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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또 방전이 되었다. 수도없이 방전이 되고 충전도 제대로 되지 않는듯 싶다..


배터리를 충전하기 위해서 얼마전 새로 개통된 70번 국가지원지방도를 한번 쭉 타보고 내경쪽으로 해서 길을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강문리를 거쳐 부리포라는 곳을 가게 되었다.



뭐 이리 집가까운데에 항구가 있나... 했는데 진짜 있었다.


이름은 부리포. 우강면 부장리에 위치해있다. 70년대 후반 방조제로 삽교천이 막히기 전까지는 양곡을 실어나르던 배도 드나들었고, 인천항으로 향하던 여객선도 드나들었던 자리다. 현재는 삽교천변이 공사가 진행중이다보니 약간 어수선한 감이 없지는 않다.



시멘트로 덕지덕지 발라진 항구에 소형 어선 몇척 없는 이곳이지만 한때는 부흥했던 곳이다.


수십년전 충청도와 전라도에서 이주해온 인구들이 정착하여 지금의 인천이 발전했듯이 인천 이민 1세대들이 떠난 곳이 한진포구와 바로 이 부리포고 수많은 지역사람들이 육로 대신에 비교적 가까운 시간에 인천에 닿을 수 있는 항구를 택했던게 아닐까 싶다.


P.S 한진포구는 아직까지도 관광지로써 그 명성이 자자하다.


인터넷상에서 긁어온 글이기는 하지만, 부리포는 산업화가 진행되던 시절 먹고살 것 없던 서해안 주민들의 루트 역활을 해주었다. 초창기에 특히 서산 당진지역 사람들이 인천으로 많이 이주를 했지만, 이후 이주해온 전라도사람들의 강한 사투리 억양과 호남향우회등 나름 눈에 띄는 행동으로 인해 비교적 조용히 살던 충청도 이주민에 비해 전라도 이주민들이 더 많이 부각되어온 듯 하다.



그 당시 충남 해안, 특히 당진군과 서산시는 해로를 통한 인천시와의 교통이 원활하고 또한 그 시간 거리(3~4시간)가 비교적 짧았다. 1960~70년대 당진군 한진․부리포(부장리), 서산시 생길포․구도․팔복(대산면)은 인천항을 오가는 선박들이 정박하는 포구로 이용되었다. 이러한 포구에 대한 접근이 용이한 충남도민은 새로운 직업의 기회를 찾아 해로를 통하여 인천시로 이주하는 것이 육로를 통하여 다른 도시로 이주하는 것보다 더 유리하다고 판단하였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인천시에 거주하는 충남출신자 중에서 당진군, 서산시, 태안군 출신자가 가장 많은 것이다. 


충남도민은 인천시로의 이주 초기에 대부분 취업의 기회가 많은 중구와 이에 인접한 동구와 남구에 정착하였다. 여기에는 대성목재, 항공유리, 대한중공업(인천제철의 전신), GM대우 등과 같은 대형 제조업체들이 입지하고 있었다. 충남도민은 우선 이러한 제조업체 근처에 집을 얻은 다음 직장을 구하는 방식으로 객지 생활에 적응해 나갔다. 충남도민의 출발지는 포구에 대한 접근성과 내륙성을 기준으로 다음과 같이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1) 당진군․서산시․태안군, (2) 공주시․논산시․금산군 또는 연기군․대전시․천안시, (3) 부여군․서천군․보령시․청양군 또는 홍성군․예산군․아산시. 


여기에서 출발지 ‘(1) 유형’은 해안을 끼고 있는 곳으로 인천시로의 초기 이주에서 주류를 형성하였다. 당진군과 서산시 출신자들은 해상 교통을 이용하여 인천항으로 들어온 다음 중구와 동구를 중심으로 정착하였으며, 그 후 인천시의 성장에 따라 남구(주안 포함)와 남동구로 거주지를 이동하였다. 그 결과 1990년대 당진군 출신자들은 부평구를 제외하면 남구, 남동구, 동구 순으로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었다. 그들의 거주지 집중률이 가장 높은 순서는 주안동, 송림동, 숭의동, 구월동, 도화동, 용현동, 만수동이었다. 서산시 출신자들은 초기에 중구를 중심으로 정착한 다음 인천시의 성장 방향을 따라 용현동, 송림동, 주안동으로 거주지를 확장하였다. 1990년대 그들은 당진군 출신자들과는 약간 다른 양상으로 남동구, 남구, 부평구 순으로 집중적인 거주 상태를 보이고 있었다. 그들의 거주지 집중률이 가장 높은 순서는 주안동, 만수동, 구월동, 간석동, 용현동, 부평동, 십정동이었다. 태안군 출신자들은 특이하게도 당진군․서산시 출신자들과 다르게 거주지가 부평구에 가장 집중되어 있었다. 그들의 거주지 집중률이 가장 높은 순서는 부개동, 십정동, 송림동, 청천동, 만수동, 구월동, 부평동으로 배열되었다. 


출발지 ‘(2) 유형’은 충청남도에서 가장 내륙 방면에 위치하고 있는 시․군으로 인천시로의 이주 인구가 ‘(1) 유형’ 다음으로 많다. 여기에서 특기할 만한 사실은 공주시․논산시․금산군 출신자들이 ‘(1) 유형’ 출신자들과는 달리 효성동에 가장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천안시․연기군․대전시 출신자들은 산곡동에 가장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출발지가 충청남도 내륙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해로보다는 육로를 이용하여, 서울시를 거쳐 서울시에 가까운 효성동과 산곡동으로 이주하였다고 추정된다. 1980년대부터 효성동과 산곡동은 공업단지가 대대적으로 조성되어 새로운 일자리가 많이 창출되면서 공주시․논산시․금산군 출신자와 천안시․연기군․대전시 출신자들을 집단적으로 흡인하였던 것이다. 


출발지 ’(3) 유형’은 인천시로 이주한 충남도민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낮은 시․군으로, 예산군을 제외하면 기여도가 지극히 미미하다. 그러는 가운데 ‘(3) 유형’ 출신자들은 서천군과 예산군 출신자를 제외하면 공통적으로 십정동과 부개동을 중심으로 거주지가 집중되어 있는 특징을 보인다. 특이하게도, 서천군 출신자는 거주지가 청천동에 가장 집중되어 있으며, 예산군 출신자는 거주지가 주안동에 가장 집중되어 있다. 홍성군 출신자와 아산시 출신자는 공통적으로 십정동 다음으로 부개동이 아닌 구월동에 거주지가 가장 집중되어 있다. 이러한 집거현상(集居現象)은 ‘동족(同族)’과 ‘동향(同鄕)’이라는 연고(緣故)를 매개로 하는 연쇄이주(連鎖移住: chain migration)에 의한 결과로 추측된다.




물은 똥물이지만 주변으로 섬들도 간간히 보인다. 물론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작은 섬들은 사유지로 쓰이는 경우도 있긴 하다만, 지금 항구의 역활은 그냥 삽교천 주변에서 붕어나 낚아 올리는 어선들의 선착장과 외딴 섬에 왔다갔다 하는 수준의 항구밖에 되지 않는다.


한때 크고 작은 배들이 드나들던 항구이다보니 네이버 뉴스캐스트 옛날신문을 통해 몇몇 애피소드를 찾아낼 수 있었다. 좋은일로 기사가 나온건 아니지만 말이다.




동아일보 1931.03.27


부리포를 출발해서 삽교천을 건너 바다로 나간 인천기선회사 소속의 증기선 '삼영환(三榮丸)'이 한진포구 즈음에서 종선 역활을 하는 목선과 충돌해서 목선이 침몰하고 7명이 빠졌으나 6명은 구조되었고, 당시 신평면 운정리에 거주하던 김봉군(33)씨는 사망하였다고 하는 슬픈 이야기다.


8년 후, 이 삼영환이라는 배를 보기 위해 십리를 걸어 부리포에 온 아홉살 소아가 있었는데...



1939.08.15 동아일보


합덕 장수남씨의 장남 장영진군과 친구들은 약 10리를 걸어서 범천면(현 우강면)의 부리포에 발동기선을 구경한다며 집을 나섰으나, 발동선을 대는 깊은곳에 들어가 수영을 하다가 실종되었는데.. 다음날 오전에야 공뿌리(공포리)에서 시신을 찾을 수 있었다는 내용..


장영진군이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여든살 드신 어르신이 되어계실거라 생각된다...


그리고 일본선적 삼영환은 한참 시간이 흘러 54년에 제주도에서 밀항자 20여명과 밀수품을 싣고 일본으로 향하다 검거되어 한국 정부에 압수가 되었는데... 그 이후로 삼영환이라는 배는 과연 어찌되었는지 알 방도가 없다. 이 배를 추적해보는것도 나름 재미있어 보인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54101200329202006&edtNo=1&printCount=1&publishDate=1954-10-12&officeId=00032&pageNo=2&printNo=2667&publishType=00020




여튼 부리포 주변 수문으로 올라왔다. 사람도 없고 물안개만 끼어있을 뿐이다.


돌맹이를 하나 던져보았다. 풍덩하고 빠지는게 물이 상당히 깊은가보다. 1930년대 깨끗했던 물도 아니고 더러운 물에서 수영하려는 사람은 당연히 없겠지만 조심하자...



환경정비한다고 파헤쳐둔 땅으로 내려와서 사진도 한번 찍고.....


여기 꿩도 돌아다니고 별별 야생돌물들이 다 돌아다닌다. 비둘기떼도 그렇고 나름 생명의 보고....



신흥지구 2공구 환경정비사업 결사반대.


무슨 이유일까.. GAKA의 4대강 사업에 포함된 곳은 아니지만 환경정비를 한다며 도로를 포장하고 주변에 논으로 이용되던 땅에 나무를 몇그루 심어두었다. 설마 이런 외딴데에 산책로 만들고 하려는건 아닐테고.. 반대하는 이유가 궁굼하기도 하다.


육상교통이 발전함과 동시에 방조제로 인해 포구의 기능을 사실상 상실한 부리포... 한때 번성했던 포구였지만 지금은 일부러 찾아오는이 거의 없는  그곳은 오늘도 역사와 아픔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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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29세 도태남의 처절한 삶의 기록. sinc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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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중반, 읍내리에서 중심이 옮겨와 변화하는 당진을 대표하는 지역이 채운리와(채운동) 원당리였다면(원당동) 앞으로 당진의 미래를 책임 질 지역은 대덕동과 수청동이 아닌가 싶다.


대덕동과 수청동 일대는 채운동과 근접한 입지조건 때문에 자연스레 먹자골목이 형성되었고, 대덕수청지구의 본격적인 개발사업과 동시에 호화로운 당진시청도 읍내동 구도심에서 대덕수청지구로 이주했었다.


택지조성공사가 모두 끝난 지금, 슬슬 건물이 올라서고 있는 대덕수청지구를 함께 확인해보자.



지금은 차량통행량이 많지 않아 밤에는 젊은 레이서들의 공간으로 주말 낮에는 인근의 설악웨딩타운 방문객들의 차량이 주차되는 공간이라는 역활을 하고 있다. 결혼식이 있는 주말의 경우 이 도로 끝까지 한쪽 차선은 주차된 차들로 가득 차 있다.



대한지적공사 당진지사의 모습.


대덕수청지구는 대표적으로 당진시청이 자리잡음으로써 당진의 행정타운으로써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현재 당진교육지원청 청사가 건축중이고, 건너편 시청과 가까운 거리의 당진경찰서 그리고 시법원과 등기소가 자리잡고 있어서 당진시 공공기관의 메카가 될 예정이다.



논과 밭 그리고 산을 깎아 만든 곳이다보니 아직 그냥 흙으로 뒤덮여있는 공간도 보인다.



주공아파트는 다 지어졌고, 마무리 조경공사가 한창이다.


주택경기의 불황과 복합적인 요인으로 인해 LH공사의 임대주택 사업은 축소되었고, 아마 건물 세채정도 지어놓고 끝나는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2005년 당시 황무지였던 원당리에 임대주택 단지인 원당마을과 일반 주택 단지인 그린빌을 지었던게 주공이였는데.. 5년여가 지난 지금은 임대주택도 모두 분양되었고 당진 신도심 중심에 서있는 아파트이며 전세도 없어서 못들어가는 아파트가 되었다.



시청을 딱! 가리고 있는 저것은..


그렇다. 당진에 딱 하나 있다는 무인모텔이다. 시청 야경은 밤에보면 굉장히 멋졌는데 무인텔이 화려한 색으로 무장한 이후론 시청 앞에 숙박업소라는 애매모호한 야경이 되어버렸다. 한번 지역신문에서도 이 사태를 취재했었는데, 개인 사유지이다보니 저 앞에 모텔을 짓던 원룸을 짓던 뭐를 짓던 규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하더라..


차라리 시청을 대로변 앞으로 지어버리던지 앞 블럭 토지까지 매입해서 공원으로 만들어버리던지 했으면 더 나았을것이다. 지금은 무인텔 옆으로도 또 다른 건물이 올라오고있다. 올해만해도 이곳의 야경은 여러번 변할것이라 예상된다.



그리고 롯데마트급 규모로 하나로마트와 당진농협 본점이 이사온다.


등기소에서 매일 대전법원으로 등기수수료 송금을 위해 당진농협에 가면 대덕동으로 하나로마트가 옮겨간다고 회원카드 만들으라는 판촉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게다가 농협 규모가 커지니 직원들도 새로 뽑아서 짬이 덜 찬 직원들이 창구를 지킨다. 배태랑 직원분들은 멋드러지게 돈을 세고, 금방 일처리를 해주는데 이제 일을 시작한지 한달도 되지 않은 직원들은 매번 힘들게 일처리를 한다. 나름 멋지게 돈 세는 기계에 돈을 올려놓는다 하더라도 금방 돈이 걸려버린다. 나도 등기소 짬찌지만 은행 짬찌 직원들이 실수하는 모습을 보는 재미도 있다. 그나저나 나랑 짬차이 얼마 안나는 농협 직원은 이제 제법 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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