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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철도 광복절을 전후로 막바지로 달려가고있고 그동안 사람을 죽일듯 달려들었던 더위도 끝을 보이는 듯 합니다. 조금 더 더울때 갔더라면 훨씬 더 좋았을곳이 있었을텐데 말이네요. 오늘 소개할곳은 동굴입니다. 거기다가 어두운 동굴속에서 촉박하게 움직인다고 제대로 나온 사진도 없네요..


사진만 개판이였으면 그나마 할말없이 넘어가도 되었을것을... 

이놈의 CF카드가 말을 안들어서 포맷을 하려고 보니 포맷도 안됩니다. 

(아... 지금 카메라 바디에 집어넣고 포맷하니까 되네요.. 다행..ㅠ)


이왕 글을 써야하는거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도록 다음 로드뷰와 태백시청 홈페이지의 힘을 빌리도록 했습니다. 중간중간 로드뷰와 태백시청 홈페이지에서 발췌한 사진이 많이 튀어나올테니 부디 이점 양해해주세요^^



자, 다음 로드뷰의 힘을 빌렸습니다. 다음 워터마크가 말해주고있지요. 


이곳은 용연동굴의 입구입니다. 주차장과 매표소가 있고 기념품점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소형차(승용차/승합차) 주차장은 매표소 앞쪽으로 보도블럭을 깔아둔곳에 있고, 버스를 비롯한 대형차량은 매표소 뒷편에 주차장이 마련되어있습니다. 이 글을 참고하실 대부분의 분들께서는 거의 대부분 소형차를 타고 오실테니 매표소 앞쪽으로 주차를 해주시면 될테고, 주차요금은 2000원입니다.



보통 동굴이나 땅굴이라는 관광지는 산 꼭대기에 혹은 일반인이 들어가기 힘든곳에 있습니다. 

걸어서 동굴을 보러 올라가라고 했으면 이 여름날 안올라갔습니다. 열차라고쓰고 수송트럭이라 읽는 디젤기관이 달린 정체불명의 수송버스가 있으니 올라갔지요. 그런거 없었으면 때려 쳤습니다..;;


이 용연열차를 타고 산꼭대기까지 올라가는겁니다. 입장료에 이미 다 포함되어 있구요.



입장료는 성인기준 개인이 3500원입니다. 여기에 어린이가 학생이 몇명 더 붙고 주차비까지 붙을수도 있겠죠. 제가 입아프고 이해안되게 글로 쓰는것보다 태백시청 홈페이지에 깔끔하게 표로 정리되어있어서 잠깐 발췌를 해왔습니다. 제일 하단에 링크를 걸어둘테니 태백시청에서 이 용연동굴을 어떻게 설명해두었는지 확인해보고 싶으시다면 확인하시면 되겠습니다.


 

더이상 말은 아끼겠습니다. 주차료의 단체 산정기준이 조금 애매모호한데, 두사람 이상만 오면 단체로 들어가는건가요(?)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받는지는 확인이 좀 더 필요해보일 것 같습니다.

**(혹시 자세히 아시는분이 계시다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용연동굴로 열차는 올라갑니다. 

경사가 꽤 쎈편인데도 어디서 많이 듣던 엔진소리와 함께 그럭저럭 잘 올라갑니다.


위에서부터 소개를 할 수 있는 타이밍을 잡지 못했는데 지금이라도 간단히 동굴에 대한 소개를 할 수 있는 타이밍이 생긴 것 같아서 잠깐 언급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래 노란박스 안을 보시면 됩니다.


일단 용연동굴은 강원도 지방기념물 제 39호로 지정되어있으며 지역주민들은 그냥 용수굴 용소굴이라는 말로 부르기도 한다 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높은곳에 자리잡은 동굴이라고 하던데 무려 해발 920m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약 38종의 동물이 서식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또한 동굴의 길이는 843m1km에 육박하는 길이를 자랑할정도로 광대합니다. 그냥 기다란 동굴만이 아닙니다. 과학책에서나 볼법한 다양한 석순과 석주 그리고 석화 동굴진주 동굴산호등 석회동굴에서 볼 수 있는 모든것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거기다가 동굴 중앙의 광장처럼 되어있는 곳에는 인공적인 분수도 만들어두었는데, 자연적인 조형물들과 이 분수와 어우러지는 광경은 예술입니다.



정상에 다 도착해서는 안전모를 쓰고 내려가도록 지시합니다. 입구에서부터 쭈욱 내려갈때는 왜 안전모를 쓰라고 하는지 이해를 못할수도 있겠지만 동굴 중간만 가도 금방 느낍니다.


"안전모 없이는 도전조차 상상하기 힘든곳이라는걸.........."


그렇게 안전모를 쓰고 내려가던중에 정말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것들을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아래 사진들 세장만 내려보시죠.



Nananananana E-E-E-Electric Shock!


그래도 개성있는 사진이 나오긴 했습니다. 사실 저는.. 이걸 찍으려 했던건데...

차마 플래시를 발광하지 않으려던 개념시민은 전기충격같은 사진을 얻었습니다.

여기서 잠시 태백시청 홈페이지의 힘을 빌려보도록 하죠.



이리 아름다운 광경을 노이즈 억제를 포기하더라도 셔속이 원하는대로 나워주질 않습니다. 


삼각대라도 갖고갈걸 열심히 후회해봐야 뭘 알겠습니까. 태백시청 홈페이지에서 그래도 이렇게 잘 찍어두어서 여러분들께 저 빛의 형체에 대해서 조금 밝혀드릴 수 있으니 다행입니다.



그리고 안전모가 꼭 필요한 이유! 


이건 태백시청에서도 사진을 찍어두지 않았고 로드뷰 촬영하러 다니는 모닝이 동굴 안에까지 들어올수도 없으니 결국 제 사진을 이용해서 조금 설명해볼까 합니다. 이것보다 더 심한곳들이 그러니까 주의해야할 곳이 몇군데 있습니다. 아니 상당히 많습니다. 정말 어린아이들조차도 고개를 숙이고 가야할, 성인들은 거의 기어서 통과해야할 수준인곳도 있고 언제까지 고개를 숙여야하나 위를 돌아보다가 안전모가 돌에 닿는소리도 이곳저곳에서 흔히 들을 수 있습니다.


만약에 그냥 맨머리였다면.. 이미 까지고 혹나고 난리났겠죠;;


자 아래부터는 이것저것 설명도 많이 되어있고 작품명도 굉장히 잘 지어놓았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사진들이 이어집니다. 이건 어디 내세우기도 좀 그렇고, 더보기로 접어둘테니까 꼭 보고싶으시다면 펼쳐서 살펴보십시오.. 뭐 권장은 안합니다.




동굴 안을 지나가면서 관람객들에게 더 자세히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위해 설치된 조명들 주변에 꼭 이끼가 끼어있더라구요. LED 몇발 박아둔 조명에도, 할로겐램프로 된 조명에도 주변엔 살짝씩 이끼가 끼어있습니다. 


햇볕이 전혀 들지않는곳에서 식물을 보았다니.. 참 신기하기만 할 따름입니다.



이것도 폰카로 찍어서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보단 태백시청 홈페이지에 올라온 사진을 이용했습니다. 거 참.. 그렇게 시원한 동굴을 한바퀴 돌아 나와서도 문제가 발생하더군요...




동굴과 밖의 온도차때문에 습기가 찼습니다. 사실 비가 온지 얼마 되지않은 시점이라 해도 없고, 렌즈 자체의 온도가 낮기때문에 부드러운걸로 닦아내도 역시나 뿌옇게 묻어납니다.


당연히 이러니 사진을 더 찍을수가 없었지요... 그렇게 동굴 앞에 안전모를 반납하고 다시 열차를 기다립니다. 참고로 하행열차는 정각에 출발하더군요. 사람이 다 차던 덜차던 10분이면 10분, 20분이면 딱 20분으로 떨어지는 시간에 운행이 됩니다.


그리고 굳이 열차를 타고 내려가는것만 있는게 아닙니다. 작은 등산로가 마련되어있는데 충분히 걸어서 내려가실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열차가 출발하는 시간이 한참 남아있어서 그냥 죽치고있다면 걸어내려오는게 훨씬 더 빠르고 이득입니다.




빈약하지만 용연동굴에 대한 짧은 후기가 이렇게 끝이났습니다. 언제 한번 더 갈 기회가 있다면 내용을 좀더 보완해서 자세히 서술하던지 했으면 하는데 언제쯤이 될지도 저도 장담은 못하겠습니다...


제가 사진을 발췌해다가 썼고, 이 글보다 좀 더 자세히 용연동굴에 대해서 나와있는 태백시청 관광안내 페이지를 알려드리려 합니다. 제가 커미션받고 그러는 링크가 아니니 부담없이 클릭하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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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29세 도태남의 처절한 삶의 기록. sinc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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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나름 멀리에 위치한 관광지를 소개해보려 한다.

대한민국 동부전선의 최전방.. 6.25이후 대한민국의 영토로 편입된 38선 이북의 강원도 양구군에 위치한 관광지이다. 인구가 2010년 2월말 현재 2만 1404명에 불과한 대한민국 중동부전선 최전방의 양구군.. 펀치볼을 비롯한 이런저런 6.25 고지대 전투지, DMZ와같은 문화관광지에 그리고 지자체에서 대대적으로 밀고있는 한반도의 중심이라는 슬로건까지..(한반도 배꼽축제라는 행사도 기획하고, 파로호에는 한반도모양의 인공섬을 만들었다고 한다.) 인구는 적어도, 관광지는 매우 알찬 양구군의 대표적인 관광지라 하면, 양구통일관-제4땅굴-을지전망대로 이루어지는 이 코스가 아닌가 생각한다. 오늘은 필자가.. 안개낀 아침부터, 이 코스를 돌게 되었다.

1996년에 펀치볼분지 북단에 세워진 양구통일관.. 이 양구통일관은 제4땅굴과 을지전망대를 가기 전 출입에 대한 업무를 마치고 가야하기 때문에 꼭 들려가야 하는 곳이지만,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데에 대한 전체적인 시설은 약간 아쉬웠던 편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깔끔한 박물관에는 제1 전시실과, 제 2 전시실 그리고 전쟁기념관과 625시절 운용되었고 지금은 퇴역한 군의 장비들이 외부에 전시되어 있다. 제1 전시실과 2 전시실에서는 북한의 생활과 생활용품 그리고 실상에 관련된 자료들이 정리되었고, 모아져있었다.


북한에서 생산된 제품들, 그리고 북한의 생활용품들.. 거기에다가 남북 합작으로 만들어진 북한제 CRT 모니터에, LG(당시 "금성[Goldstar]")의 OEM 방식으로 생산된 TV까지 있었다. 다소 작은 제 1전시실과 제 2 전시실 안에 빼곡히 전시해놓은 제품들을 좀 더 넓은 전시실에 더욱 상세히 전시해놓았으면 어땠을지 궁굼하다.


양구통일관에 마련된 전쟁기념관. 이 건물 3층 전망대에서 바라본 양구통일관 주차장이다. 앞에 크게 세워진 아홉개의 기둥은 6.25당시에 양구군에서 있었던 전투지의 해발 고도들처럼 높이 솟아올라있다. 전투의 이름과 참전한 아군과 적군에 관련된 정보와 함께 각 전투지의 해발고도가 쓰여져 있었다. 이 전투들을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진 전쟁기념관은 이 상징물들을 지나서, 심오한 느낌을 주는 조형물들을 지나 들어갈 수 있게 된다. 볼거리는 충분했지만, 낙후된 시설과 제대로 작동이 되지않는 시설도 있어서.. 그리 좋은인상을 심어주지는 못했다.


다음으로 향한곳은 통일관으로부터 약 5km 떨어진 제 4 땅굴이다. 북한군이 유사시 이용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땅굴중 우리나라가 가장 최근에 발견한 땅굴이며, 다른 땅굴을 포함하여 유일하게 전동차가 다니는 곳이다. 1990년 3월 3일 군사분계선에서 약 1.2km 떨어진 곳에서 이 땅굴이 발견되었다. 이 땅굴을 발견하기 위해 우리군은 381m나 화강암을 파들어갔고, 90년 3월 제4땅굴 소탕작전 당시에 조선인민군이 설치해놓은 지뢰를 탐지해서 자신의 몸을 던져 백두산부대 소대원의 목숨을 구해주었다고 한다. 이 忠犬 헌트님은 당시 군견 최초로 "소위"라는 계급으로 추서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땅굴의 입구 옆에 그의 충견묘가 자리잡고 있다.

먼저 제4땅굴에 입장하기 전, 땅굴에 관련된 영상을 보고.. 땅굴로 들어갔습니다. 역시 땅굴 안은 사진촬영이 금지된 곳이라, 촬영할 수 는 없었지만..(맘만먹으면 촬영했을수도..;;) 조선인민군이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파놓은 땅굴과, 그 땅굴을 찾기위해 우리군이 파고 들어간 흔적은 아직도 생생히 남아있었으며, 전동차를 타고 군사분계선이 있는 곳까지 가서 북한군이 만들어놓았던 레일과 주기적으로 넓게 만들어놓았던 구역들을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제 4땅굴 주변에도 역시 퇴역한 육군 정찰기와 기념비가 있었습니다.


제4땅굴에서 바라본 휴전선. 저 위로 보이는 철조망을 지나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의 땅이란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있는 전망대 중에 가장 북한과 가까이에 위치한 "을지전망대"를 올라가면 다 볼 수 있는 구역들이였다. 저 높은곳에서 활약하고있는 대한민국 육군 제12보병사단 을지부대의 장병분들은 매번 수고가 많으시다..


그렇게 우여곡절끝에, 험한 고갯길을 지나 을지전망대에 도착한다. 사실 안개때문에 사진을 찍어도 잘 보이지 않고, 산 한가운데의 매서운 겨울바람과 바로 옆으로 보이는 철조망 이후의 지역은 "촬영금지"딱지가 역시나 붙어있었기에, 이번에도 사진을 찍기는 거의 포기하다시피하고 전망대 위로 향했다.

전망대 2층에는 을지부대의 활약상과 봉사 공헌활동등에 대한 소개가 되어있었고, 망원경에 500원을 넣고 북쪽의 군사분계선과 초소를 볼 수 있었다. 양구군청 공무원이자 해설사이신 분의 해설을 듣고, 안개가 끼지 않으면 금강산도 보이고 여기저기 다 보인다고 했지만 이리저리 살펴보아도.. 역시 안개때문에 볼 수 없었다.

아침부터 안개가 자옥하게 끼었고, 역시나 보안이 중요한 군사시설들이였기에 사진으로 미처 담지 못한 부분들이 굉장히 많았었지만, 통일에 대한 열정은 나를 막을 수 없었다. 나라를 위해 고생하시는 군인분들도 계시고, 분단된 나라에서 생이별을 하게 된 사람들도 많은 이 나라. 3대세습이니 핵개발이니 하면서 같은 민족끼리 총을 겨누고 굳이 싸워야만 하는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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