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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올드카 목격담은 서울 양평동 골목길에서 목격한 순정 상태의 포니 2 픽업입니다.

 

대한민국 자동차 역사상 최초의 고유모델로 이름이 알려진 포니(PONY)는 다양한 파생모델이 탄생했었습니다. 포니 1에서 포니 2로 부분변경을 거치며 패스트백에서 해치백 형태의 차량으로 변화하기도 했고, 현재까지 생존한 차량을 찾아보기는 매우 어렵습니다만 스테이션왜건 모델과 3 도어 모델도 존재했습니다.

 

그러한 여러 파생형 중 대표적인 모델이 포니에 짐칸을 올린 픽업트럭 모델이지요. 포니1로 시작하여 포니 2가 후속 차종인 포니엑셀에 자리를 넘겨주며 단종된 뒤 1990년 1월까지 생산되었던지라 다른 모델의 포니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수의 개체가 살아있고 순정상태를 유지하며 원형 복원된 차량들과 더불어 빈티지 튜닝카도 다수 보이곤 합니다.

 

1987 HYUNDAI PONY 2 PICK-UP

골목길을 지나던 중 거주자 우선주차구역에 주차된 포니 픽업을 발견하고 가던 길을 멈췄습니다.

 

순백색 바디에 검정 몰딩으로 장식된 포니 픽업이 맞습니다. 정확히 따지자면 A필러 옆으로 사이드미러가 옮겨 온 포니 2 픽업입니다. 승용 픽업트럭의 등장 이전에는 소형 화물차로 삼륜차가 주로 사용되었습니다만, 포니보다 먼저 출시된 브리사 픽업을 시작으로 새한자동차의 새마을 트럭 그리고 포니 픽업까지 등장하며 삼륜차는 빠르게 승용형 픽업트럭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캡오버 스타일의 1톤 트럭이 등장하며 시장을 빠르게 잠식해가긴 했지만 말이죠.

 

기아는 80년대 초 자동차산업 합리화조치로 브리사를 단종시켰고, 새한자동차는 새마을 트럭의 후속으로 제미니 기반의 맥스를 출시했습니다만 포니 픽업의 아성을 넘지 못했습니다. 브리사가 0.5톤, 새마을이 0.7톤, 맥스가 0.85톤의 최대 적재중량을 자랑했지만, 최대적재량 0.4톤의 포니 픽업이 가장 많이 그리고 오래 팔렸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긴 합니다.

 

1987 HYUNDAI PONY 2 PICK-UP

34년 가까운 세월을 버티며 스틸휠에는 녹이 보이네요.

 

차체는 다시 도장을 입힌지라 전반적으로 깔끔한 상태였습니다. 여러모로 중학생 시절만 하더라도 동네에 포니 픽업이 돌아다녔었습니다. 물론 상태는 점점 가면 갈수록 심각해졌고 어느 순간 보이지 않더군요. 그 외에도 주변 동네에 간간히 돌아다니는 모습이 보이긴 했습니다만, 가까이에서는 오랜만에 보는 느낌입니다.

 

1987 HYUNDAI PONY 2 PICK-UP

허브 캡에는 'HD'마크가 찍혀있습니다.

 

지금은 경차 깡통 모델에나 적용되는 175/70 R13 규격의 13인치 광폭타이어가 장착되어 있네요. 넥센타이어의 SB702는 현재 티코와 골프카트에 적용되는 12인치만 생산 중입니다. 타이어의 생산 주차는 자세히 보지 않았지만 꽤 오래된 타이어라는 사실을 짐작케 하고 있습니다.

 

포니픽업 적재함

적재함에는 아직 녹지 않은 눈과 염화칼슘 포대 그리고 낙엽이 보이네요.

 

바닥에 합판이나 철판을 깔아놓지 않아 바닥골의 칠은 벗겨져 있습니다. 차 바닥 시공을 하지 않고 그냥 타는 1톤 트럭들도 내내 타다 보면 이렇게 칠이 벗겨지곤 합니다. 짐차에 크게 중요한 부분도 아니고 눈에 띄는 부분도 아니니 구멍만 뚫리지 않으면 별 상관은 없지요.

 

1987 HYUNDAI PONY 2 PICK-UP

두 자릿수 서울 지역번호판과 이 주차구역의 이용자임을 알리는 주차비 납부 영수증이 보입니다.

펜더 끝부분 안테나 자리에 안테나만 없네요.

 

중국발 미세먼지의 원인을 노후 경유차로 돌리며 5등급 차량의 운행이 자유롭지 않다 보니 옛 기준으로 제작된 포니 픽업도 5등급 차량인지라 서울시내를 마음껏 활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단속이 없는 주말에나 움직이겠죠.

 

물론 삼원촉매조차 제대로 장착되지 않았고 전자제어의 개념도 없었던 그 시절 휘발유차들도 2 행정 오토바이나 예초기에 준하는 역한 냄새가 나는 매연을 내뿜고 다니긴 합니다만, 한쪽에서는 근대유물이라 칭하면서 차세대 전기차로 포니의 명맥을 잇는다 어쩌고 하면서 한쪽에서는 미세먼지의 주범이자 적폐 취급을 당해 수시로 단속이 이루어지는 평일 낮에는 마음껏 탈 수 없으니 참 아이러니하게 느껴집니다.

 

조랑말 그림이 그려진 OK스티커

조랑말 그림이 그려진 OK 스티커도 그대로 살아있습니다.

 

포니(PONY) 자체가 조랑말을 상징하는지라 OK 스티커에도 말 그림이 들어가 있네요. 이후 출시된 현대정공의 갤로퍼(GALLOPER) 역시 달리는 말을 의미하지만 OK 스티커에 이렇게 말 그림이 들어가지는 않았습니다. 여러모로 34년 넘는 세월 일부 삭아버리기는 했지만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도어트림과 오디오만 제치가 아니다.

도어트림과 오디오만 제치가 아니네요.

 

도어트림이야 뭐 오래된 차들이 다 흘러내리고 개판이니 저런 방식으로 리폼을 많이 합니다. 오디오 역시 이후 출시된 차량의 오디오를 옮겨 달은 느낌으로 보이네요. 34년 넘는 세월을 버티며 대시보드는 조금 갈라졌고 그 세월을 함께 한듯한 대나무 시트 역시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이 상태로 오랜 세월을 버텨왔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대단하게 느껴지는게 당연하겠죠. 저같이 돈 없는 거지 도태한남충은 이런 차 사고 싶어도 유지하고 보존할 돈이 없어 살 수 없습니다. 어느 올드카건간에 괜히 남들에게 보이는 시선을 의식하여 빈티지 관종들이 사곤 합니다만 대부분 오래 유지하지 못하고 팔아버리지요.

 

1987 HYUNDAI PONY 2 PICK-UP

그렇게 포니픽업과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갈 길을 향해 가기로 합니다.

 

포니 픽업의 경우 중고차 가격도 이미 신차 가격을 뛰어넘은 지 오래고, 수리를 모두 마친 준수한 상태의 차량을 기준으로 천만 원 정도에 거래가 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첫 고유모델 자동차라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으니 운행에 제한이 있다 한들 경유차처럼 폐차장에 보내지 못해 안달 나지는 않을 겁니다. 

 

보내온 34년 가까운 세월만큼 앞으로도 주인에게 사랑받으며 규제에 굴하지 않고 살아남아 서울 도로 위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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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29세 도태남의 처절한 삶의 기록. sinc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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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올드카 목격담은 지난 2월 초 서산의 한 주차장에서 목격한 쏘나타2입니다.

 

사진을 촬영하고 바로 투싼이 출고되어 요 며칠 새 차 얘기만 하다 보니 이제 포스팅을 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중후반. 그리고 2000년대 후반까지도 흔히 보이던 차량이지만, 지금은 어쩌다 하나 둘 보이는 수준이네요.

 

스텔라 시절 고급 옵션을 추가하여 탄생했던 쏘나타를 시초로 보면 3세대가 맞지만 출시 당시만 하더라도 스텔라의 파생형 모델이 아닌 Y2를 1세대 모델로 명명했던지라 소나타 2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이미 여러 번 올드카 목격담에서 다뤘던 차량이기도 하지요.

 

2018/06/25 - [티스도리의 자동차이야기/올드카 목격담] - [목격]1995 현대자동차 쏘나타2 2.0 (1995 HYUNDAI SONATA II 2.0)

 

[목격]1995 현대자동차 쏘나타2 2.0 (1995 HYUNDAI SONATA II 2.0)

똥차 아니 올드카를 보는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만, 시골보단 도시지역에서 올드카를 훨씬 더 높은 비율로 보곤 한다. 일요일날 서울 강변북로를 달리다가 본 쏘나타2도 마찬가지. 1993년 5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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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1 - [티스도리의 자동차이야기/올드카 목격담] - [목격] 1996 현대 쏘나타2 2.0 GLS (1996 HYUNDAI SONATA II 2.0)

 

[목격] 1996 현대 쏘나타2 2.0 GLS (1996 HYUNDAI SONATA II 2.0)

오늘의 올드카 목격담은 지난 주말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신갈-판교 구간에서 목격했던 쏘나타2입니다. 당시 스텔라의 고급형 모델로 파생되었던 차량을 쏘나타 계보에 넣지 않고 Y2를 1세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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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목격했던 차량은 부분변경 이전 끝물 모델이고 이번에 목격한 차량은 95년 1월에 등록된 차량입니다. 상태도 그럭저럭이고 여러모로 그게 그거 같긴 합니다만, 쏘나타2 치곤 흔히 볼 수 없는 쥐색인지라 사진으로 남겼네요.

 

1995 HYUNDAI SONATA II 2.0 GLS

흔치 않던 쥐색 쏘나타2가 작은 공영주차장에 세워진 상태였습니다.

 

이미 칠은 여기저기 바랬고, 깨진 범퍼는 테이프로 붙인 뒤 덧칠의 흔적까지도 보입니다. 25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 나오는 외관을 가지고 있더군요. 특유의 태양모양 14인치 알루미늄 휠이 적용된 모습으로 보아 2.0으로 보입니다. 거기에 GLS 레터링이 붙은 모습으로 보아 2.0 SOHC 모델이네요.

 

당시 쏘나타2의 엔진 라인업은 매우 복잡했습니다. 같은 배기량 안에서도 SOHC 엔진과 DOHC 엔진이 섞여있었는데, 1.8 GL은 DOHC팩을 선택해야 DOHC 엔진과 고급 오디오를 비롯한 편의사양이 추가되는 형태였고 2.0리터급 모델은 GLS와 GOLD로 세분화하여 GOLD 트림을 선택해야만 DOHC 엔진이 적용되었습니다.

 

덧칠의 흔적과 갈라진 도장 표면

덧칠의 흔적이 보입니다.

 

레터링의 반짝거리는 크롬 위로 덧칠이 올라갔고, 그 덧칠마저도 도장이 갈라진 모습입니다. 그래도 마스킹에 신경을 썼는지 덧칠 치고는 꽤 공들인 모습으로 보이네요. 쏘나타2는 진녹색과 은색 차량이 많이 보였고 쥐색 차량을 본 기억은 학생 때 몇 번 말곤 남아있지 않네요. 쥐색 차량이 흔히 보이던 Y2와는 달리 쏘나타2의 쥐색은 상대적으로 많이 보지 못한 느낌입니다.

 

깨지는 재질의 범퍼

지금과는 달리 옛 차량들의 범퍼는 충격을 받으면 이렇게 깨졌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요즘 차량은 ABS 소재를 활용하여 범퍼를 제작하기에 충격을 받으면 깨지는 대신 찢어지거나 푹 들어가곤 합니다만 당시 쏘나타2의 범퍼는 지금과는 다른 재질로 제작되어 이렇게 흉하게 깨지곤 했습니다. 차량이 노후화된 뒤 수리비가 아까워 이렇게 깨진 범퍼에 테이프를 붙이고 다니는 모습을 봤던 기억도 남아있습니다.

 

심각한 상태의 천장

매우 심각한 천장의 도장상태입니다.

 

천장과 함께 오랜 세월 실외에서 노출되었던 크롬 몰딩의 상태나 썬팅 없이도 별다른 변색 없이 준수한 상태의 내장재와는 달리 도장만 왜 이렇게 파괴된 건지 정말 신기하게 느껴지네요.

 

당대 먹어주던 유선형 디자인.

각진 차량들 사이 혜성처럼 등장한 유선형 디자인의 쏘나타 2

 

요즘 자동차와 비교하면 그렇게 둥글둥글한 디자인도 아니지만, 당시에는 곡선을 대거 차용하여 먹어주던 디자인이었습니다. 지금 보면 볼품없지만 당시 중장년층의 인기와 더불어 있는 집 대학생 자제분들의 통학용 자동차로도 사랑을 받았었지요. 고로 오렌지족과 야타족들이 선호하던 차량이기도 했습니다.

 

뭐 요즘 있는 집 대학생 자제분들은 수입차를 타고 다니시겠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수입차가 지금보다도 더 비쌌고 대중화되기 전인지라 최신형 국산 중형차만 타고 다녀도 충분히 먹어줬겠죠.

 

14인치 알루미늄 휠

정말 흔하게 보였던 14인치 알루미늄 휠의 모습입니다.

 

디자인만 놓고 본다면 지금 봐도 그렇게 질리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1.8 GL에 적용되던 플라스틱 휠 커버보다는 이 알루미늄 휠 디자인이 훨씬 더 깔끔했었으니 말이죠. 디스크는 꽤나 많이 썩어있었고, 휠캡만 따로 교체했었는지 혼자만 제치 색상으로 살아있는 느낌이네요.

 

1995 HYUNDAI SONATA II 2.0 GLS SOHC M/T

2.0 GLS 무옵션 기본형이네요.

 

지난해 10월 목격했던 차량은 라이프팩이 적용되어 에어백 핸들과 ABS가 추가된 상태였지만, 이 차량은 완전 기본형 수동변속기 모델이네요. GLS 이상급 차량에만 적용되던 4 스포크 핸들의 모습도 보이고요. 이래저래 기본형이지만 전자식 7 밴드 이퀄라이저가 포함된 고급 오디오까지 기본 적용되었습니다.

 

여기서 골드로 넘어가야 가죽 핸들 및 스위치, 안개등, 가죽시트, 우드그레인이 적용되곤 했습니다.

 

여러모로 보이는 차량 상태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닌지라 수년 내 폐차장에 보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지난 25년 세월을 버텨왔던 것처럼 남은 여생도 지금의 차주와 함께 평화롭게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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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29세 도태남의 처절한 삶의 기록. sinc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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