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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어렸을적 기억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곳이 얼마전 사라졌습니다.

바로 일곱살때부터 다니기 시작해서, 초등학교 5학년때까지 다녔던 한 피아노학원입니다. 얼마전 수리를 거치더니만 지금은 수학학원이 되어있더군요..
초등학교에 취학하기도 전 미취학아동인 어린 시절부터 초등학교 고학년때까지, 큰 영향을 미쳤던 20년이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한결같이 이자리에서 지나갈때마다 건반소리를 들려주던 피아노학원이.. 얼마전까지 잘 있다가 사라져버렸더군요...

피아노학원을 다니면서, 그 이전에는 단지 피아노가 어떻게 치는지도 몰랐다가.. 그 어린 나이에 피아노와 음악 그리고 예술적 감각을 익힐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나름 절대감각 뺨치는 음감도 지금 가질 수 있게 되었고요.

피아노학원에 다니면서, 몇가지의 일화가 있었습니다.  그 많던 이야기중에 몇가지만 해보고 나중에 호응이 좋으면 기회가 될때 해보겠습니다.

애피소드1

다닌지 얼마 되지 않아서, 피아노학원에 있는 대형 소화기가 굉장히 궁굼하게 여겨졌었고 그때도 궁굼증을 풀기 전까지는 끝까지 달라붙었던 어린 이 블로그의 영자 철/서는 몇일째 선생님께서 몇번 연습을 하고 오라고 하면 연습을 하고도 그 소화기에 앉아서 소화기를 만지고 있다가 다 했다고 원장선생님께 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소화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던 어느날 필자는 유아용 프로그램에서[각주:1] 소화기 사용법에 대한걸 보고 핀을 한번 뽑아보겠다는 도전을 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은 겁이 나서 뽑지를 못하고, 한 이틀정도 지나서 눈을 꼭 감고 핀을 뽑았습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나오지 않은 필자는.. 살짝 손을 손잡이에 갖다 대보았습니다. 그런데도 역시나 나오지 않더군요.. 그렇게 한 이삼일정도 지나서 그 어린아이가 손에 힘을 줘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소화기는 혼자 넘어지면서, 하얀 가루를 사방팔방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필자는 필사적으로 가장 멀리있는 방까지 도망가게 되었고.. 무슨일인가 뛰어나온 원장선생님과 강사선생님은 주변에 가장 큰 방에서 연습을 하고 있던 형에게 먼저 물어보고 그 주변에 있던 사람들 거의 모두에게 금방 탐문수사를 해보고, 곧 저를 찾았습니다. 저는 선생님께서 찾기에 달려갔는데 선생님 왈

"저 소화기 혹시 네가 만졌니?"

"...... (잠시 침묵 뒤 소리내어 운다)"

그렇게 처음으로 친철하고 잘해주시던 원장선생님께 혼났습니다. ㅠㅠ 다른 애들은 혼내도, 나는 안혼내던 선생님한테 혼나다보니 큰 충격이 있었지요.. 그렇게 혼나고.. 선생님 혼자 뒷정리를 하신 뒤 나중에 소방서였는지 어디였는지에서 3만원인가 주고 충전을 하셨더라고요... 어쩌다보니 금전적인 손해까지 미쳐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 값은 요구하시지 않으셨던걸로 지금 생각하면 매우 죄송한 일이죠.



애피소드2

두번째 애피소드에 들어가기 앞서 한창 초등학교 2학년때 큰 이유는 모르겠지만, 반항심리가 절정에 이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아직까지도 모르지만, 당시 담임선생님이셨던분이 나이가 좀 있으셨는데 할머니선생님이 싫다고 매번 띵깡을 놓고 하던 시절이였습니다. 그런데 우연찮게도 할머니와도 부모님과도 잘 알고있던 분이였습니다. 그 성격의 후폭풍은 피아노학원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도중에 학원을 잠시 그만두었다가 아파트에 예전에 부친과 같은 회사에 근무했던 분 딸인 누나가 피아노 개인교습을 몇달동안 했었다가, 그 누나 사정으로 한 5개월만에 피아노학원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2학년.. 매번 선생님한테 혼나고 그러한 인생의 사이클을 돌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학원은 열심히 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조금 일찍 끝나서 학원을 일찍 가게 되었습니다. 그날 애피소드 1에 있었던 소화기와의 대각선방향 벽에 액자가 걸려있었습니다. 피아노학원 몇회 연주회라고 그 당시에도 한 10년전 사진들이니까 지금으로치자면 20년도 더된 사진들이겠죠.. 그 액자중 하나를 잘못하다 그 옆에 유선줄을 만지다 떨어뜨렸습니다. "쨍그랑" 깨지는 소리와 함께.. 역시나 혼나게 되었죠. 이때도 역시 선생님께서 다 유리를 치우시고 그 액자를 유리가 없는 상태로 걸어놓으셨던 기억이 납니다.. 흐음.....




애피소드3


학원차 이야기입니다. 학원차가 당시만해도 지입의 형태로 이루어졌습니다. 스타렉스 그레이스 베스타 이스타나 등등 학원차로 타본차도 여러가지입니다. 그러다가 원장선생님 남편분께서 제가 거의 그만 다닐때쯤 아예 차량운행을 하게 되어서 얼마전까지도 했던걸로 알고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때로 기억하는데.. 당시에 지입운행을 하시던분이 곱창집을 운영하다 얼마전 장사가 잘 되어 아파트 앞에 새로 건물을 지었습니다. 동생 친구 아빠이기도 하고요. 어찌되었건, 당시에 살던 아파트는 당시 15인승 그레이스에서 바꾼지 얼마 안된 9인승 이스타나가 꽉 찰정도로 원생이 타면.. 가깝기에 제일 먼저 가던곳이였습니다. 어느날 필자는 매번 제일 먼저 내리는것이 싫어서 한번 아저씨께 저 제일 마지막에 내려달라고 했었습니다. 당시 아저씨曰

"다 돌면 두시간도 넘을텐데 괜찮겠어?"

"네.. 괜찮아요"

그렇게 차는 이리저리 시골길을 건너 한참을 멀리 가고 있었습니다. 한시간정도가 되자, 집에 제가 돌아오지 않은걸 알게 된 당시 큰엄마(5촌 당숙인데 쉽게 이렇게 불렀습니다.) 태권도장이자 학원에서[각주:2] 초등학생을 가리키던 모친에게서 학원에 전화를 하고 그 전화가 학원차로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차에 있다고 하고 왜 아직도 안갔냐는 대답에 "얘가 먼저 늦게 내려달라고 했다고"아저씨가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집에 오니까 6시정도... 모친 퇴근시간이 6시 30분이였던걸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오자마자 오질나게 맞고 또 혼났습니다.


 


(2010년 6월 11일의 모습. 로드뷰 캡쳐)

그렇게 결국은 추억속으로 사라저벼린 어렸을적의 그 장소..
특유의 푸세식 화장실도, 세대정도 있었지만 한번도 사용하는걸 보지 못했던 80년대 제조 애플컴퓨터 그리고 귀신이 나올것만 같이 무서웠던 연습실 몇군데.... 보고싶어도 볼 수 없다니......

이후 그만 다니게 되고, 2007년엔가 우연히 원장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지만.(굉장히 반가웠음) 그 이후 이 추억의 장소는 나중에 웃으며 찾아가고 싶었지만 영원히 찾아갈수는 없이 기억속에만 남게 되었다. 지금은 아예 경기도쪽으로 이사를 가서 새로운 사업을 하신다고 주어듣게되었는데.. 어디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실지는 잘 모르겠어도, 20년 넘게 해오던 피아노학원을 접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시는 만큼 꼭 그 일이 잘 되셨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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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당시 기억하기론 KBS 2TV에서 오후 5시정도에 방영했었던 "혼자서도 잘해요"라는 프로그램을 봤을것이다. [본문으로]
  2. 어렸을때는 그래도 운동신경이 바쳐주었던 필자는, 이곳에서 지금은 장롱증이 된 1품을 따게 되었다. 2000년 말 폭설로 인해 체육관 지붕이 파손된 이후, 이 체육관이자 학원 역시도 추억속으로 사라지게 되었고.. 역시나 필자가 지금처럼 잉여스러운 몸을 가지게 된데에 주요한 역활을 하게 되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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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스도리

만 29세 도태남의 처절한 삶의 기록. sinc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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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끄제 윈도우7로 OS 업그레이드를 위해서 백업을 하던 중..

이전부터 써왔던 USB에 어떤 파일들이 있는지 잘 살펴보다가 나도 그동안 다 지워진줄만 알고 잊고있었던 사진들을 찾아냈다.
DSLR이 없던 시절..(이후 약 1달정도 후에 DSLR 입문.) 초점하나 제대로 맞지 않았던 엄청난 노이즈가 일품(?)이였던 올림푸스 IR-300이라는 그 카메라로.. 열심히 찍어댔던 기억이 난다..

학교에서 간것도 아니고.. 당시 대전충남 RCY 국토순례훈련 차원에서 다녀온 것이였는데.. 그때 엄청난 욕도 먹었었고.... 지금은 다시 돌아가기 힘든 추억도 쌓을 수 있었다. 그리고 2010년 지리산때는 그만큼의 아름답던 추억을 쌓아오지는 못했다.. 지리산이 고등학교 마지막 RCY 국도순례훈련이였는데..

이제 다시는 갈 수 없는 과거가 되었다는것도 참 슬프기만 하다..

2009년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던 필자에게 큰 경험을 안겨주었던 그때를 추억하며.. 글을 써본다.

(본래 코스는 첫날 죽녹원,메타세콰이어길등 담양의 관광지.. 둘쨋날 외나로도 우주센터[연기가 되지 않았더라면, 이날 나로호의 첫 발사가 이루어졌다. 나로호 발사 자료화면에.. 우리 일행이 버스를 타고 그곳에 갔던 영상이 아직까지도 MBC를 보면 나오긴 한다..]와 순천만.. 셋째날 보성 대한다원을 거쳐오는 코스였다.)

그 中 가장 기억에 남는 "담양 죽녹원" 사진들을 모아보았다. 

 
당시에 타고갔었던 대교관광(충남 공주 면허) 2007 그랜버드 슈퍼프리미엄... 총 9대가 왔는데.. 그중 가장 마지막 9호차였다. 우리 서야고등학교와 예산중학교 두 학교가 타고갔지만.. 좌석은 반정도밖에 차지 않았다.. 


그리고, 이 차에서 원없이(?) 들었던 노래가 있는데.. 아직도 이 나를 원하고 가지고싶냐고 물어보는 당시는 사람들이 관심을 주지 않았던 듣보잡인 아이유의 노래를 들으면..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때의 추억이 생각난다... 그래서 이 노래가 슬프게 들린건지 모르겠다...


"야!! 거의 2년은 되가는 얘기지만, 왜 그때 나한테 공 던진다고 하고 안던진거니?"

죽녹원 입구에 있는.. 배구공을 들고있는 팬더.....

아직까지 잘 살아있는지 모르겠다..


엄청나게 확실히 기억나는건 아니지만, 울창한 대나무숲이 인상적이였다.. 시원한 대나무 그늘과.. 불어오는 바람에 내 마음도 시원해지긴 했지만.. 비가 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땅은 굉장히 질퍽였던걸로 기억한다.. 당시에 새 신발을 신고 갔던걸로 기억하는데.. 새 신발에 진흙을 엄청나게 묻혀왔던걸로 기억한다.
(역시나.. 대나무숲의 특성상 모기도 굉장히 많았고 말이죠..)



그냥 길게 뻗는 대나무들만 있는게 아니라, 이렇게 약간은 굽어서 자라는등의 희안한 대나무들도 굉장히 많습니다. 대나무로 유명한 담양....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일자로 쫘악 쏟은 대나무만 있는게 아니라, 이런 잡블로그스러운 약간은 특별한 모양을 가진 대나무도 존재하고 있긴 합니다.

 
이 유명한 곳이.. 더욱 더 유명해진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1박 2일"촬영지.. 당시에 지금은 1박2일에서 볼 수 없는 김C와 MC몽도 있었습니다.. 거기다가 지금은 노환으로 1박2일에서 하차한 상근이까지 있었고요.... 이 이야기는 좀 더 아래에 가서 해보죠..


역시나 노무현대통령님과 권양숙여사님도 방문해주셨습니다.
2007년 5월 17일... 딱 다음주가 4년전이네요.... (글을 쓴 날 2011년 5월 10일)

지금 이분은 2M* 누군가의 외압에 의해서, 다시 뵙고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그분..

2010/09/26 - [사진을 찍는 티스도리/여행/출사기] - 100926 김해 봉하마을(노무현대통령 생가)를 다녀와서.

650일정도만 참아보자구요.... 그림만 그려도 잡아가는 세상이라 누구라고 언급은 못하지만, 언젠가는 환경파괴와 20년은 후퇴한 민주주의 그리고 이러한 내용에 대한 죄값을 꼭 치를테니 말이죠...


이 버섯은 어떤 버섯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나무숲이라는 습한 환경에서 자알 자라고 있습니다.. 무슨 변도 아닌데.. 왜이리 파리는 많이끼어있는지 모르겠네요..;;; 


"초점따위 하나도 안맞은" 최악의 카메라 올림푸스 IR-300..

시원한 분수도.. 그렇게 시원하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이때는 크게 느끼지 못했지만 DSLR을 쓰면서부터 열심히 느끼게 되었죠.. 엄청난 노이즈와 함께 좀체 반셔터를 눌러봐도 초점이 맞지 않는.. 2% 아니.. 20%는 부족한 카메라였다는걸..


"엄청난 노이즈..."

여기는 "우송당"이랍니다. 죽녹원 입구에서 반대쪽으로 내려가게 되면.. 이런 건물이 있습니다. 당시에 1박2일 출연진들은.. 이 건물에서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주변에 세워져있는 나무판이 얘기를 해주고 있다죠..

(이곳에서 "병뚜껑 알까기"를 했었습니다.)


역시나 "해피썬데이" 1박2일팀이 담양을 방문하여 이곳 우송당에서 하룻밤을 지내며 촬영했던 곳입니다. 라는 설명이 되어있습니다. 이날 모두 실내취침이였나요???

잘 기억은 나지 않는데.. 그랬던듯..;;


그리고.. "그 주변에 위치한" 1박2일 사적 제 1호 "승기연못"

얼음이 얼어있었던 촬영 당시에, 대나무가져오기 게임을 하던 중.. 결국 이승기와 은지원이 빠졌던 곳.

하지만.. 친구 하나를 빠뜨리고 싶었던 이곳의 수질상태는...?


그리 수질은 좋지 않았습니다. 흔히 말하는 X물..

이건 절대 사람을 빠뜨리고 빠지고 할 물이 아니라는걸 자각하고 왔습니다..
이곳에서 다시 입구로 돌아가려면.. 국도를 타고도 약 2km정도 걸린다는 얘기를 들어서.. 다시 올라갔다가 이전에 들어갔던 입구 방향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집합시간의 약 30분을 남겨놓고서 나왔는데.. 다른 RCY 단원들도 몇 보이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 아래에 있는 담양천에 가보자고 하고.. 담양천에 구경을 가 보았습니다.


죽녹원 입구.. 입구 주변에 주차되어있던 아홉대의 빨간 버스들은 사라졌었습니다.. 그러니 뭐.. 그 아래에 있는 공원화가 잘 되어있는 하천으로 놀러갈 수 밖에요..;;


담양천입니다.. 그래도 승기연못보다는 수질이 약간이나마 더 좋았습니다. 주변으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보였고.. 2인용 자전거도 대여를 해주고 있었는데.. 꾸욱 참고 열심히 강 주변을 돌아다녀보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자전거 안빌렸던게 다행이였죠..;;; 빌렸다면 돈만 버렸을뻔...)


죽녹원의 돌다리.. 돌이 그렇게 평평한 돌이 아니라, 장식용으로 쓰는 석재를 그냥 박아둔듯 합니다..
이 아슬아슬한곳을 열~~~~심히.. 빠지지 않도록 진땀을 빼면서 건넜습니다....

이렇게 돌다리를 건너고.. 아직도 시간이 20여분 남은걸로 알고있는 세사람은 선생님에게서 전화를 받게되었습니다.. 어디냐고.. 왜 안오느냐고....

그래서 열심히 공설운동장(? 주변지역 사시는 분들 댓글로 의견부탁드립니다.)쪽으로 오라고 하시기에 뛰어가봤더니만.. 9대의 버스가 세사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일부 대학생 자원봉사자들 입에서는 쌍시옷도 나오기 시작했고..... 약 300명이 넘는 인원에게 욕이라는 욕은 다 얻어먹었습니다..

"우리는 단지 시간도 다 되지 않은데다가, 버스도 안보여서 갔을 뿐인데...."


그리고 다음에 가게 된 곳은 "메타세콰이어길.." 이곳에서는 절대로 다수와 떨어지지 않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대학생 자원봉사자와 대다수의 무리를 따라다녔습니다.. 하지만, 버스가 자꾸 이동을 해서..(좀 더 가까운곳에서 태우기 위해 그랬겠죠..) 몇번을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왔다갔다했습니다..;;


이렇게 추억속에 있었던 여행기를 조금이나마 꺼내보았네요.. 담양 죽녹원...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주었던 그곳... 이 여행 둘쨋날에 반기문 UN사무총장께 편지쓰기를 했었는데.. 당시 서야고 일행중 한명의 편지가 직접 뉴스까지 탔었다죠.... 완전히 당시와 똑같은 분위기에서 똑같은 느낌을 가질 수가 없으니 고등학교의 추억중 일부분으로 생각해야겠지만..

다시 돌아가지 못하는 이때가 요즘들어 문득 더 그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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