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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스도리닷컴 새 콘텐츠 초딩일기는...


초등학교 재학 당시 작성했었던 일기장을 펼쳐 당시 있었던 일을 회상하고 여러분께 공유하자는 취지에서 공개하는 콘텐츠입니다. 좋은일도, 그렇지 않았던 일도 있었겠지만 한 시대를 살아가던 평범한 어린이의 일기장을 본다는 마음으로 재미나게 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일기장은 무작위로 공개됩니다. 



초딩일기. 오늘은 2002년 1월 10일. 아직 3학년으로 올라가기 전 2학년 겨울방학의 일기를 가지고 왔습니다. 제목이 마트의 이름인데, 한 시절 지역 최초의 대형마트를 표방했으나 현재는 사라진 동방마트에 갔었던 이야기입니다.


흔히 알고있는 중견기업 동방그룹의 계열사인 동방방직(현 동방생활산업)에서 국제방직을 인수하며 1997년 당시 공장의 일부를 대형할인마트로 리모델링하여 영업하던 장소인데, 상주 직원만 300여명이 넘었던 지역 최초이자 최대의 마트로 기억합니다. 아산시 배방읍에서 시작하여 대전에 분점을 내는 등 승승장구 하던 동방마트는 2005년 4월. 아산신도시 개발부지에 편입되어 영업을 종료하였고, 이후 대전점 역시 폐업하며 동방그룹은 유통사업에서 철수하게 됩니다.



제목 : 동방마트


오늘 우리 가족과 동방마트에 갔다.

먼저 내가 입어야 할 옷을 사고, 동생의 옷도 사고, 

설탕, 엄마의 옷, 아빠의 옷, 라면 등 많은 물건들을 샀다.

나는 그 옷이 마음에 들었다.


일기 내용은 간단합니다. 대형마트인 동방마트로 쇼핑을 가서 새 옷도 사고 생필품도 함께 사 왔다는 평범한 이야기입니다. 동방마트는 결국 헐려 연화마을이라는 지명을 가지게 되었고 그 자리 옆으로 설화중학교라는 학교 역시 생겨났습니다. 마트 부지는 택지정리만 된 채 아직도 공터로 남아있지만, 일기 속 기록과 희미한 기억 속 추억으로는 아직 남아있습니다. 


천안 아산. 그리고 예산을 비롯한 주변지역에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거주하셨던 분이라면 동방마트에 한번쯤은 가 보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종전에 동방마트에 들어가기 위해 좌회전 신호를 받던 신라아파트 앞 삼거리는 지하차도가 생겨났고요. 동방마트까지 신도시 부지에 편입되어 농경지로 남아있었던 그 주변과 건너편 신라아파트까지 현재 탕정지구의 개발이 진행중입니다.


오랜만에 사라진 마트를 추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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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일기 웅변대회 시리즈. 그 마지막 이야기.



나름 짧다면 짧은 기간 연습 끝에 결전의 날이 다가왔습니다. 학교 강당에 3학년부터 6학년까지 모두 모아놓고 교내 웅변대회가 성황리에 개최되었습니다. 이 대회에서 학교를 대표하여 당진군 대회에 나갈 학생을 선발합니다. 정확히 누가 뽑혔는지까지는 기억하지 못합니다만, 여튼 일기부터 보고 마저 이야기를 이어보죠.



제목 : 교내 웅변대회


오늘은 통일 웅변 대표 1명을 뽑는 날이다.

내가 2번인데 대사가 획(헷)갈리자 바로바로 꾀를 써서 아주 우숩게 하였더니 입을 가리고 웃거나, 땅을 치며 웃었던 사람, 넘어지며 웃는 사람들도 있고 거이(의) 다 웃었다.

내 차례가 지나고 3학년이 하는것은 다 끝났다. 그러자 소란스러워져서 조용히 하라고 말을 하고 싶었다.

다 끝나고 대회에 나가는 사람이 먼저 갔는데 너무 엽기적, 개그콘서트처럼 웃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다음부터 대사가 획(헷)갈리면 "죄송합니다" 하고 다시 할 것이다.


그렇습니다. 열심히 준비했던 대회를 그렇게 허무하게 끝내야만 했습니다.


뭐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어린 나이였고, 긴장했었던 탓에 꼬여버렸던 것인데 나름 초등학교 3학년생이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웃겨야만 한다고 생각했던게 큰 실수가 아녔나 싶습니다. 저때 뭘 했냐고요? 원고 내용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분단 전 우리 민족의 역사를 언급하던 중 '탕..탕..탕.. 이토 히로부미의 가슴에 총을 쏜 안중근 의사' 이 비슷한 구절의 문장이 있었고, 총을 쏘는 소리 이후 '억!' 소리를 내고 목을 뒤로 젖혔습니다.


결론은 웃음이 어느정도 수습된 뒤 웅변을 이어나갔고, 어찌되었건간에 완주는 했습니다. 그래도 노력의 댓가인지, 함께 박장대소하던 선생님들이 밀어주신건지 장려상이라도 받아왔네요. 그럴 생각이 없었는데 의도치 않게 혼자 올라가서 쇼를 한게 되어버렸으니 뭐..


여튼 거기서 끝난게 아녔습니다. 초등학생들을 강당에 모아놓고 통일이 어쩌고 떠들어댔지만, 뭐 초등학생들이 기억이나 하겠습니까? 결국 그 자리에서 기억에 남은건 제 '쇼' 말곤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한 학년이 끝날때까지 전교생에게 '웅변했던 애' 라는 소리를 지겹도록 들었습니다. 그리고 실수를 만회하고자 4학년때 다시 웅변대회에 참가했지만, 전교생 앞에서 웅변을 하는 대신 한 교실에서 선생님들이 평가하는 방식으로 대표자를 뽑아서 입선하지도 못했습니다.


앞으로 살면서 웅변을 혹은 연설을 할 일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2002년 월드컵이 열리기 전 웅변대회는 결국 쇼로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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