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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후 그 세번째 이야기.. 여기서 막을 내립니다.


역시나 계속해서 다자이후 텐만구를 탐험중인 티스도리... 동전이 올려진 석상 하나를 발견합니다.






우리나라에서 10원짜리 주화와 비슷한 취급을 받는 일본의 1엔짜리 동전이 대다수이지만..


저기 중간에 우리 한국의 백원짜리 동전도 두개나 보이는군요.



곤히 잠들어 있는 고신규에게 동전을 던지고 소원을 비는 사람들이 있어 동전들로 가득합니다.


이런게 신사의 짭짤한 수익이라면 수익이겠지요. 



비석 위에 붓이, 그것도 돌로 된 붓이 올라가 있습니다.


붓총이라고 하는 비석이더군요. 이렇게 특이한 비석들도 볼 수 있었답니다.



매화나무가 가득한 다자이후 본전 뒷켠에는 이렇게 식당들도 있었답니다.


날씨가 좋으니 우리나라 주막에 온 것 처럼 노상에 상이 펼쳐져 있네요.



이래저래 복잡합니다. 볼 것도 많고, 느낄 것도 참 많습니다.


다자이후 본전을 넘어가면 사실상 사람들이 거의 없는 한적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답니다. 



텐카이이나리 신사로 가는 길..


일본까지 와서 등산을 하고 있습니다. 이 길로 올라가는 길목부터는 사실상 관광객이라기 보다는 신사를 참배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이 대다수였습니다. 저 앞에 사진을 찍는 아주머니가 보이네요.



서울모터쇼에서 지겹도록(?) 노래를 틀어주고 지겹도록 마시게 해준 오로나민C


동아오츠카에서 새로 나온 비타민C가 함유된 탄산음료 오로나민C. 아나운서 출신의 전현무와 다비치의 강민경이 메인으로 나오는 한국 론칭 광고가 참 지랄 발광하는것처럼 보인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역시 박카스처럼 원조는 일본 오츠카의 오로나민C입니다.


일본 광고 모델은 관서지방 출신들로만 구성된 7인조 보이그룹 캰쟈니8..





한적한 곳에서 예초기로 풀을 깎는 아저씨도 보이십니다.


한국은 아직 예초기를 돌릴 수준까진 아닌데.. 우리보다 훨씬 남쪽에 위치한 이곳에는 벌써 예초기가 나오기 시작하나 봅니다. 풀내음과 예초기의 매연냄새가 어우러진 독특한 향기 역시나 만국 공통인가 보군요. 아니 우리나라에 들어온 예초기들이 대부분 일제 엔진을 쓰는지라 냄새가 같은걸지도요..



텐카이나리 신사로 향합니다.


사람은 없고 한적합니다. 이런 한적한 분위기를 원했는데.. 텐만구 외곽에서 느껴보는군요.



지도상에는 분명 수국 정원이라 했건만..


수국도 역시 때가 아닌가 봅니다. 수국이 만개했더라도 정원이라 보기엔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싶지만요.



자그마한 신사로 올라가는 길목.. 도리이에 신사 이름이 걸려 있습니다.



신사로 올라가는 길목에 이렇게 신사 이름이 적힌 깃발들이 많이 있었는데..


우리내 절에 시주를 하듯이 신도들이 와서 시주를 하고 저렇게 걸어둔게 아닐까 싶습니다.



작고 한적한 신사를 지나서 산을 타고 쭉 올라가 보기로 합니다.


산을 타고 넘어가면 놀이공원이랑 박물관이 나온다고 언뜻 보고 무작정 올라가기로 했네요.



산 밑에선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아마 유원지에서 나오는 노래가 아닐까 싶네요.


다만 노랫소리만 울려퍼질 뿐, 사람들의 웃음소리나 놀이기구가 돌아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적적한 산길, 솔바람 맞으며 즐기고 있었습니다.


혹여나 타국의 산에서 조난을 당하는건 아닐지 걱정도 되었지만 말이죠. 천만 다행히도 조난은 당하지 않았으나 깊숙히 들어가면 들어 갈 수록 괜히 잘못되는게 아닐까 싶어 돌아서 다른 길로 가기로 했답니다.



전기톱 같이 생긴 기계에서 바람이 나와서 낙엽을 싹 구석으로 몰아줍니다.


우리나라에도 저 비슷한 도구가 있던데 이름은 모르겠더군요. 



텐카이나리 가는 길과, 큐슈 국립박물관으로 향하는 길..


박물관으로 가는 길에서 저처럼 카메라 하나만 매고 온 백인 아저씨가 가는 걸 목격했습니다. 그 아저씨도 저처럼 혼자 무언가를 보러 온게 아닐까 싶더군요. 얼마 지나지 않아 유원지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다자이후유원지입니다.


노부부가 계셨는데 저 인형 위에 올라가서 사진을 찍고 그러시더군요. 어린 아이와 함께 방문했거나 연인이랑 함께 왔다면 한번쯤 들어가서 구경을 했겠지만.. 그렇지 않으니 그냥 구경만 하고 갑니다.



유원지는 잘 꾸며뒀는데 관리하는 아저씨만 보이고 휑하더군요. 평일 낮이라 그런걸까요?


여튼 다음번 일본여행에선 현지 스시녀 처자라도 잘 꼬셔서 같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P.S 딱히 접점이 없고 원치 않는것도 있지만 한국에서 안되는데 말도 안통하는 외국에서 뭐 되겠음?



이곳도 작은 정원이 있습니다. 


한쪽으로는 유원지가 한쪽으로는 정원이 한쪽으로는 박물관 입구가 소재해 있더군요.



규슈국립박물관 및 후쿠오카현립 아시아문화교류센터가 있답니다.


당장 입구만 봐서는 나름 국립박물관 규모가 이정도였나 싶었는데..



어마어마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이동합니다.



휠체어와 유모차등은 이러한 리프트를 이용해서 이동을 하더군요.



요렇게 큼지막한 건물이 나타납니다.


입장료에 좌절하고 돌아 나왔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들어가서 구경이라도 해볼걸 그랬습니다. 입장료가 천엔이 넘어가는 돈인데다가 한국어 안내가 잘 되어 있을까 생각이 들었지만, 이왕 가서 구경하는거 열심히 하고 왔어야 했는데 ㅠㅠ



또 작은 연못이 하나 있습니다. 지도상에는 창포 연못이라 써 있는데..


저 작은 옹기같은 곳에 아이리스 꽃이 피나 봅니다. 그리고 저 뒤로는 벌써 등나무가 꽃을 피웠네요.



복강 400 노 53-77


여튼 토요타의 원박스형 승합차인 하이에이스입니다만, 밴모델임에도 LED 리어램프가 적용되어 있는 모습입니다. 최대적재량은 우리나라 1톤트럭과 동일한 1000kg.. 밴하면 원가절감과 싸구려라는 인식이 있는데 전혀 싸구려틱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자주 보는 미쯔비시후소의 에어로버스.


구형이긴 하다만 대우버스의 로얄 하이데커를 보는 것 처럼 상당히 차량이 높아보입니다. 일본은 영업용 버스의 내구연한이 20년이다 보니 한국에선 이미 자취를 감춘 차량들도 이렇게 흔히 볼 수 있답니다.



지도상으론 봉납된 그림 액자가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다만 사람들 이름이 잔뜩 써 있네요.



거 앞에서 공연을 하던 아저씨.. 사람들이 관심을 주지 않자 북을 쳐서 시선을 모으려 합니다.



시원한 그늘을 제공해주는 등나무 꽃도 한번 찍어봅니다.


텐만구 신사 바로 옆에는 유치원이 하나 있더군요. 나름 학문의 신을 모시는 곳에 부설 유치원이라... 입학 경쟁이 장난이 아니리라 여겨지더군요.



뭔가 맹맹하면서도 전형적인 일본 유치원의 분위기를 갖춘 느낌..


뭐 그렇습니다. 원생들의 면학분위기에 관광객들이 방해를 하는게 아닌가 싶지만, 그래도 원생들은 나름 즐겁게 다니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릴때부터 미치자나의 기를 받으며 공부를 한다면 장차 큰 일을 이룰 어른이 되겠죠. 


다자이후 텐만구의 구경을 마치고 다시 역으로 돌아갑니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 유명한 먹거리가 하나 있다고 하던데.....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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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스도리

만 29세 도태남의 처절한 삶의 기록. sinc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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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초입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추석 명절을 앞두고 있습니다. 


예년보다 참 빨리 우리곁으로 찾아오는 추석이라 설레기도 하지만 혹시나 덥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추석 전 주 일요일에 벌초를 다녀오곤 하는데 올해는 어쩌다 보니 8월 말일에 벌초를 다녀왔답니다.


초등학생때부터 벌초를 따라다녔지만, 그동안 블로그에서 언급했던 적은 한번도 없었네요. 노트3 네오의 카메라 성능도 테스트 해볼겸 해서 벌초 이야기를 좀 풀어보려 합니다.


제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이북에서 내려오셨던 분이라 벌초를 해야 하는 산소는 딱 한군데입니다. 친척들도 많지 않구요. 다만, 돌아가신지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 아무리 열심히 관리를 해준다 하더라도 잔디보다는 잡초가 많이 자라는 상황입니다.


거기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올라가는 입구부터 관리가 전무한 상황입니다ㅠㅠ

길을 내면서 올라가야 하는 상황이지요.



저는 10년 넘게 보조역활만 하고 있구요. 


아버지 형제분들(큰아버지 작은아버지) 세분이 주축이 되어 길을 내는것부터 계획을 세웁니다. 어느 방향으로 길을 내는것이 괜찮을지와 같은 내용ㅇ들입니다. 불과 10여년 전 쯤만 하더라도 길이 없는곳은 아녔습니다. 민가가 두군데나 있었지만 지금은 현재 폐가가 되어있지요ㅠㅠ



차는 저 아래에 세워두고 옵니다.


포터 뒤에 스파크가 있지요. 예초기나 무게가 나가는 도구들을 적재할 수 있는 트럭 한대와 자잘한 용품들이나 얼음물 소주와 성묘음식을 가지고 가는 승용차 한대 해서 두대가 갑니다. 작년부터 제 차가 가고 있지요. 작년에는 비스토, 올해는 스파크가 벌초를 동행했습니다.


물론 저 아래까지는 민가가 있어서 관리가 됩니다.



폐가가 있지요. 약 20여년전 농가주택 건축양식입니다.


저 집이 비워진 지도 벌써 10년 가까이 지났네요. 지어진 지 오래된 건물은 아닙니다만, 할아버지께서 이곳에 안장되던 때만 하더라도 이 집은 없었답니다. 그냥 뻥 뚫려있었던 곳이라고 하네요.


90년대 중후반에 와서 과수원을 한다며 누군가가 매실나무를 식재하고 저곳에 농가주택을 지은건데, 등기부상 확인 해 본 바로는 2003년 주인이 바뀌고 그 이후로 소유권 변동이 없습니다. 그 즈음에 주인이 바뀐건 기억이 나네요. 물론 그 주인이 약 1~2년정도 살다가 이곳을 떠난걸로 알고 있습니다.



수년간 찾는 이가 없는 건물은 이렇게 방치되어 있습니다.


지극히 멀쩡한 건물인데 이런 폐가로 전략했다는게 안타깝습니다. 매년 가면 갈수록 수풀이 더 많아지네요. 어떤 사정이 있어서 이렇게 건물과 과수원을 방치해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매실나무도 돼지풀이나 여타 덩쿨식물에 의해 대부분 장악당했습니다. 


그래도 띄엄띄엄 보이는 나무가 매실나무입니다. 거름도 주지 않고 하다보니 열매 열리는건 보질 못했네요. 과수원이 상당히 넓었는데, 출입이 불가능한 저 구석은 더 심하겠죠..



그리고 폐가가 한군데 더 있습니다.


오래된 옛날집입니다. 10여년 전 만 하더라도 노부부께서 살고 계셨습니다. 올라가는 길목에 위치한 집입니다. 아주 어릴적 성묘갔다가 어른들이 저 집에 살고계신 할아버지 할머니가 나와계신걸 보면 인사도 하고 지나가던게 기억납니다만 이 집 역시나 약 10여년전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할머니는 자녀분들 댁으로 가서 살게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그 이후 이야기는 모르겠네요.


여튼 어르신들께서 집을 비우시고 2-3년 뒤부터 서서히 붕괴되더니 지금은 집터만 남았습니다.


등기부상 건축물은 미등기고 토지는 2006년에 경기도에 사는 자녀가 상속을 받았습니다.

다만 몇년 전에 새주소 팻말도 붙였던 걸로 추정해서는 무허가 건물은 아닌걸로 보여지네요.



그래도 관리가 되던 시절엔 집 앞으로 지나갔지만, 앞으로 길을 내서 지나다닙니다. 


물론 무너진 흙집에 사람이 살던 시절엔 우물로 활용하던 곳이라 발조심을 해야합니다. 예전엔 노부부께서 밭도 일구고 우물이 있던 자리에는 박을 심어두셨던걸로 기억나네요.


슬레이트를 밟았는데, 푹하고 다리가 빠지더군요. 살펴보니 상당히 깊은 우물입니다.



헐어서 부셔진 장농짝을 가져와 구멍을 막습니다.


이 상황에서 추가로 기왓장을 가져와 올려두었네요. 조심하면 큰 문제는 없겠죠.



할아버지 죄송합니다ㅠㅠㅠ


봉분이 있는 자리입니다. 작년 봄에는 식목일에 나무도 심곤 했는데, 올해는 봄에도 한번 찾아오질 못했네요. 진입로와 폐가 그리고 과수원까지 매수해서 잘 관리하는게 손자 혼자 가지고 있는 나름의 장기적 목표긴 합니다만, 그리 쉬운일은 아니죠. 



잡초 종류도 나날이 늘어가는듯 합니다.


한 5~6년전만 하더라도 잔디가 남아있었는데, 지금은 잔디 찾기가 참 힘드네요 ㅠㅠ



저는 밑에서 잣나무 가지를 치고있었는데, 벌이라는 소리에 놀라서 나와봅니다.


봉분 뒷편으로 해서 말벌집이 있더군요. 작년에는 밑에 있었는데 올해는 위에 있습니다. 천만 다행스럽게도 벌에 쏘이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벌떼가 단체로 나오는 바람에 작업을 중단하고 벌을 쫒아냈네요. 말벌 겁나게 큽니다. 사람을 향해 꽁지에서 물을 뿜기도 하는데, 이게 아마 독이겠죠...



깔끔하게 정리된 봉분입니다. 할아버지 이발도 시켜드렸고 이제 명절때 다시 뵙겠네요.


조화를 파란 화분에 꽂아두었는데, 벌초를 위해 빼 둔 상태입니다. 이장이나 재정비 얘기도 나오고 있긴 합니다만, 어른들의 사정이니 제가 낄 자리는 아니구요. 여튼 할아버지를 뵙고 왔습니다. 


태어나기 전 돌아가셔서 손자의 존재 자체를 모르실테지만 할아버지께서 쓰시던 차고를 나름 제 전용 작업장으로 잘 활용하고 있구요. 구닥다리 올드카 부품들처럼 창고에서 나름의 근대유물들도 남겨주고 가셨습니다. 


6.25에 참전하시고 발목에 수류탄 파편을 맞아 의가사 전역을 하셨다는데, 오래전 찾아갔을 때는 전쟁통에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던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국가유공자와 상이군경 대우를 받지 못하셨다고 합니다. 나중에라도 명예를 회복해드리고 싶은데 기록이 남지 않아 힘들겠지요. 


말은 길어졌지만 벌초를 다녀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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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스도리

만 29세 도태남의 처절한 삶의 기록. sinc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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