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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동생이 오래된 차를 샀다고 차를 보여주러 내려온다고 합니다.

 

자기 나이보다도 더 오래된 차를 사왔는데, 94년 4월에 등록된 초기형 아카디아입니다. 올드카 입문자가 맞이하기에는 조금 난이도가 있는 차량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 시절 가장 저렴했던 대우차 티코로 그 시절 가장 비쌌던 대우차 아카디아를 맞이하러 나갔습니다.

 

올드카 목격담 카테고리와는 조금 다른 성격임에도 이 카테고리로 분류하기로 합니다.

 

2020.10.11 - [티스도리의 자동차이야기/올드카 목격담] - 1999 대우자동차 아카디아 (DAEWOO ARCADIA)

 

1999 대우자동차 아카디아 (DAEWOO ARCADIA)

올드카 목격담에서 구형 지역번호판이 부착된 초기형 아카디아의 목격담을 다루기도 했었죠. 그렇지만 막상 아카디아에 타 본 경험은 없었습니다. 2018/06/15 - [티스도리의 자동차이야기/올드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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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년만에 다른 아카디아를 만났습니다.

 

1994 DAEWOO ACADIA / 1996 DAEWOO TICO

아카디아는 엄밀히 따지면 혼다 레전드를 국내에서 조립 생산한 혼다차입니다.

 

고급차의 명가로 이름을 날렸던 대우차가 임페리얼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혼다와의 기술제휴로 도입한 차량이 바로 아카디아입니다. 모델체인지를 앞두고 있던 2세대 레전드를 그대로 생산했다고 보는게 맞을겁니다. 94년부터 99년까지 생산되며 점차 국산화율을 늘려갔지만, 사실상 초기형은 대우마크 달고 있던 혼다차나 다름없었죠.

 

전륜구동이긴 하지만 세로배치 엔진과 미드십 스타일. 3200cc의 당대 최고의 배기량과 지금도 꽤나 비싸게 느껴지는 4천만원대의 가격을 자랑하던 고급차는 시간이 30년 가까이 흐른 지금껏 살아있습니다.

 

엔카에 올라온 딜러매물을 매매단지에 가서 보고 구입해 왔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국산화가 완전히 진행되기 전의 극초기형 아카디아가 가지고 싶어 이 차량을 선택했다고 하는데, 아큐라 그릴과 마이너스 옵셋의 정품 BBS 휠만 제외하면 사실상 순정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별다른 튜닝을 거치지 않아도 일본 본토에 온 기분이 물씬 느껴지네요.

 

아카디아 엔진룸

위압감을 주는 엔진룸입니다. 

 

사고는 단순 교환 말곤 없고, 엔진룸도 요즘차 혼으로 교체한 모습을 제외하면 그 시절 그대로 보존중입니다. C32A 엔진을 거의 그대로 들여와 출력만 약간 늘어났습니다. 동급 경쟁차량에 비해 가벼웠던 차체 그리고 안정적인 무게배분과 후륜에 준하는 주행감으로 이름 그대로 전설로 인정받고 있는 차량입니다. 온전한 프론트 미드십은 아니지만 80년대 호황기를 누리던 일본 연구진의 변태같은 집념을 엔진룸만 쳐다봐도 느낄 수 있습니다.

 

밑에서 보면 미세누유는 있다고 하는데 엔진룸에서 육안상 확인하기에는 딜러가 잘 닦아놓아서 그런건지 깔금하게 보입니다. 애초에 준대형 혹은 대형차의 광활한 엔진룸을 오래도록 들여다 보기는 체어맨 이후로 꽤 오랜만인지라 나름 신기하게 바라봤습니다.

 

차대번호 표찰

차대번호 표찰의 비닐이 그대로 붙어있습니다.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제거하지 않는 이상 딱히 떨어질 이유도 없지요. 몇몇 수집가들은 패찰 비닐 위로 코팅지를 붙여 제치 비닐까지 보존하곤 합니다만, 딱히 비닐이 떨어진다고 해도 이상할건 없습니다. 

 

그래도 여기저기 혼다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CD체인저 역시 대우전자 제품이 아닌 혼다에서 사용하던 제품으로 보인다.
영어 불어 그 다음으로 일본어 설명이 존재한다. 한국어 설명은 없다.

곳곳을 잘 살펴보면 사소한 곳에 혼다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초기형 차량인지라 핸들에도 DAEWOO 대신 ACURA가, 이렇게 잘 보이지 않는 커버에도 'HONDA MOTOR'가 적혀있습니다. 트렁크에 자리잡은 CD체인저 역시 대우전자 제품은 아닌듯 보였습니다. 대우 로고가 스티커로 붙어있었고, 경고문도 영어와 불어 일본어만 적혀있었으니 말이죠. 일본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다면 거품을 무는 자칭 민주시민이자 독립투사. 50대 진보대학생들이 보면 당장 일제의 잔재가 우리 땅에서 명차 대접을 받고있다며 폐차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하고도 남을겁니다.

 

생각보다 그런 이상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정작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치인들도 일제를 씁니다만 내로남불은 기본이고요. 우리 민족을 탄압했던 쪽바리들이 만든 차를 타면 그 업보가 나중에 돌아온다느니, 운전 좆같이 하는것들이 쪽바리 차를 산다고 얘기하는 사람들 말이죠. 당장 오늘도 말투에서 50대 진보대학생임을 단번에 알 수 있는 누군가가 쪽바리 차는 양보하지 않는다는 스티커를 붙인 차를 봤던 포스팅에 그런 소리를 씨부리고 갔습니다. 막상 그 진보대학생이 젊은 사고를 가졌다고 말하는 작금의 시대가 아닌 진짜 젊었던 시절에 탔던 차들은 대부분 일본차가 기반이 된 차량인데 말이죠.

 

전조등의 광축 조정은 취급설명서를 참조바랍니다.

전조등의 조사각 조절법은 취급설명서를 참조하라고 합니다.

 

아카디아 취급설명서

그래서 취급설명서도 구경했습니다.

 

매년 제작되는 다이어리와 비슷한 재질입니다. 큼직한 학로고와 함께 대우자동차가 각인되어 있습니다. 비슷한 시기 출고되었던 티코와 설명서 그림체도 비슷했고 책 안에 출고증이 붙어있더군요. 그 시절 국민차나 플래그쉽 고급 승용차의 공통점을 취급설명서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크기차이

아카디아의 휠베이스 안에 티코가 거의 들어갑니다.

차값도 대략 10배 수준입니다.

 

아카디아 슈퍼 풀옵션 차량이니 94년 가격으로 4400만원입니다. 지금이야 나란히 세워도 다들 두 차를 오랜만에 본다고 얘기하고 넘어가지만, 20여년 전으로 돌아가면 하늘과 땅 수준의 대우를 받았겠지요. 절대 자리를 같이 할 수 없을 느낌을 가진 사장님의 검정색 세단과 서민의 녹색 국민차는 그렇게 같이 늙어가고 있습니다.

 

막상 뒷좌석까지 탑승했었는데 실내 사진이 없네요. 확실히 현세대 준대형차에 비하면 좁았습니다만, 그 당시로는 첨단사양이던 전동시트도 체험했고 푹신푹신한 가죽시트의 착좌감도 느껴봤습니다. 썩어도 준치라고 요즘차에 비하면 조금 좁게 느껴졌지만 편안했습니다.

 

사진맛집

삽교천에 왔으니 사진맛집에서 사진도 촬영합니다.

 

일본에 왔다고 생각하고 사진을 감상하면 일본처럼 보입니다.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 나름 같은 시기에 생산되었던 혼다 레전드와 스즈키 알토로 생각합시다. 사람이 많은 삽교천을 뚫고 삼길포와 왜목마을을 뚫고 다녔습니다.

 

오래된 차 두대가 지나가니 티코랑 아카디아 지나간다고 하는 얘기와 과분한 시선을 느꼈다고 하네요. 물론 차량에 대한 질문도 여럿 받았고, 제가 걸어가는 길에 오래된 차를 봐도 시선이 가는건 마찬가지지만 그런 관심을 갈구하기 위해 몰려다니는 관종들이라면 환장하고 오르가즘을 느꼈을법한 상황이지요.

 

이전보다 많아진 느낌입니다만, 오래된 차를 탄다고 으시대고 거들먹거리고 뭐라도 된마냥 관심을 갈구하러 다니는 사람들은 그닥 좋아하지 않습니다. 다행히 둘 다 그런 부류는 싫어하는지라 앞으로 만난다면 한적하고 조용한 곳으로 다니기로 했습니다.

 

잘 달리는 아카디아.

드라이브 도중 치고나가는 모습을 보니 확실히 배기량이 깡패구나 싶습니다.

 

완벽한 컨디션을 위해서는 앞으로 갈 길이 멀어보입니다. 시대를 풍미했던 전설과도 같은 차량과 그 차보다 젊은 주인이 헤쳐나가야 할 길은 멀고도 험하겠지만, 제 국민차처럼 소장을 목적으로 가지고 있겠다고 하니 앞으로의 변화가 기대됩니다.

 

앞으로 아카디아가 회춘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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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29세 도태남의 처절한 삶의 기록. sinc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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