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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수정을 거쳐 갱신되었습니다.)

벌써 이곳에 다녀온지도 한달이란 세월이 지났습니다. 갑작스럽게 제가 드러누웠던게 큰 잘못이긴 하지만, 마쳐야 할 대형 기획들은 마치자는 차원에서 일일히 느지막에라도 글을 쓰고 있습니다. 내용조차도 가물가물하지만 하기로 했던건 늦게라도 끝마쳐야죠.. 여튼 프롤로그 이후 약 한달만에 김문수 경기도지사 간담회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무려 30분이나 시간이 연장될정도로 뜨거운 논쟁의 시간이였고, 전반적인 김문수 도지사님에 대한 평을 내려보자면 아무래도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내세우고 절대 굽히지 않는 독단적인 리더의 전형이였습니다. 아무래도 패널들과 주장이 자꾸 충돌하다보니 시간이 길어질 수 밖에 없었죠.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본격 카메라 맛사지::

아프리카,조인스MSN,티빙,곰티비로 생중계가 되는 간담회이고, 거기다가 조선일보와 노컷뉴스. 그리고 중앙일보에서도 카메라를 들이밀으니 카메라의 천국이 되어버립니다. 박원순 서울시장 간담회때는 비교적 좁은 공간에서 진행하다보니 이러한 영상카메라가 몇대 없었지만, 이번 행사는 비교적 큰 강당에서 진행되다보니 카메라도, 여타 기자나 스텝분들도 훨씬더 많이 보였습니다.

마이크도 준비 완료! 사회는 이전 간담회때도 사회를 맏아주신 정운현님께서 맏아주셨습니다.

마이크에 우드락 재질로 되어있는듯한 TNM로고를 종이테이프를 가지고 붙여놓은 모습이 보입니다..ㅎ 그래도 감쪽같고, 나름 괜찮은 효과를 연출해낼 수 있었으니까요..ㅋ

명확히 말하자면 7시부터 9시까지의 행사입니다.

특히나 이번 경기도지사 간담회에는, 경기도립국악단의 찾아가는 연주회의 일환으로 잠시 행사가 시작하기전 퓨전 국악공연을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국악공연에 관련된 내용은 아래에서 만나보죠..ㅎ

그리고, 드디어 기다리고 또 기다렸던 주인공(?) 김문수 도지사께서 입장하셨습니다.

사실 오기 전부터 조금은 민감한 충청남도와의 공유수면 매립지 분쟁이나, 추후 정치적 행보에 관련된 질문 두가지를 준비했지만 메인으로 가졌던 질문의 경우 오해의 소지와 논란의 소지가 있다는 주최측의 요청에 따라 빠지게 되었습니다. 어짜피 마지막에 간단히 질문할 수 있었지만 말이죠.


"친절히 참석자들에게 악수를 건네고, 명함을 건네는 그분이 바로 도지삽니다."

행사에 참여한 모든 참가자들에게 악수를 건네고, 또한 김문수 도지사님의 명함을 건네주십니다. 명함이라... 하긴 국가원수도 명함을 가지고있고, 웬만한 고위공무원들 역시나 명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쉽게 볼 수 없지만 말이죠. 그렇습니다. 저는 직접 도지사에게 선거에 나온 후보의 명함도 아니고, 도지사의 직함이 찍힌 명함을 받았습니다!! 이건 전남 영광입니다!!!!!!!!!

김문수 도지사님께서는 제게 명함을 주실때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밥은 드시고 오셨나요?"

"네에.. 먹고왔습니다."

평화롭던 대화가 오고가고 이때의 분위기만해도 이날의 간담회는 큰 무리없이 끝날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 하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대부분의 패널들이 저와같이 야권성향을 가지고 있는것으로 추정되는데다가 저만해도 나름 충청남도 도민이고 당진시민으로써 경기도와 트러블을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 질문을 해보려 칼을 갈고 왔으니까요. 그리고 소방헬기 무단이용 및 119사건을 바라보는 관점등에 대해서는 패널들과 도지사님이 굉장히 큰 의견충돌을 보였으니까요. 


"내가 도지사 김문수요"로 유명하신 김문수 도지사님의 명함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양면복사가 되어있고, 한쪽은 한글 또 반대쪽은 영문으로 표기가 되어있습니다. 특징으로 말해보자면 사회적 약자 시각장애인에게도 명함의 역활을 할 수 있도록 점자가 박혀있다는점이 큰 특징이죠. 저도 나중에 명함에 점자를 박아볼까요? 여튼 약자를 배려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던 명함입니다.

그리고 위에서 잠시 언급했듯이 경기도립국악단의 공연이 시작됩니다!

"우리의 악기와 서양악기의 조화란 바로 이런거지!"

여성 연주자 두분과 피아노의 협주, 그리고 남성연주자 여섯분의 중주까지도 이어졌습니다. 특이한점을 확인해보자면 남성연주자분들중 서양악기로 분류되는 관악기 클라리넷 비슷한걸 들고계신분도 계시더군요. 분명히 우리 국악을 하는 팀인데 왜 서양악기지?라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악기는 북한에서 직접 개량해서 이용하고있는 악기라고 합니다. 베이스는 서양악기지만, 나름 북한에서 개량을 한 만큼 우리의 악기라고 볼 수 있겠죠 ㅎㅎ

아래는 직접 촬영한 공연영상입니다. 잠시 감상해보시고 가시죠ㅎㅎ

그렇게 공연이 끝나고, 짧은시간동안 도지사님의 인사와 모두발언까지도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본격적으로 패널질문이 이어집니다. 이번에는 저도 패널로써 질문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3부에서 계속 이어집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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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스도리

만 29세 도태남의 처절한 삶의 기록. sinc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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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티스도리닷컴의 메인포스팅은 티스도리가 병원에서 지내왔던 일들에 대해 간단히 서술을 하는 특별기획으로 이어나갈겁니다. 차츰 몸상태와 흐름을 봐서, 그동안 제쳐두었던 이웃방문 및 예정되었던 포스팅도 순차적으로 할 계획이구요. 답답하고 암담하긴 하지만 이곳에서 꽤 오랜 시간을 지내야 할테니까 병원이야기 포스팅으로만으로 안주할 수 없겠죠.


지난줄거리



참 많은 일이 있었던. 어떻게 본다면 한숨 덜을 수 있었던 3월 14일이 지났습니다. PET-CT검사를위해 의정부까지 원정을 다녀왔었고. 그날 아침에서야 정작 장본인인 저에게는 숨기던 암이 의심된다던 최악의 상황은 면했습니다. 악성종양이 아니라는 결과가 나타난걸로 말이죠. 명확히는 아녀도 조금은 홀가분해진 기분을 가지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치료에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3월 15일 목요일


다행스러운 검사결과와 함께 잠을 청하기로 합니다. 하지만, 늦어지는 글과 함께 조금 늦게 잠을 청하게 되었고. 그렇게 느지막에 청한 잠은 제대로 올리가 없었죠. 그렇게 밤을 지새우다가 새벽 4시가 되어서야 결국은 안되겠다 싶어서 진통제를 맞았고 5시정도에는 통증때문에 엄두도 못내던 다리를 옮기는것도 타인의 도움을 받지않고 제 스스로 침대로 올려서 다 펴지지는 않지만 다리를 최대한 펴고 잠을 자려 해봅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양쪽 다리를 쫙 펴고 잠을 청한다는것은 무리입니다. 왼쪽다리의 통증을 아무리 신경쓰지않고 누워있으려 해도 신경이 쓰이니 당연히 잠이 안오죠. 정말 자취방에서 혼자 아픔을 호소할때 어떻게 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아침이 밝았습니다. 비공식적인 루트로 다행히 악성종양이 아니라는 이야기만 들었지만 아직도 정확한 병명은 모릅니다. 이제 정확한 병명이 무엇인지 알아봐야죠.. 그렇게 교수님과 그를 따르는 전공의 레지던트등 흰 가운을 입은 의사선생님들이 간호사를 대동하여 들어오셨고 명확한 제 병명에 대해 알려주십니다.

"처음에는 전이암으로 추정되었는데..."로 시작하는 선생님의 말씀. 그렇습니다. 저만 빼고 숨겨진 사실을 모두 알고있었습니다. 만약 저도 이때 의심된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제대로된 정신을 가지고 있기 힘들었겠죠. 그렇게 다른 교수님들과 소견을 조율한 결과 PET-CT의 검사결과는 고관절을 빼고는 전혀 이상이 없었고. 염증이 생기기 쉽지만은 않았던 고관절에 염증이 생겼다는게 조금 의아하다는 평과 함께 골수염이라는 진단을 내려주셨습니다. 처음에 확진예정일이였던 토요일보다 훨씬 더 빨리 병명을 알게되었고 본격적인 치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수술이 없이 항생제만으로 치료가 가능하지만 기본 6주정도는 정맥주사를 통해 항생제를 맞아야 한답니다. 최소 2주정도는 되야 걸을 수 있다고 하구요.. 거기다가 그 이후에도 통원치료는 계속된다네요...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그렇게 병명은 알았습니다만, 의료진의 추가적인 검사를 위해 CT촬영을 진행했습니다. PET-CT를 촬영할때 CT기에 들어가기 전 발을 묶었던 이전의 지혜를 활용하여 촬영을 마무리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밤이 또 찾아왔네요. 걷기까지는 최소 2주.. 3월 한달은 이렇게 소비해야 하는군요. 혹시나 걷게되면 통원치료가 가능할지 궁굼하고 또 모르겠습니다. 학교가 그리운 밤이네요..ㅠ 벌써 여기 온지도 일주일ㅠ

아무리 빨리 나와봐야 3월 말에나 나올 수 있을테니 자취방에다가 닦아두고 나온 상추는 다 시들어있을테고, 봄동은 다 썩어있을걸로 추정되어 방주인 아저씨께 치워주시면서 켜두고 나온 보일러도 꺼달라고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정상적인 몸으로 돌아가기위한 잠시동안의 칩거생활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병문안들좀 많이 찾아와보세요!!! 저 혼자 심심해 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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