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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생활을 하면서 그동안 다리가 아픈관계로 배달음식 위주로 시켜먹고 혼자먹는 한식 위주로 먹어왔습니다만 지난 금요일에는 무려 신부동(천안의 중심가)까지 나가서 밥을 먹고 왔습니다. 신부동은 천안의 중심가를 자처하는 충남 최고의 유동인구를 자랑하는 동네인만큼 먹거리도 볼거리도 많지요. 이곳에 먹자골목도 있고 백화점도 있고.. 터미널도 있고... 버스커 버스커 멤버들이 슈스케를 통해 인생역전을 하기 전 공연을 하던 공원도 바로 이 신부동에 있습니다.


여튼 제가 신부동에 나온 이유가 있습니다. 아시는분들은 아시겠지만 얼마전까지 티스토리 블로거들중에 "꾼이"(coreanboi.tistory.com)라는 닉네임으로 활동을 하던 그분을 만나고 왔습니다! 저한테는 실명 유준이형이 더 친근한 그분.. 소셜커머스업체에 취직을 하는 바람에 그동안 조금 뜸했던 형입니다.  저와는 작년 10월의 원자력문화재단 기자단을 통해 알게되어 가장 최근에 만났던게 작년 12월 영화 "부러진 화살"의 시사회였군요. 이때 청량리 롯데시네마까지 가서 만났던걸로 기억하는데, 그때 갔던 청량리역을 그 이후로 이렇게 자주 올지 몰랐습니다............(제가 입원했던 병원이 청량리역 6번출구 가톨릭대 성바오로병원입니다;;;;)


아산에 살고있어서 자주 볼 줄 알았던 그 형이 갑자기 부산까지 내려가서 일을 하다보니 만나지도 못하고 그러던 얼마전 들은 소식으로는 6월 14일에 국비유학생 자격으로 뉴질랜드로 약 1년간 떠난다고 합니다. 그렇다보니 앞으로 1년을 기약하면서, 밥을 먹는 자리를 마련하였죠. 뉴질랜드로 떠나는 유준이형을 위해서 말입니다.


유준이형의 단골 식당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일본식 벤또 전문점인 토토로벤또입니다.


토토로벤또 전경



로드뷰의 힘을 빌리긴 했습니다만, 토토로벤또는 신부동에서는 비교적 한적한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터미널 건너편 아웃백건물 바로 뒤에 있는 건물 2층에 일본식 벤또를 맛볼 수 있는 토토로벤또가 위치해있습니다. 그냥 "짱 노래방"이라는 큰 간판이 있는 입구로 들어가서 2층으로 올라가면 되지요 ㅎㅎ



이곳의 메뉴판입니다. 


신메뉴와 셋트메뉴 크게 두가지 분류로 나뉩니다만, 저희는 세트메뉴를 먹기로 했답니다. 참고로 세트메뉴의 경우, 우동과 벤또의 조합 혹은 샐러드와 벤또의 조합으로 맞추어 먹을수도 있었습니다만, 둘 다 일단 벤또를 먹어야 하니 세트메뉴중에 벤또가 두개 있는 "내가 제일 잘 나가"를 선택했답니다.



"내가 제일 잘나가 제제 제일잘나가!"


만 오천원의 내가 제일 잘나가 세트는 가장 많이 판매되는 스테디셀러 두 벤또를 묶어놓은 상품이라고 합니다. 도리오야코 벤또와 차슈벤또 두가지로 이루어져있는데, 도리오야코는 돼지고기고 차슈는 닭고기입니다. 먼저 형이 저한테 돼지고기냐 닭고기냐를 물어보더군요. 개인적으로 닭고기보다는 돼지고기이기때문에 차슈 벤또를 선택합니다.



잠시 둘러본 가게의 인테리어는 알록달록한 컬러와 아기자기한 소품들로 이루어 져 있습니다. 


저 창가 앞에 나란히 놓인 의자는 커플석이라고 하는데, 이곳의 단골인 유준이형 말을 들어보면 저기에 앉는 커플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고 하네요. 제가 누구 데려가서 앉을만큼 능력있는 사람도 아니고... 여튼 그냥 그렇답니다.



먼저 에피타이저 형식으로 참치죽이 나옵니다. 처음엔 어떤죽인가 했더니, 참치죽이더군요.



죽을 다 비우고, 같이 온 유준이형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사진을 찍어봅니다. 이곳 단골인데, 주방아주머니와 꽤 친하다고 하더군요.. 뉴질랜드로 가면 1년여동안 올 수 없는 단골가게인지라 주방아주머니를 만나러 갔는데, 이날 아프셔서 하루를 쉰다고 하셨습니다.. 으음...



이 형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열정을 가지고 타향 부산에서 열심히 일을 했다네요.. 위메이크프라이스의 영업사원으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상품을 등록하고.. 밤 늦게까지 바쁘게 살아왔긴 했는데, 이전보다 야식을 더 많이 먹어서 살이 쪘다고 합니다.



그러던중 메인메뉴인 차슈 벤또가 나왔습니다!



돼지고기와 온갖 절임류. 그리고 튀김등이 이 작은 벤또에 푸짐하게 담겨있습니다. 맨날 도시락하면 한솥이나 토마토에서 사먹는 저가의 배채우기 전용 도시락을 먹었었는데, 오늘은 그런 도시락집에서 프리미엄 메뉴를 먹을 수 있는 가격에 호화롭고 아름다운 도시락을 먹어보는겁니다.



역시나 국물도 빼먹을 수는 없죠! 미소장국이 막히는 목을 속 시원하게 풀어주었답니다.



절임류와 튀김류를 아래에 있는 밥과 함께 곁들여 먹는 방식이지만, 저는 무턱대고 절임류를 먹었다가 큰일날뻔도 했었네요.. 매실장아치 하나를 그냥 바로 입에 넣었다가.. 그 환상스러운 맛은..;;;;;;



여튼 그렇게 오랫만에 만난 유준이형과 1년후를 기약하고 가게를 나왔습니다. 가격대비 정갈하고 많은 양과 깔끔하고 깨끗한 시설이 토토로벤또를 오게 만드는 이유가 아닌지 싶어지네요. 다음번에도 가서 토토로벤또의 일본식 도시락 맛을 느끼고 오고 싶어집니다!

 

** 토토로벤또는 아웃백 건물 뒤에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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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29세 도태남의 처절한 삶의 기록. sinc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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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사고와 표현"과목의 과제를 위해 작성된 글입니다. 몇회에 걸쳐 서론 본론 결론을 도출해내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해오다가 최종적인 작품을 만드는것이였는데, 나름 좋은작품이 나왔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블로그에 포스팅으로 남겨놓습니다. 


지난날, 내게는 생전 들어도 보지도 못했던 병이 찾아왔다.

누가 봐도 멀쩡하고 지극히 정상적이던 내가. 자라면서 큰 병치레는 거치지 않았던 내가. 의료보험도 적용되지 않는 검사를 의학용어까지 생소해하지 않아하면서 받는 사람이 되어있던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던 어느 날부터 단순히 근육이 뭉친 듯 했던 통증은 더 이상 견디기 힘들고 걷기조차 고통 때문에 못하는 상태까지 이름모를 병은 악화되었었다. 그렇게 병원으로 오게 된 나는 그저 움직이는 것 자체가 고통이고 큰 일이다보니 그냥 병명도 모른채 진통제에만 의존하며 병상에 누워서 다들 개강파티와 환영회로 즐거워하고 있을 시점에도 병원 티비만 바라보고 있었다. 병원에 간지 사흘 뒤에 예약이 밀려있는 이 병원 대신에 의정부까지 엠뷸런스를 타고 원정을 나가 암 검사까지 마친 뒤에야 병명을 알게 되었고, 그 이후부터 본격적인 치료에 임하게 되었다. 그렇게 입원해서 다른 환자들이 퇴원하는 모습을 부럽게 바라보며 한달여의 기간동안 치료에 임하게 되었고, 빠른 호전증세를 보여 지금의 모습까지 오게 되었다. 물론 아직 다리를 사용하는 것이 이전처럼 아무런 무리가 없고 편하지는 않지만, 재활치료 경과도 점점 좋아지고 있으니 7월 안에는 재활치료도 뗄 수 있을것이라 생각한다. 지금은 긴 터널의 끝이 보이고 있긴 하지만 불과 병원에서 학사경고를 면하기 위해서 퇴원했을 시점만해도 나는 끝이 없는 어둠속을 헤메는 미아같은 존재였다.

 

즐거운 병원??

 

살면서 겪어보지 못했던 어마어마한 고통은 그래도 이겨냈다. 하지만, 다시 학교로 돌아왔던 나는 그렇다고 병이 다 나은 상태도 아니였다. 그냥 좀 더 병원에 있었어야 했는데 학사경고가 무섭다며 담당 의사선생님께 퇴원좀 시켜달라고 말했던 단지 학교가 가고싶었던 거동이 불편한 환자였을 뿐이였다. 그렇게 기대와 환상을 가지고 한달여의 공백을 깬 뒤에 돌아간 학교에 대한 환상은 그리 오래가지 못해 깨지고 말았다. 대학생활은 일주일밖에 못해보고 시간이 멈춘 듯이 시간개념도 사라지고 그동안의 생활패턴도 모두 잃고 병원 한구석에 쳐박혀있던 내가 기대하는 것은 그냥 이상적인 상상에 불과했던 것이다. 일단 무엇보다도 중간고사는 바로 앞에 있었지만 오리엔테이션만 들은 과목을 비롯해서 내가 배운것도 거의 없었을뿐더러 동기들은 그동안 많은 과제를 수행하고 MT를 비롯한 많은 행사를 거치며 많이 친해져있었다. 나는 목발을 짚은채로 열심히 강의실과 건물을 옮겨다니고, 졸긴 했어도 열심히 수업을 듣는 정보통신공학과 12학번의 그나마 존재감은 잊혀지지 않았던 어느 일원이였고 다들 보기에도 조금씩 적응해나가려는 다리는 좀 아픈 친구였지만 겉으로 보이는 그러한 모습과는 달리 속에서는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고 뭐가 뭔지 모른다는 자괴감에 휩싸여서 혼자 고뇌하고 혼자 괜한 상상을 해오곤 했다. 그러한 상상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휴학충동을 비롯한 지금 생각해보면 셀 수 없는 많은 충동을 느끼고 살아왔다. 남들에 비해 한달 뒤쳐진. 그러니까 다른 동기들은 4월의 학생이고, 나 혼자만 3월에 정체되어있는듯한 느낌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혼자 마음속으로 고뇌하고 그냥 내 자신이 싫었다. 아픈것도 물론이요. 학교도 모든 것도 다 원망스러웠다. 이러한 현실을 벗어날 방법은 기약없는 완치뿐이 없었고, 지금 당장이야 터널의 끝이 보이는 시점이라지만 당시에 나는 그냥 기약없는 완치를 포기하고 될대로 살으라는 생각도 하곤 했었다. 그렇게 나는 학교에 대한 환상만 가득했던 환자에서 삶의 의욕도 없이 그냥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으로 혼란스럽게 살고있었다. 나 혼자만 이렇게 속으로 고뇌하고 세상을 원망하는 하루하루를 보냈다는것도 아니다. 아마도 삶에서 의욕이란 찾아볼 수 없는 정신상태 덗분에 재활을 비롯해서 치료 전반에 슬럼프가 잠깐 찾아오기도 했고 주변사람들까지도 힘들게 했던 것 같다. 그런 상황속에서 누가 보던 말던 블로그나 페이스북 그리고 혼자 지나가는 말로 아니면 내가 병원에 있을때부터 간간히 근황을 물어오는 고등학교 친구들에게 카톡으로나마 신세한탄을 하고 지내왔다. 그렇게 자신을 한탄하며 카타르시스를 분출하는 것으로 더 악화될 수 있었던 정신적인 방황은 막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큰 진전이 없던 그날도 마찬가지로 신세한탄에 매진하고 있었다. 그러한 나를 본 명언을 좋아하고, 고등학교때도 칠판에 명언을 적어놓던(다들 저게 뭐냐면서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다) 친구가 페이스북에 댓글을 달고 갔다. 그리고 그 한마디가 나를 흔히 말하는 멘붕상태에서 어느정도 빠져나올 수 있도록 큰 역할을 해주었다.

 

초저녁 병원복도..


아프니까 청춘이다. 지금의 아픔은 이후 큰 자산이 될 것이다.

 

누가 한말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나는 우연히 듣게된 명언을 계기로 먼 훗날 지금의 고통과 아픔 그리고 그를 이겨내고 회복하려는 노력등이 먼 훗날 큰 자산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미래를 위한 최소한의 투자라는 생각과 함께 작은 희망을 가지고 조금이나마 심리적 압박감을 덜을 수 있었다. 지금은 고통이지만 나중에 웃으며 말할 수 있는 그날을 생각하며 불합리하고 정말 절망과도 같았던 나 혼자만의 자괴감을 희망을 가지고 떨쳐낼 수 있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현재로써 말하자면 정신적인 고통은 거의 다 덜어냈고, 육체적인 고통도 많이 덜어내서 지금은 그 당시에 비한다면 정말 황송할만한 상태까지 오게 되었다. 긍정의 힘이라고 했던가.. 워낙에 극단적인 사고를 좋아하고 평소에도 반대로 뒤집어서 생각해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간간히 부정적이고 극단적인 사고가 튀어나오기는 하지만 희망을 가지고 현실을 극복해나가려 노력하다보니 나도 차츰 바뀌게 되었고, 조금 더 성숙해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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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29세 도태남의 처절한 삶의 기록. sinc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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