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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스도리닷컴 새 콘텐츠 초딩일기는... 


초등학교 재학 당시 작성했었던 일기장을 펼쳐 당시 있었던 일을 회상하고 여러분께 공유하자는 취지에서 공개하는 콘텐츠입니다. 좋은일도, 그렇지 않았던 일도 있었겠지만 한 시대를 살아가던 평범한 어린이의 일기장을 본다는 마음으로 재미나게 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일기장은 무작위로 공개됩니다.


오늘의 초딩일기는 선거철을 맞이하여 선거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가지고 왔습니다.


막상 총선이 있었던 2000년과 2004년에는 일기를 썼던 기억이 없어 총선 에피소드를 가지고 오지 못한게 아쉽지만 그럭저럭 선거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어 오늘은 2002년 6월 6일에 있었던 일기를 가지고 왔습니다.


월드컵 열기가 한참 무르익던 2002년 6월 13일. 제 3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있었습니다. 6월 6일 현충일은 공휴일인지라 학교도 쉬었고, 학교에서 군수후보 합동 연설회를 한다고 하더군요. 군수 후보가 누군지는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던 저는 큰 관심도 없었고 그저 지루했습니다만, 엄마 아빠를 따라 모교인 합덕초등학교 운동장으로 가 군수후보 합동 연설회를 보았습니다. 이후로 이런식의 합동 연설회는 더이상 개최되지 않더군요.


후보 합동 연설회가 끝난 뒤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탄핵당했던 전직 대통령이자 당시 한국미래연합의 박근혜 상임위원장이 소속 정당 후보의 선거 유세차 지역에 와서 악수도 했었습니다. 이 내용은 일기에 마저 담지 못했는데, 이 이야기도 일기와 함께 마저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목 : 군수후보 합동 연설회


오늘 우리학교에서 '군수후보 합동 연설회'가 있었다. 엄마께서는 오늘도 후보운동(선거운동)을 나가셔서 우리가 먼저 왔다. 그런데 첫번째 연설에서와, 두번째 연설은 '노무현' 대통령 후보를 비방하였다.

'내가 이런 곳에 나오면 비방을 하지 않을 텐데' 하고 들었다. 나는 목소리가 적당하고, 당진군을 더욱 좋게 만들고, 우리고장을 좀 더 발전시키고, 다른 고장보다 좋은 당진고장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도 공부를 잘하고, 부모님 말씀을 잘 들어서 무럭무럭 씩씩하고 건강하게 자라 오늘 후보들 처럼 군수후보도 되고, 국회의원 후보도 되고, 대통령 후보도 되어 보아야 겠다.

"선생님 만약에 후보 나오면 한표 부탁해요"


당시 당진군수 후보로 여섯명이 출마하였고, 그 중 군수에 당선되셨던 김낙성 전 군수님께서는 이후 재선 국회의원을 역임한 뒤 3선 도전에 실패하여 정계에 은퇴하였습니다. 여튼 그것은 중요하지 않고, 당시 엄마는 미래연합 후보의 선거사무소에서 전화로 선거를 독려하는 운동원으로 활동하셨습니다. 당시 미래연합 후보가 어떻게 건너건너 아는 지인으로 기억됩니다. 여튼 엄마는 오전 근무를 마친 뒤 합류하였습니다.


당시 기사를 보니 무작위로 추첨하여 연설 순서를 정한듯 보였습니다. 처음으로 연석에 올라섰던 민주당을 탈당한 무소속 구자생 후보와 두번째로 연석에 올라섰던 한국미래연합의 민영근 후보의 연설에서는 당시 새천년민주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방이 포함되었고, 김낙성 후보의 비방도 포함되었던것으로 기억합니다. 여튼 두 후보가 특정 인물을 비방하다보니 사회자가 경고를 하고 더이상 특정 인물을 비방하는 내용의 연설은 더이상 없었습니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제 모습에는 특정 인물을 비방하는 모습이 그리 좋게 보이지 않았음이 일기 내용에 여실히 드러나 있습니다. 물론 지금도 자신의 공약과 비전을 유권자들에게 알리는 자리에서 다른 경쟁 후보나 대통령선거 후보와 같이 타인을 비방하는 일은 당연하게도 좋지 않게 생각합니다. 물론 20여년이 지난 지금은 시민의식도 성숙해져서 이전만큼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는 일은 많이 줄었습니다.


여튼 연설을 듣던 중 지루해서 학교 뒷편의 놀이기구를 타고 놀다가 주변 어른들이 박정희 딸이 터미널에 온다는 얘기들을 하며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연사의 연설이 끝날 즈음 부모님과 동생 그렇게 넷이 살살 걸어 합덕터미널쪽으로 갔고, 합덕터미널에서 유세를 위해 방문했던 당시 한국미래연합의 박근혜 상임위원장을 보았습니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저는 당시에도 유력한 대통령 후보였고 10년 뒤 대통령에 당선되는 박근혜가 누군지도 몰랐고 당연히 관심도 없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라고 설명하는데 박정희가 누군지조차도 잘 몰랐지만, 키작은 아줌마 근처로 많은 사람들이 인사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옛 합덕터미널 내부 공중전화 앞에서 이후 대통령이 된 박근혜 상임위원장을 보았습니다. 부모님은 인사를 건네고 정중하게 악수를 나눈 뒤 저와 동생에게도 인사를 하라고 하더군요. 주춤거리던 저는 쭈뼛쭈뼛하게 인사를 했고 동생은 멍하게 있자 '아이들이 절 알겠어요 ㅎㅎ'라는 얘기를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분은 부모님과 덕담 몇마디를 더 나눈 뒤 다른 시민들을 만나러 갔습니다. 이후 2012년 대선 당시에는 두분 모두 그분을 뽑지 않으셨긴 하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이미지가 좋았던 정치인 중 하나였습니다.


여튼 지방선거 얘기로 시작해서 박근혜로 회상은 끝이 납니다. 막상 선거철이 다가왔지만, 아직 누구를 찍을지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비례야 대략 어느 당을 찍을지 결정을 했습니다만, 지역구 후보가 막상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어 선거일 전까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민주주의의 꽃 선거. 물론 코로나 사태로 적극적인 선거운동은 없지만 정당과 정파의 구분 없이 진정 지역발전과 국가발전을 위해 헌신하실 의원님들만 선출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참고자료

http://www.dj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531

군수후보 합동 연설회,당진시대 2002.06.09


http://www.dj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527

박근혜 상임위원장 당진방문,당진시대 2002.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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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29세 도태남의 처절한 삶의 기록. sinc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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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재학 당시 작성했었던 일기장을 펼쳐 당시 있었던 일을 회상하고 여러분께 공유하자는 취지에서 공개하는 콘텐츠입니다. 좋은일도, 그렇지 않았던 일도 있었겠지만 한 시대를 살아가던 평범한 어린이의 일기장을 본다는 마음으로 재미나게 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일기장은 무작위로 공개됩니다.


오늘은 2005년 4월 7일에 있었던 이야기를 가지고 왔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재학 당시의 일기입니다. 폭력 강점기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데, 사실상 강점기라기보다는 당시 다니던 공부방의 실태를 적어놓은 일기에 가깝습니다. 선생님께서 봐주길 바라는 마음에 쓴 일기인데, 그 이후 며칠 일기장 검사 없이 그냥 다시 돌려주었던것으로 기억합니다.


여튼 이 공부방을 3월 초에 다니기 시작했었는데, 대략 한달만에 이런류의 일기를 썼으니 대략 지옥같은 생활을 했다고 보면 되겠죠. 이 공부방은 7월까지 다닌 뒤 그만 두었습니다만, 매우 악몽같던 시간이였습니다.


여튼 악몽같던 그 시기가 떠오르네요. 함께 보고 마저 얘기 드리겠습니다.



제목 : 폭력 강점기


나는 그곳이 싫다.

잘나지도 않고 욕, 협박, 야한말만 하는 작은 공부방이 싫다.

사소한일, 관계없는 일로 때리니까도, 억울하게 누명씌우기, 애들에게 먹을거 빼앗기에다, 별 고문, 또 각목 굵기만한 빗자루(나무)로 머리를 목탁소리가 나게 탁탁 두드리고 협박을 전문으로 한다.

오늘도 한명이 협박을 당했고 (학교)선생님들 욕은 무진장 한다.

교장선생님한테는 돈 밝히는 [욕은 뺌], 또 옆에옆에 3반 선생님한테는 엉뚱한거 잘 내주는 [욕은 뺌]

또 5-2 선생님한테는 정신병원 갈 [욕은 뺌] 같은 심각한 말만 하고, 19세 미만은 못들어야 할 야한 이야기만 한다. 이 사건에 관하면 방구아저씨의 이장역할과 딱 OK이다. 

누가 나와 이야기를 하여서 내 머리에 이 기억을 아무도 모르게 지워주었으면 간절히 부탁한다.


여튼 두서 없는 내용이지만 일기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당시 다니게 된 공부방은 작은 규모였습니다만, 그 당시 초등학교 4학년생과 3학년생 아들을 둔 학부모가 운영하던 공간이였습니다. 물론 두 아들들의 공부를 매일같이 가르치면서 겸사겸사 다른 초등학생들까지 가르키던 무허가 공부방이였는데, 학교 끝나고 가서 오후 7시즈음까지 꽤 오랜시간 공부를 시켰습니다.


아 물론 공부를 오래 한다고 성적이 오르지는 않더군요. 오히려 못해도 80점대 중후반을 유지하던 시험 평균점수가 크게 떨어졌습니다. 강사나 선생이라고 부르기도 호칭이 아까운 그 여자의 자식들 역시 매일같이 저녁을 먹고 잠시 TV를 보는 시간을 제외하곤 사실상 억압되고 기본적인 욕구조차 통제받는 삶을 살았는데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학교를 간 것 같지는 않고 지금은 어떻게 사는지 모르겠네요. 관심도 없지만, 집에서 조금 덜한 수준의 통제를 받던 저 역시 나이 다 쳐먹고 삐뚤어져서 씹덕차나 타는데 말이죠.


여튼 이 공부방은 그 여자의 두 아들은 책상에서, 그 외 학생들은 좌식 탁자에서 우등생평가와 해법수학류의 문제집을 풀었던것으로 기억합니다. 개인별로 혹은 같은 학년이 있는 경우 같이 지도를 한 뒤 이후 수많은 문제를 푸는 방식으로 수업이 이루어졌던것으로 기억합니다.


물론 수업 외에도 문제를 풀던 도중 일기 내용에 적힌 학교 교사에 대한 욕이나 학생들에게 협박이나 누명을 씌우고 음담패설을 하는 등 전혀 교육적이지 못한 행동들도 다수 발견했습니다. 물론 자기 아들들이 문제를 잘 풀지 못하거나 딴짓을 하면 대놓고 다른 학생들이 있는 자리에서 혼내고 때리는 등 자존감을 낮추는 행위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기억이 가물가물 합니다만, 제가 연필깍이를 세게 눌러 사용해서 망가졌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잘 돌아가던 연필깎이를 집 벽에 집어던져서 부셔놓고 새거 이자까지 붙여서 내놓으라는 얘기를 진심을 담아 하던 사람입니다. 물론 어른이라면 강력히 항의를 하고 끝날 일이겠지만, 엄마가 무서워서 집에 제대로 얘기도 못한다는 약점을 잡고 어린아이를 심리적으로 꽤나 잔혹하게 가지고 놀았습니다.


이 외에도 대략 4개월의 시간동안 엄마가 무서워 오히려 본인들이 혼날까봐 집에 제대로 얘기를 하지 못한다는 약점을 잡아 동생과 저를 꽤나 많이 괴롭혔습니다. 여러모로 예상치 못한 스트레스가 늘어 성적은 성적대로 떨어졌고, 심리상태는 심리상태대로 나빠졌습니다. 결국 공부를 하는 시간이 길다고 성적이 오르는게 아녔다보니 여름에 이 공부방을 그만 두게 되었습니다만, 그 이후로는 근처도 지나다니지 않았습니다.


하다하다 그 여자가 자식들을 학대한다고 이후 SBS에서 방영하게 된 긴급출동 SOS 24라는 프로그램에 아동을 학대하는 공부방이 있다고 제보를 해 볼 생각까지 했었으니 말이죠. 물론 지금처럼 머리가 컸으면 진작 경찰이던 어느 기관이던 쫒아가서 있었던 일을 다 얘기하고 권리를 찾았겠지만 초등학생의 사고 수준은 거기까지 미치지 못했습니다.


제발 누군가가 이 기억을 지워주었으면 좋겠다는 글로 일기를 마쳤습니다만, 결국 아무도 이 기억을 지워주지 못했습니다. 악몽과도 같은 기억도 꽤 오래 전 이야기입니다만, 가뜩이나 힘든 세상 더 힘들게 만들어 주네요. 그렇습니다 잊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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