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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3월 1일자로 폐교되어 합덕초등학교로 통폐합 된 합덕읍 옥금리의 흥덕초등학교..

합덕평생교육원으로 사용되나 싶더니만, 당진시에 매각된지 오래 전 일입니다.



뭐 폐교 될 적만 하더라도 이 근처에 역이 들어서고 추후 역세권으로 개발이 될 여지가 있을 줄 상상이라도 했던 사람 역시 없습니다만, 위에 계신 분들께서 떡하니 이 근처 논바닥에 역을 만들어 주신다 하는군요.


부동산 전문가를 자처하며 아무것도 모르는 외지인에게 투기를 권유하는 일부 공인중개사나 기획부동산 업체의 장미빛 전망만 보고 무턱대고 투자를 하는 분들 덗에 땅값은 이미 오를대로 올랐습니다. 당장 지역 부동산 카페에서도 전망이 엇갈리는 마당이긴 한데.. 여튼 시에서 농기계 대여소를 목적으로 매입을 했던 요 학교 부지에 한라건설 현장사무소가 들어온다고 해서 찾아갔습니다.


서해선 복선전철 공사 관련해서 이 근처 공구의 사업권을 한라건설에서 획득했으니 그러겠지요.



아직 합덕평생교육원 명패를 달고 있습니다. 조만간 주식회사 한라 명패로 바뀌겠지요.


잡초가 무성하던 초등학교 운동장엔 자갈이 깔리고 이승복어린이 동상이라던지 이순신장군 동상 역시 철거가 된 상태입니다. 무성하게 자라던 플라타너스 나무도 사라졌고, 철봉도 놀이터도 모두 사라졌습니다.



학교 본건물 자리 앞까지 요렇게 아스팔트를 깔아뒀습니다.


아무래도 사무실로 활용할 부지이니 차량들이 속 편히 다니도록 아스팔트를 깔아둔걸로 보이는군요. 한편에서는 기존 학교건물 옆으로 창고를 헐고 새 건물을 지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폐고가 되지 아니했더라면 아마 매점정도로 쓰였을 건물... 


어르신이 사시는 집 같은데 잔디가 잘 깔려있습니다. 아마 30년 후 이곳에 도시개발이 완료되고 진정 취학 예정 아동이 많아진다면 초등학교가 다시 부활할지.. 흥미롭게 지켜볼만 하겠습니다.



학교 뒷편 아름드리 나무들 역시 죄다 잘려나갔습니다.


나름 시야가 탁 트인 기분이라 좋긴 합니다만, 대기업 한라 아저씨들은 나무를 썩 좋아하시진 않으신가 봅니다. 적당히 가지치기나 솎아주기 선에서 마무리 했으면 어떨까 싶었는데 죄다 잘려나갔더군요.



학교 본건물 옆으로 고소작업대를 가지고 철구조물을 짓는 공사를 하는걸로 보아선..


아무래도 부속 건물을 하나 더 지으려는듯 보입니다. 저 뒤에 있었던 오래된 창고는 철거가 된 상태구요. 그나마 부속건물로 있던 단층건물은 철거를 면했습니다. 아마 숙소등의 용도로 활용되지 않을까 싶네요.



한쪽으로 만들어진 작은 차고, 그리고 무성한 잡초들 뒤로 보이는 조립식 건물..


그래도 깔끔해진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만, 이곳이 학교였다는 흔적은 거의 다 사라졌습니다.


운동장 자리에 세워진 조립식 건축물은 식당이나 숙직실등으로 이용중이더군요.


본격적으로 서해선 복선전철 공사가 시작된다면 분주하게 활용되리라 여겨집니다. 아직까진 크게 활용되거나 한 흔적이 보이진 않지만 말이죠. 팻말에 (주) 한라 로고가 박혀있습니다.



플라타너스 나무는 밑동만 남았고, 작은 가지 하나만이 살아남은 상태.


저거 하나쯤은 남겨두면 어떨지 싶습니다.



구닥다리 샷시 철문 역시 깔끔한 통유리로 변경되었습니다.


작은 창틀 하나하나 역시 PVC 샷시로 모두 교체되었습니다. 화장실 등 역시 LED로 바뀐듯 하네요.



한켠에는 학교 건물에 남아있던 가재도구나 집기류들이 쌓여있습니다.


비닐하우스가 있던 자리 역시 철거되었고, 저 물건들 역시 폐기가 될 운명인듯 합니다.


곧 공사가 시작될테고, 공사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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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29세 도태남의 처절한 삶의 기록. sinc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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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합덕 사진들좀 풀어보려 합니다. 뭐 합덕이라는 동네 자체가 그닥 활기 있고 번화한 동네가 아니라 조금씩 침체되어가는 그런 동네이다보니 참 조용하고 또 조용합니다. 


시끄럽다면 합덕역 주변으로 온갖 기획부동산에 투기꾼들이 나서서 별 말도 안되는 개소리로 역세권에 투자하라며 광고하는것 말고는 딱히 시끄러울 일도 없는 참 조용한 동네입니다. 물론 역이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그 주변이 시내로까지 발전하기는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희박한 가능성과 함께 배후 주거단지를 비롯하여 시내의 중심이 옮겨올 확률 또한 매우 적으며, 그런 사탕발림에 혹하는 분들은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작년 이맘때로 기억하는데 합덕역 관련해서 뜬구름 잡는 사람들한테 좀 쓴소리좀 해주니 뭐라뭐라 인격모독까지 하던데, 장문의 댓글로 헛구름좀 조금 치워주곤 했네요.



흔히 행정리상 신촌이라 부르는 곳에 위치한 삼거리입니다.


정확한 법정동으론 합덕읍 대전리이기는 하지만, 신촌초등학교 근교의 신촌이라 부르는 그곳입니다. 

뜬금없는 서울이 왜 써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서울까지 100km는 가야 나오는데 말이죠..


그렇게 합덕방죽 부근으로 나와봅니다. 이쪽은 최근들어 공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합덕방죽 복원공사라고 시작했던 시기가 2008년. 2008년생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2015년...


기존 방죽의 절반 이하 수준으로 그저 그런 저수지를 만들어 두고, 그 주변으로 주차공간을 확보한다는 계획을 어디선가 본 것 같습니다. 뭐 볼게 있어야 사람들이 구경을 오고 그럴텐데 주차장만 넓적하니 만들어 두면 화물차 주차장이나 주변 학생들 탈선의 장소 말고는 뭐가 되련지요..


평범한 논바닥과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농로가 인상적이였던 이곳도 가정집 두채가 사라지고, 논을 매꾸어 탄탄한 대지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서야의 새 체육관..


P.S 저 체육관 이름이 무엇이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졸업 한 다음에 준공된 건물이니깐요. 다만 저 체육관 개관과 관련하여 권력을 가지셨던 분들의 분투가 있었다고...



뭐 방죽에 연잎도 다 떨어졌고.. 지나는 사람 없이 휑합니다. 이런곳에 얼마나 많이들 찾아올까요.


이번엔 오랫만에 소들공원에 가 봅니다. 합덕이라는 동네에 공원이 생긴지도 어언 20년 가까이 흘렀네요. 생긴지 얼마 되지 않았을 적엔 소들공원에서 미술학원 그림 전시회도 했었고, 컬쳐쇼크급 놀이기구도 많이 있어서 자주 놀러갔었는데 말이죠.. 그렇게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 고등학교를 넘어 성인이 되어있습니다.



소들공원 팔각정입니다. 2층으로 올라가면 합덕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지요.


어릴적엔 계단 올라가기도 힘들었는데, 크고 나니 그닥 높지도 않아보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때로 기억하는데 정확히 어떤 이유에서인진 몰라도 소들공원 팔각정 위에 올라와서 단체로 쉬었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갑자기 그때가 생각나네요. 벌써 15년은 지난 이야기입니다.



초등학생때는 집으로 가는 루트에 이곳이 포함되어 있었기에 자주 지나다녔습니다.


이사를 가고, 이쪽으로 거의 올 일이 없어져서 거의 온 적이 없었지요. 그래도 예전보다는 시설도 많이 나아졌고 운동기구도 많아졌습니다. 합덕 시내에 별 변화가 없어보이지만, 미세먼지는 둘째치고 나뭇가지가 많이 자라 시야를 방해할 정도로 나무도 많이 자랐습니다.



한때 차가 올라오지 못하게 막아두기도 했었는데.. 


차가 올라가지 못하게 막아두었던 돌을 어느 누군가가 차량으로 박아서 부순 뒤로는 차들도 자유로이 올라갔었습니다만, 아예 공사를 새로하면서 차량도 올라갈 수 있게 열어두었습니다.


저 언덕에서 썰매를 탔던 기억도 납니다.



앞으로는 나름 시내가 펼쳐져 있는데, 뒤로는 그냥 평범한 시골마을입니다.


사방팔방 다 볼 수 있는 명당자리임에는 분명합니다. 운동기구들도 보이고 살짝 게이트볼장 지붕도 보이네요. 소들공원이 위치한 산 이름은 '갈매기산'입니다. 


역시나 초등학교 1학년 때, 코넷으로 인터넷에 접속하여 라이코스에 합덕초등학교를 검색해보고 '합덕초등학교 뒷산은 갈매기산이다'라는 제목의 웹문서를 접하곤 처음 알았습니다. 이후 나중에 가서 배우게 된 학교 교가에도 '갈매기 산 허리에 새싹이 튼다'라는 구절이 있더군요.


산이 3자를 엎어놓은 갈매기 모양으로 생겼고, 오래전 이 산과 합덕읍 운산리 일원에 소나무로 가득했었는데 그시절 갈매기를 비롯한 온갖 새들이 둥지를 틀고 살았었다고 합니다. (링크)



가까이 보이는 소들공원 화장실과 저 멀리의 합덕초등학교.


오래전 일제는 이 갈매기산에 신사를 세웠다고 합니다. 아직 당진의 남산에는 '당진신명신사' 명의로 남아서 정리가 되지 않은 토지가 있지만, 서류상의 토지 정리도 다 되어 있고 그시절 흔적은 찾을 수 없는 공원이 세워져 있습니다. 


1920~30년대에 합덕읍 운산리 일대의 토지를 대거 소유했던 일본인 타카하시 쇼이치로(고교정일)도 과연 이런 합덕을 상상했을까요. 한 때 전성기를 지나 지금은 조용하지만, 제 2의 부흥을 꿈 꾸는 합덕에는 투기꾼들을 제외한다면 각자 자신의 맡은 바 성실히 임하며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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