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필자의 어렸을적 기억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곳이 얼마전 사라졌습니다.

바로 일곱살때부터 다니기 시작해서, 초등학교 5학년때까지 다녔던 한 피아노학원입니다. 얼마전 수리를 거치더니만 지금은 수학학원이 되어있더군요..
초등학교에 취학하기도 전 미취학아동인 어린 시절부터 초등학교 고학년때까지, 큰 영향을 미쳤던 20년이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한결같이 이자리에서 지나갈때마다 건반소리를 들려주던 피아노학원이.. 얼마전까지 잘 있다가 사라져버렸더군요...

피아노학원을 다니면서, 그 이전에는 단지 피아노가 어떻게 치는지도 몰랐다가.. 그 어린 나이에 피아노와 음악 그리고 예술적 감각을 익힐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나름 절대감각 뺨치는 음감도 지금 가질 수 있게 되었고요.

피아노학원에 다니면서, 몇가지의 일화가 있었습니다.  그 많던 이야기중에 몇가지만 해보고 나중에 호응이 좋으면 기회가 될때 해보겠습니다.

애피소드1

다닌지 얼마 되지 않아서, 피아노학원에 있는 대형 소화기가 굉장히 궁굼하게 여겨졌었고 그때도 궁굼증을 풀기 전까지는 끝까지 달라붙었던 어린 이 블로그의 영자 철/서는 몇일째 선생님께서 몇번 연습을 하고 오라고 하면 연습을 하고도 그 소화기에 앉아서 소화기를 만지고 있다가 다 했다고 원장선생님께 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소화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던 어느날 필자는 유아용 프로그램에서[각주:1] 소화기 사용법에 대한걸 보고 핀을 한번 뽑아보겠다는 도전을 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은 겁이 나서 뽑지를 못하고, 한 이틀정도 지나서 눈을 꼭 감고 핀을 뽑았습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나오지 않은 필자는.. 살짝 손을 손잡이에 갖다 대보았습니다. 그런데도 역시나 나오지 않더군요.. 그렇게 한 이삼일정도 지나서 그 어린아이가 손에 힘을 줘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소화기는 혼자 넘어지면서, 하얀 가루를 사방팔방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필자는 필사적으로 가장 멀리있는 방까지 도망가게 되었고.. 무슨일인가 뛰어나온 원장선생님과 강사선생님은 주변에 가장 큰 방에서 연습을 하고 있던 형에게 먼저 물어보고 그 주변에 있던 사람들 거의 모두에게 금방 탐문수사를 해보고, 곧 저를 찾았습니다. 저는 선생님께서 찾기에 달려갔는데 선생님 왈

"저 소화기 혹시 네가 만졌니?"

"...... (잠시 침묵 뒤 소리내어 운다)"

그렇게 처음으로 친철하고 잘해주시던 원장선생님께 혼났습니다. ㅠㅠ 다른 애들은 혼내도, 나는 안혼내던 선생님한테 혼나다보니 큰 충격이 있었지요.. 그렇게 혼나고.. 선생님 혼자 뒷정리를 하신 뒤 나중에 소방서였는지 어디였는지에서 3만원인가 주고 충전을 하셨더라고요... 어쩌다보니 금전적인 손해까지 미쳐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 값은 요구하시지 않으셨던걸로 지금 생각하면 매우 죄송한 일이죠.



애피소드2

두번째 애피소드에 들어가기 앞서 한창 초등학교 2학년때 큰 이유는 모르겠지만, 반항심리가 절정에 이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아직까지도 모르지만, 당시 담임선생님이셨던분이 나이가 좀 있으셨는데 할머니선생님이 싫다고 매번 띵깡을 놓고 하던 시절이였습니다. 그런데 우연찮게도 할머니와도 부모님과도 잘 알고있던 분이였습니다. 그 성격의 후폭풍은 피아노학원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도중에 학원을 잠시 그만두었다가 아파트에 예전에 부친과 같은 회사에 근무했던 분 딸인 누나가 피아노 개인교습을 몇달동안 했었다가, 그 누나 사정으로 한 5개월만에 피아노학원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2학년.. 매번 선생님한테 혼나고 그러한 인생의 사이클을 돌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학원은 열심히 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조금 일찍 끝나서 학원을 일찍 가게 되었습니다. 그날 애피소드 1에 있었던 소화기와의 대각선방향 벽에 액자가 걸려있었습니다. 피아노학원 몇회 연주회라고 그 당시에도 한 10년전 사진들이니까 지금으로치자면 20년도 더된 사진들이겠죠.. 그 액자중 하나를 잘못하다 그 옆에 유선줄을 만지다 떨어뜨렸습니다. "쨍그랑" 깨지는 소리와 함께.. 역시나 혼나게 되었죠. 이때도 역시 선생님께서 다 유리를 치우시고 그 액자를 유리가 없는 상태로 걸어놓으셨던 기억이 납니다.. 흐음.....




애피소드3


학원차 이야기입니다. 학원차가 당시만해도 지입의 형태로 이루어졌습니다. 스타렉스 그레이스 베스타 이스타나 등등 학원차로 타본차도 여러가지입니다. 그러다가 원장선생님 남편분께서 제가 거의 그만 다닐때쯤 아예 차량운행을 하게 되어서 얼마전까지도 했던걸로 알고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때로 기억하는데.. 당시에 지입운행을 하시던분이 곱창집을 운영하다 얼마전 장사가 잘 되어 아파트 앞에 새로 건물을 지었습니다. 동생 친구 아빠이기도 하고요. 어찌되었건, 당시에 살던 아파트는 당시 15인승 그레이스에서 바꾼지 얼마 안된 9인승 이스타나가 꽉 찰정도로 원생이 타면.. 가깝기에 제일 먼저 가던곳이였습니다. 어느날 필자는 매번 제일 먼저 내리는것이 싫어서 한번 아저씨께 저 제일 마지막에 내려달라고 했었습니다. 당시 아저씨曰

"다 돌면 두시간도 넘을텐데 괜찮겠어?"

"네.. 괜찮아요"

그렇게 차는 이리저리 시골길을 건너 한참을 멀리 가고 있었습니다. 한시간정도가 되자, 집에 제가 돌아오지 않은걸 알게 된 당시 큰엄마(5촌 당숙인데 쉽게 이렇게 불렀습니다.) 태권도장이자 학원에서[각주:2] 초등학생을 가리키던 모친에게서 학원에 전화를 하고 그 전화가 학원차로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차에 있다고 하고 왜 아직도 안갔냐는 대답에 "얘가 먼저 늦게 내려달라고 했다고"아저씨가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집에 오니까 6시정도... 모친 퇴근시간이 6시 30분이였던걸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오자마자 오질나게 맞고 또 혼났습니다.


 


(2010년 6월 11일의 모습. 로드뷰 캡쳐)

그렇게 결국은 추억속으로 사라저벼린 어렸을적의 그 장소..
특유의 푸세식 화장실도, 세대정도 있었지만 한번도 사용하는걸 보지 못했던 80년대 제조 애플컴퓨터 그리고 귀신이 나올것만 같이 무서웠던 연습실 몇군데.... 보고싶어도 볼 수 없다니......

이후 그만 다니게 되고, 2007년엔가 우연히 원장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지만.(굉장히 반가웠음) 그 이후 이 추억의 장소는 나중에 웃으며 찾아가고 싶었지만 영원히 찾아갈수는 없이 기억속에만 남게 되었다. 지금은 아예 경기도쪽으로 이사를 가서 새로운 사업을 하신다고 주어듣게되었는데.. 어디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실지는 잘 모르겠어도, 20년 넘게 해오던 피아노학원을 접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시는 만큼 꼭 그 일이 잘 되셨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 글을 잘 보셨다면 손가락버튼을 눌러주세요. 로그인없이도 가능합니다.
  1. 당시 기억하기론 KBS 2TV에서 오후 5시정도에 방영했었던 "혼자서도 잘해요"라는 프로그램을 봤을것이다. [본문으로]
  2. 어렸을때는 그래도 운동신경이 바쳐주었던 필자는, 이곳에서 지금은 장롱증이 된 1품을 따게 되었다. 2000년 말 폭설로 인해 체육관 지붕이 파손된 이후, 이 체육관이자 학원 역시도 추억속으로 사라지게 되었고.. 역시나 필자가 지금처럼 잉여스러운 몸을 가지게 된데에 주요한 역활을 하게 되었다 [본문으로]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티스도리

만 29세 도태남의 처절한 삶의 기록. since 2009

,
반응형


5부작 북경여행기 그 세번째 시간까지 왔다. 만리장성에 가기 전, 엄청나게 큰 관광객들을 상대하는 식당에서 밥을 먹고 그날의 바람이 굉장히 많이 불던 기상사정때문에 만리장성에 케이블카를 타고 갈 수 없었었다. 케이블카를 타지 못한 대신 발맛사지가 따로 추가되었는데.. 그러면서 약간의 관광 스케줄이 바뀌어 차를 타고 만리장성 앞에까지 가서 등산하듯 올라갔다 올 수 있는 코스로 만리장성을 가게 되었다. 실제 만리가 넘는 만리장성.. 인류의 역사상 최대의 토목공사로 불리우는 이 공사..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봐도 보인다는 그곳.. 바로 만리장성이다.

경사가 매우 심한 돌계단을 밟아가면서 만리장성을 오르고 있는데.. 어디서 많이 보던 글씨가 보였다.. 아 바로 한국말이였다.!


"니가 더 호구다 ●●아!"

'진시황은 호구였다!!ㅋㅋ' 어떤 개념충만한 이름에 홍자가 들어가는 대한민국 국민이 2010년 7월에 와서 써놓고서 갔다. 뭐 어느 단체에서 몇월 몇일에 다녀갔다고 쓰는것은 어느정도 애교로 봐줄만하지만, 이건...... 한국말을 알고있는 중국인이 와서 본다면 결과적으로 한국인 전체가 욕을 먹는 행태가 되는 것이다. 당장 이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한국인이 봐도 참으로 한심하다고 생각하는데... 중국인을 비롯한 외국인들에게 이런 호구들이 우리나라에 대한 그리 좋지만은 않은 인식과 그로인한 외교적 문제를 만들어내는 현실이다.

그리고 참고로 말하자면, 진시황이 있던 진나라때 쌓던 장성은 거의 다 무너지고 없단다.. 후대에 가서 다시 쌓은것이라고 하는데.. 그리고 저 낙서가 있는곳은 시멘트가 발라졌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최근에 보수공사를 한 부분이다.


"가도, 또 가도 끝이없네.. 그래서 만리장성이구나.,."

그랬다.. 저건물까지 올라가야지.. 하고 올라가면 또 가까운데에 초소가 하나 있는듯하고 해서 참 오랫동안 굉장히 많이 올라갔었다.. 하지만, 시간의 제한이 있었기에.. 다 가보지는 못했다.. 아마도 다 가보려면 한 1년은 걸리겠지만 말이다...


"저기가.. 박태환이........"

전신맛사지는 원래 상품에 포함되어있었고, 거기다가 케이블카를 타지 못한 대신에 발맛사지까지 받게 되었다.. 너무 어린나이에 맛사지를 받는건 아닐 지 모르겠었지만.. 어쨋든 맛사지를 하는 곳이 올림픽촌 내의 아시안게임 경기장에 있기에 올림픽 경기장을 지나가게 되었다. 저기.. 파란건물이.. 베이징 올림픽 수영경기장으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저곳에서 박태환이라는 우리나라 선수가 불리한 판정과 중국인 관객들의 야유, 편파적인 응원을 모두 떨쳐내버리고 많은 메달을 목에 걸었었던 곳이다. 들어가 볼 수 는 없었지만, 다행히 신호가 걸려있어서 사진은 수월하게 찍을 수 있었다.


"진짜 새둥지네.."

새둥지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베이징올림픽 주경기장이였다. 마침 신호가 닿아주지 않는 바람에.. 사진은 제대로 찍을 수 없었지만, 2008년 8월 8일 8시 8분 열린 베이징올림픽의 감동만큼은 모두 느낄 수 있었다. 그리하여 1시간 30분의 맛사지를 마치고,. 

대택문이라는 초 호화 식당으로 향했다. 여기도 역시 벤츠 BMW 아우디같은 독일 명차브랜드의 자동차만 있었고.. 사람도 그렇게 많지까지는 않았다. 광어 비슷한 생선의 회로 시작해서 실제 새가 지저귀는 소리까지 들어가면서 최고의 특식을 만끽할 수 있었다. 거의 다 먹으니.. 디너쇼를 시작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디너쇼를 보고 오지 못했다는게.. 한가지 한으로 남는다. 그리하여 다른분이 약 4년전쯤에 이 식당에서 가서 찍은 동영상 하나를 준비했다. 4년전과 지금은 약간 다른것 같지만, 거의 비슷하다.

**더보기를 클릭하세요**



12월의 마지막 밤. 2010년의 마지막 밤.. 참고로 그날이 동생의 생일이다. 예상치도 못했지만, 그 5성급 호텔에서 생일인 투숙객을 위해서 케익을 준비해 주었다고 한다.. 예상치도 못했던 그 케익은 다음날 버스에서 다 같이 먹게 되었다.

그리고.. 방에 들어가서 일본 NHK로 한국시간에 맞추어 타종식을 하는것을 보았다. 그러면 우리나라 시간으로는 0시지만, 중국은 11시이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옆방에 물어볼 일이 생겼는데.. 객실 내에 있는 전화기를 잘못만지게 되어 그 전화가 카운터로 가게 되었다. 카운터에서 받은 중국인 직원에게 잘못 걸었다는 의사 표시를 하지만, sorry라는 말만 찾고.. 나보다도 영어가 더 짧았던 것인지.. 결국 잠시 후 방으로 올라오게 되었다. 방으로 올라와서도 의사소통이 안되고.. 그가 또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서 나를 바꾸어주더니.. 이제는 더 높은사람까지 오게 되었다.. 그들과 의사소통은 되지 않고.. 나는 단지 옆방에 전화를 걸려고 했는데 잘못걸어서 미안하다는 의사를 전달하려고 했는데.. 이제는 더 높은 매니저까지 나타난 것이다.. 이런...... 핸드폰 번역기로 "한국말 하는 사람을 불러주시겠습니까"를 들려주고 "죄송합니다. 의도한것이 아니였습니다"를 들려주니.. 이사람들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결국 그들은 일단 Please wait a Moment 라고 하고 방에서 나가고.... 그러다보니 그들과 실랑이를 하면서 한 해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미 중국 현지시간으로 2011년 한 해는 시작하고 10분이나 지난 사이였다.. 그렇게 누워서 TV를 돌리다가 생방송으로 나오던 원더걸스의 신년 축하공연도 보고 있었는데.. 잠시 후 전화벨이 울렸다.

"가이드입니다. 무슨일입니까."

새해 벽두부터 호텔까지 급히 온듯하다.. 그리고 한국어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이 일은 결국 일단락되었다. 이 사건은 다음날 아침 일행들에게 급속도로 전파되었고, 나도 영어와 중국어를 못해서 생긴 하나의 애피소드로 영원히 기억하게 되었다.(그러게 영어좀 배워놔야지?)

셋째날, 2011년 1월 1일

벌써 여행은 셋째날까지 오게 되었다. 

2011년 1월 1일.. 이제 2011년이다.. 지난밤 커졌던 일의 충격이 가시지 않았는데.. 첫번째 방문지는 동인당이였다. 우황청심환을 만들어내기도 했고, 호랑이연고로도 유명한 중국 최고의 약국이자 병원이라 보면 되겠다. 중국 당나라시절부터 있었던 동인당은 1940년대부터 공산당 국영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이미 둘쨋날 라텍스 쇼핑센터를 들려서 몇가지를 구매했지만, 이곳은 어느정도 쇼핑센터의 성격을 띄고있으면서도 국가에서 의무적으로 관광을 오는 외국인들에게 그동안 농약검출 중금속 검출등 그리 좋지않은 이미지로 여겨졌던 중의학(우리나라의 한의학)에 대한 의미지를 회복하고자 들리게 하는 코스라고도 한다. 역사도 오래되었고, 그곳에서 일하는 우리나라 교수격인 한의사님께서 맥을 잡아주셨는데.. 바로 맥을 잡자마자 그동안 겪어왔던 증상에 대한 설명을 속이 다 시원하게 했다. 이전에 만난적도 암시를 준 적도 없는데 말이다.

그렇게 몸 상태가 건강한 사람에게는 약을 권하지 않았고 어떤것을 많이 먹어라 조언을 남겨주었는데.. 우리가족중 본인과 본인의 父는 매우 심각해서 꼭 약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4개월만 먹으면 완치가 된다는데. 약값은 무려...........

父 4개월치. (2종류) 240만원

본인 4개월치 150만원

굉장히 부담스러운 가격이였다. 거기에다가 母에게도 약을 권하는데.. 그 약값도 백만원이 넘어갔다.. 결국 약 500만원어치의 약을 카드로 긁게 되었는데.. 한도 초과로 母의 약은 1개월치밖에 사 올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근 500만원이다.

3년된 똥폰이 갤럭시S도 혹은 그 동급의 전화기로 교체될 예정이였는데.. 그것도 날라갔다... 이렇게 내가 건강하지 못했던 것인가.. 어찌하였든 이 약을 먹고서 효과를 봤다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고.. 당장의 플래그쉽 핸드폰보다도 그놈의 고질적인 비염을 4개월이면 완치할 수 있다는데.. 제발 좀 비염이 퇴치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큰 충격 이후, 다음으로 가게 된 곳은 천단공원이였다. 옛날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인데.. 여기에는 어르신들이 나와서 사교댄스를 즐기고 장기 마작 제기차기를 즐기며 우리나라의 탑골공원처럼 어르신들이 쉬고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의 기년전은 중국 베이징의 홍보동영상에도 등장할정도로 유명한곳이고.. 3층짜리 원형건물로서.. 천장까지 기둥이 닿아있는.. 정말 어마어마한 건축물이였다.


이 3층짜리 둥글둥글한 건물은 금으로 기둥에 일일히 도금을 하고, 화려하게 지어졌다고 한다. 명나라 영락 18년에 건조된 이 건물은.. 역시 청나라때까지도 사용되었는데.. 5곡의 풍작을 기원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금장으로 이루어진 기년전 내부... 천장이 없다보니 천장도 뻥 뚤려있고, 공간도 넓은편이라.. 우리집이 이랬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저씨 근무태만 아닌가요?"

어르신들이 모여서 장기를 두고 카드놀이를 하고 바느질을 하고.. 이리저리 여가를 보내는 이곳에서는 보안을 담당하는 보안요원조차도 한가로이 문자를 보내고 있다.. 보안요원도 제복을 입고 공안과 비슷한 역활을 하고있는데....... 문자를 보내고 있다니..!


다음으로 가게 된 곳은 북경수도박물관이였다. 우리나라의 국립중앙방물관격인곳인데.. 2008년 새단장을 한만큼 시설은 굉장히 좋았다. 거기다가 우리나라 박물관과는 다르게 허용되는것도 있었으니.. 바로 아래로 가보면 되겠다.


"오 사진촬영이 허용된데!!!!!!!"

사진촬영은 허용된다. 단 플레시를 터트리거나 삼각대 사용만 금지된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어 설명은 지원되지 않는 박물관인데다가.. 영어를 보고 대강 내용을 유추하는데에 그쳤다. 한가지 기분이 나빴던것은 고조선을 우리나라의 역사로 쳐주지 않고, 중국의 역사로 쳐준다는 내용이였다. 박물관에서 본 기원전 지도와 그 이후로의 역사지도라고 표시해놓은것에 의하면 한반도까지도 다 중국의 영토로 들어가있었다. 거기다가 고구려는 어느정도 인정해주는듯한 분위기였지만, 발해까지도 우리의 조상이 아니라 중국의 변방민족으로 들어가는 분위기니..참 묘했다. 


이 강아지.. 병마용갱같은걸텐데.. 어쨋든 동양의 토종견보다도 서양의 견종을 더 닮았다는 느낌이 굉장히 많이 들었다... 역시나 박물관에는 고대 중세의 역사뿐만 아니라 공산주의 사상이 들어서게 된 데에 대한 전시와 모택동에 관련된 영상물들 또한 존재했다.

그리고 한식당에 가게 되었는데..... 정겨운 한식과 불고기에 밥을 무려 세그릇이나 비웠다...;;; 여기서 한식을 먹게 된 것이 이후로 먹게된 중국음식에대한 실증을 더해줬다는 후문이....


다음으로는 북경의 명동, 왕부정거리를 가게 되었다. 중국 전역에서 신정연휴를 맞아서 북경으로 오게 된 지방사람들까지 몰려서 평소보다도 더 붐비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롯데백화점도 이곳에 입점해있는데다가, 이런저런 백화점에 명품샵이 사람들을 유혹하였다. 약 2시간정도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는데.. 그동안에 이런저런 건물에 들어가서 도대체 여기는 뭐가 있는것인가 보기 시작했다.


왕부정의 역사에 관련되어서 써놓은 글인가보다.. 뭐라고하는지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우물이 있어서 왕부정이라는 이름이 생겼던 만큼, 아마도 우물의 터가 아닌가 싶다.


"대륙에서도 이런 작은책을 보다니!!"

왕부정거리를 걷다가 들어가게 된 베이징 외국어서점(BEIJING FOREIGN LANGUAGES BOOKSTORE)의 4층에서 보게 된 광경이다.. 읽기도 힘들게 작은 이 책들을.. 거대하고 웅장함이 상징인 대륙사람들이 보다니...;;;;

그리고 반가운것들도 많이 보았다. 대한민국 가수들의 중국판 앨범들부터 일본판 앨범들까지...... 동방신기, 슈퍼쥬니어, 샤이니, 원더걸스, 2PM, 소녀시대까지.. 참 반가울 따름이였다.

역시나 이곳에서 팔고있는 세계여행 가이드북에서 대한민국에 관련된책들은 사람들이 많이 보지 않아서 책이 깔끔한편인데다가, 도로에 대한 정보까지도 잘못표기되어있었다.(충청남도쪽을 펴보았더니, 서해안고속도로[도로번호 15]가 10번으로 잘못 표기되어 있었다. 기타 열심히 찾아보면 하자는 굉장히 많다고 보면 되겠다.) 다른나라에 관련된 책들은 견본으로 놔둔책이 거의 닳을지경이였는데.. 대한민국책은 아주 깨끗한 수준이니.... 안타깝기도 하다.


이게 바로 아까 그 서점이다. 이 서점 1층에 위치한 카메라샵은 나에게 카메라 배터리를 6만 7000원이라는 바가지스러운 가격에 팔려고 했다. 나중에 한국에서도 중국제가 2만 5천원정도 한다고하니.. 3만원정도까지 내렸는데.,. Dog스러운 꼴 보기싫어서 그냥 나와버렸다.

그리고도 수많은 백화점건물을 일일히 들어가보면서 구경을 했는데.. 우리나라의 등산복브랜드인 코오롱스포츠와 블랙야크를 본것도 참 반갑게 여겨졌다. 참고로 중국에서 가격표가 붙여진 아이폰 가격이 7680위안인가 그랬다. 아무리그래도 같은가격은 세계 어디서나 고수하는 사과社인데.. 이렇게 비싼건가 싶다. 흥정을 하면 깎일텐데 붙어있는 가격은 우리나라보다 더 비싼것이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단종된지 5년이넘은 초콜렛폰까지 버젓이 팔리고있던 모습을 보기도 했다는..;;


그렇게 자유쇼핑을 하고, 가이드님을 따라 왕부정 먹자골목으로 향했다. 가지나 신정연휴에 사람도 많고 길을 잃어버릴 확률도 높다보니 일행이 한줄로 동행을 하게 되었는데.... 이곳에도 역시 난생 처음보는 음식들이 굉장히 많았다.


온갖 꼬치류부터.. 양의 앞발... 지네... 귀뚜라미......... 별게 다 있었다..


이건 그래도 우리나라에 있는것인데..  간혹 식당가면 자주 나오는 소의 위 말이다.. 갑자기 기억이 안난다... 이렇게 우리에게 그나마 친숙한 옥수수나 만두같은 음식들도 있긴 했지만.....!


전갈, 불가사리, 지네, 풍뎅이, 굼벵이, 다큰번데기, 해마등등.. 가히 상상할 수 없는 음식들도 팔긴 팔고있었다. 일행들에게 작은전갈을 권해서 다들 먹었는데.. 나는 전갈 꼬리만 살짝 떼어먹고 도저히 먹을수 없었다. 역시 대륙사람들은 비행기 날개랑 자동차 바퀴빼고는 안먹는게 없다는게 사실인듯하다.


왕부정 먹자골목의 뒤에는.. 이러한 풍경도 펼쳐졌다..... 도심지 한가운데에서 오물처리를 하고있던것이다. 그렇게 왕부정거리를 한바퀴 휙 돌고 서커스를 보러 가게 되었다. 선택관광으로 북경의밤과 서커스가 있었는데.. 서커스중에서도 가장 비싼 지난번에 보게 된 금면왕조보다도 더 비싼 VIP로 끊게 되었다. VIP라..... 흠...


서커스다.. 여기서도 역시 사진촬영을 못하게 막는다..(살짝 찍은사진..) 처음에는 스토리가 있게 시장에서 이런저런 묘기를 보여주는것으로 시작했는데.. 가면 갈수록 제주도에서 본것과 비슷한 묘기들이 펼쳐지게 되었다.. 중간중간 물고기가 나오는 마술쇼도 펼쳐졌고, 역시 대륙은 서커스의 종주국이라는 생각또한 하게 되었다..

역시나 이곳에서도 마지막 하이라이트로 오토바이 묘기쇼가 있었는데.. 여섯대가 들어가서 그냥 한바퀴 뺑 돌고 나왔을 뿐이였다. 제주도에서는 8대가 들어가서 각기 다른방향으로 부딛히지 않고 돌았는데 말이다.

이렇게 셋째날도 거의 마무리가 되어가고...... 이제 북경여행의 마지막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이렇게 북경에서 우리나라 청계광장 비슷한 느낌을 주는 세무천계와 그 이후의 이야기는 4부에서 만나보기로 하자^^ 

"추천을 눌러주세요, 추천을 누르시는분께 4부에서 선물이 이어집니다.(?)"
반응형
블로그 이미지

티스도리

만 29세 도태남의 처절한 삶의 기록. since 2009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