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부작 북경여행기'에 해당되는 글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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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부작 북경여행기의 마지막 시간이다. 그동안 여행기를 쓰면서 다시한번 여행에 대해서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거기에다가 수많은 분들의 호응이 있었기에, 5부작 여행기를 쓰면서도 큰 재미와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지난 4부에서의 798예술구 이야기를 마저 끝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798예술구 이야기부터 계속 해보자!

2011/01/03 - [사진을 찍는 티스도리/여행/출사기] - 2011 첫 대기획. 5부작 북경여행기 프롤로그
2011/01/03 - [사진을 찍는 티스도리/여행/출사기] - 5부작 북경여행기 [1] 대륙에 입성하다!
2011/01/04 - [사진을 찍는 티스도리/여행/출사기] - 5부작 북경여행기 [2] 역시 Scale이 다르다!
2011/01/05 - [사진을 찍는 티스도리/여행/출사기] - 5부작 북경여행기 [3] 대륙을 알아나가다!
2011/01/06 - [사진을 찍는 티스도리/여행/출사기] - 5부작 북경여행기 [4] 세무천계,그리고 798예술구



*모택동 모자를 썼고 장갑을 낀 사람을 잘 찾아보세요*

798역시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허용을 해주는 갤러리가 있는 반면에 사진촬영이 엄격히 금지되는 갤러리들도 있었다. 필자가 촬영해온 갤러리는 사진촬영이 허용되는 곳들이였다. 참고로 이 작품은.. 아무래도 지름신에 관련된 내용을 전해주려는게 아닌가 싶다. 온갖 명품브랜드들을 다 내려주는 외계인.. 심오하고 작품의 모든 내용을 다 이해할 수 는 없어도 나름은 이해한 것 같아.. 기쁘다(?)


"태극기다!!"

태극기다. 이렇게 반가울 수 없다. 그리고 성조기까지도 있는데.. 한 식당에 있는 조형물 중 하나였다. 아무래도 반갑기는 한데.. 이게 한국인과 미국인을 환영한다는것인지, 아니면 반한감정과 반미감정을 담은 조형물들인지 정확한 뜻을 모르겠으니.. 미칠 지경이다. 레이커스.. 미국의 농구팀..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을 것 같기도 한데..  검색을 통해서 알아보고 싶어도 이 내용은 나오지 않았고, 그 자리에서 물어볼 수 있을만한 사람도 없었기에.. 이 작품에 대한 의미는 유추도 할 수 없이 그냥 지나가에 되겠다.;


이곳에서는 갤러리들 뿐만 아니라, 직접 거리에서 초상화를 그려준다던지 케리커쳐를 그려준다던지 하는 화가들도 굉장히 많이 있었다. 거기에다가 직접 통기타를 들고 노래를 하는 무명가수들도 있었고, 이런저런 기념품을 파는 노점상등도 길게 형성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예술구인만큼 예술에 관련된 수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터전이 되는 곳이다.


798의 구석으로 들어가본다면.. 아직도 공장으로 사용하던 시절의 기계들과 변압기 파이프 등 공장에서 자주 볼 수있는 것들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한쪽 공간으로는 그래피티만을 위한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고.. 아무래도 당장 집 주변에서 보는 그래피티나 여기서 보는 그래피티나.. 락카 하나로 펼쳐지는 예술의 세계를 감상하기는 충분했다.. 나도 얼마전에 자전거 무광블랙 양카만든다고 사놓고서 남은 락카가져다가 예술활동이나 입문해보면 어떨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역시나 대륙은 얼음이 어는것도 다르구나!"

온수용 파이프(? 아무래도 난방을 위한 뜨거운 물이 지나가는 곳이란다.)가 새고있다.. 그 파이프에서 떨어져나온 한두방울의 물이 이러한 예술작품을 만들었다. 동굴에서 볼 수 있는 석순 비슷한 고드름이 얼어버렸다. 이 자연이 만든 예술작품이 커지도록 방치를 한 것도 약간의 문제가 있다고 봐야겠지만, 예술구라서 나름의 예술작품으로 인정하고 놔둔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또 한번 대륙스러운 면모를 찾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다시 만나기위한 약속일거야.."

중국과 이별을 할 시간이 다가왔다. 3박 4일동안 빨간색을 좋아해서 빨간불에도 막 달리고 막 끼어드는 대륙의 도로에서 나름 교통법규를 준수해가면서 달리던 위슈푸(우기사님)도 굉장히 수고가 많으셨고, 저 도요타의 코스타라는 미니버스도 굉장히 많이 고생을 해주었었다..

그렇게 공항에 들어가서, 그동안 고생해주셨던 최강민 가이드와 마지막 인사를 했다. 그가 없는 중국이라 매우 상상조차도 하기 힘든것이라는 것을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혹은 출입국 수속을 밟으면서 느낄 수 있었다. 그형이 없는 북경의 공항에서 한두가지가 아니였기 때문이다.

 아.. 그리울거다.. 북경이여... 우리의 헤어짐은 나중에 다시 만나기 위한 약속일거다...!



그렇게 북경의 공항과도 인사를 한다.. 잘있어라! 대륙이여!!!

하지만, 북경여행 사상 최고의 일은 공항 안에서 일어났다. 소지품 검사를 바로 마치고.. 같이 간 일행의 모 아저씨께서 "이게 뭔줄 알아?"하고서 이상한 물체를 꺼냈다.. 그리고... "지지지지지이이이지지지지직" 전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고 뿜어져 나왔다고 한다..;; 그 앞이 마침 공안들이 몇명씩 무리지어 있는 공안들의 휴식처(?)같은 공간이였고 역시나 그때 검사를 하고있었던 공안들도 모두 그 한사람을 애워쌓게 되었다.. 나를 비롯한 검사를 마치고 그 상황을 보게 된 일행들은 도대체 뭔일이 이렇게 심각하게 난것인지 의아해했었고 상황을 알게 되자 다들 충격에 빠졌다..

한 여자공안이 "그거 주세요"라고 하고 뺏어가는 전기충격기를 비싼 전기충격기에 미련을 못버린 아저씨가 계속 물고늘어지면서 일은 점점 커질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잘못하다가는 이번 북경여행을 함께 한 12명 모두가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할뻔도 했었던 일이였다..

그러한 우여곡절 끝에 수속을 밟고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앞에 자판기가 있기에 자판기에서 우리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오리온 초코파이를 보고 감격하여 10원짜리 지폐를 넣고서 하나를 샀다.. 그리고 남은 1원짜리 동전 여덞개를 옆에 음료수 자판기에 넣었는데.. 이놈의 자판기가 돈만먹고서 내놓을 생각을 하지를 않는것이였다.. 그러한 필자는, 잡블로그스러운 정신에 입각하여 지나가던 공항에서 청소를 하는 아저씨한테 "벤딩머신 이즈 마이 머니 잇. 플리즈 헬프!"라는 통하지도 않을 것 같은 영어를 구사하여 그 아저씨의 도움으로 해결을 할 수 있었었다,. 감사의 마음으로 오렌지쥬스를 권했는데.. 거절하고 가신 그분.. 그분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결국 비행기에 탑승했다. 같은 A320 기종이였지만, 역시나 상태도 청결했고, 비행기의 년식도 덜된 차량이라서.. 나름 즐겁게 타고 올 수 있었다.

그리고.. 늦은 밤.. 인천에 입성하였다.,


출구를 따라 나가서, 짐을 들고..... 주차장에서 눈만 쌓여있던 차를 타고 집으로 향할 준비를 하게 된다. 3박 4일동안 나도 나름 중국에 적응했었고.. 한국에 오니 더 적응이 안되는 꼴은 뭔가..!


여행을 마치고..

그동안 생각해왔던 중국에 대하여 많은 인식의 변화가 있었다. 매번 질낮은 싸구려만 생산해내고 다른나라의 선진기업들을 모조리 빨아먹고 버리는듯한 이기주의와 중화사상에서 못벗어나서 자신들이 우월하다고 보는 한족들을 한심하게 여겨왔던것이 이전의 중국에 대한 인상이였는데.. 그러한 막나가는 좋다기보다는 나쁜 이미지로 보았던 중국을, 어느정도 우리나라처럼 경제발전이 잘 되어있는 나라이자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모두 친절하고 좋은 현지인들.. 중국땅에 사는 우리의 겨레 조선족들의 비애와 앞으로 그들을 보면 더욱 더 잘해드려야 겠다는 생각까지도 가져오게 되었다.

중국이라는 나라에서도 땅이 크다보니 우리나라보다 질이 더 좋은 제품들이 더 많이 생산되고 그런 제품들도 수출이 가능하지만, 대한민국의 상인들이 무조건 싼것만 찾다보니까 질이 떨어지는 상품들이 대한민국에 계속 들어오고(그마저도 중국 현지의 가격보다 매우 비싼편이란다.) 중국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지는 악순환만 계속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중국에 대한 인식을 그리 좋지만은 못하게 만들어놓았고, 우리들이 그들에게 비난을 하듯이 그들도 우리에게 땅덩어리도 작은 소국이라고 얏보는듯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글로벌시대에, 양국은 모든 감정들은 던져버리고 우호적인 관계에서 함께하는 동반자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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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29세 도태남의 처절한 삶의 기록. sinc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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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부를 거쳐 2부에 도착했다. 모택동모자에 관심을 많이 주고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몰라도, 모택동모자는 중간에 준비했으니, 한번 보길 바란다. 실망을 하셔도 좋고.. 하나 소장을 하고 싶어해도 좋다. 뭐 나름 굉장히 따듯하고 쓸만한 모자임에는 분명한것이니까..

그렇다면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1부에서는 광장에서 바라본 천안문이고.. 광장에서 지하도를 타고 건너온 천안문 앞이 바로 이곳이다. 가지각색 공안차량에 수많은 공안들이 쫙 깔려있다.. 국가 중요시설이니만큼 중국인들은 의무적으로 검문검색대를 통과하고 가야했다. 나를 비롯한 외국인들은 그냥 고속도로의 하이패스처럼 한번에 넘어가지만 말이다.


그렇게 자금성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명나라와 청나라 두 나라에 걸쳐서 24명의 황제가 살았던 황궁으로서 세계에서 그 규모가 가장 크고 비교적 완전하게 보존이 되어있는 중국의 대표 고궁이다. 

역시나 그 규모에 걸맞게 700여채의 건축물을 비롯 9000여개나 되는 방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방을 다 들어가볼수는 없었으니.. 그래도 열심히 가이드를 따라서 들어가게 되었다. 최강민형은(가이드) 아주 재밌게 이해가 잘 되도록 설명을 잘 해주었다. 다른 한국사람들도 어느정도 있었고 참좋은여행 롯데JTB 우리들투어 하나투어 노란풍선 등등 자금성에서 본 우리나라 깃발들만 해도 수많은 깃발들이 보였고 떼로 몰려다녔지만, 가족같은 분위기가 좋다고 모두투어 깃발을 가져왔어도 사용하지 않은데다가 가이드형의 키가 큰편이라 멀리서도 찾기가 쉬웠으니.. 처음에는 깃발을 들고 두세줄정도로 배열을 맞추어 가는 일행들이 소속감도 있고 재미도 있을것 같았지만.. 자금성 관광에 어느정도 익숙해지다보니.. 형식적으로 깃발을 들고 초등학교 소풍처럼 줄을 맞추어 가는것보다도 가족같은 분위기가 더욱 더 좋다는것을 느낄 수있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가이드를 잘 만나서 색다른 여행의 묘미를 맛보았던것이다.


자금성의 하이라이트(?)인 태화전. 태화.. 고무장갑도 아니고.. 뭐 이동네에 있는 모 빌라의 이름이기도 한데.. 간혹 사람의 이름으로도 많이 보기도 하고... 어쨋든 자금성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왕이 일을 보던 정전이였다고 한다. 현재 내부의 유물들은 대만에서 가져가서 대만 박물관에서 전시를 하고 있다고 한다. 

관람을 한 후 차에서 들은 자금성과 대만에 얽힌 이야기에 대해 말하자면, 중국이 모택동이 세운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공산주의진영과 장제석이 세운 대만(타이완)이라는 자유민주주의진영으로 대립되어있는데.. 대만으로 장제석이 결국 물러가려고 비행기에 자금성에서 가져온 유물을 실고 대만으로 떠날 때, 모택동의 부하가 이런말을 했었다고 한다. "장제스가 비행기를 타고 대만으로 가고 있습니다. 지금이 그를 없앨 기회입니다."  그러자 모택동은 "장제스를 제거한다고 비행기를 요격한다면, 그 자금성의 소중한 유물들 또한 파손되니,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그냥 가게 놔둬라."라는 말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모택동으로서는 장제스를 없애고 싶었겠지만, 후손과 소중한 유물들을 생각하는 그의 생각은 참 오늘날에도 본받아야할 생각이라고 여겨진다.


이곳이 왕이 앉아서 집무를 보던 의자... 가서 앉아보고 싶었지만 앉지 못했다기보다도, 일단 들어가서 앉아볼 수 없게 되어있을뿐더러, 공안이 건물 내에서도 두세명씩 서있었었다. 특히나 공안의 끝발이 쎈 중국같은경우에는 여기서 잘못잡혔다 집에는 영원히 못갈수도 있었다.


다음으로는 인력거 투어.. 중국 도심 한가운데에 이런 우리나라의 60년대를 연상시키는 건물들이 있다. 이런 작은 동네가 도심 한가운데에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잘 보존되어 올 수 있었던것은 중국정부의 엄격한 관리때문이 아니였나 싶다. 이 동네는 중국의 지도자들이 은신했었고 잠시 살았었던 동네였는데.. 그러한 의미에서 이 동네를 남겨두지 않았나 싶다. 오토바이 그리고 불법주차된 차량들 사이로 자전거는 천천히 달리고 또 달렸다. 


커브를 도는 자전거. 길을 가다보면 동네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막 달리기도 하고, 犬님과 함께 산책을 나오기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작은 구멍가게들.. 그리고 공용화장실.. 성룡의 어머니가 살고있는 80억짜리 집도 이 동네에 있었다고 한다. 한번 자전거를 직접 끌어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되지 않았던게 참 아쉬웠다. 자전거를 끌어주던 아저씨.. 활기찬 모습을 하고있었는데... 얼마나 힘드셨을지.. 혹은 중국말로 "아.. 왜이리 무거운겨,,,"라고 했을지는 몰라도.. 어쨋거나 중국의 근대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경험이였다.

어쨋든 매섭게 부는 바람이 태워주는사람보다 타고 가는사람이 더 힘들정도로 추웠었다..;; 그래서 다음번에 가게 된 전문대가(스치하이카페거리)는 사진만 찍고 오게 되었는데..


얼마나 추웠으면 얼마전 종영한 우리나라 드라마 추격자와 미안하다 사랑한다에도 등장했었고,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 등장해서 보면 "아.. 여기구나"라고 알 수 있었을 정도였는데.. 그곳에서 배를 타고 돌아다니는 호수는 얼어있어서 배.. 그런것은 움직이지도 않았고... 사람도 없었다. 바로 앞에 스타벅스가 위치해있고.. 더 들어가보았으면 좋았을 것 같았지만.. 스치하이카페거리의 구경은 바로 문 앞에서 마무리 될 수 밖에 없었다.


"꼭 코엑스 삘인데...?"

대한민국의 서울에 코엑스 아쿠아리움이 있다면, 중국의 북경에는 부국해저세계가 있다.! 부국해저세계는 북경에서 가장 큰 수족관이다. 게다가 내륙이면서 당장 사람이 먹을 물까지 부족한 북경에서 바닷물을 쓰는 수족관을 하기는 매우 힘든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가 어디냐.. 뭐든지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을 해내는 대륙이다. 광활한 중국대륙에서 못할일이 뭐가 있겠느냐..! 참고로 이곳에는 세계에서 가장 긴 수족관 통로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길고 긴 수족관의 입구로 향한다. 세계에서 가장 긴 수족관에는.. 역시나 물고기로 가득했던게 사실이다. 온갖 물고기들이 얽히고 섥혀있는데.. 이 물고기들이 한 수족관에서 공존하는데.. 왜 상어가 이 작은물고기들을 잡아먹지 않는지는 모르겠었지만.. 부분부분 서로 잡아먹지 않는 물고기들끼리 다니는 구역을 정해서 큰 물고기가 지나다니지 못하도록 망을 쳐놓았었다. 그래서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망 하나만 없어지면 혼란스러워질 동거를 하고있는것이다..


"상어다~~~~~~~~~~~~~~~~~~~~~~~~~~~!!"

p.s 여기서 할말을 위에다가 다 적어놓았네..;;;;;;; 어쨋든 상......상어.....다....! 

그렇다면.. 여기서 모택동모자나 좀 보여줘야겠다... 모택동이 이런 모자를 썼었다고. 하는데.. 중국 현지인들은 거의 사서 쓰지 않고, 나를 비롯한 외국인들이 이 모자를 사서 쓰게 되었다.



중국돈으로 360元(위안)이라는 굉장한 가격을 자랑하는 금면왕조.. 
1월4일 5회차 환율로 따지자면 바로 아래처럼 뜬다.

육만 천 이백 칠원에 20전...;; 우리나라였으면 엄두도 못낼 공연이였는데..;; 여기는 대륙이다. 온것도 가장 비싼 여행상품으로 와서 옵션도 아니였고, 무대가 이리저리 움직이고 흔들리고 무대에서 물이떨어지는등 정말 중국이라는 나라의 큰 땅이라는 이미지에 맞는 거대한 공연이였다. 어느 한 소녀가 잠에 들기 전 금면왕조 책을 읽는것으로 시작해서 꿈에 나타는 금면여왕과 이전에는 적이였지만 사랑하게 된 남자에 관련된 이야기부터 해서.. 결국 금면여왕이 다스리는 나라가 대홍수에 빠지자 자신의 몸을 하늘에 바쳐 홍수를 멈추게 했다는 이야기로 끝나는데.. 정말 리얼한 홍수가.. 객석에까지 났었다..;;;


"박수를 오천육백사십팔만사천이백칠십육번을쳐도 안아까울 정도로 괜찮았다!!"

매우 리얼한 금면왕조를 보고.. 북경오리를 먹으러 갔었다. 이때만해도 중국요리에 대한 도전정신과 호기심이 많았고.. 역시나 오리고기도 나름 중국에 왔으니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문제는 3일날 이후에 벌어지는데.. 그건 아무래도 3~4편정도에서 만나보도록 하자.

그렇게 첫날이 지나고.. 둘째날이 밝았다.


2010.12.31 금요일. 장안 그랜드호텔에서 바라본 베이징 시내. 바로 아래에 버스차고지가 있고, 옆으로도 다른 호텔들과 중국인들이 사는 아파트, 빌라들이 펼쳐진다. 
(EXIF로 따지자면 중국현지시간이 한국보다 한시간 느리니 -1시간에다가, 카메라의 시간이 본래 한국시간보다 15분 빠르니 -15분 해주면 내가 중국시간으로 몇시에 이 사진을 찍었는지 뜨겠다.)

역시나 5성급 호텔인 만큼 서비스도 좋았고, 아침식사로 나오는 뷔페식들도 어마어마하게 종류가 많은데다가 맛도 괜찮은 편이였다. 아래 주차장에는 벤츠 아우디 포르쉐가 기본이였고.. 중국 현지차들은 명함도 내밀지 못할정도로.. 중국에서도 부유한 사람들만 오는 곳이였었다. 이런 5성급 호텔에서도 재떨이도없이 식후땡이아니라 그냥 밥먹어가면서 담배를 피워대는 참 개념이라고 많이도 가진 중국인을 보기도 했다. 


2일차 첫번째 코스는 이화원이였다. 1999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고, 흔히들 많이쓰는 '배' 이 같은 이자 대신에 자주 쓰이지 않는 "턱 이(←우리나라 한자에는 없다보니 결국 백과사전에서 펌.)"자를 사용한다.

이화원은 12세기 중국의 금나라시절부터 만들어졌으며, 청나라의 건륭제때 대대적으로 중축되었다고 한다. 사실 건륭제때이지만 당시에 서태후가 권력을 잡고있었기에.. 서태후만의 별장을 화려하게 지어놓은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역시나 이곳에서 배를 탈 수 있는 호수도 인공적으로 만들어 놓아서 위에 보이는 산을 만들어놓은것인데.. 
우리나라에 저기 어디서 강파기를 매우 좋아하는 분이 보셨으면 참 좋아하셨을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자금성 뒤에도 이런식으로 호수를 하나 파서 인공적인 산을 만들어놓기도 했었는데.. 역시 사람이 많은 대륙답다는 생각이다.


오직 서태후만을 위한 휴양지.. 서태후만을 위한 건물들과 또한 그녀만을 위한 산책로.. 그녀만을 위한 산책로는 800m나 뻗어져있을정도로.. 어마어마했다고 한다. 누각마다 각기 다른그림들이 그려져있었고.. 수많은 화가들이 서태후를 위해서 살았을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위의 사진은 병모양의 창문인데.. 이렇게 이화원에는 당시의 각진 창문만 본다면 상상할 수 없었을 이러한 독창적인 창문도 많이 존재하고 있다.


다음으로 간 곳은 정릉.. 우리나라 정릉이 아니라 중국의 명나라시절 황제 13명의 초호화 궁전이다. 그래서 명 13릉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다른 관광지에 비해서 엄숙한 편이였다.  역시 어느나라나 왕릉에 가면 다들 엄숙한 분위기인것은 사실이다. 천수산이라는 거대한 산 하나를 통째로 왕릉으로 사용한 명나라.. 그곳에도 특이한 것은 굉장히 많았다.


흙으로 토성을 쌓아놓고 무너지지않도록 나무를 심어놨던것이 지금은 저렇게 커진것이라 한다. 당시의 건축기술로서는 불가능해보였던 지하 9층짜리 호화스러운 저승궁전을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강제노역을 당했다는것은 참 안타깝던 일이지만, 대륙이라서 가능했던 일이기도 했다.

지하 왕릉의 내부도 굉장히 현대적이였다. 아치형으로 지붕을 세웠는데도 당시의 건축기술로서는 굉장했고, 백옥으로 만든 엄청나게 무거운 문과 넓디 넓은 공간에 또 감탄사를 금치 못했다.


원래 이곳은 왕비가 있었던 자리였는데.. 왕이 새로운 첩을 두는 바람에 두 첩을 같은 장소에 이장해놓게 되어서 현재는 빈자리만 남아있다. 저 구멍에 동전을 던져 넣으면 장수한다지만, 동전을 넣지 못할경우 장수는커녕 일찍 사망한다는 이야기가 있는곳이라.. 동전은 던지지 않았다.


왕릉 지하를 한바퀴 돌고 나왔다.. 돌고 나오니 이 자리에 작은 비석이 있었다고 한다. 우연히 이 비석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이 비석은 왕릉에 들어가는 입구에 대한 설명서이자 해답지였던 것이다. 이 자리에서 앞으로 몇발자국을 가면 무엇이 있고.. 거기에서 얼마나 파고들어가면 또 무엇이 있고... 그렇게 깊숙히 들어갔을때는 시체가 썩는 냄새뿐이 진동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속에서 놀라운 건축물을 발견해냈고, 굉장한 문화유산으로도 남게 되었다. 영원히 후손대대로 호화궁전이 비밀속에만 있도록 하고싶었는데 누군가가 그냥 의도와는 반대로 이 자리에 비석을 놓고 새겨놓은것인지 아니면 후손들에게 하나의 수수께끼를 내준것인지.. 그것까지는 그시대 사람이 아니라 잘 모르겠다.

티스도리닷컴 5부작 북경여행기 2부는 여기서 마친다. 이제 3부에서 만나도록 하자.!

3부 하이라이트!

"만리장성에서 본 Best 호구인증 한국인"

"초 호화 식당에서 밥을 먹은 이야기"

그리고......! 

"늦은 밤 5성급 호텔에서 의사소통이 안되서 벌어진 희대의 해프닝!"

"약값이 50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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