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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말부터 2주 연속 토요일 일요일 공휴일 모두 출근하는 노예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살다보니 이제는 딱히 요일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암담했는데 살다보니 그냥 시간이 흘러가는대로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생활은 10월 말. 지금 다니는 직장의 계약이 끝날 때 까지 계속됩니다.


비스토동호회의 전국정모를 준비하는 12일과 13일은 쉽니다만, 말이 쉬는것이지 반은 일을 하러 가는 것이고 사실상 입출금 관리와 행사 진행 등 머리 쓰는 일은 총무라는 감투를 쓰고 있는 제가 다 해야하니 다른 업무의 연장이라 볼 수 있겠네요.


여튼 지난 토요일. 본래 쉬었더라면 사전답사를 다녀왔겠습니다만, 당연히 일을 하니 가지 못했고 현재 카페의 대빵인 카페지기님께서 부르시고 상황상 전국정모에 참석하지 못하시는 고문님을 뵈러 대전에 잠시 다녀왔습니다.


둔산에 사시는지라 둔산에서 뵙기로 하고 대전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저녁을 먹지 않았다 하니 만년동의 한 식당 주소를 찍어주시더군요. 만년사거리 위쪽. 새로남교회라는 큰 교회가 있는 블럭의 한 칼국수집이였습니다.



대전 서구 만년동 345번지. 도로명주소는 만년로68번길 15-26. 정빌딩.


본래 '돌아온털보'라는 이름으로 방송에도 여러번 출연한 샤브샤브 무한리필집을 운영하시던 사장님께서 올해 칼국수집으로 업종을 변경하셨다고 합니다. 8시 30분이 넘은 시간임에도 손님들이 좀 있더군요.



인도쪽 출입구로는 식당에 바로 갈 수 있고, 대로변 출입구에서는 통로를 타고 조금 걸어와야 합니다.



칼국수집이니 대표메뉴는 해물칼국수.

모든 음식이 반품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는 음식에 자신이 있으시다는 이야기로 봐야겠죠?


7,000원이라는 가격의 해물칼국수가 이 식당의 대표메뉴입니다. 그 외에도 술안주나 서브메뉴로 먹을 수 있는 수육과 왕만두가 있고, 육회와 육사시미 낙지탕탕이와 오징어와 두부를 넣고 만든 두루치기도 있습니다.


중국산 고추가루와 낙지. 원양산 오징어. 그리고 독일상 돼지고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국내산입니다. 



수육과 해물칼국수 3인분을 주문하고 식사를 기다립니다.


여러모로 카페 운영 및 다음주 모임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눕니다. 차기 운영진 인선과 관련된 이야기도 나눴고, 회원과 관련된 문제 및 찬조와 관련된 이야기도 오고갔습니다.



상이 차려집니다.


양쪽으로 같은 반찬들이 놓여집니다. 상추와 생채 그리고 겉절이와 열무김치. 간단한 반찬들과 곁들여 먹을 수 있는 장류. 간단한 반찬이지만 겉절이는 양쪽 그릇을 다 비울정도로 맛이 있었습니다.



혜자급 7,000원짜리 수육!


대충 고기 열점 썰어놓고 그 가격을 받는 수육이 아닌 마치 2만원대의 가장 작은사이즈의 보쌈을 시킨 수준의 양입니다. 물론 국산이 아닌 독일산 돼지고기라 한들 이정도 가격이면 엄청난 혜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칼국수가 나오기 전 보쌈으로 허기를 달랩니다.



수육과 함께 먼저 나온 칼국수에 들어갈 여러가지 야채들.


파 호박 감자 표고버섯 그리고 느타리버섯까지. 보통은 다 넣고 끓여서 나옵니다만, 손님들이 직접 넣을 수 있게 가져다 줍니다. 조금 끓여진 상태로 칼국수가 나오면 투하하면 됩니다.



칼국수가 나왔습니다.


대하 약 두마리와 커다란 오징어 한마리. 면 아래로는 바지락과 홍합이 잔뜩 깔려있었습니다. 1인분을 주문해도 오징어 한마리가 온전히 나온다고 하더군요. 뭐 여튼 그렇습니다. 괜찮은 가성비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입맛을 돋구는 냄새를 풍기며 끓고 있습니다.


적당히 끓은 뒤 허겁지겁 가져다 먹었습니다. 합성조미료 특유의 뒤끝이 느껴지지 않는 홍합과 바지락으로 낸 육수의 맛은 술안주로도 제격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게 칼국수를 다 먹은 뒤 한참동안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차를 가져온 둘은 소주잔에 콜라를 담아서. 근처에 사시는 고문님은 소주를 드셨습니다.


이 사진을 올리니 음주운전을 하지 않았느냐는 소리까지 나왔습니다만, 술을 드시지 않은 카페지기님이 가시면서 모셔다드렸습니다. 그렇게 밤 10시가 넘은 시간.. 다음날 출근을 위해 아쉽지만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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