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패드는 종전에 사놓은 프릭사S1. 그 외 부품들은 죄다 비품으로 아무 카센터나 가서 주문할 심산으로 문을 열은 카센터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리고 작년에 내포에서 홍성 가는 길목에 세차장과 함께 오픈한 차병원 카센터로 들어갑니다.



먼저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처음엔 디스크로터와 패드 그리고 브레이크 오일만 새로 넣어줄 생각으로 갔습니다만, 한쪽 캘리퍼가 고착화되어 결국 좌측 캘리퍼까지 함께 교체하고 왔네요. 여튼 리프트 위로 올라가고, 일사천리로 분해작업이 진행됩니다.





리프트를 띄우고 전륜을 한번 더 띄웁니다.


임팩으로 볼트를 풀어 양쪽 휠타이어를 탈거하고, 상당히 빠르게 드드듣드드득 탈거작업이 이어집니다.



탈거된 좌측 패드. 한쪽은 다 닳아서 좀먹고 있는데, 한쪽은 약간 여유가 있습니다.


뭐 패드가 디스크를 긁기 전에 이미 18만km를 타면서 단 한번도 교체해주거나 연마해주지 않아 좀먹은 디스크인지라 함께 갈아줍니다. 연마는 얼마나 하냐고 물어보니 3만원이라 하네요. 연마보다 훨씬 저렴한 2만원대에 비품이지만 신품 디스크를 올릴 수 있으니 신품 디스크 역시 탈거와 동시에 주문합니다.


뭐 부품값이 비품이라도 비싼 수입차라던가, 대형차들이라면 모를까 국산 경차 부품값은 그래도 저렴한 편이니 연마보다는 속 편히 교체를 택하는게 낫습니다. 대우 순정 역시 한짝에 3만 3천원대니 순정을 끼워도 상관 없구요.



휑한 휠하우스.


좌측 작업 후 우측 작업이 진행되었고, 결국 고품 디스크와 패드는 모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우측 브레이크 패드.


작년. 아니죠 재작년에 교체했던 '하이-큐!' 로고가 선명한 패드입니다. 뭐 발품만 팔으면 만원 혹은 그 이하에도 구할 수 있는 패드입니다만, 이번엔 좋은 패드를 택했습니다. 순정의 3분의 1. 프리미엄 패드의 2분의 1 수준인 가격인데, 닳기는 훨씬 빨리 닳는 것 같아요. 좋은 패드도 뭐 비슷하게 닳는다면 싼맛에 다시 쓸 의향은 있습니다만, 딱히 마음에 드는 브레이킹 성능을 내주진 않았습니다.



다행히 우측은 균일하게 마모되었네요.


나름 알뜰하게 썼습니다. 보통 이정도 타고 교환하는게 정상인데 반대편은 완전히 파먹을 수준으로 만들어서 왔으니 뭐.. 여튼 그렇습니다. 지금 갈아주면 앞으로 몇년동안은 갈아줄 일 없겠죠.


부품이 올 때 까지 기다립니다. 스파크용 디스크가 큰게 있고 작은게 있다고 하네요. 가격은 3천원 차이라고 하는데, 둘 다 가지고 와서 대 본다고 합니다.



사무실에서 기다리는 도중 본 각그랜져 2.4용 정비지침서.


30년의 세월을 버틴 교본인만큼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오고 있습니다.



작은게 맞다고 하네요.


약간 크고 3천원 비싼건 칼로스용이라고 합니다. 마크리 출시당시만 하더라도 칼로스보다 낫네 어쩌네 했던 것 같은데.. 그래도 배기량도 크고 무게도 더 나간다고 디스크 용량이 조금 더 큰가봅니다. 잠시 칼로스용을 끼워볼까 고민하다가 그냥 스파크용으로 장착합니다.



장착사진.


깔끔한 디스크와 따끈따끈한 새 패드가 물렸습니다. 거기에 오일까지 새로 주입해주니 뭐 종전에 비해 반응이 살아나고 칼같이 브레이크가 잡히네요. 이 좋은걸 진작에 해결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여러모로 25만원의 공임과 부품값을 지불하고 카센터를 나왔습니다.


똥차에 돈쓰기 싫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결국은 돈을 썼습니다. 열심히 타야만 합니다 ㅠㅠ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티스도리

만 29세 도태남의 처절한 삶의 기록. since 2009

,
반응형


지금 현재. 여수 시내의 모 피시방에서 글을 작성하고 있습니다. 


분명 탁송차를 잡고 여수에 왔는데 돌아가는 오더가 밤 10시에 출발하는 오더인지라 제게는 약 다섯시간의 자유시간 아닌 자유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지난달엔 너무나도 많이 쉬었던지라 이번달에는 분발해서 좋은 매출을 내기 위해 그 어느때보다도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네요. 


그런고로 밀려있는 포스팅이 상당히 많지만 간단한 여수 여행기 먼저 작성해보도록 합니다. 발단은 이렇습니다. 오후 한시 즈음, 홍성에서 여수로 향하는 탁송 오더를 집었습니다. 그리고 여수에 도착하자마자 평택으로 올라가는 탁송 오더를 잡았는데, 항구로 들어오는 차를 타고 가는건지라 밤 10시 출발이라 하더군요. 뭐 여튼 그러합니다.



12년식 그랜져HG LPG. 이제 갓 만5년을 채운 차량인데 홍성에서 여수의 매매단지까지 팔려갑니다.


5년간의 충청도 생활을 청산하고 저 멀리 전라남도 여수까지 가는 이 그랜져의 심정은 어떠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옵션이 그리 좋진 않았습니다만 그래도 타는데 무리가 없는 차량이 걸려서 다행이 아닐까 싶네요. 매매단지에 도착해서 딜러분께 차를 인계해 드리고, 버스를 타고 시내 방향으로 나와봅니다.


충청도 사람이 '그래유,그랬슈' 하는걸 처음 봤다고 하십니다. 물론 전라도 분들도 같은 동네 친한 사람들한테는 '아따,시방' 요런 말을 흔히 쓴다고 하는군요. 뭐 여튼 메스컴에서 다루는 사투리 관련 콘텐츠들이 과장된 감도 없진 않다만 흔히 그 지방 사람들이 쓰곤 합니다. 물론 저도 지방사람이긴 하지만 다른 지방에 내려오면 여러모로 신기한 일들이 많습니다.



버스를 타고 나오던 길목. 이마트 정류장이 있길래, 모바일 상품권을 교환하러 잠시 들려봅니다.


일단 별로 안추워서 좋네요. 이 좁은 나라도 확실히 남부지방은 덜 춥습니다. 그냥 활동하기 좋은 수준이지요. 여튼 여수라는 동네에 직접적으로는 처음 와보긴 했는데, 지난 일본여행기에서 다뤘던 도시 하코다테와 여러모로 분위기도 그렇고 규모도 비슷한 수준입니다.


P.S 항구도시 그리고 고속철도 종착지라는 공통점에 인구수도 비슷하다. 다만, 하코다테는 일반적인 관광도시고 여수는 관광도시이기도 하다만 산업도시라는 차이점이 있다고 봐야겠다.



여수의 시내버스를 타봅니다. 대다수가 현대버스. 카드 단말기는 마이비.


여튼 여수의 시내버스를 두어대 타본 바, 운전이 상당히 거칩니다. 거칠다면 손가락에 꼽는 서울이나 부산 시내버스보다도 훨씬 더 과격한 운행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네요. 사실상 여수에 발을 디뎌본 일은 처음인 충청도 사람에게 스펙타클한 경험을 선사해줬습니다. 



시장 근처인데, 노점행위 금지 현수막이 걸려있습니다. 그래도 그 뒤엔 버젓이 노점이 있네요.


전반적으로 여수 자체는 저층에 조금은 오래된 건물들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는 항구도시 느낌입니다. 2월의 평일날임에도 곳곳에는 삼삼오오 모여서 여행온 사람들이 많이 보이더군요. 아 물론 평일에도 손잡고 여행오는 리얼충들이 대다수였고, 친구들끼리 우정여행을 온 경우도 여럿 보였습니다.



버스를 타고 엑스포 박람회장 방향으로 가다가 이순신광장에서 한번 내려봅니다.


정류장 안내방송만 대충 듣고서 여기가 관광지겠다 싶어 내리니 관광지가 맞습니다. 대한민국이 낳은 세계적인 제너럴.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로타리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습니다. 미니 거북선 위에 타고 계신 이순신 장군님. 


물론 고향과 묘지는 아산입니다만 전라좌수사로 재임하면서 여러 해전을 승리로 이끌었고 가족들과 함께 여수에 거주했던지라 여수는 이순신 장군의 제2의 고향이 아닐까 싶습니다.



로터리 앞으로 펼쳐진 이순신광장에는 충무공의 전라좌수사 시절 업적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광장에 있는 사람들이 죄다 여행객. 저 역시나 여행객이라면 여행객이겠지요. 근처로는 충무공 혹은 이순신의 이름을 딴 식당과 기념품점들이 있었습니다. 아산시민이 가지는 충무공의 고향이란 자부심이 여수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느껴지더랍니다.



광장에서 바닷가 방향으로는 거북선 모형이 복원되어 있습니다.



광장에서 내륙 방향으로 바라봅니다. 

지금은 곳곳에 건물이 있지만, 조선시대에는 전라좌수영의 소재지인 진남관만 덩그러니 있었겠지요.



조금더 나와서 사진을 찍어봅니다. DSLR을 놓고 온게 한이 되는 순간입니다.


암만 폰카가 좋아졌다 한들, DSLR의 그 깊이감 있는 결과물은 따라오지 못합니다.



앞에 보이는 작은 섬은 장군도. 뒤로 지나가는 다리는 돌산대교입니다.


저 다리 너머로 보이는 섬은 갓의 고장 돌산. 돌산읍입니다. 제가 사진을 찍는 이 장소는 중앙동이구요.



식사시간이 다가옵니다. 메뉴판에 게장백반이 붙어있는 한 식당에 들어왔습니다.


혼자 왔다고 하니 앉으라 그러시네요. 원래는 2인분 이상부터 받는다 합니다. 암요 그럼요. 어디가서 백반정식도 혼자 먹긴 힘든 세상입니다만, 그래도 평일인지라 1인분 상도 차려주십니다. 다음번엔 짝꿍을 데리고 오라는데, 카와이한 처자가 어딨습니까. 처량해도 혼자 사는거죠.



1만원짜리 게장백반을 시켰습니다만, 반찬 종류만 하더라도 ㅎㄷㄷ합니다.


일반적인 백반집 반찬 외에도 갓김치 파김치 그리고 세종류의 젓갈과 두종류의 게장이 제공됩니다. 



그리고 1인분인데도 두마리 이상 들어간것처럼 보이는 꽃게탕이 나오는군요.


남김없이 다 먹었습니다. 살이 꽉 찬 꽂게탕과 백반 한상은 정말 잊지못할 맛을 내더군요. 프렌차이즈 식당의 음식보다는 현지의 특색이 살아있는 음식을 먹고싶어 검색 없이 왔습니다만, 정말 잘 왔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식당은 조금 허름하게 보일지 몰라도 정말 다음번엔 누군가와 함께 가고싶은 식당입니다.



의외로 제 또래의 젊은사람들이 계속 들어오더군요. 

아주머니 말씀으론 여수에 놀러오는 젊은사람들한텐 인기가 좋은 식당이라고 하시더랍니다.


여튼 이 식당의 이름은 진남식당입니다.


메뉴는 몇가지 되지 않습니다만, 게장백반과 함께 나오는 꽃게된장찌개를 먹어본 바 확실히 다른 메뉴들도 맛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거의 모든 소비를 카드로 해결하는 접니다만, 정말 맛나게 먹었던지라 현금결제를 하고 나왔답니다.



아직 겨울은 겨울인지라 여섯시만 지나도 깜깜해지지요. 그 유명한 여수 밤바다를 보러 갈 차례입니다.



벌써 광장 근처로도 화려한 조명들이 켜져있습니다. 가까이에서 봐도 멋지고 멀리서 봐도 아름답네요.


왜 DSLR을 가져올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요. 상명대 최고의 아웃풋이자 인생역전의 주인공 장범준은 이 화려한 광경을 보고 역대급 명곡인 '여수밤바다'를 만들었겠죠. 다만, 저는 뭘 만들지 못하는 상황이니 그냥 감탄사나 넣어서 여행기를 하나 남기고 맙니다ㅠㅠ



아예 여수시에서는 '여수밤바다 코스'라는 도보코스를 만들어서 홍보중이네요.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부산을 대표하는 노래이고, '목포의 눈물'이 목포를 대표하는 노래라면. 비교적 최근에는 '안동역에서'가 안동을, '여수밤바다'가 여수를 대표하는 노래로 자리잡았습니다. 뭐 여튼 나머지 세 노래는 노래비까지 마련되어 있습니다만 여수에는 아직 여수밤바다 노래비가 없네요.


일단 저는 시간이 그리 많진 않으니 가장 짧은 4구간을 돌아보기로 합니다.



여수해양공원입니다. 포장마차가 줄지어 서있네요.


등기소 다닐적 직원분 중 여수가 고향이신 분이 계셨는데 그분께 즉석에서 카톡으로 여수 볼거리 추천을 받았습니다. 다만, 가장 먼저 하시는 말씀이 포장마차는 비싸기만 하다고 절대 가지 말라 하시더군요. 뭐 저야 혼자왔고 저녁도 배부르게 먹었으니 모르겠습니다만, 판단은 이 글을 보는 여러분이 알아서 하시는게 어떨까요.



저 멀리 보이는 이순신대교. 그 위로 케이블카도 지나갑니다.


진짜 일본 홋카이도의 하코다테시와 닮은게 참 많습니다. 야경 역시 시에서 내세우는 관광코스중 하나이고, 더불어 두 도시 모두 케이블카까지 존재합니다. 비록 카와이한 처자와 온 자리가 아닌지라 케이블카 탑승이니 뭐니 그런건 못합니다만, 그냥 멀리서 바라보고 올 뿐입니다.


작년 어느 봄날처럼 리얼충 코스프레라도 해보고싶다. 시발

 


가까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이순신대교는 그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다리 상판에 달려있는 LED바는 그냥 조명 색이 바뀌는 기능 뿐 아니라 전광판 기능도 하더군요. 글씨가 너무 누워있어서 판독하기는 조금 힘든편이지만, '여수시에 오신걸 환영합니다.'같은 문구가 주기적으로 흘러갑니다.



이순신대교에 가까워질 즈음, 하멜전시관이 보이네요. 이미 폐관한 시간입니다.


작은 전시관 위로 케이블카 주탑이 서있고, 등대만한 풍차가 하나 또 서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등대 구경까지 마쳤네요.


하멜 일행이 8년간 노역을 당하며 지내던 헬조선 탈출을 감행하던 그 장소에서 짧은 여행기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물론 바람도 매서웠고, 폰카로는 보고 느낀 모든걸 담을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만 다음을 기약해야지 뭐 어쩌겠습니까. 다음번엔 부디 둘 이상이 왔음 좋겠습니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티스도리

만 29세 도태남의 처절한 삶의 기록. since 2009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