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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에서 분량조절을 잘못한 탓에, 본래 5부까지 내용을 꽉 들어차게 쓰고, 특별판으로 뒷이야기를 비롯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기획해보려 했는데.. 3부에서 많은 내용을 다루어, 결국 4부와 5부를 예상했던만큼의 글과 분량을 뽑아내지 못할것으로 예상된다. 

3부를 어느정도 적절한 선에서 잘랐어야 했었던 이유로는 마지막날은 거의 쇼핑위주로 돌아다녀서 크게 내용이 없었기 때문이였는데... 막상 쓰면서 그 사실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게 계획을 수정하게 되었다. 본래 4부에서 기획되었던 내용들을 어느정도 잘라서, 5부로 보내고.. 또 5부에서 비하인드스토리에 내가 하고싶은말까지 한꺼번에 몰아버리기로 말이다.

그렇다면 지난 3부에서 서커스이야기까지 했었다. 다음에 태가촌이라는 북경 올림픽촌에 자리잡은 중국의 소수민족 태가의 전통요리를 맛보는 식당이였다. 여러 테이블의 손님이 있었지만, 손님들은 밥을 먹는데에 열중할 뿐.. 공연에는 큰 관심을 주지 않았었다. 그리하여 태가족의 한 안무가가 깜짝 놀래켜주기 위해서 고음을 지르기도 했었는데.. 그래도 크게 신통하지 않자.. 행운을 비는 실을 남성에게는 왼족에, 여성에게는 오른쪽에 묶어주었다. 이 사람들의 염원이 담긴 실을 풀었던 웬만하면은 풀지 마라는 충고에 따라 12명의 일행이 비행기에 타서까지도 왼쪽 혹은 오른쪽에 빨간 털실을 묶고있었다. 필자도 집에 와서 화요일 오후쯤에 자연적으로 풀어지기 전까지 실을 묶고있었다.(조만간 카메라에 달아야지.;;)


밥을 먹고서 가게 된 곳은 세무천계 The Place였는데.. 이곳은 역시나 도심 한가운데에 위치한 광장과 같은 곳이였다. 우리나라로치자면 느낌도그렇고 성격도 청계광장급정도 되는곳인데.. 이곳에서는 유럽의 느낌이 물씬 풍겨오는 건물들과 위에 있는 거대한 LED 전광판이 이리저리 바뀌면서 화려한 영상물을 보여주는것을 보는 재미도 있었다.


이곳에는 사진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왼쪽에 파리바게트가 위치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SPC그룹의 그 브랜드 말이다. 어쨋든 유럽풍 양식을 가진 건물들이 양쪽으로 늘어서있고, 잎이 없는 나무에는 노란 LED로 잎보다 더 아름다운 풍경이 연출되었다. 위에서는 비행기가 날라가는듯한 동영상을 상영중이였고, 영상이 자주 바뀌면서 밝기도 같이 변하다보니 사진을 찍기에 어느정도의 어려움이 있었다.


약간 더 어두운 색상으로 변하고.. 이곳의 분위기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크리스마스 트리와 루돌프 그리고 산타..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던 곳... 이 세트 말고도 궁전 앞에서 사진을 찍는듯한 느낌을 주는곳과 얼음조각등에서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그리고, 하늘에 이상한 문자들이 나타나는데.. 아래에서 보는것처럼, 우리나라의 라디오에 문자를 보내면 읽어준다던지 전광판에 번호가 뜨고 그 번호로 문자를 보내면 그 전광판에 뜬다던지 하는 그러한 서비스를 여기에서도 시행하고 있었다.


"얘들이 뭐라고 하는건진 몰라도 슈퍼쥬니어다!!!"

뭐라고 어쩌고저쩌고 씌어져 있는데.. 중국말을 모르는 나는 몇가지 매우 기초적이라고 생각되는 한자들과,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단어로는 딱 한가지 슈퍼쥬니어밖에 알 수 없었다.. 참고로 이 사진은 슈퍼쥬니어라는 매우 반가운 단어를 보고 감동하여 찍게 된 것이다. 이 사람들의 사연을 다 알수도 없고, 우리나라에서 로밍해온 핸드폰으로는 사용할 수 없다고 해서 아쉬웠다.. 한국말은 지원이 안되도 영어로 소리나는대로라도 혹은 뭐라고라도 써보는게 소원이였지만, 아쉽게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북경에서의 마지막밤은 깊어져가고.. 어쩌다보니 마지막날까지 오게 된다. 한국에서도 촌동네에서만 사는 나에게 북경은 서울과도 비슷한 느낌의 기회의 땅이자 신비로운 곳이였고, 장안 그랜드호텔도 오늘 하루만 자게된다면 다시 언제 올지도 모르는것도 사실이다.. 내일 공항에서 가이드형과 헤어지면 언제 또 볼지 모르는 일이기도 하기에.. 북경에서의 마지막밤은 전날처럼 소란스럽지도 않았고.. 조용히 끝낼 수 있었다.

넷째날, 2011년 1월 2일

미리 말하자면 넷째날의 일정은 매우 간단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호텔에서 조식을 먹고..(5성급호텔에서 먹는 아침밥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또한 아침부터 관광상품에 포함된 쇼핑센터가 아닌 그냥 중국 현지인들이 가는 도매상가(뭐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용산의 전자상가 동대문의 의류상가등등 이런 상가들을 1층에는 의류 2층에는 전자제품 3층 악세사리 4층에는 귀금속 이런식으로 다른 제품들로 채워놓은 쇼핑몰같은 곳이라고 하면 되겠다.) 그리고 SA급 "짭"시장(이것도 역시 관광상품 미포함)을 둘러본데다가, 서태후가 즐겨먹었던 만두를 먹는 교자연이라는 식당을 들려, 마지막 일정으로 798예술구(우리나라의 홍대앞정도.?)를 거쳐 북경 수도공항으로 갔던게 전부였었다.

먼저 도매상가 3층에 위치한 진주 도매상가를 들려.. 흥정을 하고.. 이런저런 악세사리를 고른다. 뭐 나한테는 크게 관련이 없었지만, 마지막에 나오면서 1층 전자상가에서 카메라 배터리를 사는데..(사실 좀 싼맛에 사보려고) 역시나 가이드님 대동하에 카메라를 숨기고 배터리만 달라고 해서 두곳의 점포를 가게 되었는데 한곳은 제품이 없었고, 한곳은 올림푸스 정품 배터리를 꺼내서 보여주었다. 그래도 지난번 그곳보다는 양심이 조금 있는것인지 250원을 불렀지만, 가이드님의 통역으로 미루어보아 한궈 어쩌고가 나온걸로 생각하여 "한국에서도 150위안이면 사는것을 왜 여기서 비싸냐"라는 식으로 불렀고, 그러자 점원은 "이건(당시 내가 사제를 끼고있었다) 사제고 요건 일제 올림푸스 정품이다"라고 싸우다 돌아서니 점원이 100위안을 불러 결국 100원에 가져올 수 있었다. 약 17000원이다..

P.S 참고로 방금 최저가검색을 해본 결과 중국제 호환배터리의 경우에는 8000원대의 최저가상품도 있었지만(독일제 호환용은 2만원대.), 올림푸스 정품 배터리의 경우 4만원을 호가한다. 더 깎을 수 있었지만, 4만원을 호가하는 제품을 17000원에 사온것이야말로 역시 땡잡은거 아닌가.

짭시장에서도 모 명품브랜드 지갑에대한 지름신이 오셨었지만, 어마어마한 약값 크리티컬의 카드한도에 의하여 결국 어쩔수는 없었다.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798예술구다. 이곳은 본래 중국의 현대공업 발원지이며 소련과 동독등 사회주의 국가와의 협력으로 인하여 만들어진 공장이다. 이곳에서는 우리나라의6.25전쟁때 인민군이 이용하던 군수물자를 만들어내기도 했었던 곳인데.. 이곳에 후에 공장들이 자리를 옮기면서 폐허가 된곳을 2002년 어느 미국인이 갤러리로 이용하면서 중국의 가난한 예술가들과 세계의 많은 예술가들이 이곳에 갤러리와 카페등을 형성하면서 지금의 798예술구가 되었다. 역시나 이곳 갤러리들을 잘 돌아다니다보면.. 공항에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들르는 코스인 만큼 한국사람들도 굉장히 많았고, 한국 예술가의 작품들도 몇가지 있었다. 798에서는 일행과 떨어져 혼자 독립하여 돌아다녔는데.. 그러한 이유 때문인지 사진도 굉장히 많이 찍어왔고(찍을만한 것들도 많았고...) 자유(?)를 느끼면서 798예술구 한바퀴를 다 돌았었다.


"대륙은 고양이도 역시나 느긋한가보군아!"

중국의 고양이다.. 대륙의 고양이를 찍기위해서 카메라를 들고 고양이를 따라갔었다. 우리나라의 고양이들은 사람이 다가오면 최고의 민첩성을 발휘하면서 도망가지만, 대륙의 고양이는 내가 약간 더 앞서서 갈 정도로 그렇게 민첩하지는 않았다. 거기에다가 내가 길을 막고서니.. 우리나라의 고양이보다는 느리게 방향을 바꾸고.. 내가 또 방향을 바꾸어 막으니 어쩔줄 몰라했다........ 대륙의 고양이를 찍으려다가 역시 커다란 대륙의 느긋느긋함이 고양이에게까지 베어있었다는것을 알 수 있었다. 


"르망이 여기 왜 있지,."

당신은 이 차를 당신은 기억하는가..? 우리나라에서도 요즘은 찾아보기 힘든 르망이였다. 이 르망이 798예술구의 한가운데에 있다니.... 요즘들어서 대량 중국에 수입되는 비교적 새차들보다도 반가웠었다. 르망.. 한때 대우자동차의 잘나가던 시절을 상징했지만, 99년 한번의 아픔을 겪고 쌍용차로 넘어갔지만 그마저도 아픔을 겪으면서 결국은 미국의 GM으로 거의 헐값에 입양.. GM대우라는 이름으로 옛 대우가 개발해냈던 라세티 칼로스 레조 마티즈 매그너스등을 GM의 글로벌브랜드로 잘도 우려먹었다. 역시 중국만 봐도 뷰익이라는 브랜드로 보이는 라세티와 구형 라세티 차체를 이용하여 약간 F/L한 뷰익브랜드의 차량까지도 많이 돌아다녔다. 그리고 대우에서 빨아먹은(?)차량들은 대부분 시보레 오펠 홀덴등 GM의 글로벌브랜드중 그나마 문안한 브랜드들로 해서 팔리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아직까지 버스와 트럭은 대우라는 브랜드를 이용하게 되었지만.. 그 대우들이 분리되어나오게 된 뿌리인 GM대우에서는 대우라는 브랜드가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GM대우가 올해부터 출시할 차량들을 시보레 브랜드로 판매한다고 하는데..(다마스 라보를 제외한다고 하지만, 이것도 시보레 달아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을듯 하다.) 역시나 대우가 세웠던 우즈벡 대우라는 해외생산법인도, 우즈벡 시보레로 명칭이 변경되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까지도 김우중의 대우그룹이 건강하게 살아있었다면, 현기차를 뛰어넘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며 세계적으로도 알아주는 최고의 브랜드가 되어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리고 프랑스를 상징하는듯한 심오한 조형물...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겠다.......;;;;;;

798예술구에서의 작품들은 5부에서 마저 만나보기로 하자! 그리고.. 3부에서 준다던 선물은..?

3박 4일간 중국여행을 

5부에서는 마지막으로 둘러보게 된 798예술구에서 본 수많은 작품들과 이런저런 것들.. 거기에다가 헤어짐과 공항에서 일어났던 일..(프롤로그부터 강조해왔던 "지지지지짖이이이지지" 이것의 실체는? 5부에서 밝혀집니다.) 그리고 집에 와서 느끼게 된 것들.. 하고싶은 말들이 이어지겠습니다^^


대강 5부의 제목도 정해봤습니다^^ 그렇다면 5부에서 만나요!!!!

(여러분들의 평을 남겨주세요^^)
5부작 북경여행기 [5] 아쉬움, 헤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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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29세 도태남의 처절한 삶의 기록. sinc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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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부를 거쳐 2부에 도착했다. 모택동모자에 관심을 많이 주고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몰라도, 모택동모자는 중간에 준비했으니, 한번 보길 바란다. 실망을 하셔도 좋고.. 하나 소장을 하고 싶어해도 좋다. 뭐 나름 굉장히 따듯하고 쓸만한 모자임에는 분명한것이니까..

그렇다면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1부에서는 광장에서 바라본 천안문이고.. 광장에서 지하도를 타고 건너온 천안문 앞이 바로 이곳이다. 가지각색 공안차량에 수많은 공안들이 쫙 깔려있다.. 국가 중요시설이니만큼 중국인들은 의무적으로 검문검색대를 통과하고 가야했다. 나를 비롯한 외국인들은 그냥 고속도로의 하이패스처럼 한번에 넘어가지만 말이다.


그렇게 자금성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명나라와 청나라 두 나라에 걸쳐서 24명의 황제가 살았던 황궁으로서 세계에서 그 규모가 가장 크고 비교적 완전하게 보존이 되어있는 중국의 대표 고궁이다. 

역시나 그 규모에 걸맞게 700여채의 건축물을 비롯 9000여개나 되는 방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방을 다 들어가볼수는 없었으니.. 그래도 열심히 가이드를 따라서 들어가게 되었다. 최강민형은(가이드) 아주 재밌게 이해가 잘 되도록 설명을 잘 해주었다. 다른 한국사람들도 어느정도 있었고 참좋은여행 롯데JTB 우리들투어 하나투어 노란풍선 등등 자금성에서 본 우리나라 깃발들만 해도 수많은 깃발들이 보였고 떼로 몰려다녔지만, 가족같은 분위기가 좋다고 모두투어 깃발을 가져왔어도 사용하지 않은데다가 가이드형의 키가 큰편이라 멀리서도 찾기가 쉬웠으니.. 처음에는 깃발을 들고 두세줄정도로 배열을 맞추어 가는 일행들이 소속감도 있고 재미도 있을것 같았지만.. 자금성 관광에 어느정도 익숙해지다보니.. 형식적으로 깃발을 들고 초등학교 소풍처럼 줄을 맞추어 가는것보다도 가족같은 분위기가 더욱 더 좋다는것을 느낄 수있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가이드를 잘 만나서 색다른 여행의 묘미를 맛보았던것이다.


자금성의 하이라이트(?)인 태화전. 태화.. 고무장갑도 아니고.. 뭐 이동네에 있는 모 빌라의 이름이기도 한데.. 간혹 사람의 이름으로도 많이 보기도 하고... 어쨋든 자금성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왕이 일을 보던 정전이였다고 한다. 현재 내부의 유물들은 대만에서 가져가서 대만 박물관에서 전시를 하고 있다고 한다. 

관람을 한 후 차에서 들은 자금성과 대만에 얽힌 이야기에 대해 말하자면, 중국이 모택동이 세운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공산주의진영과 장제석이 세운 대만(타이완)이라는 자유민주주의진영으로 대립되어있는데.. 대만으로 장제석이 결국 물러가려고 비행기에 자금성에서 가져온 유물을 실고 대만으로 떠날 때, 모택동의 부하가 이런말을 했었다고 한다. "장제스가 비행기를 타고 대만으로 가고 있습니다. 지금이 그를 없앨 기회입니다."  그러자 모택동은 "장제스를 제거한다고 비행기를 요격한다면, 그 자금성의 소중한 유물들 또한 파손되니,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그냥 가게 놔둬라."라는 말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모택동으로서는 장제스를 없애고 싶었겠지만, 후손과 소중한 유물들을 생각하는 그의 생각은 참 오늘날에도 본받아야할 생각이라고 여겨진다.


이곳이 왕이 앉아서 집무를 보던 의자... 가서 앉아보고 싶었지만 앉지 못했다기보다도, 일단 들어가서 앉아볼 수 없게 되어있을뿐더러, 공안이 건물 내에서도 두세명씩 서있었었다. 특히나 공안의 끝발이 쎈 중국같은경우에는 여기서 잘못잡혔다 집에는 영원히 못갈수도 있었다.


다음으로는 인력거 투어.. 중국 도심 한가운데에 이런 우리나라의 60년대를 연상시키는 건물들이 있다. 이런 작은 동네가 도심 한가운데에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잘 보존되어 올 수 있었던것은 중국정부의 엄격한 관리때문이 아니였나 싶다. 이 동네는 중국의 지도자들이 은신했었고 잠시 살았었던 동네였는데.. 그러한 의미에서 이 동네를 남겨두지 않았나 싶다. 오토바이 그리고 불법주차된 차량들 사이로 자전거는 천천히 달리고 또 달렸다. 


커브를 도는 자전거. 길을 가다보면 동네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막 달리기도 하고, 犬님과 함께 산책을 나오기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작은 구멍가게들.. 그리고 공용화장실.. 성룡의 어머니가 살고있는 80억짜리 집도 이 동네에 있었다고 한다. 한번 자전거를 직접 끌어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되지 않았던게 참 아쉬웠다. 자전거를 끌어주던 아저씨.. 활기찬 모습을 하고있었는데... 얼마나 힘드셨을지.. 혹은 중국말로 "아.. 왜이리 무거운겨,,,"라고 했을지는 몰라도.. 어쨋거나 중국의 근대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경험이였다.

어쨋든 매섭게 부는 바람이 태워주는사람보다 타고 가는사람이 더 힘들정도로 추웠었다..;; 그래서 다음번에 가게 된 전문대가(스치하이카페거리)는 사진만 찍고 오게 되었는데..


얼마나 추웠으면 얼마전 종영한 우리나라 드라마 추격자와 미안하다 사랑한다에도 등장했었고,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 등장해서 보면 "아.. 여기구나"라고 알 수 있었을 정도였는데.. 그곳에서 배를 타고 돌아다니는 호수는 얼어있어서 배.. 그런것은 움직이지도 않았고... 사람도 없었다. 바로 앞에 스타벅스가 위치해있고.. 더 들어가보았으면 좋았을 것 같았지만.. 스치하이카페거리의 구경은 바로 문 앞에서 마무리 될 수 밖에 없었다.


"꼭 코엑스 삘인데...?"

대한민국의 서울에 코엑스 아쿠아리움이 있다면, 중국의 북경에는 부국해저세계가 있다.! 부국해저세계는 북경에서 가장 큰 수족관이다. 게다가 내륙이면서 당장 사람이 먹을 물까지 부족한 북경에서 바닷물을 쓰는 수족관을 하기는 매우 힘든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가 어디냐.. 뭐든지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을 해내는 대륙이다. 광활한 중국대륙에서 못할일이 뭐가 있겠느냐..! 참고로 이곳에는 세계에서 가장 긴 수족관 통로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길고 긴 수족관의 입구로 향한다. 세계에서 가장 긴 수족관에는.. 역시나 물고기로 가득했던게 사실이다. 온갖 물고기들이 얽히고 섥혀있는데.. 이 물고기들이 한 수족관에서 공존하는데.. 왜 상어가 이 작은물고기들을 잡아먹지 않는지는 모르겠었지만.. 부분부분 서로 잡아먹지 않는 물고기들끼리 다니는 구역을 정해서 큰 물고기가 지나다니지 못하도록 망을 쳐놓았었다. 그래서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망 하나만 없어지면 혼란스러워질 동거를 하고있는것이다..


"상어다~~~~~~~~~~~~~~~~~~~~~~~~~~~!!"

p.s 여기서 할말을 위에다가 다 적어놓았네..;;;;;;; 어쨋든 상......상어.....다....! 

그렇다면.. 여기서 모택동모자나 좀 보여줘야겠다... 모택동이 이런 모자를 썼었다고. 하는데.. 중국 현지인들은 거의 사서 쓰지 않고, 나를 비롯한 외국인들이 이 모자를 사서 쓰게 되었다.



중국돈으로 360元(위안)이라는 굉장한 가격을 자랑하는 금면왕조.. 
1월4일 5회차 환율로 따지자면 바로 아래처럼 뜬다.

육만 천 이백 칠원에 20전...;; 우리나라였으면 엄두도 못낼 공연이였는데..;; 여기는 대륙이다. 온것도 가장 비싼 여행상품으로 와서 옵션도 아니였고, 무대가 이리저리 움직이고 흔들리고 무대에서 물이떨어지는등 정말 중국이라는 나라의 큰 땅이라는 이미지에 맞는 거대한 공연이였다. 어느 한 소녀가 잠에 들기 전 금면왕조 책을 읽는것으로 시작해서 꿈에 나타는 금면여왕과 이전에는 적이였지만 사랑하게 된 남자에 관련된 이야기부터 해서.. 결국 금면여왕이 다스리는 나라가 대홍수에 빠지자 자신의 몸을 하늘에 바쳐 홍수를 멈추게 했다는 이야기로 끝나는데.. 정말 리얼한 홍수가.. 객석에까지 났었다..;;;


"박수를 오천육백사십팔만사천이백칠십육번을쳐도 안아까울 정도로 괜찮았다!!"

매우 리얼한 금면왕조를 보고.. 북경오리를 먹으러 갔었다. 이때만해도 중국요리에 대한 도전정신과 호기심이 많았고.. 역시나 오리고기도 나름 중국에 왔으니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문제는 3일날 이후에 벌어지는데.. 그건 아무래도 3~4편정도에서 만나보도록 하자.

그렇게 첫날이 지나고.. 둘째날이 밝았다.


2010.12.31 금요일. 장안 그랜드호텔에서 바라본 베이징 시내. 바로 아래에 버스차고지가 있고, 옆으로도 다른 호텔들과 중국인들이 사는 아파트, 빌라들이 펼쳐진다. 
(EXIF로 따지자면 중국현지시간이 한국보다 한시간 느리니 -1시간에다가, 카메라의 시간이 본래 한국시간보다 15분 빠르니 -15분 해주면 내가 중국시간으로 몇시에 이 사진을 찍었는지 뜨겠다.)

역시나 5성급 호텔인 만큼 서비스도 좋았고, 아침식사로 나오는 뷔페식들도 어마어마하게 종류가 많은데다가 맛도 괜찮은 편이였다. 아래 주차장에는 벤츠 아우디 포르쉐가 기본이였고.. 중국 현지차들은 명함도 내밀지 못할정도로.. 중국에서도 부유한 사람들만 오는 곳이였었다. 이런 5성급 호텔에서도 재떨이도없이 식후땡이아니라 그냥 밥먹어가면서 담배를 피워대는 참 개념이라고 많이도 가진 중국인을 보기도 했다. 


2일차 첫번째 코스는 이화원이였다. 1999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고, 흔히들 많이쓰는 '배' 이 같은 이자 대신에 자주 쓰이지 않는 "턱 이(←우리나라 한자에는 없다보니 결국 백과사전에서 펌.)"자를 사용한다.

이화원은 12세기 중국의 금나라시절부터 만들어졌으며, 청나라의 건륭제때 대대적으로 중축되었다고 한다. 사실 건륭제때이지만 당시에 서태후가 권력을 잡고있었기에.. 서태후만의 별장을 화려하게 지어놓은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역시나 이곳에서 배를 탈 수 있는 호수도 인공적으로 만들어 놓아서 위에 보이는 산을 만들어놓은것인데.. 
우리나라에 저기 어디서 강파기를 매우 좋아하는 분이 보셨으면 참 좋아하셨을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자금성 뒤에도 이런식으로 호수를 하나 파서 인공적인 산을 만들어놓기도 했었는데.. 역시 사람이 많은 대륙답다는 생각이다.


오직 서태후만을 위한 휴양지.. 서태후만을 위한 건물들과 또한 그녀만을 위한 산책로.. 그녀만을 위한 산책로는 800m나 뻗어져있을정도로.. 어마어마했다고 한다. 누각마다 각기 다른그림들이 그려져있었고.. 수많은 화가들이 서태후를 위해서 살았을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위의 사진은 병모양의 창문인데.. 이렇게 이화원에는 당시의 각진 창문만 본다면 상상할 수 없었을 이러한 독창적인 창문도 많이 존재하고 있다.


다음으로 간 곳은 정릉.. 우리나라 정릉이 아니라 중국의 명나라시절 황제 13명의 초호화 궁전이다. 그래서 명 13릉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다른 관광지에 비해서 엄숙한 편이였다.  역시 어느나라나 왕릉에 가면 다들 엄숙한 분위기인것은 사실이다. 천수산이라는 거대한 산 하나를 통째로 왕릉으로 사용한 명나라.. 그곳에도 특이한 것은 굉장히 많았다.


흙으로 토성을 쌓아놓고 무너지지않도록 나무를 심어놨던것이 지금은 저렇게 커진것이라 한다. 당시의 건축기술로서는 불가능해보였던 지하 9층짜리 호화스러운 저승궁전을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강제노역을 당했다는것은 참 안타깝던 일이지만, 대륙이라서 가능했던 일이기도 했다.

지하 왕릉의 내부도 굉장히 현대적이였다. 아치형으로 지붕을 세웠는데도 당시의 건축기술로서는 굉장했고, 백옥으로 만든 엄청나게 무거운 문과 넓디 넓은 공간에 또 감탄사를 금치 못했다.


원래 이곳은 왕비가 있었던 자리였는데.. 왕이 새로운 첩을 두는 바람에 두 첩을 같은 장소에 이장해놓게 되어서 현재는 빈자리만 남아있다. 저 구멍에 동전을 던져 넣으면 장수한다지만, 동전을 넣지 못할경우 장수는커녕 일찍 사망한다는 이야기가 있는곳이라.. 동전은 던지지 않았다.


왕릉 지하를 한바퀴 돌고 나왔다.. 돌고 나오니 이 자리에 작은 비석이 있었다고 한다. 우연히 이 비석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이 비석은 왕릉에 들어가는 입구에 대한 설명서이자 해답지였던 것이다. 이 자리에서 앞으로 몇발자국을 가면 무엇이 있고.. 거기에서 얼마나 파고들어가면 또 무엇이 있고... 그렇게 깊숙히 들어갔을때는 시체가 썩는 냄새뿐이 진동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속에서 놀라운 건축물을 발견해냈고, 굉장한 문화유산으로도 남게 되었다. 영원히 후손대대로 호화궁전이 비밀속에만 있도록 하고싶었는데 누군가가 그냥 의도와는 반대로 이 자리에 비석을 놓고 새겨놓은것인지 아니면 후손들에게 하나의 수수께끼를 내준것인지.. 그것까지는 그시대 사람이 아니라 잘 모르겠다.

티스도리닷컴 5부작 북경여행기 2부는 여기서 마친다. 이제 3부에서 만나도록 하자.!

3부 하이라이트!

"만리장성에서 본 Best 호구인증 한국인"

"초 호화 식당에서 밥을 먹은 이야기"

그리고......! 

"늦은 밤 5성급 호텔에서 의사소통이 안되서 벌어진 희대의 해프닝!"

"약값이 50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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