요.

 

지난주에는 하루 걸러 하루 파주에 다녀오고, 중간에 하차에 한시간이 걸리는 공장에 다녀와 이틀 연속 꼴찌로 들어오며 다른 차들이 다 당일착을 받아 나갈 때 저는 이틀 연속 익일착 받고 끝났던지라 이번 주는 이를 갈고 나왔습니다.

 

오후 8시쯤 출발.

 

월요일에 익일착으로 배차받았던 오더는 진천의 한 철근 가공장으로 가는 오더였습니다.

업계 1~2위를 다투는 규모가 있는 공장인지라 매일 들어오고 나가는 차량도 많습니다.

 

하차가 빠른 편이기는 한데 오전 8시부터 하차를 시작해도 앞에 대기하고 있는 차량이 많다면 오후에나 나올 수 있는 그런 공장이지요. 하차지에 연락을 하며 혹시 오늘 몇 대나 들어오느냐고 물어보면 해당 제강사에서 얼마나 오는지만 알려줍니다. 한 제강사에서 들어가는 차량들도 적지 않은데 다른 제강사에서 오는 차량들도 그만큼 혹은 그 이상 있으니 하루에 수십대가 들어온다는 얘기겠지요.

 

일단 집에 가서 씻고 저녁만 먹고 나왔습니다. 오후 8시가 조금 넘었네요.

일요일에서 월요일 넘어가는 시점에서도 차박을 했으니, 이틀 연속 차박이 되겠습니다.

 

출발 전 침대 열선부터 켜놓고..

출발 전 예열하며 침대 열선부터 켜놓습니다. 도착하면 따뜻하게 취침할 수 있습니다.

 

풀옵션이라 냉장고도 있고 무시동 히터도 있고 무시동 에어컨도 있습니다만, 개인적으로 무시동 히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소음도 크고 무엇보다 머리 밑에서 뜨거운 바람이 올라오는 게 대체 그거 켜고 어떻게들 자는지 모르겠더군요. 진짜 추워서 뒤질만한 상황이 아니라면 켜 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켰다가 어느 정도 따뜻해지면 바로 꺼버립니다.

 

열선도 옛날 차들은 키 OFF 상태에서도 작동했는데, 요즘 차는 ON이나 ACC에 둬야 작동합니다. 무시동 히터 역시 무시동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ACC에서 작동합니다. 물론 방전되기 전에 전압이 떨어지면 작동을 멈추겠지만, 굳이 키를 돌려놓고 자는 게 꺼림칙해서 그냥 열선으로 따뜻하게 만들어 두고 시동 끄고 편하게 잡니다.

 

도착. 3등

9시 50분에 도착했습니다. 그냥 상차 후 바로 달려왔는지 벌써 1등 2등이 차를 세워뒀네요.

 

앞에 보이는 가공철근이 상차된 차량들은 새벽에 빠져나갈 겁니다. 트라고랑 엑시언트 새 차 말고 저 앞에 세워진 두대의 차량이 하차를 위해 대기하는 차량들입니다. 맨 앞 차량은 같은 공장 차량이고, 두 번째 차량은 동국제강 철근이네요. 일찍 와도 1등을 못하니 개탄스럽습니다만, 새벽에 2~3등을 노리고 오는 차량은 4등이라 더욱 절망스러울 겁니다.

 

대충 씌워주고.

철근 굵기가 굵어서 굳이 씌워주지 않아도 됩니다만, 방수포를 씌워놓고 취침합니다.

 

비가 내리거나 이슬 혹은 서리가 끼면 난처해집니다. 습도가 그리 높지는 않았지만, 대충 바람에 날리지 않을 수준으로 씌워두고 침대에 누웠습니다. 그리고 편하게 잤습니다. 평탄화 매트를 사용하여 최대한 편하게 잘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놓은 승용차에서의 차박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다리를 쭉 뻗을 수 있어 화물차 침대칸에서의 취침은 비싼 매트리스만큼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꿀잠을 잘 수 있습니다.

 

공장 전경

24시간 철야근무는 하지 않더라도, 밤 10시 정도까지 야간근무를 하네요.

 

물론 하차는 오전 8시부터 가능합니다. 다른 공장들은 더 일찍 작업을 시작하거나 새벽에도 일부 내려주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이 공장은 대기하는 차량이 수십대가 있더라도 그 시간에 하차가 진행됩니다. 곧 공장 불이 꺼지더군요. 사무실 직원들은 모두 한국인이고, 현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대부분이 외국인입니다. 불이 꺼지면 외국인들도 기숙사로 자러 들어가겠죠.

 

다음날 아침

평화로운 아침이 찾아왔습니다.

새벽에 중간에 있던 차량들이 빠져나갔고, 제 뒤로 두대 정도 더 왔더군요.

 

새벽에 오는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일찍 나가려는 사람들인데 4등 5등 하면 초친거죠 뭐. 사실상 8시 맞춰서 온 차량들이랑 나가는 시간에서 큰 차이는 없을 겁니다. 중간에 추워서 잠깐 눈이 떠지긴 했는데, 다시 눈을 감고 잤습니다. 평소에도 집에서 춥게 사는지라 숙면에 방해받는 수준은 아녔습니다.

 

집에서 좀 자고 새벽에 일어나서 나가는 것보다 차라리 일찍 가서 푹 자고 하루를 시작하는 게 훨씬 컨디션이 좋습니다. 그래서 생계형 차박이라 말해도 자러 가는 것이고요. 1번 차량이 나온 다음 들어가 빠르게 철근을 하차한 뒤 회차했습니다. 본격적인 성수기를 맞이하여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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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29세 도태남의 처절한 삶의 기록. sinc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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