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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사실상 왜건형 승용차의 볼모지입니다. 당장 유럽만 가도 왜건형 차량들이 널리고 또 널려있지만 말이죠. 실용성을 비롯해서 장점도 꽤 있는 차종이건만 국내에서는 아무래도 투박한 뒷태와 웬지 모를 왜건에 대한 거부감때문에 매번 왜건은 비운의 모델로만 남아야 했습니다. 아반떼 투어링, 누비라 스패건, 라세티 왜건, 그리고 오늘 글의 주인공인 크레도스 파크타운은 하나같이 왜건형 차량에 크게 관심이 없는 국내 시장에서 채 몇대 팔리지 못하고 단종되는 비운의 차량이 되어버렸습니다. 조만간 단종이 예정된 i30의 왜건형 모델인 i30CW도 크게 시장에 주목을 받지 못했고, 아심차게 현대에서 선보인 i40은 과연 어떨지 모르겠지만 척박한 국내 시장에서 왜건형 차량도 성공할 수 있다는 새 역사를 쓸 수 있을지 궁굼합니다.

그러던 얼마전, 채 800대도 판매되지 않았던 기아 경영진마저 언제 단종되었는지 정확히 따지기 힘들다는 파크타운을 보게 되었습니다. 기아가 진리로 여겨지던 시절이였죠..

 
딱히 큰 특징이 없었던 콩코드의 판매량이 현대의 쏘나타 그리고 대우의 프린스에 밀려 저조해질 즈음.. 디젤엔진까지 얹어가면서 기아는 콩코드로 재기를 노려보았지만, 결국 쓴맛을 보고 1995년 마쯔다의 크로노스를 기반으로 한 중형차 크레도스를 통해 시장에서의 큰 혁명을 일으키기로 했습니다. 첫날 계약만 4000건이 성사될만큼 큰 관심을 받았고, IMF당시 판매량이 소나타를 잠깐 앞질렀었으니 그래도 어느정도 성공했다는 평가를 지금까지도 받고 있는 차량이죠. 뛰어난 핸들링을 앞세우는 광고와 함께 장영실상을 수상하고.. 지금 차량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동시트, 풀오토에어컨, 슈퍼비전 계기판 등등의 사양들까지도 만나볼 수 있었던 차량입니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진리의 명차를 팔던 회사는 97년 7월 부도유예협약과 9월 화의신청 등등 위기의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결국 그렇게 기아산업이 무너지고, 기아는 한보 쌍용등과 함께 IMF에 무너진 대기업중 하나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기아가 어려웠던 시절에 다시 한번 부흥을 느껴보고자 페이스리프트를 통해 "크레도스2"를 V6 2.0엔진과 함께 선보였습니다. 하지만, 기아는 결국 몇달 후 워크아웃에 들어가게 되고.. 워크아웃에 들어간지 몇달 지나지 않아, 오늘의 주인공인 크레도스2의 왜건형 모델인 "파크타운"을 내놓게 됩니다. 하지만, 당장 회사도 어려운 상황인데다가 모티브가 되었던 모델인 크레도스2 마저도 싼값에 내놓아도 신통치 않았던 시절인데다가 파크타운 역시 지극히 왜건을 싫어하는 대한민국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기에, V6 2.0 엔진을 제외한 1.8,2.0 DOHC 엔진을 얹어 800대 미만(약780대 추산)만이 테스트카 개념으로 판매되고 쥐도새도 모르는 사이에 사라져버렸습니다. 사실 트렁크 위에 인위적으로 지붕을 얹어놓은듯한 조금은 부자연스러운 느낌도 좀 들지만 말이죠.. 

참고로 엘란은 약 4년에 걸친 기간동안 1053대가 팔렸긴 하지만(사실 기간을 따져보면 엘란이 더 안팔린것이지만) 국내에서 가장 안팔리고 단종된 비운의 차량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프리미엄 중형 왜건 i40)

왜건형 승용차의 볼모지인 대한민국.. 수출형 생산은 호조를 이루었어도 내수판매는 시원찮아서 대한민국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갔던 수많은 왜건모델들. 그리고 굉장히 비싸게 책정된 가격이 단점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새롭게 출사표를 던지는 i40도 왜건은 모두 실패한다는 공식을 깨고 돌풍을 일으킬지 두고봐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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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차암 보기 쉽던 차량이였는데...

이 차가 세상의 빛을 본게 가 벌써 20년이 다 되었으니.. 뉴세피아는 간간히 보이지만, 이제 슬슬 그릴이 바뀌기 전이나 그 이후에 나왔던 1세대들은 찾아보기 힘들어지는 차량중에 하나가 되어버렸다.

당시 자동차 생산 합리화 조치가 이제 더이상 옛 이야기가 되어버리고.. 기아도 이제 야심차게 승용차 라인업을 재정비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프라이드의 성공신화를 봐왔고.. 그동안 마쯔다와 포드에게 의존하던 기아가 우여곡절끝에 처음으로 내놓은 고유모델이며 당시에는 굉장히 세련된 디자인으로 엄청난 사랑을 받게 되었던 차량.. 세피아를 오랫만에 관심있게 보게 되었다.. 필자가 세피아를 패밀리카로서 더이상 타보지 않은것도 벌써 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건만.. 아직까지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마쯔다 B5엔진은 고속에서 발휘하는 최고의 힘으로 도로를 평정했으며... 엄청나게 복잡했던 이퀄라이저창이 인상적이던, 인켈의 고급 오디오까지 기본사양으로 채택되었었다.

이러한 한때 추억의 패밀리카였던 세피아를 모처럼만에.. 보게 되었다. 준 방치차량급 정도 되는 차량이지만 말이다.


자주색 세피아.. 거의 준 방치차량이다보니 깨끗할리는 만무하다.

앞은 기아의 공장엠블럼과 조금은 밋밋한 그릴이 채택된 영락없은 초창기형인데.. 뒤는 지금도 사용하는 엠블럼이 붙어있다.. 어렸을적 필자네 패밀리카는 뭐.. 아무것도 안붙어있던 차량이였지만 말이다.


세피아의 실내... 참고로 기어봉이 빠져있네요.... 당시에 저 내장재 색깔이 무언가 색이 바란것같은 느낌이 그렇게 좋지만은 않았지만, 다시 보니 참 반갑기만 합니다. 저 직물시트도 굉장히 오랫만에 보는 것 같구요.... 지금은 그냥 옛날차 같아보이지만, 당시같이 권위주의적이고 각진 디자인들이 주류였던 시대에는 부드러운 분위기의 나름 진취적인 차량이였습니다.


휠도 신형 알루미늄휠이 끼어져 있네요... 참고로 저 휠의 본래 주인인 아직까지도 자주 보이는 "뉴 세피아"는 94년 말부터, 97년까지 판매되었으며 96년에 5도어 해치백모델인 "세피아 레오"까지도 시판되었습니다. 참고로 뉴세피아부터 1.8 TE엔진이 새로 라인업에 추가되었습니다.(당시 중형차 크레도스에 올라가던 T8엔진의 원동기 번호만 바꾼 똑같은 엔진.) 이후 기아의 부도사태와, 국가가 IMF로 큰 혼란이 있었을때 초기형보다도 더 보기 힘든 비운의 차 "세피아2" 그리고 "슈마"를 거쳐 이후 "스펙트라 윙"까지 세피아의 혈통은 이어집니다. 현대에 인수되고 그 이후 기아의 라인업중 현대와 겹치는 일부 상용차종 위주로 모두 정리가 되고, 현대의 아류라는 느낌이 없지않아 있지만..(지금은 디자인으로 승부수를 걸면서 어느정도 그러한 느낌을 희석해냈지만..) IMF로 결국 무너지게 되기 전 기아는 흔히 말하는 진리의 차를 만들었고, 남들이 다 무모한 짓이라고 외치던 시절에 자신들만의 샤시를 개발해고 성공궤도를 달리던 그러한 회사였습니다.

만일 이 기아가,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 우리나라 자동차의 근대사와 오늘날은 이전과 얼마나 다를지.. 궁굼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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