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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국도 제 32호선은 충청남도 태안군 소원면의 만리포에서 시작하여 대전광역시 한복판인 서대전네거리까지 이어지는 국도입니다. 본래 경북 문경(점촌)까지 연장하려는 계획이 있었으나 예산부족으로 대전-문경 구간은 국가지원지방도로 지정되어 각 시,도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태안에서 문경까지라면 상황이 달라지겠지만 동에서 서로 횡단하는 다른 동서축의 국도에 비교하자면 꽤 짧고 전국적인 인지도는 거의 바닥수준인 국도입니다. 그래도 고속도로 개통 이전에 충남 서북부 권역에서 대전으로 가기 위해선 필히 거쳐야 하는 국도입니다.


90년대 중후반부터 왕복 2차선인 국도의 시내구간은 우회하고 4차선으로 확장하기 위한 공사가 꾸준히 진행되어 왔습니다. 현재는 공사가 진행중인 만리포 종점 일부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의 왕복 4차선 확장공사가 끝났습니다.



이러한 국도 32호선을 대표하는 고갯길이자 

가장 최근에 확장공사가 끝난 '차동고개' 구간이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차동고개는 예산군 신양면 - 공주시 유구읍을 잇는 작은 고개입니다. 산을 타고 올라가는 약 10km 구간이 2014년 12월 29일자로 확장 개통되었습니다. 험하다는 여타 다른 고개에 비한다면 선형개량도 비교적 잘 된 편인지라 명함도 내밀지 못하지만 그래도 완만한 선형을 가진 이 국도 구간에서 손에 꼽는 난코스입니다.



국도 제 70호선과 분기되는 칠성암 삼거리에서 출발하여

산 정상의 차동휴게소를 거쳐 확장구간에 편입된 녹천교차로까지가 이번 탐방 구간입니다.


사실 차동1이니 녹천1이니 교차로 이름에 아라비아 숫자를 붙여두었는데, 2교차로는 없습니다. 대신에 터널에서 이어지는 교량에 2교라는 이름을 붙였네요. 고로 중요도가 떨어진다는 이야기겠죠.



칠성암 삼거리에서 대덕교차로 구간은 이미 2008년에 국도에서 폐지된 구간입니다.


2008년 4차선 확장공사 개통 이후 신양면 소재지를 외곽으로 돌아서 나가기에 구길이 되어버렸죠. 그럼에도 국도시절 주요 경유지별 거리를 나타내주는 이정표는 별 탈 없이 서 있습니다.


지나가는 차도, 사람도 없습니다. 그 흔한 경운기 하나 없는 적막한 도로입니다. 



'대전'이 종점인 고속도로가 저 하늘 높이로 지나갑니다.


물론 국도 제 32호선이 확장공사 이후로 선형도 괜찮아지고 고속도로나 별반 다를게 없는 자동차 전용도로가 되었습니다만, 험난한 차동고개는 그대로였기에 고속도로 개통 이후 대전 혹은 그 이남으로 내려가는 차량들은 거의 대다수가 고속도로를 이용하게 됩니다.


그나마 유구읍에 거주중인 주민들이나, 고속버스 노선으로 전환되고 겨우 몇개 남은 대전 혹은 공주로 향하는 노선을 타는 시외버스 혹은 하루에 몇회 운행하는게 전부인 농어촌/시내버스가 이 도로를 이용하는 차량의 전부가 되겠지요.



대덕교차로에서 구길의 흔적은 사라집니다.


확장된 4차로에 종전에 차량 통제를 위해 그려두었던 중앙선과, 오랜 세월 자리를 지키고 있는 주유소가 존재하긴 합니다만, 그 시절 그 모습은 더이상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뻥 뚫렸습니다.


사실상 고속도로 개통 이후 고속도로로만 대전 혹은 그 이남을 다니다 보니 차동터널 개통이후로는 사실상 처음 방문하게 되었네요. 종전에는 고갯길을 넘어다니던 시외버스 역시 요즘에는 터널을 이용하는걸로 보입니다.



2010년 5월. 다음 로드뷰.


저 멀리 보이는 높은 교각만이 같은 장소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아름드리 은행나무도 모두 잘려나갔고, 저 옆에 보이는 창고는 현재 길바닥이 되어있겠죠. 



바로 옆. 차동리 마을로 들어가는 길목 나름 번듯하게 확장 그리고 포장이 되었습니다.


평범한 마을 진입로가 교차로로 승격된 모습을 여러분께서는 보고 계십니다.



그냥 작은 다리를 건너서 진입하던 마을 진입로는 상당히 복잡해졌습니다.


기존의 도로는 확장구간에 편입되었고, 은행나무가 있었던 자리. 그리고 그 옆에 붙어있었던 논이 매립되어 지금 제가 서 있는 도로가 되었습니다. 또 하나의 흥미로운 사실을 이야기 하자면, 확장 전에 과속 단속용 카메라가 설치되어있던 그 자리에 교차로가 생겼고, 그 교차로에 신호위반까지 같이 잡아내는 단속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옛 고갯길 진입을 위해 특별히 새로 깔아준 도로입니다.


비록 본인처럼 취미생활로 구길을 타는 경우가 아니라 단순히 이동을 목적으로 이 길을 다닐 사람은 없더라도 산 중턱에 거주중인 신양면 차동리 주민들이나 유구읍 녹천리 주민들에게는 꼭 필요한 도로겠죠.


이정표 이후부턴 기존의 2차선 도로가 계속 이어집니다. 옛 로드뷰 이미지를 확인한 바 기존 도로 우측으로 성토를 해둔 모습이 확인됩니다.



고갯길 구간에 진입합니다.


확장공사 마무리 직전 포장을 새롭게 한 듯 보입니다. 이 도로가 폐쇄되기 전까지 앞으로 새롭게 포장공사를 할 일은 없겠지요. 노면만 깔끔할 뿐 수풀이 가드레일을 다 집어삼킨지 오래고 나무도 막 자라버린지라 그냥 노관리 그 자체입니다. 


2부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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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즐겁고 행복한 추석명절을 기대했으나, 명절이 정말 허무하고 어정쩡하게 끝나버렸다. 


연휴 첫날부터 기류가 이상하게 흘러가더니 콩가루가 되었다는게 적당한 표현인가 생각하는 수준까지 갔으니 말이다. 누군가의 편을 들어가며 옳고 그름을 따질수도 없는 일이긴 하다만 즐겁고 행복한 명절이라는 말은 이번 추석을 기점으로 부정적인 변화가 있으리라 지레 짐작된다.



연휴 첫날, 주차장에 자리가 없어서 노상변 갓길에 차량을 세워두었다.


추석 당일에는 스파크를 가동하지 않았으니 계속 그자리에 있었고, 나름 집 앞 도로가 명절이나 연휴때만  서해안고속도로의 정체를 피하기 위한 우회도로로 널리 활용되는 곳이라 통행량이 많은편인데 저리 눈에 띄는곳에 차를 세워두어도 어디 이상한차 봤다고 인터넷에 올라오는게 없다;;;


다만, 돌아다니는 모습을 본 친구들한테는 전화가 온다. 한번 보면 잊어버리진 않는다는 얘기겠지..



막상 해질녘이라 갈만한 곳도 없다. 그냥 사진찍으러 합덕제(합덕방죽)로 향한다.


먹고살기 힘들던 시절에 방죽을 매꾸어 농지로 만들었는데 이제 좀 먹고살만 해지니 방죽을 복원한다고 열심히 삽질을 한다. 중학교 다니던 시절부터 복원을 한다고 이래저래 시에서 만져놓고는 있는데 본래 둑방이 있던 자리는 그냥 터만 남기고 그 안쪽에 조그만하게 연못을 만든게 전부다...


어정쩡한 연못 하나 파놓으면, 관광객들이 알아서 오리라 생각을 한걸까...... 



옛 연지교 다리. 지금은 새 다리가 그 역활을 하고 있다만, 그 다리 역시 위험교량.


차량을 세워둔 이 다리가 합덕제를 끼고 연못을 건너는 그런 다리였지만, 80년대 바로 옆에 새로운 교량을 건설했습니다. 다만 그 다리도 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교량이라.. 32번국도의 직선화 확장공사와 고덕ic 개통 이후로 통행량이 상당히 늘어났다지만, 대형차량의 통행 제한이 있답니다.



쟞지멘토!


스파크를 탄지 100일 조금 넘었고 이타샤가 된 차량으로 돌아다닌지도 한달 반이 조금 넘었습니다. 


스파크를 타면서 기쁨도 슬픔도 즐거움도 느끼며 100일이 지났습니다. 초기 상태가 답이 없었던 비스토보다는 자동차다운 자동차라 만족스럽기도 합니다. 배기량이 작다보니 에어컨을 켜면 힘이 없다는건 비스토랑 공통점이라면 공통점이구요.


종종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왜 하필 시라이 쿠로코냐?" 큰 이유는 없습니다.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순간이동이고, 상당히 역동적인 캐릭터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쟞지멘토!"라는 당찬 대사가 마음에 듭니다. 물론 그런 티스도리스러운 자동차를 원했습니다.



살짝 시뻘건 컬러를 넣어보았습니다. 논 한가운데에서...



저 멀리 송전탑 뒤로 보름달도 보이네요.


저 송전탑이 91년에 세워졌다고 하니, 벌써 25년 가까이 지났습니다. 지금 차량이 서 있는 자리는 그 전만 하더라도 저수지 한가운데였고 물가였던 자리에 송전탑이 세워지고 송전탑은 이곳을 통과해 공주와 세종시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천안을 거쳐 안성 변전소로 올라갑니다. 크고 아름다운 한가위 보름달처럼, 모두 풍성한 나날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스파크는 앞으로도 변합니다. 변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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