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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내포신도시에 와서 살게 된지도 1년 하고 약 3개월이 지났습니다. 지난 2012년 말 충남도청이 대전광역시에서 내포신도시로 옮겨온지도 어언 5년 가까이 지났네요. 신도시 조성 당시 계획으로는 현재 개발계획 1단계가 마무리 되었어야 하지만, 이제 얼추 1단계의 기틀이 잡혀가는 수준입니다.


그나마 이제 태동 단계인 경북도청신도시 그리고 도청이 옮겨온지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지만 이제 겨우 영화관 하나 들어서게 된 남악신도시에 비한다면 상황은 조금 나아보입니다. 다만 경기도청이 아직 옮겨가지도 않은 수원의 광교신도시에 비한다면 볼품없는 촌동네지요. 여튼 도청이전 신도시는 수도권의 광교를 제외하고 정말 큰 빛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진을 뒤적이다가 지난 2014년에 촬영했던 내포신도시의 모습들이 있기에 다시 꺼내보았습니다.



2016년 2월부터 입주를 시작하여 현재는 주변 아파트와 더불어 상권까지 형성된 경남아너스빌입니다.


사진 촬영 당시에 3-4층이 겨우 올라가고 있었지만, 이후 경남기업의 법정관리라는 모진 풍파에도 별 탈 없이 공사가 진행되었고 입주까지 진행되었습니다. 여튼 111동의 경우 현재 23층까지 우뚝 솟아있습니다.



도청 그리고 교육청 건물이 소재한 충남대로입니다.


저 멀리 보이는 오피스텔은 이 대로변에서 가장 먼저 지어진 제나우스 오피스텔입니다. 내포 사정을 잘 아시는 분들이라면 '불 났었던 오피스텔'로 이해하시면 될 듯 합니다. 화재로 인해 1~2층 일부 외벽이 그을리고 간판이 타는 등 피해가 있었습니다만 현재는 완벽히 복구되었습니다.


그리고 제나우스 오피스텔 앞으로도 세 동의 오피스텔이 올라간지라 현재로써는 뻥 뚫린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농협중앙회 충남지역본부 신축부지.


지난 9월 오랜 공사 끝에 문을 연 농협중앙회 충남지역본부 부지에는 옥수수가 심어져 있습니다. 지금은 화려한 청사가 자리잡고 있지만 저 당시만 하더라도 내포신도시 내에 비어있는 부지를 주변 농민들에게 무상으로 임대해주어 관리를 맏겼고, 농민들은 옥수수나 콩과 같은 밭작물을 심었습니다.


잡초만 자라게 놔두느니 밭작물을 심어두는게 훨씬 보기 좋지요. 뭐 여튼 넘쳐나는 농협도 좋지만 농협 말고 다른 금융기관도 입점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농협 부지 너머로는 경남아너스빌의 모델하우스가 보입니다.


입주가 모두 끝난 경남기업의 아너스빌 아파트 대신 현재는 라인-EG건설의 이지더원(EG The 1) 아파트 모델하우스 겸 사무실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 아파트 역시 얼추 다 지어지긴 했지만 아직 미분양 물량이 많아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듯 보이네요.



신경천을 건너는 신경 3교 부근입니다.


좌측에 타워크레인이 보이는 자리가 중흥S-클래스. 그나마 어느정도 건물이 올라 간 모습이 보이는 자리가 LH스타힐스입니다. 이 다리 역시 파란색 조명이 설치되어 있어 어두컴컴한 밤에 아름다운 야경을 선사해 주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올라가지 않은 아파트와 어느정도 올라간 아파트 모두 지난해 입주를 시작했습니다.



화재로 전소된 중흥 S-클래스 모델하우스. 그리고 지금은 문을 닫은 모아엘가 모델하우스.


중흥 모델하우스는 지난해 7월 6일에 전소되었네요. 여튼 중흥건설 역시 2차 분양계획이 있긴 하지만, 현재 중흥 모델하우스 자리는 공터로 남아있습니다. 중흥 그리고 이지건설 외에도 공공주택 부지를 낙찰받은 건설사들이 꽤 있긴 합니다만 미분양 물량도 넘쳐나는데 뭐 새 아파트 분양계획이나 있겠습니까. 




여기가 어딘가 곰곰히 생각해 보니 신경천을 따라 조성된 공원과 산책로로 가는 길이 아닐까 싶네요.


현재는 건너편 큰 사거리 근처로 대형 상가건물이 여러동 들어섰고, 멀리 보이는 원룸이나 다가구주택 건물들도 꽤나 쪽수가 늘어난 상황입니다.



현재는 전량 대차되어 영업용으로 볼 수 없는 '에어로 퀸 하이클레스' 버스 역시 보입니다.


타지역 번호판이 달린 버스였는데, 주변으로 등산을 온 산악회 회원들이 단체로 모델하우스 구경을 가던 상황으로 기억됩니다. 



교육청이 보이는 위치로 봐서는 아마 경찰청사거리 근처로 보입니다.


건축중인 건물은 경찰청 사거리에 소재한 상가건물로 보이고요. 요 근래까지 근처 도로를 모두 막아두었다가 개방했던지라 사고가 끊이지 않았었고, 끊이지 않는 사고탓에 요즈음엔 점멸신호 대신 정상적으로 신호등을 운용하고 있습니다.


2009년의 내포신도시. 그리고 2014년의 내포신도시를 거쳐왔기에 오늘날의 내포신도시가 존재하겠죠. 언젠가 지금의 모습을 추억할 날도 찾아올테구요. 앞으로 몇년 뒤에 지금의 내포를 추억할진 몰라도 무궁한 발전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여긴 말이 도시지 시골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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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충남도청이 대전광역시에서 예산군과 홍성군에 새로 조성된 내포신도시로 신청사를 지어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대전이 광역시로 승격을 한 뒤로 20여년동안 관할지역 밖에 있었던 충남도청이 다시 관할지역 내로 들어오게 된 것이죠.


내포신도시도 도청의 준공시기에 맞춰서 준공이 되었고, 불과 5~6년 전만 해도 농장이 있고 논이 있었던 용봉산 밑에 평범한 시골동네는 단번에 온갖 잡놈의 투기꾼이 몰려드는 도시가 되어버렸습니다.


물론 아무것도 없던 농촌마을이 큰 변화를 겪기 까지는 짧은 시간이라면 짧은 시간이 긴 시간이라면 긴 시간이 걸렸지만 아직까지는 2%가 부족한 도시의 모습입니다.



아직까지 개통되지 않은 도로들이 많습니다. 도로를 사방팔방 잘 뚫어두어도 차가 없어요...



도시 배후에 큰 산을 하나 두고 있습니다. 용봉산과 수암산 줄기가 도시 뒤를 감싸고 있습니다.



경남아너스빌 아파트가 올라갑니다.. 기초공사 끝내고 이제 저층을 올리고 있습니다.



온갖 오피스텔들도 많이 생겨났습니다.


수익형 오피스텔이라고 홍보도 하고 호객행위도 하고 합니다만, 당장 이곳에 공공기관 몇군데를 제외하고 일반적인 시민들이 와서 먹고살만한 시설이 부족하다보니 분양이 잘 될지 궁굼합니다. 비슷한 시기에 출범한 세종시에 묻혀서 내포신도시가 비교적 관심을 덜 받는 케이스기는 합니다만.... 그렇게 크고 아름다운 오피스텔은 여기저기에서 올라가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왔을때는 지나가는 차까지 잡아가면서 호객행위를 하던데 그래도 어느정도 분양이 되었나 봅니다. 지나가는 차는 잡지 않더군요.



교육청이 있네요.


도청과 함께 교육청과 경찰청도 내포시로 자리를 옮겨왔습니다. 도청 직원분의 말씀으로는 그래도 내포시에 정착해서 내포시에서 출퇴근하는 직원들도 많이 늘기는 했지만, 아직까지는 대다수의 공무원들이 혼자 와서 원룸에 살거나 대전에서 출퇴근 하는 직원들이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공무원 근무지역 강제이주정책을 펼쳐야 합니다.) 



옥수수가 심어진 밭에는 농협 충남본부가 들어설 부지라는 팻말이 붙어있습니다.


그리고 뒤로도 비어있는 상가건물들이 꽤 많이 보이지요..



중소규모 오피스텔 모델하우스가 몰려있습니다. 도시 자체가 그렇지만 썰렁합니다..



저 멀리 공사중인 아파트 단지. 그리고 조형물이 올라가 있는 교각입니다.



이쪽은 그래도 중견기업급 되는 건설사들의 아파트 모델하우스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중흥 S-클래스, 경남아너스빌, 모아엘가 등등.... 합덕같은 지역까지 와서도 500만원만 투자하면 아파트를 살 수 있다는 현수막을 이래저래 붙이고 다니는데 분양이 잘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 멀리에는 흔히 볼 수 있는 원룸들이 보입니다. 원룸단지라 보면 되겠지요...



조용한 도시에 모아엘가 모델하우스는 단체 관광객이 방문합니다.


버스는 광주 번호판을 달고 있더군요. 아마 산악회나 친목회등에서 등산을 왔다가 구경삼아 들린 듯 해보입니다. 조용한 내포시에 실제 계약을 하던 아니던간에 구경오는 손님이라도 있는 모델하우스 직원들은 그래도 기분이 좋을겁니다.



저 멀리 조그만하게 보이는게 도청 건물입니다...


낮고 넓게 건물을 지어놔서 그런지 지금도 찾기 힘듭니다만 나중에 높은 건물들 여러채 올라가고 하면 더 찾기 힘드리라 생각되네요.



신호는 대부분 점멸신호고, 수암산 끝자락까지도 공사가 진행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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