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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야고등학교
주소 충남 당진시 합덕읍 합덕리 262
설명 1958년 개교, 충청남도 당진군 합덕읍 합덕리 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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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막 학교를 다녀왔다. 졸업식을 하러 가는게 아니라, 등교하는건 진짜로 마지막날이였다.
본래는 졸업식 연습을 하려고 했지만, 그냥 방학 이후로 오랫만에 만난 친구들에게 인사랑 그동한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만 하다가 온게 되어버렸다. 



2009년 3월 2일 입학식부터 시작된 서야고등학교에서의 생활은 희로애락을 남기고 2012년 2월 9일에 졸업식만 거행한다면 막을 내릴 일만 남았다.

기쁘기도 슬프기도, 희로애락을 함께하기도 했고 많은 친구들 그리고 좋은 선생님도 알고 지금의 티스도리라는 인물을 만들어주는데 가장 큰 역활을 했던 학교다. 많은 선생님께서 필자가 가진 미천하지만 써먹을데는 있는 능력을 굉장히 높게 평가해주시고, 잘못된점을 다듬어주셨던 나날도 이제 끝이고. 자유는 있지만 그에 따른 책임이 존재하는 험난한 사회로의 진입만 남았다.

아무때나 막 입어도 편한 교복도 이제 진정 안녕이다.

예전엔 학교라는 교도소를 언제쯤 빠져나갈지 졸업날만 기다렸고 중학교 졸업을 앞뒀을때는 바로 옆건물 고등학교로 진학하니 이런 느낌은 아니였는데 문득 6년을 함께한 학교와 완전히 헤어지는 졸업을 앞두니 슬퍼진다. 2009년 12월 19일에 티스도리닷컴에 기록을 시작했었으니, 지금 이곳에는 1학년 말의 학교행사와 자료, 그리고 2학년 3학년을 거쳐오면서 기록해둔 학교에서의 자료들. 잠시 살펴보자...

3년여간의 학교 축제


2010 해바라기축제 사진

2010 해바라기축제 사진

(2010년 서야고등학교 해바라기축제 사진 中.)

교화가 해바라기라 해바라기 축제이다. 2009년 당시에는 신종플루로 인해 행사가 미루어져서 12월 말에 축제를 진행했던걸로 기억한다. 사실 교화지만 학교에는 해바라기가 없다. 그렇지만 당시에 "해바라기는 얼어죽었다"라는 표현을 시작으로 이후 2010년 "해바라기는 얼어죽을듯 말듯 했다" 2011년 "해바라기는 아마 살아있겠지?"라는 표현으로 이루어 져 왔다.

2010년에는 귀차니즘으로 축제 음식만을 다루었고, 2011년에는 아예 고3은 일찍 가라고 해서 제대로 축제를 보지도 못했던걸로 기억한다. 그렇지만, 언제나 마음속의 해바라기는 영원히 살아있다.



수학여행, 그리고 소풍


2010.5 에버랜드에서

2010.5 에버랜드에서

(2010.5 에버랜드에서)

1학년 소풍의 기록은 사실 사진이 남아있긴 하지만 블로그를 운영할때가 아니니 글로 남아있는건 없습니다. 하지만, 2학년때의 봄소풍이였던 에버랜드와 수학여행 제주도 3학년의 봄소풍 롯데월드의 기록은 남아있습니다. 사실 3학년 소풍때는 롯데월드에서 나와서 나름 서울나들이가 되서 박대기기자도 보고 올레스퀘어에서 핸드폰도 좀 만지고 놀던 다음에 광장시장도 갔었긴 했었습니다만, 길이 막혀서 조금 늦었었죠. 그때의 기억을 다시 한번 되살려보도록 합시다.



기타 학교 소속으로 다녀온 곳


2009 RCY 국토순례훈련 담양 죽녹원

2009 RCY 국토순례훈련 담양 죽녹원

(2009 RCY 국토순례훈련 담양 죽녹원)

학교에서 단체로 간 여행 뿐만 아니라, 서야고등학교 소속 학생으로 다녀온 여행을 비롯해서 봉사활동에 축제까지도 있습니다. RCY(청소년적십자) 국토순례 훈련이라고 쓰고 등산 혹은 전라도 탐방에 다녀왔던 적을 비롯하여 안희정 충남도지사님을 아주 잠시 뵙게되었던 2010년 10월의 당진군(현재 당진시) 청소년 문화존 Teen's Festival을 포함하고, 또한 지난 11월 김종성 도교육감님께서 와서 강연을 해주셨던 고3학생 드림업 페스티벌까지 여기에 포함됩니다.

참고로 RCY 청소년적십자 국토순례는 2009년 7월~8월에 다녀왔었지만 이후 죽녹원에대한 추억을 기록으로 남겨둔것이 있습니다. 이때의 추억은, 아직까지도 그 당시에 자주 들었었던 노래를 들으면 고스란히 떠오릅니다. 또한 2010년에는 이 청소년적십자 국토순례훈련으로 지리산을 등반했는데.. 카메라는 가지고 올라가고 배터리는 놓고간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던걸로 기억해서 포스팅은 없어고 다녀온다는 글만 남긴걸로 기억하네요.

P.S 2010년에 지리산 등산때 봤던, 당시 1학년이던 다른지역에서 온 동생이 있었는데 얼마전까지만해도 언제 보령오면 전화하라고 해서 지난 토요일에 가서 아니 가기 며칠전부터 전화하니까 받지도 않더군요. 흐음...



버라이어티한 도서부생활


2010.4 "책에서 나온 음식을 직접 만들어보기"라고 시작했지만 엉망이 되었던 그날..

2010.4 "책에서 나온 음식을 직접 만들어보기"라고 시작했지만 엉망이 되었던 그날..

(2010.4 "책에서 나온 음식을 직접 만들어보기"라고 시작했지만 엉망이 되었던 그날..)

클럽활동을 하는 날만 반짝 활동을 하는 부서가 아닌 항시 일을 하는 상설부서인 도서부도 선생님의 제의로 2학년 초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전까지 있었던 도서부원들중 남성부원들이 모두 빠져나갔기에 남성부원이 필요했던 도서부의 담당 선생님께서 국어과목을 지도하시던 이전부터 저를 굉장히 좋게 평가를 해주셔서인지 저는 도서부에 컴퓨터 및 잡일담당으로 제안받고 들어가게 되었죠. 그리고 나름 창의적이고 버라이어티한 클럽활동을 추구하시던 선생님덗에 많은걸 배우고 또 많은걸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개혁적인 수업방식을 추구하셔서 존경하고싶은 선생님 두분중 한분이십니다.)



일상속에서의 학교


현충일날 자습나와서 칼퇴근 준비중!

현충일날 자습나와서 칼퇴근 준비중!

(현충일날 자습나와서 칼퇴근 준비중!)

그렇다고 학교에서의 일상이 없었던건 아닙니다. 학교에서의 소소한 일상에 관련된 포스팅도 있었죠. 대부분 한탄형이나 재작년에 포스팅거리가 없을때 스페어로 떼우려고 쓴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지만, 이 역시도 앞으로는 추억이 되어있겠죠. 가장 기억에 남던 내용은 수능은 보지 않았지만 "수능선물"을 받아온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이 글은 TISTORY 메인에 올랐었죠.) 일상속에서 있었던 글들중 몇가지를 뽑아보았습니다.



학교행사 및 외부행사 동원


(선생님 지갑이 열리는건 어렵지 않아요~ 그냥 체육대회에서 종합우승만 하면 되요!)

(선생님 지갑이 열리는건 어렵지 않아요~ 그냥 체육대회에서 종합우승만 하면 되요!)

(선생님 지갑이 열리는건 어렵지 않아요~ 그냥 체육대회에서 종합우승만 하면 되요!)

축제가 아닌 학교에서의 다른 행사들. 카메라를 놓고 간 경우도 많았지만, 그래도 카메라로 기록을 남겨두었던 날이 있었습니다. 체육대회와 얼마전 방학식까지도 여기에 포함되겠죠. 또한 반 강제동원의 성격이 강했던 학교 옆 성당의 축제 이야기까지 이곳에 포함됩니다.


이외에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이정도로 줄이려 합니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추억으로 바뀔 고교생 신분은 이제 내일로 소멸되게 되어버리지만 제 가슴속에는 영원히 살아 숨쉬고 있을 것입니다.

3년동안 담임을 맏아주셨던 한백희선생님 류경렬선생님 김종필선생님을 비롯하여, 제 능력을 알아봐주시고 도서부원으로써의 생활을 하게 만들어주셨던 박정민선생님. 누구보다도 잘 챙겨주셨던 김완유선생님과 김인섭선생님을 비롯해서 사진부와 함즐자 프로젝트를 맏아주셨던 신성식선생님과 1년동안의 우유배분을 통해 많은 교감을 나누었던 임철수선생님. 등산가서 막걸리 먹여주셨던 홍양표선생님등 지면관계상 일일히 다 적어드리지 못해도 강한 인상을 남겨주셨고 인생살이에 도움을 주셨던 수많은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2011 12. 마지막 단체사진.)

오늘은 학교 졸업식 교고생이었던

티스도리가 벌써 대학생

좀 이상해 좀 서운해 친구들 떠날 생각에

나 기분이 왠지 좋진 않아


매일 걷던 등교길 혼을 내던 선생님까지

내 기억에 조금씩 작아지는 추억들이 되겠지만


I'm all right I'm so fine 아무 문제 없잖아

가끔 속상한 일 있으면 잠깐 울면 되지 뭐

I'm all right I'm so fine 아무 걱정 하지마

아마 내겐 나쁜 날보다 좋은 날이 많을 거야


아이유 1집앨범 수록곡 "졸업하는 날"의 가사中 일부 개사. [미리듣기,가사보기]

아까부터 이노래 쭉 듣고있는데, 지금 졸업을 앞둔 제 기분을 그대로 적어놓은듯 합니다. 졸업을 앞두고 아쉬운 감정을 드러내는 저이지만 언젠가는 이 가사 내용처럼 조금씩 작아지는 추억들이 되겠죠.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잊혀가고 작아지는 추억이라지만 언젠가는 기억도 나지 않을테지만 언젠가 지금의 추억을 계기로 만날수도 있고, 학교도 시간날때 찾아갈 수 있겠죠.

졸업하기 전,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모두 정리해보고... 이제 졸업식만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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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스도리

만 29세 도태남의 처절한 삶의 기록. sinc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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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잠시동안의 방황을 끝내고 이전처럼 "이것이야말로 티스도리스러운 이야기다"라고 할만한 이야기를 들고 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저에게는 2011년 1월 10일쯤엔가 갑자기 하루만에 디자인해서 그날 인쇄까지 맏긴 뒤 열심히 만나는 분들마다 꼭 빼놓지 않고 드린 명함이 하나 있었습니다.

무언가 하고싶은것이 있더라면 그 욕구를 모두 충족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놓지 않고 뿌리를 뽑는 필자의 성격이 아주 자알 반영된 명함. 디자인적인 감각이 약 1g도 없다지만 도대체 어떻게 내가 명함을 만든것인지 하루만에 혼자 만족할만한 디자인으로 완성한 명함. 그렇게 큰 돈이 들어간것은 아니였지만, 나를 소개하고 나 자신을 PR하는데에는 이만한것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명함이 곧 애물단지로 전략할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아직 반도 못썼는데!! 이거 어찌해야 실질적으로는 올해까지, 그리고 정확히 따진다면 2월까지의 유통기한을 지닌 명함을 모두 소비할 수 있을까요. 일단 제 얘기를 들어보시죠.

제 명함이야기좀 들어보실래요?


정확히 2011년 1월 10일, 저는 명함이라는걸 가진 고등학생이 되어보고싶다는 참으로 잉여스럽고, 저 아니면 딱히 생각을 하지 않을만한 욕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러한 욕구는 하루만에 화산에서 마그마 뿜어져나오듯 분출되었고 바로 이틀 후. 택배편을 통해 명함은 도착하였습니다. 2~3일정도가 걸렸던 일이였는데. 저는 그동안 "언제쯤 명함을 받아볼 수 있을까.."하며 들떠있었던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렇게 설레며 기다렸던 명함이 오기는 왔습니다!


이틀을 언제쯤 올까 기다리던 물건이 오니 기쁘긴 기뻤습니다!

하지만, 당시로써는 학교 보충수업도 중국다녀온다는 탓으로 학교에서 오는 전화는 무작정 받지 않고 잠적해뒀던 상태인지라 당장 누구도 만날일이 없었는데. 명함을 줄 사람은 거의 없었죠. 기껏해봐야 길고 긴 방학중에 만났던 친구 몇명, 지인 몇분에게 명함을 드렸던 것 밖에 없었는데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겨울방학이 끝나고 개학을 했습니다!!


그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개학을 했습니다!

그동안은 보지 못했던 특별한 아이템에,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저는 매일 가지고가는 수십장의 명함이 모두 다 닳을때까지 나누어주고 또 나누어줬고, 그렇게 신기한 물건을 봤다는듯이 명함의 인기는 날이 가면 갈수록 상종가를 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곧 부작용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명함날리기 연습용으로 쓰고 또 쓰며 부족하다고 더 달라는 현상이 벌어지고. 다른반 교실이고 복도고 어디고간에 명함이 떨어져서 주었던게 한두번이 아니며 심지어 어느날에는 누군가가 시내에 있는 공중전화 카드투입구에 명함을 일곱개나 넣어두고 갔다는 전화까지 받고, 혹시 음란한곳 아니냐는 오해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저도 그 이후부터는 명함을 나누어주는것에 대해서 신중해지게 되었고 슬슬 명함에 대한 학교 내에서의관심도가 떨어지게 되었으며 선생님들께나 간혹 명함을 드리는 수준으로 학교에서는 명함을 이용해왔습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명함에 관련되서 기억나는 내용은 단합대회라고 석가탄신일날 학교에 나와서 자습을 한 불쌍한 3학년들끼리 오후시간에 간단한 체육대회를 했던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 2인3각 달리기 미션중에 제 명함 받아오기도 있었네요. 그렇게 명함을 몇번이고 건네주었고, 마지막에는 저희반과 1등을 다투던 반에 방해공작을 위해 멀리 도망갔다 오기도 했었습니다.

그랬던 명함. 여튼 하루만에 만들었다보니, 여기서 안타까운점이 하나 나옵니다.

바로....................... 학교!!!!!!!!!!!!!!!!!!!!!!!!!


"왜 학교를 재학중이라고 쳐넣어서 이렇게 고민을 자처하나!!!"

그렇습니다. 당장 2월이면 졸업을 하는 학교를 집어넣은게 큰 화근이였습니다. 3월이 끝나갈 무렵. 당시 갑자기 수술을 받으시고 대학병원에 입원하신 선생님을 대신하여 임시교사로 오셨던 선생님이 이 명함을 받으시고 "이 명함 내년에는 어떻게쓰게.."라고 말씀해주셨는데.. 그게 사실이 되어버렸습니다.

설마..... 올해안에 다 쓰겠죠. 하고 웃어넘겼지만 현실이 되어버렸습니다!!

정확히 얼마나 남았을지, 자세한 설명과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와 함께하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받으라는 스티커가 붙어있는 상자에, 작은 두개의 상자가 들어간 상태로 명함이 배송되어 왔습니다. 한 상자당 500장씩 두개니까 1000장. 그렇지만 아직 하나밖에 개봉하지 않았습니다.

최근 티스도리닷컴 방문자 100만돌파 이벤트때 세장씩 넣어서 보내드리고 봉투앞에도 모두 붙였고 조금 조잡하고 과하다 싶을정도로 명함 소비를 위해 온갖 정성을 다 쏟았는데 최근에 조금 줄었다는게 아래와 같이 남아있습니다.


작은상자 하나는 아예 뜯지 않았고, 하나는 약 35%남아있는 상태.

추정치로 뜯어둔 상자에 명함이 약 35%가 남아있습니다. 이건 그래도 마음만 먹는다면 올해안에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하며 건네드리면서 조금 양을 줄일수도 있고 혹여나 내년에 새로 명함을 만들거나 티스토리에서 나온다고 해도 몇개는 추억으로 남겨둘 수 있을텐데..

추억으로 남겨둘 수 있는건 있는거고.. 저... 아래에 아직 충분히 차있는 상자는 어쩔까요?!


무료 명함전송서비스! 

별볼일은 없는 어떤 잡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의 명함이지만, 꼭 받아보고 싶으시거나 혹여나 이 명함이 명함날리기 연습용으로라도 필요하다 생각되신다면 여러분 댁까지 우편을 통해 티스도리 명함을 열장씩 보내드립니다! 배송비는 전액 제가 부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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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라도 신청을 받아서 뿌려야 할까요? 아니라면 좋은 시행착오이자, 추억으로 남겨둬야 할까요.
처음부터 만들때 학교를 졸업할것이라는것을 고려하지 못하고 그자리에 트위터나 페이스북 계정을 넣었으면 될것을 그저 당장 내일모레 졸업해서 남이되는 학교를 굳이 붙여넣은 제가 잘못이라지만, 크게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이 명함이 저를 각인시켜주기도 했었고, 지금의 저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물건중 하나이기도 하죠. 
 
"어찌 처리해야만 하는겁니까?!"라는 제목을 붙이긴 했지만. 그동안의 저를 타인에게 알리고 각인시켜주었던 소중한 명함인만큼 애착을 가지고 쓰는날까지 최선을 다 해서 써야겠습니다. 새로운 명함을 파게 되어도 두개를 패키지로 "이건 예전명함이에요^^"라고 건네야죠.

결국 내용은 이리갔다 저리갔다 하다가 마지막에는 자기계몽을 하고 끝나는 자화자찬성 글이지만 제가 명함을 아끼는만큼이나 즐거운 2011년을 만끽하시고, 새해에는 모두 명함처럼 빛나는 존재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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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29세 도태남의 처절한 삶의 기록. sinc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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