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2016/04/14 - [티스도리의 여행이야기] - 홋카이도(북해도) 여행 이야기 (1) 공항에서 있었던 일

2016/04/16 - [티스도리의 여행이야기] - 홋카이도(북해도) 여행 이야기 (2) 신 치토세 공항 입성!

2016/04/17 - [티스도리의 여행이야기] - 홋카이도(북해도) 여행 이야기 (3) 레일패스 발권, 삿포로역으로!

2016/04/20 - [티스도리의 여행이야기] - 홋카이도(북해도) 여행 이야기 (4) 네스트 호텔 삿포로에키마에, 마츠야에서의 점심

2016/04/23 - [티스도리의 여행이야기] - 홋카이도(북해도) 여행 이야기 (5) 삿포로 시 시계탑 -1

2016/04/28 - [티스도리의 여행이야기] - 홋카이도(북해도) 여행 이야기 (6) 삿포로 시 시계탑 -2

2016/05/02 - [티스도리의 여행이야기] - 홋카이도(북해도) 여행 이야기 (7) 호텔, 홋카이도 구 도청사를 향하여

2016/05/04 - [티스도리의 여행이야기] - 홋카이도(북해도) 여행 이야기 (8) 홋카이도 구 도청사(아카렌가) -1

2016/05/06 - [티스도리의 여행이야기] - 홋카이도(북해도) 여행 이야기 (9) 홋카이도 구 도청사(아카렌가) -2

2016/05/10 - [티스도리의 여행이야기] - 홋카이도(북해도) 여행 이야기 (10) 홋카이도 구 도청사(아카렌가) - 完

2016/05/11 - [티스도리의 여행이야기] - 홋카이도(북해도) 여행 이야기 (11) 오도리(大通り) 공원

2016/05/13 - [티스도리의 여행이야기] - 홋카이도(북해도) 여행 이야기 (12) 삿포로 TV타워

2016/05/19 - [티스도리의 여행이야기] - 홋카이도(북해도) 여행 이야기 (13) 오덕빌딩, 다누키코지 상점가 - 1

2016/05/23 - [티스도리의 여행이야기] - 홋카이도(북해도) 여행 이야기 (14) 다누키코지 상점가 -2, 1일차 마무리

2016/05/27 - [티스도리의 여행이야기] - 홋카이도(북해도) 여행 이야기 (15) 2일차 아침, 국립 홋카이도 대학교 -1

2016/05/30 - [티스도리의 여행이야기] - 홋카이도(북해도) 여행 이야기 (16) 국립 홋카이도 대학교 -2

2016/06/01 - [티스도리의 여행이야기] - 홋카이도(북해도) 여행 이야기 (17) 국립 홋카이도 대학교 -3, 오타루(小樽)를 향하여

2016/06/08 - [티스도리의 여행이야기] - 홋카이도(북해도) 여행 이야기 (18) 오타루(小樽)역, 운하를 향하여

2016/06/13 - [티스도리의 여행이야기] - 홋카이도(북해도) 여행 이야기 (19) 오타루(小樽) 운하 -1

2016/06/22 - [티스도리의 여행이야기] - 홋카이도(북해도) 여행 이야기 (20) 오타루(小樽) 운하 - 2


오타루 운하에서 다시 걸어서 역 방향으로 올라가 봅니다.



버스 터미널이 또 나오는군요. 나름 고풍스러운 건물에 터미널이 소재해 있습니다.



알고보니 미쓰비시 은행 오타루 지점 건물입니다.


오타루의 월스트리트라 불리던 금융지구 한복판에 소재하던 구 삼능은행 오타루 지점은 사라졌지만, 현재는 터미널로 활용되고 있었습니다. 인구 13만 수준의 조그만한 소도시가 번화했던 시절엔 북쪽의 월가라 불리던 금융의 중심지였습니다만, 운하 역시 제 기능을 상실하고 이렇다할 대형 은행들의 홋카이도 지부는 죄다 삿포로로 옮겨간지라 지금은 이렇게 흔적만 남아있습니다.



확실히 오래된 건물인지라 화장실도 옛 정취가 가득 묻어나옵니다.


사실상 이 일대 시외버스 및 시내버스 노선은 죄다 독점하고 있는 츄오버스(中央) 터미널입니다.


터미널이라 불리는 시설물이 역 앞에도 하나가 있고,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도 또 한군데가 있는데.. 과연 수요가 있을지는 의문입니다만, 오타루역 앞 터미널이 썩 크진 않던지라 이곳이 사실상 차고지로 이용되는 분위기였습니다.



마치 그리스 신화에 나오던 신전에 온 분위기를 연상시키는 커다란 대리석 기둥.


그 위로는 적색 타일로 마감처리가 되어있습니다. 여러번의 리모델링과 복원을 거쳐 현재 터미널로 활용되기까지 수많은 일들이 있었을테고 희노애락 역시 함께 했겠죠. 이런 건물들이 정말 수도없이 많습니다. 



사실상 터미널의 목적보다는 시내버스 회차지이자 차고지의 목적이 크지 않나 싶습니다.


터미널에서 버스에 탑승하는 사람들을 단 한명도 보지 못했으니 말입니다..



조금 더 걸어 올라가 봅니다. 비슷한 양식의 건물 한채가 있더군요. 


관광객에게 개방을 해 둔 건물인지 사람들이 꽤 들어오고 나갑니다.



일본은행 오타루지점 건물입니다.


오타르 금융가의 중심. 그곳엔 중앙은행인 일본은행 오타루지점이 있습니다. 우리로 치자면 한국은행과도 같은 일본은행은 엔화의 발행 그리고 통화량 조절을 위해 존재하는 기관입니다. 아베노믹스로 경기를 부양하겠다며 열심히 엔화를 찍어내서 풀고 있습니다만, 최근 브렉시트로 인해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엔화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환율이 폭등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죠.



크고 아름다운 이 건물.. 직접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작년에 봤던 사가은행 가라쓰지점과 은행 구조에선 별반 차이가 없어보입니다.


일본은행 오타루지점은 그 당시 양식을 그대로 유지해서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메이지 시절 은행의 모습과 함께 조폐박물관 분점 역시 마련해 두어 관광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답니다.



들어가서 경비아저씨께서 나눠주시는 간단한 설문지에 답변을 하고..

(여행 온 국가가 어디인지, 성별이나 뭐 그런 내용)


일본어보단 영어가 그나마 읽기 편하니 영어로 된 팜플렛을 요청했습니다.



휴게공간에 앉아 하나하나 읽어보았습니다. 

옆에 인도쪽에서 홀로 여행을 온 아저씨도 유심히 읽더군요.


일본은행같은 중앙은행이 뭘 하는 은행인지에 대한 설명과 은행에 대한 역사를 소개합니다.



쭉 들어가서 역사관과 조폐박물관을 돌아서 휴게실을 통해 은행 출입구로 나가는 방식입니다.



홋카이도 어딜 가더라도 웬만한 관광지에는 꼭 나오는 북해도 개척사 그리고 발전사와 관련된 이야기.


같은 이야기를 여러 박물관에서 하고 있습니다만, 내용은 같습니다.



그 시절 사용하던 저울. 그리고 관리가 잘 되었는지 녹 하나 없이 말끔한 추도 보입니다.


초등학교 과학시간에 아주 지겹도록 보던 양팔저울. 수평저울입니다.



당시 북쪽의 월스트리트. 오타루 금융가에 존재하던 은행 건물들의 모형입니다.


방금 보고 왔던 미쓰비시 은행 역시 1937년 개축 전 초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그 형태를 어느정도 간직한 은행 건물들이 대부분이지만, 세월의 흐름에 맞춰 내외부를 보수하면서 그 시절처럼 은행으로써의 역활은 사라졌지만 아직도 그 자리에 그대로 존재합니다.



그렇게 현재의 일본은행 오타루지점 건축과 관련된 항목까지 넘어옵니다.



과연 누가 이렇게 크고 아름답고 웅장한 건물을 지었을까.. 하고 유심히 보는데......



일본 당진(唐津,가라쓰)가 낳은 최고의 아웃풋!!! 다쓰노 긴고입니다.


그렇습니다. 일본이 낳은 근현대 최고의 건축가 다쓰노 긴고가 지은 건물이네요. 사가은행 가라쓰지점에 방문했을 당시 그분의 주요 작품들을 보고 감탄사를 연발하고 왔습니다만, 큐슈에서 천키로도 더 떨어진 홋카이도에서 그분을 또 볼 줄이야...



한국의 당진에서 왔던 관광객이, 일본의 당진 출신 건축가를 보고 이렇게 반갑다니요.


마치 고향사람 같은 분위기입니다. 우리나라 중앙은행인 한국은행 건물 역시 다쓰노 긴고가 설계를 했던 건축물입니다.



건축 당시 사진들을 보고, 옆으로 넘어가면 조폐박물관 구역이 시작됩니다.


비교적 작은 건물 안에 역사관과 조폐박물관을 어떻게 밀어넣었을까 싶었는데, 커다란 조폐박물관이 아닌 화폐의 제조과정이나 폐기과정 그리고 이런저런 체험이 가능한 부스들로 핵심만 가져다 놓았더군요.



수십년 아니 근 백년 전부터 같은 디자인의 지폐를 들고 다니진 않았을테니..


2004년까지 개정되었던 지폐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죄다 일련번호는 A 0000010번 이내. 아마 1번은 도쿄의 조폐박물관에나 있을테고, 그 이후로도 일정 번호대까진 이러한 조폐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겠죠.



이천엔 지폐의 전지입니다. 


우리나라 지폐 전지의 경우 천원과 오천원권은 45장, 만원권은 40장 오만원권은 28장이 붙어있습니다만, 일본의 지폐는 우리내 구권과 비슷한 크기인지라 전지 한장에 썩 많이 찍어내질 못하는 듯 보입니다.



역시 우리내 조폐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는 지폐의 폐기 후 재활용 과정에 대한 설명입니다.


벽돌이나 압축종이라는 특성을 활용한 보온재로 활용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일본도 우리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커다란 금고 안으로 들어가보면 진짜 천억엔이 잘 모셔져 있습니다.


물론 허술해 보이더라도 보안장치는 곳곳에 설치되어 있구요. 그냥 사람이 한번에 들고 나가기엔 너무 무거운 양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저정도 돈만 있더라면.. 세상 남부럽지 않게 살텐데 말이죠.



일억엔은 직접 들어 볼 수 있게 마련해 두었습니다.


다만, 가져는 못가고 살짝 들어보는 수준에 지나지 않는데, 꽤 무겁더군요. 벽돌 한장 무게정도 나갑니다.



그 외에도 현금수송열차의 외관과 실내를 비롯한 수송방법에 대한 소개도 있더랍니다.


영어나 한국어 안내는 빈약이 아니고 거의 없다시피 했지만, 그래도 그냥저냥 이해가 가능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비록 언어는 통하지 않더라도 그림과 배경 그리고 한자를 보고 유추해내니 말입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있는데, 일반 관객들에 출입은 금지되어 있더군요.


그렇게 일본은행 오타루지점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다시 시내로 나와봅니다. 그나저나 밥을 먹어야 할 시간이 왔는데.. 막상 식당에 들어갈 생각도 못하고 돌아다녔었네요.


22부에서 계속됩니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티스도리

만 29세 도태남의 처절한 삶의 기록. since 2009

,
반응형


계속 이어집니다.




현 도청사 건물, 그리고 주차장으로 해서 도청사 정원을 빠져나옵니다.


몇번 더 강조하지만 우리로 따지자면 2월 말에서 3월로 넘어가는 시기의 기후인지라 눈은 둘째치고 꽃도 볼 수 없었답니다. 지금쯤 간다면 우리내 4월 기후정도 되겠군요. 요즘에는 아마 꽃축제나 이런저런 야외공연도 좀 있는 듯 싶습니다.



후문으로 나와 조금은 외곽진 도심의 길을 걸어봅니다.


뭐 일본이라고 불법주정차를 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일본이라고 차들이 경적을 울리지 않는것도 아니라는걸 느끼고 왔습니다. 신호가 바뀌고 앞차가 진행을 하지 않아 분노의 경적을 울리는 경우도 몇번 봤네요. 어디든지 사람이 사는 동네는 다 똑같ㅇ느 것 같습니다.



조금만 걸어가면 오도리공원이 나옵니다.


오도리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에 따라 춤이라는 의미의 おどり가 아닐까 싶었습니다만, 한자로 대통공원(大通公園)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오오도오리 大(おお)+通(とお)+り입니다. 


일어사전의 힘을 빌리자면 오오도리라는 단어의 의미는 우리말 대로(大路)와 비슷하더군요. 결론적으로 그냥 시내 중심가 대로 한복판에 있는 공원이라는 뜻. 



실상은 공원이 아니라 도로라고 하는군요.


오도리공원은 공원으로 불리고 있지민 실은 도로이다. 


1871년, 삿포로 중심부를 남북으로 가르는 화재방지선이 만들어졌고 이것이 시리베시도리라는 도로가 되었다가 이름이 바뀌어 오도리가 된 것이다.


또 다른 설명으로는 1871년 삿포로시 개발 당시에 북쪽의 관공서 등 공공기관, 남쪽에는 상업시설과 주거단지를 개발하면서 그 경계점으로 만든 공원이라고 합니다. 여튼간에 커다란 도로 한복판에 1초메부터 12초메(쉽게 얘기해서 1블럭부터 12블럭)까지 1.5km라는 어마어마한 영역에 세워진 공원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공원의 안내판입니다.


도청 구 본청사에서 내려왔죠. 더 내려가면 다누키코지 상점가가 있습니다. 그 외 서쪽으로 가면 홋카이도대학 식물원이, 동쪽으로 가면 오도리역과 위 사진에 보이던 TV탑이 나온답니다.


말이 공원이지 삿포로시에서 관광객을 대상으로 이런저런 행사를 진행하는 나름 서울의 시청앞 혹은 광화문 광장과도 비슷한 성격을 가진 곳이고, 제가 간 4월을 제외하고 매년 매달마다 특색있는 행사가 개최됩니다.



이거 뭐 관광지 맞아? 사람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데?


방문한 시간대가 다섯시가 조금 넘었던 것도 있었지만, 황량합니다. 알고 보니 제가 간 4월에만 행사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항공권이 저렴했고, 항공기도 빈자리가 꽤 많이 보였다는 것이죠. 뭐 삿포로는 아주 추울때 오던지 최소한 꽃이 피는 계절에 와야 합니다.



그래도 이름이 이름이라고.. 춤을 추는 사람들도 있긴 합니다.


카와이한 각쿠새들이 팝핀 비슷한 춤을 춥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의식하면서도 자기들끼리 나름 열심히 하는군요. 비록 추운 날씨에 다들 지나쳐가기 바쁘고 노래도 작게 틀어둔지라 멀리서는 저들이 무대 위에서 쇼를 하는지 춤을 추는지 파악이 불가하답니다.


비록 봐주는 사람 하나 없어도 그들은 열심히 오도리공원에서 おどる를 연습하고 있습니다.



開拓紀念碑(개척기념비)


공원 내 크고 작은 조형물들 그리고 비석들이 존재합니다. 이 개척기념비 역시 북해도 개척 및 삿포로시 조성 당시에 세워진 비석으로 보입니다. 이래저래 도시 곳곳을 관람하며 느낀 바 북해도 개척에 관련된 역사와 그를 기념하려는 모습들이 지겨울 정도로 보입니다.


P.S 1901년 지금의 자리로 이전해 왔다고 하는군요.



바위 위의 부엉이가 사슴 까마귀 토끼를 모아두고 무언가를 토의하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선생님 같은 존재일까요. 아니면 동물의 왕과 같은 존재일까요. 정확히 알 수 없고 출입금지라며 바리게이트를 쳐둔지라 가까이 갈 수 없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검색을 해 봤습니다만, 처음 생각했던 그 어떤것도 정답이 아녔답니다.


동물들의 모임과는 관련이 없는 '봉사의 길'이라는 이름을 가진 삿포로시 로타리클럽 50주년을 기념해서 세워진 동상이라 합니다.



80년대에 지어진 느낌이 물씬 풍겨오는 오도리공원 내 화장실


화장실은 화장실입니다만, 이용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답니다. 뭐 공원에 볼거리라도 있어야 관광객들이 올테고 그 관광객들이 화장실도 이용하겠죠. 비록 지어진지 오래된 화장실이지만 우리내 지어진지 5년도 안된 공원 내 공공화장실보단 훨씬 깔끔해 보였습니다.



웬 도심 한복판에 어부아저씨들인가.. 하고 봤더니만


1969년에 홋카이도 어업인 협회에서 창립 10주년과 홋카이도 개척 100주년을 기념해서 세워둔 동상이라 하는군요. 우리내 공원의 동상들은 나름 언제 제작되었는지 얼굴이나 묘사 형태를 보면 대강은 파악이 가능한데 일본 동상은 가늠하기가 힘들군요.


50년의 세월을 버텼지만, 그래도 관리상태는 준수한 동상입니다.



저같이 멘붕이 온 관광객에게 안내를 해 줘야 할 인포메이션센터는 굳게 문이 닫혀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먼저 삿포로시에 방문했던 사람들의 후기에 빠지지 않던 '오도리공원이 그렇게 유명한데 얼마나 아름다울까!'라며 내심 기대하고 왔지만 볼게 없는 시기에 걸쳐진지라 황량한 공원을 구경하고 가는 저같은 관광객에게 카와이한 안내원 처자가 카와이한 목소리로 혼또니 스미마셍 하다고 위안이라도 해줘야 하는거 아니겠습니까...ㅠㅠ



일본의 제1야당인 민주당 북해도당사 간판이 보이는군요.


그렇게 높은 건물도 아니고 평범한 사무실 건물에 입주해 있는 듯 보입니다. 우리나라의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총선에서 대 승리를 거둬 여당보다 더 많은 의석을 얻어갔지요. 일본의 민주당도 우리의 더불어민주당처럼 복잡한 세력이 있을테고 어느 세력이 당권을 잡느냐에 따라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겠죠.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민주당내 모 계파는 과연 전직 대통령이 추구하던 그런 정치를 위해 노력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대통령의 명예를 팔아먹으며 자신들만의 선민의식과 집단이기주의로 무장해서 지지자들도 성숙하지 못한 경우가 많더군요. 전 그 지지자들이 안철수 지지한다 하면 온갖 험담하며 몰아가는 그 꼴이 싫어서 3번찍었네요. 3번당이 그나마 제 성향에 가장 가까워 보입니다.



미쯔비시후소 에어로 퀸 하이데커 I


우리에게도 현대 에어로 시리즈로 겉모양은 익숙한 버스입니다. 일본에서 기술을 배워오던 현대차가 이제는 독자기술로 일본의 자동차 브랜드를 앞서는 시대가 되었고, 저 똑같은 버스를 만들어내던 현대차가 불과 10년도 지나지 않아 독자개발한 버스를 일본에 수출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호텔 앞에 정차해있어 관광객들을 내려주는 줄 알고 있었는데 공항버스네요. 신치토세공항에서 삿포로시 시내 노선을 다니는 시외버스입니다. 회송이라 써 있는 모습을 보면 차고지로 가는 모양입니다.



성은비(聖恩碑). 역대 일본 왕들의 업적을 담은 비석이라 합니다.


우리에겐 역사상으로 썩 달갑지 않은 왕들인 메이지(明治),다이죠(大正),쇼와(昭和)왕의 업적을 담아놨답니다. 요즘도 옛 문서를 찾다보면 대정7년, 소화3년과 같은 일본 왕의 연호로 년도를 표시해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불과 한달 전만 하더라도 그런 연호를 밥먹듯 보는 일을 했으니 말이죠.



손가락 아프게 키보드를 더 두르릴 이유가 없어보입니다.


분수는 분수인데 물이 없어요. 애매한 시기라 잘못하다간 물이 얼어버릴 수 있으니 말이죠.


하루가 지나갑니다. 토요일임에도 출근길에 올랐던 차들이 다시 도심으로 쏟아집니다.


찰황 번호판을 달고 유유히 지나가는 차량들. 해저터널이 있긴 합니다만 어디까지나 기차를 위한 해저터널이기에 우리나라 제주도처럼 자동차는 무조건 배편을 이용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홋카이도 내 도시들 지명 말고 낮설어 보이는 지명이 써있는 번호판은 보기가 힘들더군요.



태양은 강력한 역광을 남기고 서쪽 저편으로 모습을 감춰갑니다.


썸머타임 제도를 도입해서 약 한시간만 앞당겨도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 할 수 있을텐데 말이죠. 새벽 다섯시도 안되서 환해지는 동네인지라 해가 너무 빨리 지는 느낌입니다.


일본이라고 정지선 위반을 하지 않는건 아닙니다.


뭐 횡단보도를 점거하고 있는 CR-V가 지나가려던 찰나에 신호가 바뀐지라 저 자리에 섰습니다만, 여튼 일본이라고 정지선 위반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횡단보도를 자동차가 점거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분수광장에서는 비록 분수는 가동되지 않지만 제법 춤을 추는 사람들이 모여있습니다.


저 키작은 아이가 토머스를 제법 할 정도로 다들 실력이 출중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분수공원 반대편에 앉아 저들을 구경하는 사람들도 몇명 있더군요. 다만 저 춤꾼들은 제가 지나가면서 곧 음악을 끄고 자리를 정리하고 집으로 가는 듯 보였답니다.



그렇게 삿포로시의 주요 상징물이자, 오도리공원의 시작을 알리는 TV타워 앞까지 도착했습니다.


1957년 147.2m의 높이로 세워진 홋카이토 최초의 고층 건축물이였답니다. 지하와 2층 3층 그리고 유료 전망대가 소재한 이 TV탑은 60년이 넘는 세월을 버텨왔습니다. 비록 지금은 본연의 목적인 전파송출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만, 시의 랜드마크 중 한군데인 만큼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관광명소로서 입지를 굳게 다지고 있다지요.


여튼 12부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티스도리

만 29세 도태남의 처절한 삶의 기록. since 2009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