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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구정 설 당일 오후. 차례도 성묘도 모두 끝내고 연휴를 만끽 할 수 있는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해야 할 일이 많긴 합니다만 약 2주동안 시간이 나지 않아 손도 대지 못했던 범퍼 교환작업을 진행하도록 합니다.


어끄제 대충 랩핑해둔 안개등 커버를 지참해서 창고로 향합니다.



그나마 범퍼를 고정해주던 그릴 핀 두어개를 빼고나니 쑥 빠져버리네요..


탈거는 쉽습니다. 이미 고정해주던 핀들이 날라가거나 깨져버려서 사실상 의미가 없어진지 오래니깐요. 핀을 탈거하기만 하면 뜯어집니다. 



휠하우스 커버 역시 핀 몇개만 제거해주면 쉽게 빠집니다.


우측은 사이드스텝과 닿는 부분이 깨져버렸고, 좌측은 범퍼와 닿는 부분이 깨지며 날라갔습니다.



앙상한 몰골을 드러낸 스파크.


범퍼를 부착하기 전 좌측과 우측 휠하우스 커버를 신품으로 교체해 줍니다.



탈거된 고품들.


좌측 휠하우스 커버는 교체된지 약 1년도 지나지 않아 깨져서 탈거되는 운명을 맞았고, 우측은 사실상 교체한 이력이 없으니 18만km 넘게 주행하는 동안 달려있었던 부품인데 이번에 임무를 마치고 탈거되었습니다. 그냥 폐기하면 될 휠하우스 커버와는 달리 기존 범퍼에서는 그릴과 온전한 우측 안개등 그리고 스티로폼 재질의 에너지바를 탈거해서 새로 장착될 범퍼에 이식해줘야 합니다.



원활한 작업을 위해 작키로 살짝 들어서 공간을 내 준 뒤 작업에 임합니다.


일단 양쪽 모두 조립 이전에 모양만 잘 맞춘 상황입니다. 대우차 특유의 쌍욕나오는 7미리 볼트를 다시는 풀어재끼고 싶은 마음이 없으니 비교적 부착과 탈거가 쉬운 스크류나사로 조립합니다.



스크류 나사로 조립한 모습.


그래도 잘 맞습니다. 고정에도 문제가 없습니다. 잘 보이는 부분도 아니니 딱히 상관도 없습니다.



하우스 안쪽으로도 7mm 볼트 대신에 피스를 박아줬습니다.



RH LH 스티커가 선명히 보이는 신품 커버 조립 완료.


이제 범퍼만 장착하면 다 끝납니다. 리프트만 있다면 다해서 1시간 이내에 마칠 수 있는 작업입니다만, 작키로 들고 내리고 반대편에 가서 또 자리잡고.. 여러모로 힘들게 작업하고 있습니다.



기존 범퍼에서 안개등 그릴 번호판다이 에너지바 등등 탈거가 가능한 물건은 모두 탈거합니다.



드디어 비닐을 벗겨낸 3만원짜리 중고범퍼.


벨기에브라운 컬러의 중고범퍼입니다. 꼭 도색해서 쓰라는 문구와 함께 판매되던 제품입니다만, 크게 눈에 띄는 기스는 보이지 않습니다. 컴파운드로 살살 문질러주면 지워질 잡티 몇개 보이구요. 본격적인 조립작업을 진행합니다.



어짜피 철수하는 CHEVROLET나 DAEWOO나...


쉐보레 그릴을 장착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창고에서 먼지만 맞고 있던 대우그릴을 장착했습니다. 크롬 도금이 되지 않은 깡통용 마크리 그릴입니다. 재작년에 검사용으로 구매해놓고 잠시동안 달고다녔던 물건인데, 이미 쉐보레 그릴에 달려있던 불들어오는 뱃지들의 선이 끊어진지 오래라 검사 통과엔 문제가 없어서 이번 정기검사 당시엔 사용하지 않았던 물건입니다.


그냥 쉐보레 그릴도 질리고 해서 대우그릴을 결합하여 조립하기로 합니다. 대우 혈통이지만 대우와의 선긋기로 대우차가 아니라고 빠득빠득 우겨대었던 차량입니다만, 그 빠득빠득 우겨대던 미제 십자가도 곧 짐싸서 나갈 브랜드가 된 마당에 대우 혈통임을 자랑하고 다녀야죠.



신품 안개등 및 커버 장착.


기존 범퍼에서 탈거했던 고품 역시 반대편에 잘 장착해 줍니다. 그렇게 범퍼 조립작업을 마치고 차체에 대고 있던 와중에 창고 옆으로 친구가 지나가네요. 지나가던 친구의 도움을 받아 장착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됩니다. 옆에서 보조해주는 사람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이렇게 많이 나는군요.



휠하우스 커버와 범퍼가 연결되는 부분, 언더커버와 연결되는 부분 역시 플라스틱 핀으로 마감합니다.


거의 특수공구 수준으로 잘 쓰이지도 않는 규격의 볼트를 풀고싶지 않아서 웬만한 구멍은 플라스틱 핀으로 마감했습니다. 저건 일자드라이버 하나만으로도 쉽게 떼어 낼 수 있으니 말입니다. 추후 작업의 편의를 위한 마무리입니다.



중고범퍼+대우그릴 조합으로 완성!!!!!!!!


생각보다 나쁘진 않습니다. 자세히 본다면 색상차이가 확연히 납니다만, 멀리서 보면 크게 위화감은 없습니다. 가까이 본다면 달라지지만 말이죠.



가까이에선 확연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도 뭐 같은 어두운 계통의 컬러인데... 딱히 이 차에 돈을 들이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 따로 랩핑 없이 타기로 합니다. 누군가가 박아준다면 정말로 감사한 일이지만, 그럴 일은 없으니 그냥 이러고 타야죠 뭐.


세차장에 가서 물을 한번 뿌려주고 모든 작업을 마쳤습니다. 부디 손 댈 일 없이 오래오래 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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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이야기네요. 


화창했던 날씨에 갑자기 비가 한두방울 떨어지더니만 폭설로 변했던 하루였습니다. 폭우 폭설에 뭐 온갖 경험을 다 겪었던 하루라 생각되네요. 



대전 유성에 소재한 대전월드컵경기장입니다.


유성ic에서 나오면 바로 앞에 큰 경기장이 하나 있지요. 2002년 월드컵 16강전. 이탈리아戰의 영광을 그대로 간직한 경기장입니다. 설기현의 후반 42분 절묘한 동점골. 그리고 안정환의 골든골로 8강행을 확정지은 우리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4강까지 올라가는 기염을 토해냈었죠.


뭐 여튼 그게 바로 어끄제 일 같습니다만.. 이미 14년이나 지나버렸습니다. 그 날 태어난 아이가 벌써 중학교 2학년생입니다. 그시절 그 감동을 가진 경기장 옆에는 대규모 주차장이 있는데, 주차비도 따로 없고 나름 대전 도심에서 가깝다보니 자동차동호회의 모임장소로 이용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오랜만에 비스토동호회 모임에 참석했네요.


폭우가 내리자 건물 밑으로 피신했는데.. 그 자리에서 범퍼를 탈거하여 다시 쉐보레 그릴을 장착했습니다. 10mm 복스알만 하나 빌리고, 휠하우스 커버 부근 8mm짜리는 손으로 풀었네요.



다시 쉐보레 그릴로 돌아온 스파크!


그 짧은 세월.. 돼지코 대우그릴도 참 이쁘긴 합니다만 다시 본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여튼 간단한 작업들과 담소를 마친 뒤 식사를 위해 이동했네요. 32번 국도를 타고 공주 방향으로 쭉 올라가다가 칼국수집에 들렸으나 주차공간이 없던 관계로 공주 시내까지 이동했네요.



공주에 소재한 양평해장국집입니다. 


체인점으로 장사를 하다가 따로 나와서 영업을 하시는 사장님이라네요. 다른 체인점들이 한그릇에 7000원씩 받을 때, 아직 6000원에 한끼 식사를 제공해주는 아주 착한 맛집입니다.


동네 양평해장국집보다 양도 훨씬 많고 맛도 제법 좋았습니다.


맛나게 먹고 드라이빙 겸 이동을 하려 합니다만, 폭우는 폭설로 바뀌고.. 곧 도로는 개판이 됩니다.



고로 생각보다 빠르게 해산하여 집으로 돌아가는데, 유구ic 지나서부터 정체가 시작됩니다.


차동터널 앞에 4중추돌사고가 났었는데.. 그 이후로도 계속 막히더군요. 교통정보 애플리케이션으로 정체구간을 확인하니 예산휴게소 그 이후까지도 계속 막힙니다. 별 수 없지요. 신양ic에서 나와서 국도를 타고 집으로 가기로 합니다.


당진-대전선 개통 전에는 매번 다니던 길인데.. 정말 오랜만에 오니 새롭더군요.



예산 시내도 개판 오분 전.


제설이니 뭐니 할 겨를도 없이 눈이 쏟아졌습니다. 그러니 도로는 개판입니다. 2월 말에 참 눈이 드럽게 쏟아집니다. 차량들은 죄다 거북이 운행.. 지나가는 사람은 단 한명도 보이지 않습니다. 헬 오브 헬.


다행히 지하주차장에 자리는 있던지라 지하주차장에 차를 박아둡니다.



앞 범퍼에 붙은 번호판 플레이트만 탈거하여 집으로 왔습니다.


주황색 카본 시트지를 이리저리 붙여보네요. 조금 엉성하긴 해도 아주 잘 붙습니다. 다만 너무 두껍게 붙여둔지라 주객이 전도되어 번호판 가드에 번호판을 겨우겨우 끼워맞추는 상황이 생겨버립니다.



요렇게 말이죠. 자세히 보면 플레이트 위에 억지로 번호판을 올린 느낌입니다.


멀리서 본다면 크게 티는 나지 않는지라 그냥 요러고 다니기로 합니다. 나름 대규모 작업을 앞두고 한두가지씩 자잘한 부분들을 만져주고 있습니다. 뭐 그래도 마이너스가 되지 않아 다행이라면 다행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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