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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스도리닷컴 새 콘텐츠 초딩일기는... 


초등학교 재학 당시 작성했었던 일기장을 펼쳐 당시 있었던 일을 회상하고 여러분께 공유하자는 취지에서 공개하는 콘텐츠입니다. 좋은일도, 그렇지 않았던 일도 있었겠지만 한 시대를 살아가던 평범한 어린이의 일기장을 본다는 마음으로 재미나게 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일기장은 무작위로 공개됩니다.


오늘부터 4부작으로 내리 이어서 초등학교 3학년 때 교내 웅변대회에 나가게 된 이야기와 연습 그리고 실전 무대에서 있었던 일을 연재해보려 합니다. 사실 처음에는 웅변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몰랐습니다. 그냥 강단에 서서 이야기 하는 것이라 하기에 좋다고 한번 해보겠다고 해서 선생님께 웅변 원고를 냈었지요.


당시 3학년부터 6학년까지를 대상으로 교내 웅변대회가 열렸었고, 대상을 받은 사람은 당시 당진군에서 주관하는 웅변대회에 학교 대표로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주워졌습니다. 큰 대회에 나가는건 별 관심이 없었고, 그냥 나가서 얘기하고 싶은 마음에 웅변대회에 나가겠다고 원고를 써 냈습니다. 물론 초등학교 저학년생이 직접 웅변 원고를 작성할 실력은 아니듯이, 당시 삼성전자에 막 입사했었던 이종사촌 누나의 도움을 받아 원고를 제출했습니다.


그 이후 이야기는, 일기와 함께 이어집니다.



제목 : 웅변대회 연습하기


오늘 우리반 웅변을 낸 것 중에서 (원고를 제출한 것 중에서) 3명들 중에 내가 끼었다는 것을 엄마께서 알으셨다.

나는 피아노 연습을 하고 바로 외웠더니 1학년때 조금 외어놓은것이 좋았다.

(1학년때 어떤 일이 있었고, 그 얘기를 꺼내었던 이유는 잘 모르겠음.)

우리반이 한 명이라도 3학년 대표로 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외워보았다. 3~4시간 후...

이제는 거의 다 외워져서 헷갈리는것이 한두문장이였다.

나는 웅변을 잘 외워서 우리반이나, 내가 나가지 못하더라도 최선을 다해서 나 <자기 자신>을 기쁘게 할 것이다.


그렇습니다. 당시 30명이 넘던 한 반에서 얼마나 원고지를 제출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 반에 3명을 뽑아서 학년 예선을 거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물론 당시 학무모 회장이던 엄마편으로 그 소식이 먼저 들어가게 되었고, 피아노 학원을 다녀와서부터 본격적인 연습을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당시 원고지 기준으로 다섯장 가까이 되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래도 3~4시간 안에 초등학생에게는 조금 어려울법한 문장들이 있었지만 3~4시간만에 그래도 거의 다 외웠다고 하네요. 대략적인 원고의 내용은 일제치하에서 독립을 위해 싸우신 독립투사들의 이야기로 기억합니다. 그렇게 이틀정도 뒤에 3학년 예선이 있었네요. 이후 이야기는 2부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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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재학 당시 작성했었던 일기장을 펼쳐 당시 있었던 일을 회상하고 여러분께 공유하자는 취지에서 공개하는 콘텐츠입니다. 좋은일도, 그렇지 않았던 일도 있었겠지만 한 시대를 살아가던 평범한 어린이의 일기장을 본다는 마음으로 재미나게 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일기장은 무작위로 공개됩니다.


오늘은 2000년 초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에 작성했었던 그림일기장을 가지고 왔습니다. 자전거에 달린 보조바퀴를 떼어내고 두발자전거를 처음으로 타던 날의 이야기입니다. 이 당시만 하더라도 동네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던게 가장 재미나던 놀이였는데, 거진 아파트를 돌거나 멀리 가봐야 지금은 전국구 관광지지만 그 시절만 하더라도 조용했었던 솔뫼성지정도까지 갔었던것으로 기억합니다.


여튼 뒤에 다른 일기를 작성하며 크레파스가 묻어나온 글씨가 섞이고 제가 쓰고도 뭐라 썼는지 이해하기 힘든 문장도 나옵니다만, 한번 보시죠.



제목 : 자전거


자전거 바퀴를 버렸다. 자전거가 2발이 됐다.

아주 좋았다. 네가 보는 에들을 보지말라고 했다. (내가 보는 애들을 보지 말라고 했다.)

밸(벨)도 달았다. 그날이 지나면 에(애)들이 그것만 둘루지 말았다는 생각을 했다.(의미 판독 불가.)

네(내)가 2발을 잘탔다. 받침대가 안 맞었(았)다. 그래서 바꿨다.

그리고 자전거를 조금만 타고 밥을먹우로(밥을 먹으러) 집에 갔다.


그렇습니다. 다섯살 이전에는 세발자전거를 탔었고, 다섯살 즈음 샀었던 네발자전거의 보조바퀴를 그 해 봄 즈음에 하나를 먼저 떼었고, 마저 남아있었던 보조바퀴를 하나 더 떼었던 날로 기억됩니다. 왜 그 장면을 구경하던 애들을 쫒아내었는지는 모르겠네요. 그렇게 네발자전거가 두발자전거로 변모했지요. 보조바퀴가 없어 세울 수 없었던 자전거를 세우기 위해 받침대가 필요했었기에 받침대도 하나 사다 달았고, 기존에 달려있었던 소리가 나던 벨 비슷한것이 고장난지 오래되었던지라 작은 벨도 함께 달았습니다.


여튼 그 자전거는 초등학교 3학년 즈음까지 탔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고 21단 기어가 장착된 유사산악용 자전거를 사게 되었는데, 얼마 가지 못하고 누군가가 훔쳐가서 잃어버렸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 이후로도 자전거를 간간히 탔지만, 이 당시처럼 열을 올리고 탔었던 시기는 중학교 2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로 기억됩니다.


지금은 전동킥보드가 이전의 자전거와 같은 역할을 해내고 있습니다. 전동킥보드 역시 형태만 다를 뿐 두발로 중심을 잡고 나아간다는 부분에서는 두발자전거의 연속이겠지요. 18년 전 엄마의 바램처럼 사고나지 말고 넘어지지 않고 잘 탔으면 좋겠지만 킥보드를 타면서도 넘어져서 다치던건 여전하네요. 처음으로 두발자전거를 탔었던 18년 전 그날을 추억합니다. 


P.S 미술학원 부설 어린이집을 포함하여 무려 4년씩이나 미술학원에 다녔어도 그림실력에 별다른 진전은 없었다. 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지금도 그림 잘 그리고 노래도 잘 부르는 예술감각이 타고난 사람들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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