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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이어집니다.




현 도청사 건물, 그리고 주차장으로 해서 도청사 정원을 빠져나옵니다.


몇번 더 강조하지만 우리로 따지자면 2월 말에서 3월로 넘어가는 시기의 기후인지라 눈은 둘째치고 꽃도 볼 수 없었답니다. 지금쯤 간다면 우리내 4월 기후정도 되겠군요. 요즘에는 아마 꽃축제나 이런저런 야외공연도 좀 있는 듯 싶습니다.



후문으로 나와 조금은 외곽진 도심의 길을 걸어봅니다.


뭐 일본이라고 불법주정차를 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일본이라고 차들이 경적을 울리지 않는것도 아니라는걸 느끼고 왔습니다. 신호가 바뀌고 앞차가 진행을 하지 않아 분노의 경적을 울리는 경우도 몇번 봤네요. 어디든지 사람이 사는 동네는 다 똑같ㅇ느 것 같습니다.



조금만 걸어가면 오도리공원이 나옵니다.


오도리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에 따라 춤이라는 의미의 おどり가 아닐까 싶었습니다만, 한자로 대통공원(大通公園)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오오도오리 大(おお)+通(とお)+り입니다. 


일어사전의 힘을 빌리자면 오오도리라는 단어의 의미는 우리말 대로(大路)와 비슷하더군요. 결론적으로 그냥 시내 중심가 대로 한복판에 있는 공원이라는 뜻. 



실상은 공원이 아니라 도로라고 하는군요.


오도리공원은 공원으로 불리고 있지민 실은 도로이다. 


1871년, 삿포로 중심부를 남북으로 가르는 화재방지선이 만들어졌고 이것이 시리베시도리라는 도로가 되었다가 이름이 바뀌어 오도리가 된 것이다.


또 다른 설명으로는 1871년 삿포로시 개발 당시에 북쪽의 관공서 등 공공기관, 남쪽에는 상업시설과 주거단지를 개발하면서 그 경계점으로 만든 공원이라고 합니다. 여튼간에 커다란 도로 한복판에 1초메부터 12초메(쉽게 얘기해서 1블럭부터 12블럭)까지 1.5km라는 어마어마한 영역에 세워진 공원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공원의 안내판입니다.


도청 구 본청사에서 내려왔죠. 더 내려가면 다누키코지 상점가가 있습니다. 그 외 서쪽으로 가면 홋카이도대학 식물원이, 동쪽으로 가면 오도리역과 위 사진에 보이던 TV탑이 나온답니다.


말이 공원이지 삿포로시에서 관광객을 대상으로 이런저런 행사를 진행하는 나름 서울의 시청앞 혹은 광화문 광장과도 비슷한 성격을 가진 곳이고, 제가 간 4월을 제외하고 매년 매달마다 특색있는 행사가 개최됩니다.



이거 뭐 관광지 맞아? 사람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데?


방문한 시간대가 다섯시가 조금 넘었던 것도 있었지만, 황량합니다. 알고 보니 제가 간 4월에만 행사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항공권이 저렴했고, 항공기도 빈자리가 꽤 많이 보였다는 것이죠. 뭐 삿포로는 아주 추울때 오던지 최소한 꽃이 피는 계절에 와야 합니다.



그래도 이름이 이름이라고.. 춤을 추는 사람들도 있긴 합니다.


카와이한 각쿠새들이 팝핀 비슷한 춤을 춥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의식하면서도 자기들끼리 나름 열심히 하는군요. 비록 추운 날씨에 다들 지나쳐가기 바쁘고 노래도 작게 틀어둔지라 멀리서는 저들이 무대 위에서 쇼를 하는지 춤을 추는지 파악이 불가하답니다.


비록 봐주는 사람 하나 없어도 그들은 열심히 오도리공원에서 おどる를 연습하고 있습니다.



開拓紀念碑(개척기념비)


공원 내 크고 작은 조형물들 그리고 비석들이 존재합니다. 이 개척기념비 역시 북해도 개척 및 삿포로시 조성 당시에 세워진 비석으로 보입니다. 이래저래 도시 곳곳을 관람하며 느낀 바 북해도 개척에 관련된 역사와 그를 기념하려는 모습들이 지겨울 정도로 보입니다.


P.S 1901년 지금의 자리로 이전해 왔다고 하는군요.



바위 위의 부엉이가 사슴 까마귀 토끼를 모아두고 무언가를 토의하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선생님 같은 존재일까요. 아니면 동물의 왕과 같은 존재일까요. 정확히 알 수 없고 출입금지라며 바리게이트를 쳐둔지라 가까이 갈 수 없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검색을 해 봤습니다만, 처음 생각했던 그 어떤것도 정답이 아녔답니다.


동물들의 모임과는 관련이 없는 '봉사의 길'이라는 이름을 가진 삿포로시 로타리클럽 50주년을 기념해서 세워진 동상이라 합니다.



80년대에 지어진 느낌이 물씬 풍겨오는 오도리공원 내 화장실


화장실은 화장실입니다만, 이용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답니다. 뭐 공원에 볼거리라도 있어야 관광객들이 올테고 그 관광객들이 화장실도 이용하겠죠. 비록 지어진지 오래된 화장실이지만 우리내 지어진지 5년도 안된 공원 내 공공화장실보단 훨씬 깔끔해 보였습니다.



웬 도심 한복판에 어부아저씨들인가.. 하고 봤더니만


1969년에 홋카이도 어업인 협회에서 창립 10주년과 홋카이도 개척 100주년을 기념해서 세워둔 동상이라 하는군요. 우리내 공원의 동상들은 나름 언제 제작되었는지 얼굴이나 묘사 형태를 보면 대강은 파악이 가능한데 일본 동상은 가늠하기가 힘들군요.


50년의 세월을 버텼지만, 그래도 관리상태는 준수한 동상입니다.



저같이 멘붕이 온 관광객에게 안내를 해 줘야 할 인포메이션센터는 굳게 문이 닫혀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먼저 삿포로시에 방문했던 사람들의 후기에 빠지지 않던 '오도리공원이 그렇게 유명한데 얼마나 아름다울까!'라며 내심 기대하고 왔지만 볼게 없는 시기에 걸쳐진지라 황량한 공원을 구경하고 가는 저같은 관광객에게 카와이한 안내원 처자가 카와이한 목소리로 혼또니 스미마셍 하다고 위안이라도 해줘야 하는거 아니겠습니까...ㅠㅠ



일본의 제1야당인 민주당 북해도당사 간판이 보이는군요.


그렇게 높은 건물도 아니고 평범한 사무실 건물에 입주해 있는 듯 보입니다. 우리나라의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총선에서 대 승리를 거둬 여당보다 더 많은 의석을 얻어갔지요. 일본의 민주당도 우리의 더불어민주당처럼 복잡한 세력이 있을테고 어느 세력이 당권을 잡느냐에 따라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겠죠.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민주당내 모 계파는 과연 전직 대통령이 추구하던 그런 정치를 위해 노력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대통령의 명예를 팔아먹으며 자신들만의 선민의식과 집단이기주의로 무장해서 지지자들도 성숙하지 못한 경우가 많더군요. 전 그 지지자들이 안철수 지지한다 하면 온갖 험담하며 몰아가는 그 꼴이 싫어서 3번찍었네요. 3번당이 그나마 제 성향에 가장 가까워 보입니다.



미쯔비시후소 에어로 퀸 하이데커 I


우리에게도 현대 에어로 시리즈로 겉모양은 익숙한 버스입니다. 일본에서 기술을 배워오던 현대차가 이제는 독자기술로 일본의 자동차 브랜드를 앞서는 시대가 되었고, 저 똑같은 버스를 만들어내던 현대차가 불과 10년도 지나지 않아 독자개발한 버스를 일본에 수출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호텔 앞에 정차해있어 관광객들을 내려주는 줄 알고 있었는데 공항버스네요. 신치토세공항에서 삿포로시 시내 노선을 다니는 시외버스입니다. 회송이라 써 있는 모습을 보면 차고지로 가는 모양입니다.



성은비(聖恩碑). 역대 일본 왕들의 업적을 담은 비석이라 합니다.


우리에겐 역사상으로 썩 달갑지 않은 왕들인 메이지(明治),다이죠(大正),쇼와(昭和)왕의 업적을 담아놨답니다. 요즘도 옛 문서를 찾다보면 대정7년, 소화3년과 같은 일본 왕의 연호로 년도를 표시해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불과 한달 전만 하더라도 그런 연호를 밥먹듯 보는 일을 했으니 말이죠.



손가락 아프게 키보드를 더 두르릴 이유가 없어보입니다.


분수는 분수인데 물이 없어요. 애매한 시기라 잘못하다간 물이 얼어버릴 수 있으니 말이죠.


하루가 지나갑니다. 토요일임에도 출근길에 올랐던 차들이 다시 도심으로 쏟아집니다.


찰황 번호판을 달고 유유히 지나가는 차량들. 해저터널이 있긴 합니다만 어디까지나 기차를 위한 해저터널이기에 우리나라 제주도처럼 자동차는 무조건 배편을 이용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홋카이도 내 도시들 지명 말고 낮설어 보이는 지명이 써있는 번호판은 보기가 힘들더군요.



태양은 강력한 역광을 남기고 서쪽 저편으로 모습을 감춰갑니다.


썸머타임 제도를 도입해서 약 한시간만 앞당겨도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 할 수 있을텐데 말이죠. 새벽 다섯시도 안되서 환해지는 동네인지라 해가 너무 빨리 지는 느낌입니다.


일본이라고 정지선 위반을 하지 않는건 아닙니다.


뭐 횡단보도를 점거하고 있는 CR-V가 지나가려던 찰나에 신호가 바뀐지라 저 자리에 섰습니다만, 여튼 일본이라고 정지선 위반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횡단보도를 자동차가 점거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분수광장에서는 비록 분수는 가동되지 않지만 제법 춤을 추는 사람들이 모여있습니다.


저 키작은 아이가 토머스를 제법 할 정도로 다들 실력이 출중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분수공원 반대편에 앉아 저들을 구경하는 사람들도 몇명 있더군요. 다만 저 춤꾼들은 제가 지나가면서 곧 음악을 끄고 자리를 정리하고 집으로 가는 듯 보였답니다.



그렇게 삿포로시의 주요 상징물이자, 오도리공원의 시작을 알리는 TV타워 앞까지 도착했습니다.


1957년 147.2m의 높이로 세워진 홋카이토 최초의 고층 건축물이였답니다. 지하와 2층 3층 그리고 유료 전망대가 소재한 이 TV탑은 60년이 넘는 세월을 버텨왔습니다. 비록 지금은 본연의 목적인 전파송출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만, 시의 랜드마크 중 한군데인 만큼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관광명소로서 입지를 굳게 다지고 있다지요.


여튼 12부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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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스도리

만 29세 도태남의 처절한 삶의 기록. sinc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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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스도리의 큐슈 여행 이야기. 그 아홉번째.


한국 당진 시민이 방문 해 본 일본의 당진 가라쓰(唐津) 그 두번째 시간입니다.



후쿠오카의 하카타에서 버스를 타고 가라쓰로 이동을 한 티스도리.. 가라쓰의 중심지 오오테구치(大手口)에 위치한 버스센터(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일본의 당진, 가라쓰 버스터미널은 말 그대로 복합 쇼핑센터입니다.


인구가 12만 남짓 정도 되는 중소규모 도시임에도 복합 멀티플렉스 문화공간의 터미널이 지어져 있네요. 한국의 당진과 마찬가지로 상권이 외곽으로 옮겨가면서 이 곳 역시 재개발이 예정되어 있다고 합니다. 최근에 지어져서 그런지 시설도 좋고, 한국어 안내도 어느정도 되어 있더군요.


복잡하고 젊은사람이 더 많았던 후쿠오카 시내완 달리.. 가라쓰는 한적했습니다. 종종 보이는 사람들도 어르신들이 대부분이고.. 차나 몇대 지나가지 시내엔 사람이 썩 많진 않더군요.


큰 손과 입을 나타내는 오오테구치의 터미널 근처엔 유서깊은 서양식 건물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구) 가라쓰은행 건물이라고 하네요.



아주 조금만 걸어가면 서양풍의 건물이 보입니다.


명치(메이지) 43년 착공하여, 45년(1912년) 완공된 이 건물은 일본 건축계의 거장인 다츠노 킨고(辰野金吾)의 작품입니다. 사가현 가라쓰시가 고향인 그는 영국에서 선진 건축문물을 배워 와 일본에서 처음으로 건축사무소를 세웠던 인물입니다.


참고로 다츠노 킨고는 일본의 중앙은행인 일본은행과 도쿄역사를 비롯한 일본의 주요 건축물과, 한국의 옛 서울역사 등 굵직한 건축물의 설계 과정에 관여를 했던 사람이지요. 



당 진 은 행 협 회(唐 津 銀 行 協 會)

당 진 수 형 교 환 소 (唐 津 手 形 交 換 所)


동판으로 된 옛 명패가 남아 있습니다. (구) 가라쓰은행은 사가은행에 통합되었고, 1997년까지 이 오래된 건물에서 업무를 보았다 합니다. 현재는 이 건물 뒤로 새 건물을 지어서 은행 업무를 보고 있습니다. 



좌 하 은 행 (佐 賀 銀 行) 당진 지점 (唐津 支店)


사가은행에 통합 된 뒤로는 사가은행 당진지점 명패를 달았습니다. 100년 전부터 은행이 있던 이 근처로 신용협동조합이나 우리나라로 치자면 새마을금고나 축협정도 되는 금융기관들이 몰려있었습니다.



입구입니다. 당연하게도 무료입장이지요.


2002년 시 지정 문화재로 관리가 되기 시작했고, 2008년부터 약 3년에 걸친 복원작업으로 현재의 모습을 보이게 되었답니다. 사실 도쿄역 건설에 바빴던 다츠노 킨코가 그의 애제자였던 다나카 미노루에게 디자인을 맏겼고, 다츠노 킨코는 가라쓰은행 건축에 감수로 참여를 했다고 하더군요.



우리나라에 남은 왜구가 세워두고 간 근대 건축물들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은 다 갖췄습니다.


적벽돌과 화강암으로 마무리를 한 모습이지요. 다츠노는 자신의 고향땅에 세워지는 건물보단 수도 한복판의 역사를 짓는 데 바빴지만, 그래도 고향이기에 신경을 쓴 모습입니다. 



실내로 들어왔습니다. 사진은 찍어도 된다고 하는군요.


외국인 관광객이 거의 오지 않는 곳이라 외국어 설명은 없었습니다. 고로 그냥 눈으로 보고 아는 한자로 때려맞춰서 이해를 하는 수 밖에 없더군요. 제가 관람차 건물에 들어왔을 때는 다른 은행의 간부급으로 보이는 아저씨들이 견학을 왔더군요. 쭉 둘러보고 버스에 타더랍니다.



왼쪽 흉상이 다츠노 킨코, 오른쪽은 소네 카츠오 입니다.


다츠노 킨코야 위에서도 충분히 얘기 했으니 소네 카츠오(曽禰達蔵)에 대해서 한번 언급을 해야겠지요. 사실 소네 카츠오가 두 살 많은 형이긴 한데.. 같은 가라쓰 출신으로 함께 건축학을 공부하였고 당시 해군 진수부를 거쳐 미쯔비시에 입사하여 정년 퇴임한 후 다츠노와 함께 건축사무소를 개설합니다.


소네 카츠오 역시 일본 건축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고, 게이오대학 도서관을 비롯하여 공공기관 및 미쯔비시 계열의 많은 건물 설계에 관여했다 하네요. 



엔틱한 창구.. 지금 은행 창구들은 개방된 분위기를 주지만 폐쇄적인 분위기를 보입니다.


뭔가 돈을 맏기러 왔다가 돈을 뜯기는 기분을 느낄 것 같습니다만.. 겉모습만 당시 서양의 건축양식을 따른게 아니라 실내 역시 동양스러움보다는 서양스러움이 느껴집니다.



건물의 제원표입니다.


구 가라쓰은행


주소 : 佐賀県唐津市本町1513-15 
준공 : 1912년 (메이지 45년)

설계자 : 다나카 미노루 (타츠노의애제자)

부지면적 :  1,431.73㎡ 
연면적 : 906.99㎡ 
층수・높이:지상 2층, 지하 1층 
건축 : 벽돌 
용도 : 2F:전시시설 
    1F:다목적홀, 휴식공간

    B1F:레스토랑 가라쓰영빈관

영업시간 : 오전 9시 오후 6시

휴관일 :  12월 29일 ~ 12월 31일



건물 전경 아래에 보이는 왼쪽에 콧수염 아저씨가 은행의 설립자인 오시마 코타로


가운데는 흉상에서 봤던 다쓰노 킨코


오른쪽 인물은 킨코의 제자였던 다나카 미노루


오시마 코타로는 가라쓰시의 주요 관광지인 오시마저택의 주인이기도 했습니다. 탄광 기술자이자 사업가로 많은 돈을 벌어들였던 그의 저택 역시 중요 역사자료로 보존되어 있답니다.




가라쓰에 탄광이 개발되던 시기이다 보니 석탄을 떼우는 벽난로가 구비되어 있습니다.


빨간 삼각별 로고로 유명한 삼능(三菱) 미쓰비시에서 탄광 개발을 했었고 당시 미쓰비시 합자회사의 사옥으로 쓰였던 건물은 현재 가라쓰시 민속자료관으로 쓰이고 있답니다. 얼마 전 군함도라 불리는 하시마섬의 세계 문화유산 등재 건으로 일제의 강제징용과 관련된 이야기가 다시 한번 대두되었는데, 가라쓰 탄광 역시 조선인 강제징용의 역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사가현 가라쓰탄광에 끌려 간 피해자 김종선은 다음과 같이 증언하였다. <훈련기간이 끝나면 밥값이 높아 지고 거기에다가 강제저금,공채,국방 ...


구글링을 해서 얻은 검색결과인데 북한 로동신문 사이트 검색결과라 자세한 확인은 불가하네요.


우리 조상님들의 피와 땀 그리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스며있는 벽난로입니다. 



안으로 들어와도 집기류는 다 치워진 상태이고, 의자만 보입니다.



건축 · 설비 유지 보전 추진 협회(롱라이프 빌딩 추진위원회)의 BELCA賞을 받았답니다.


말 그대로 고건축물 보존 위원회에서 우수 표창을 받았다는 얘기지요.



벽난로는 자세히 보면 사용했던 흔적이 보입니다.


요즘에도 석탄으로 난로를 떼우는지는 모르겠는데 여기저기 그을린 흔적이 보이는걸로 봐서는 날이 추워지면 벽난로를 가동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2층으로 올라갑니다.



영업 당시 사용했던 도장들을 전시해 두었습니다.


이렇게 은행에서 사용하던 집기류를 전시하고, 타츠노 킨코에 대한 소개와 그가 설계한 다른 건물들에 대한 설명이 대부분입니다. 다만 한국어는 고사하고 영어 안내문도 없으니.. 한자를 보고 때려맞추는걸로 이해를 했습니다. 집에 와서 확인하니 얼추 맞네요.



타츠노 킨코의 또 다른 작품인 일본 동경에 소재한 일본은행 건물.



가라쓰시 관광 홍보영상을 틀어줍니다. 마침 가라쓰성이 나와서 사진을 찍었네요.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막아두었습니다.



이게 대체 뭔가 하고 봤더니만 전등 스위치더군요.


그시절 전등 스위치까지도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었답니다.



밖으로 나와 가라쓰 시청으로 향해봅니다.


한국의 당진과 비교했을 때, 시청과 터미널이 서로 바뀐 분위기입니다. 여기는 한국이 아니라 일본이니 이국적인 풍경을 보이는건 당연하겠죠. 시청 앞으로 인공 연못이 보입니다.



그리고 작은 망루도 하나 보이네요. 정말 주변에도 공원처럼 잘 꾸며놓았습니다.



시청 앞 토요타렌트카 당진지점.


구글 스트리트뷰로 보았을 때는 86도 있었던 것 같은데..;; 86은 없더군요. 일본은 이런식으로 자동차 메이커가 자사 차종으로 차량 대여사업을 펼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답니다. 


뭐 대한민국 자동차의 대표주자인 현대기아차도 자회사인 현대캐피탈을 통해 리스사업을 하고 있고, 신차 출고시 개인 장기렌트의 장점을 홍보하며 최근들어 개인이 렌트카 번호판을 다는 경우가 있는데 현대캐피탈 소속이 아닌 여타 대기업 렌트카회사 소속 차량입니다.



가라쓰 시청 입구입니다. 신사에서 볼법한 도리를 볼 수 있네요.


한적한 중소도시 가라쓰는 시청도 한산합니다. 한국의 당진시청은 크고 화려하고 차도 많은데.. 일본 가라쓰시청은 애초에 출장소가 두세곳에 소재한것도 있지만 조용한 분위기입니다.


참고로 제주 서귀포시 그리고 전남 여수시와 자매결연을 맺은 가라쓰입니다.


P.S 광주광역시 역시 한자 표기가 같은 중국의 광저우시와 자매결연을 맺었는데 당진시는 가라쓰시와 교류를 하고픈 마음이 없는건가 싶습니다. 리그베다 위키(현 나무위키)를 봐도 가라쓰시와 당진시는 아무런 관계도 아니라는 사실에 의아해 하는 분위기던데 말이죠. 사실상 두 도시 모두 북쪽으로만 바다를 접하고 있고 당진의 아산만과 가라쓰의 가라쓰만, 그리고 화력발전소까지 닮은 구석이 너무나도 많은 도시입니다.



시청 앞 안내원 한사람.. 그리고 저기 건물에서 나오는 민원인 한명.. 끝!


한산할 시간대인 어정쩡한 오전에 가서 그런건진 몰라도 참 사람보기 힘들었습니다.



우리나라로 따지자면 한솥도시락? 여튼 그런 느낌의 도시락 체인점 호토모토입니다.


한국에도 대도시를 중심으로 몇군데 체인점이 있지요. 시청 앞에 있었는데, 아침을 먹기도 점심을 먹기도 애매한 시간대임에도 도시락을 사러 온 손님이 최소 두명은 있었습니다.


10부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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