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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차로 5분거리의 온천욕장인 세심천에 들렸습니다만, 영업을 하고 있지 않더군요.



새 도로가 뚫려 이 앞으로 지나다니지 않은지도 오래되었고.. 여튼 오랜만에 왔습니다만...


공사용 비계가 건물을 감싸고 있고, 내부 철거작업이 진행중이더군요. 8월 말까지 리모델링을 진행한 후 9월부터 다시 손님을 맞는다고 합니다. 덕산온천을 구성하고 있는 대표적인 온천욕장 중 하나인 세심천은 덕산온천관광단지 그리고 덕산 시내와도 그리 멀리 떨어져있지 않으며 예산군 덕산면이 아닌 삽교읍에 소재해 있습니다.


행정구역상 일부 지역은 내포신도시에 편입된 삽교읍 신리입니다.





항상 주말이면 주차장에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북적이던 공간인데 공사 관련 차량들만 주차되어 있습니다.


그런고로 수암산 등산로 앞 작은 공터에는 세심천 주차장에 주차를 하지 못하고 등산을 온 등산객들의 차량이 평소에는 한두대 수준이지만 가득 매울 수준으로 많더군요. 등산-온천욕을 하러 오는사람들이 세심천 주차장에 차를 세우는 경우가 많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출입구는 열려있고 불은 켜져있습니다만,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처음 이 온천이 개장했던 시기가 기억납니다. 당시 저는 여섯살. 새로 생긴 목욕탕이래서 갔던 어릴적 기억이 생생합니다. 초등학교에 입학식 직전 일요일에 목욕을 와서 부모님이 해주셨던 이야기도 생생히 기억나고요. 여러모로 어릴적부터 주기적으로 이 목욕탕에 다녔던지라 생각외로 기억 나는 일화는 많습니다.


기억을 상기시켜보니 정확히 20년동안 이 온천탕을 다니면서 간간히 외벽이나 욕탕의 소소한 변화 말고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네요. 어릴적 기억 속의 공간과 요 근래 방문 당시의 모습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으니 말이죠.



매점 역시 문을 닫았습니다.


바로 아래에 편의점이 생겨 근래에는 종전만큼 장사가 잘 되진 않았지만, 그래도 갖가지 먹을거리와 등산용품을 판매했던 자리입니다. 리모델링 후 매점 역시 새로운 모습으로 영업을 재개할지, 조립식 건물인지라 철거 수순을 밟을지는 두고 봐야겠지요.



밖에서 지켜봐서는 공사가 진행중이라는 느낌은 적지만, 내부에서는 공사가 한참 진행중입니다.


욕탕에서 나온 폐기물이 떨어져 내려오는 파이프도 보이고, 이미 철거된 폐기물들이 산을 이루고 있는 모습도 보입니다. 과연 어떤 모습으로 새 단장을 하고 손님을 맞을지.. 다가오는 9월에 다시 찾아가도록 합시다.


P.S 덕산온천의 원조격인 원탕을 갔더니 그곳은 이미 지난해에 폐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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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할게 없더군요. 그래서 산을 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뭐 당진에 아미산이 있다면 옆동네 예산에는 가야산 수암산 덕숭산 등등 산이 참 많습니다. 높은 산까지 가기엔 저질체력으로는 무리고, 그냥저냥 동네 언덕배기 수준의 수암산을 타기로 마음먹습니다.



돋는 글이 하나 보이는군요. 나무가 뿌리째 뽑혔던 그 산입니다.


수암산은 그냥저냥 280m급 언덕이라면 언덕입니다. 대체적으로 등산로가 무난한 수준이며 능선을 타고 바로 홍성의 용봉산 도립공원까지 이어집니다. 용봉산도 썩 높은 산은 아니기에 산악회의 단체 산행이라던지 자주 올라가는 등산객들의 경우 수암산과 연계해서 두 산을 넘나들곤 하지요. 수암산으로 올라가서 용봉산 정상까지 찍고 오는데 왕복으로 딱 다섯시간 코스가 나옵니다.






덕산온천 관광단지의 나름 대중적인 목욕탕 세심천에서 출발합니다.


가파르지 않은 수준인지라 뭐 쉬엄쉬엄 올라갈만 합니다.



조금 올라가다 보면 '삽교 석조보살 입상'을 가르키는 작은 표지판이 하나 있습니다.


돌로 만든 서있는 불상. 그저 평범한 동네 언덕 수준으로 여길법한 산이 아닌 나름 소중한 고려시대 보물이 존재하는 그런 산입니다. 이 일대가 흥선대원군이 자신의 아버지인 남원군(고종의 할아버지)의 묘를 쓴 자리가 있기도 하다보니 여기저기에 크고 작은 묘지가 보이기도 합니다. 


뭐 그만큼 경치가 빼어납니다.



수암산에는 작은 계곡이 흐릅니다. 예전엔 가재도 살정도로 나름 콸콸콸 흘러갔는데..


어느순간 공사를 하더니만 물 흐르는 모습이 보기 힘들어졌는데 그래도 최근 비가 좀 내리고 눈이 좀 쌓였던지라 졸졸졸 시냇물이 흘러내려갑니다. 



무려 고려시대 부처님. 천년의 세월동안 한 자리를 지키고 있으십니다.

두개의 돌을 이어붙여 만든 석상으로 보물 제 508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한국어 위키백과에도 기록되어 있군요. 바로가기



부처님은 이 자리에서 천년동안 저 넓은 평야를 바라보고 계셨겠지요.


국가의 흥망성쇄 그리고 전쟁과 최근 이 일대 내포신도시로 인한 개발붐 역시 다 보고 계셨을겁니다.



부처님을 지나 돌고 돌아가니 수암산 정상까지 0.4km 남았다고 합니다. 


석조보살 방향으로 조금 돌아서 올라가는 상황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뭐 반 이상 올라왔답니다.



평소 상당히 가파른 경사였던지라 자주 넘어지고 했던 구간인데.. 계단이 생겼습니다.


2015년 수암산 등산로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계단을 만들었다 하는데.. 저 자재들 사람들이 들고 올라왔을테지요.. 상당히 힘들고 고된 작업이 아니였을까 사료됩니다.



조금 더 올라가면 산성 터가 있었다는 안내팻말이 붙어있습니다.


수암산성은 수암산의 정상부를 포함하여 북쪽과 서북쪽 지역을 감싸면서 만들었다. 성의 크기는 둘레가 약 540m이며, 흙과 돌을 섞어서 쌓았다. 성벽은 대부분 약간의 흔적만 남아있는데, 서북쪽에서는 막돌을 쌓은 성벽을 잘 볼 수 있다. 성의 내부에는 북쪽으로 치우친 곳에 약간의 평지가 있어 건물터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로 판단되는 기와가 확인된다. 수암산성은 수암산의 제일 북쪽에 위치해 있어 전망이 좋으며, 북동쪽의 예당평야를 한눈에 감시하는 기능을 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합니다. 매번 지나다니면서도 수암산에도 산성이 있었다는 사실은 몰랐었는데.. 이번에 좋은 사실을 알아가는군요. 상당히 오래전 축조했던 성이라 그런건지 사실 남은건 별로 없습니다만, 우리 선조들의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가 아니였을까 생각됩니다.



조금 더 올라가보면 수암산 등산안내도가 보입니다.


썩 큰 산은 아닙니다만 등산로도 다양하고 나름 봉우리도 꽤 많습니다. 중학생 시절로 기억합니다만, 세심천으로 올라가서 갈때까지 가보자고 최고봉 찍고 용봉산주차장으로 내려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천만 다행히도 아는 아저씨를 만나 그분 차를 타고 세심천까지 갈 수 있었지요.


불과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그저 그런 촌동네였습니다만, 지금은 충청남도청이 옮겨왔고 신도시로 개발이 한창 진행중이랍니다. 서울의 북한산과 같은 역활을 우리의 수암산과 용봉산이 해내고 있습니다.



한켠에는 요런 돌탑도 보이곤 합니다. 


언젠가 년초에 올라왔을땐 무당아주머니가 여기서 제를 지내고 계시더군요. 산신령님께 올 한해도 잘 부탁드린다고 제를 올리는게 아닌가 싶었는데.. 거의 산 정상에 가까운 이곳까지 제수용품을 들고 올라왔다는게 어찌보면 대단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었답니다.



나뭇가지에 가려져서 보이진 않지만 내포신도시는 한창 개발중에 있습니다.


경기침체가 겹치고 밑에 세종시에 비해 관심도 많이 받진 못했습니다만 암만 그래서 별거 아닌듯 보여도 이 산 역시나 공시지가는 꽤 많이 올랐으리라 생각됩니다. 저 동네 사시던 어르신들만 계탄거지요..



뭐 사진상으론 정말 험난한 여정처럼 보이시겠지만 약 40분에 걸친 산행이 끝났습니다.


정상입니다 정상. 정자 하나 딱 놓여있고 작은 비석 세워진게 정상입니다. 사실 용봉산 능선에 위치한 작은 봉우리 개념인지라 대다수의 등산객들은 수암산 정상을 넘어 용봉산 방향으로 향합니다. 저기까지만 가도 땀이 제법 나고 평발에 가까운지라 발바닥도 꽤 아파서 그냥저냥 하산을 결정합니다.



4차선 국도가 산을 굽이굽이 지나갑니다.

서로가자 굽이굽이 쳐가자 하늘에 닿을 너머까지...


그리고 비교도 안될 수준으로 높은 가야산도 보이는군요.



한켠으로는 윤봉길의사를 기리는 충의사도 보이는군요.


정 집에서 혼자 할게 없어서 나왔던 산행입니다만, 재미나게 하산해서 오랜만에 목욕탕도 가보고 여튼 즐겁게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답니다. 꾸준히는 못하더라도 앞으로도 종종 간단한 산행을 즐길 수 있었음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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