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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약 1년여만에 산이라는 곳을 다녀왔습니다.

뭐 재작년만해도 새해 첫 해를 산에서 보았을정도로 산에 꽤 많이 다녔었지만 어느순간부터 산에 가지 않게 되더군요. 정확히 언제가 가장 마지막에 등산을 다녀왔던 날인지 기억하기도 힘들지만 작년 한해동안은 산에 다녀온 기억이 전혀 없다보니 여튼 2012년이 되어서야 산에 다시 올라왔습니다.

산이란 매번 느끼지만 올라갈때는 그냥 하산하고 싶고 힘들다고 해도 정상이나 고지에 올라가서 저 멀리의 풍경을 바라볼때 언제 그랬냐는듯이 싹 사라지는 굉장한 힘을 발휘합니다.

그렇게 오랫만에 다녀온 산에서 조금 맘에드는 문구를 발견했습니다. 


"아니온듯 가소서"

어떤 산악회에서 남겨두고 간 리본입니다. 보통 산악회 리본들은 산악회 이름만이 있는게 보통인데, 아니온듯 가라는 문구가 산악회 이름과 함께 같이 새겨져있습니다. 사실 아니온듯 간다는 문장과 보라색 리본으로 남겨진 산악회의 흔적은 웬지 매치가 되지 않는듯 해보이지만, 쓰레기를 버리지 말고 가지고 내려가자는 계몽적인 문구입니다.

본질적인 의미와는 거리가 멀지만 이 문장을 보고 굳이 산에 오는 등산객이 아닌 사람이 살아가는 이 세상에 대해 잠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인간이란 과연 흔적을 남기는것이 옳은것일까 아니라면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써 혹은 잠시 어딘가에 머무는 사람으로써 흔적없이 사라져주는것이 옳은것일까...

모두 사람에따라 행동에 따라 가치관이 틀리다보니 다른 답을 말하겠죠. 지나치면 좋지 않겠지만 세상살이는 이 두가지를 조합해서 살아가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흔적을 남겨야 할 때에는 흔적을 남기되, 흔적없이 아니온듯 떠나야 할때는 마음을 비우고 떠나야죠. 문득 몇년전 있었던 일이 생각납니다. 끝까지 흔적을 남기겠다고, 나의 존재를 이곳에 남기겠다고 투쟁적으로 살아왔지만.. 하루아침에 쌓아왔던 흔적에 먹칠만 한 뒤에 마지막 흔적을 남기고 왔지만 흔적없이 사라진것만도 못했던 그날의 일화. 아쉬운 마음에 많은 흔적을 남겼지만 그로인해 수반되는 분쟁과 논쟁. 그리고 혼란.

떠나야 할때. 마음을 비우고 아니온듯 가야할때가 있습니다. 나로인해 어느 누군가가 피해를 보고 상황이 악화된다면 내가 아쉽더라도 마움을 비우고 아니온듯 가야한다는 교훈을 주었던 그 일..

그 일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당장 블로그의 글 역시나 흔적중 하나이고 속담에도 나와있지만, 산을 위해 아니온듯 하산하듯 다른 사람을 위해 아니온듯 가야할줄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불과 며칠전만해도 원망에 가득찼던 그때 그 일과 함께 생각하며 마음속에 새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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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스도리

만 29세 도태남의 처절한 삶의 기록. sinc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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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포스트로 굉장히 늦은시간에 찾아온다..
벌써 밤 11시 이후를 가리키고 있으니 말이다. 사실 5시 이후부터 비틀거리고 또 정신이 없었었다.. 역시 난 술 체질이 아닌가보다.

사건의 발단은 ""에 가는것부터 시작되었다. 사실 오늘은 산에 가기 싫었지만(;;) 억지로 끌고가겠다며 집에까지 전화를 했으니.... 결국 나가게 되었다.

가게 된 사람은 셋. 학교 선생님 한분, 친구 하나, 그리고 나.. 이 세사람은 이전부터 지겹게 소개하던 예산과 서산의 "가야산"을 향해 가게 되었는데.. 숨쉬기와 자전거타기 이외의 운동에는 전혀 소질이 없는.. 신이버린 몸을 가진 필자때문에 일행은 천천히, 비교적 험하지 않은 코스로 가게 되었다.

2010/10/31 - [사진을 찍는 티스도리/할말 다하는 지역탐방] - 충남 서산,예산 가야산 도립공원본 등산로
2010/10/30 - [사진을 찍는 티스도리/여행/출사기] - 가야산(예산,서산)에 올라가다!
2009/12/19 - [사진을 찍는 티스도리/DSLR과 함께..] - 가야산 도립공원.
(가야산에 관련된 포스팅이 이렇게 많았다.)

일단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는것까지는 순조로웠다. 산행을 마치고 차가 있는곳까지 내려오던중.. 선생님께서 자주 들르던 막걸리집에 잠시 짐을 풀고.. 두부김치와 함께, 막걸리를 받아 마시게 되었다.

P.S 사실 필자의 집안 내력은 술과는 거리가 멀다. 내가 태어나서 한번도 뵈지 못한 할아버지도 술과는 거리가 멀으셨다 하고, 아버지 형제들도 술과는 거리가 멀으니 말이다. 참고로 나는 소화제인 "까*활명수"같은것만 먹어도 취하는 전혀 알코울과 친화될 수 없는 존재이다. 이전에도 필자는 술때문에 힘들었던 적이 있었다. 지금 글을 쓰고있는 필자가 미취학아동이던 아주아주 어렸을적에.. 어른들이 그냥 컵에 따라주는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키고.. (몇번은 좋았다) 굉장히 많은 양을 먹다가 결국 실신(?)가까이의 상태에 이르게 되었었다. 그 이후에도 수많은 일들이 있었고, 얼마전에는 아파트에서 행사를 할때 누군가가 뜯어놓은 소주병과 맥주병에 들은 술이 아까워서 사이다 콜라와 함께 폭탄주를 제조하여 두컵정도를 마시고, 집에 올라와서 발바닥까지 빨개지고 미쳐버리는 상태까지 가게 되었었다.

가게에서 직접 빛은 술이라 그런지.. 톡쏘는맛은 좋았다. 하지만, 톡 쏘는건 둘째치고.. 잠시 후.. 슬슬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갓김치랑 묵은김치를 먹어가면서 맛있는 두부를 먹어가면서.. 슬슬 얼굴을 빨개지고.. 혈액순환은 빨개지게 되었다. 내가 걷는게 걷는것같지도 않을뿐더러, 사람이 미쳐가는지.. 차를 타고 오면서도 점점 정신이 혼미해져갔다.(그 중간에도 많은 일이 있었다.) 정작 자신은 아니여도 제자에게 술을 먹인 선생님도 걱정되고, 두잔을 마시고도(필자는 한잔..)멀쩡한 친구는 내가 걱정됬는지 해장을 하러 가자며 순대국밥집을 들리게 되었다. 평소같으면 굉장히 잘 먹던 순대국밥도, 눕고싶다는 생각에 입에 잘 들어오지 않았고.. 결국은 속도 안좋아져서(아래가 아니라 위로..;;;-아래면 참을 수 있겠지만..;;) 식당아주머니의 슬리퍼를 신고 화장실로 뛰쳐가게 되었다. 하지만 원하는 overeat는 나오지 않았고, 식당 앞에서 시원한 바람을 쒜며 어느정도 몸을 가다듬으니.. 친구가 계산을 다 하고 나왔다.

"신발갈아신어.."

아.. 신발을 갈아신고 내 아까운 순대국밥...;;; 결국 순대국밥은 비닐에 싸서 집에 천천히 걸어가게 되었다. 그래도 얼굴이나 밖으로 보이는 술기운은 많이 갈아앉았다. 하지만 헤롱헤롱하고 바닥을 밟는것같지도 않는 알콜에 의한 증세는 계속되었다. 집에 와서도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누워있었는데.. 어느새 잠이 들었다. 바닥에서 그냥 산에 입고 갔다온 바람막이를 베고 자다가 일어난 후에도 그닥 몸은 편치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몸은 정상궤도로 거의 회복된 듯 하고, 아까 가져온 순대국밥을 마져 먹었다.(역시 국밥은 언제먹어도 매우 맛있다.) 아.. 도수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는 막걸리 한잔에 지옥을 경험했던 순간이였다..;; 못먹는 술.. 앞으로 조만간은 대통령이 따라주어도 절대 입으로 밀어넣지는 않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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