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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올드카 목격담은 금산에서 대전으로 나가는 국도변에 방치된 아시아자동차의 미니버스 콤비입니다. 


종종 지나다니는 도로인지라 자주 보았습니다만, 막상 차를 세우고 가까이 다가가 본 것은 처음이였습니다. 콤비가 세워진 곳은 도로 옆 밭인데 이 주변의 로드뷰를 확인하니 10년 넘게 방치되고 있었습니다.


기아자동차의 상용차 생산 전문 자회사였던 아시아자동차의 콤비는 1983년 10월 마쯔다(MAZDA)의 준중형 트럭인 2세대 타이탄. 즉 기아 트레이드를 기반으로 한 미니버스인 2세대 파크웨이(PARKWAY)를 기반으로 출시되었습니다. 초기 코드명은 AM805. 이후 부분변경을 거치며 AM815와 AM825로 코드명도 변화하였고, 기아자동차 합병 이후로는 큰 의미는 없지만 KM825라는 코드명으로 불리며 2002년 10월까지 생산되었습니다. 단종 20년이 가까워지는 오늘날에도 기아자동차는 더이상 미니버스를 만들지 않습니다만, 콤비는 25인승 미니버스의 대명사로 불리고 있습니다. 


물론 초기형부터 카운티와 같은 엔진이 적용된 극소수 최후기형을 제외하고는 복사(BOXER)트럭의 ZB엔진이 그대로 적용되었습니다. 영업용으로 사용되던 콤비는 2013년 즈음만 하더라도 종종 볼 수 있었지만, 내구년한의 만료 및 수출과 폐차로 2020년 현재는 쉽게 볼 수 없는 수준에 이르고 있습니다.


함께 보시면 좋은 올해 2월의 1991년식 기아 트레이드의 목격담입니다. 다음 메인에도 걸렸던 포스팅입니다.

이 트럭 차체에 탑을 올리고 좌석을 붙이고 상급 모델의 엔진을 달아놓은것이 바로 이 미니버스 콤비입니다.




도로변. 쓸쓸히 버려진 콤비입니다. 다만 번호판이 대여용인 '허' 입니다.

가끔 현수막이 걸리기도 하지만, 왜 이 밭에 세워지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충남70 허 4천번대 번호판을 달고 있었습니다. 15인승 이하 승합차까지만 렌터카로 사용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이런 미니버스도 정원을 15인 이하로 맞춰 대여사업용으로 나가고 있지요. 딱히 좌석 수를 세어보지 않더라도 이 차량의 정원은 15인승입니다. 거기에 전국번호판이 2004년부터 발급되기 시작했어도 현행과 같은 흰색 바탕의 규격으로 바뀌기 이전인 2006년 10월까지 대여사업용 자동차. 즉 렌터카에는 '허'라는 식별기호와 함께 지역번호판이 부착되었습니다. 


렌터카의 내구연한이 10년이니 지역번호판이 부착된 렌터카는 정상적으로 대폐차가 되었다면 사실상 내구연한이 만료되어 현재는 볼 수 없겠죠. 물론 가끔 보인다 하더라도 직권말소된 무등록 대포차이니 돌아다니는 모습이 보인다면 경찰에 신고 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이 콤비 역시 정상적으로 대차 혹은 폐차가 되었다면 이 자리에 서 있을 이유도 없고, 번호판도 회수되었겠지요. 가끔 차령을 초과한 렌터카의 원부가 정리되지 않아 차량 정보가 조회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대부분은 번호판이 반납되지 않는 경우 관할 지자체에서 직권으로 말소시켜버립니다. 당연하게도 이 차량이 등록된 지자체에서 직권으로 말소되었기에 조회되지 않습니다.



가까이 다가갑니다. 익숙한 지역번호 0457과 익숙한 363국번. 

기억을 더듬어 보니 어릴적 학원차를 타고 지나가며 같은 자리에 세워진 모습을 보았던 차량이네요.


지금은 같은 도내에서 시외전화를 걸 때 지역번호를 누를 필요가 없지만, 2000년 7월 1일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특별시와 광역시를 제외한 중소도시간의 시외전화에도 네자리의 지역번호를 눌러야만 했습니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저도 생생히 기억이 나는데 아무래도 기억하고 계신 분들은 다 기억하고 계시리라 생각되네요.


그 당시 당진군의 지역번호가 0457이였습니다. 그리고 합덕읍과 우강면 신평면 지역에서 362 및 363 국번을 사용하였는데, 신평면은 35x대 국번을 함께 사용했었고 사실상 36x대 국번은 합덕읍과 우강면 지역에서 주로 사용하였습니다. 물론 지금은 363 국번의 전화번호가 걸린 간판을 기지시에서도 봤던지라 큰 의미가 없어진듯 보입니다만, 여튼 이 콤비에 적혀있던 전화번호는 현재도 합덕의 한 렌터카 사무실에서 사용중입니다.


뒷유리에 붙은 렌트카 상호와 전화번호를 보니 얼추 기억이 납니다. 어릴적 유치원 통학버스와 학원차를 타고 지나가던 자리에 렌터카 차고지 비슷한 공간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 한참동안 주차가 되어있던 차량이였습니다. 물론 초등학교 재학 시절에도 이 차량이 한참 서있던 모습을 보았습니다만, 어느순간 사라졌고 그 이후로 대략 20년만에 예상치 못한 자리에서 보게 된 상황입니다.



콤비 앞으로는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상황만 보더라도 방치된지 꽤 오래된 느낌의 콤비입니다. 로드뷰를 찾아보니 대략 2010년 2월의 로드뷰부터 이 콤비가 세워진 모습이 보이더군요. 대략 이 자리에 세워진 세월만으로도 10년이 넘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 합덕출신인 이 콤비가 내구연한이 한참 지난 뒤 이 자리에 와서 지금껏 세워져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자리인지라 상대적으로 온전히 보존되고 있었습니다. 가끔 콤이 측면에 현수막을 걸어놓는 경우가 있었는데, 수년째 같은 업소를 홍보하는 현수막이 바뀌어가며 붙어있던지라 그 현수막을 붙이는 분만이 이 콤비가 왜 이 자리에 세워지게 되었는지 알고 계시지 않을까 싶네요.



방치만 대략 10년 넘게 되었지만, 나름 준수한 상태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크게 부식이 되거나 칠이 벗겨지지 않고 깔끔한 상태로 방치중이였으니 말이죠. 정확한 년식을 알 수 없으니 대략적인 년식을 추정해보기로 합니다. 일단 나무에 가려져 잘 보이지는 않지만 원형 라이트는 아녔고, 하이-콤비(Hi-Combi)라 불리는 중기형 차량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기본도색입니다. 대략 AM825로 코드명이 바뀐 이후 출시된 모델인데 아시아자동차의 로고가 굴뚝모양이 아닌 타원 안에 알파벳이 적힌 로고더군요.


후기형 모델인 파워콤비가 95년 11월에 출시되었으니, 대략 94-95년에 출고된 모델로 추정됩니다.



휠캡 역시 세월의 흔적이 보입니다만, 아시아자동차의 로고는 선명합니다.


물론 이 휠캡의 디자인은 단종 직전 모델까지 적용되었습니다. 대략 10년의 세월을 한 자리에서 이동 없이 버텨왔기에 타이어가 땅에 깊숙하게 박혀있네요. 여러모로 어릴적 깔끔한 모습으로 렌터카 차고지에 세워져 있었던 모습을 보았던게 어끄제 같은데 이렇게 비참한 말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창문 너머 실내 상태를 확인합니다.


커텐도 그대로 달려있고 사실상 현역으로 굴러가던 시기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시트의 상태는 찢어지거나 갈라진 곳 없이 상대적으로 온전했습니다만 뚫린 유리창을 통해 이물질이 바람을 타고 들어와 차량 실내는 더럽혀진 상태였습니다. 그 시절 아시아자동차 차량들의 시트는 나름 참신한 패턴이 가미된 경우가 많았는데, 이 콤비의 시트 역시 알록달록하고 참신한 패턴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스윙도어의 유리창이 깨져 차량 안으로 이물질이 들어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차량 안에는 타이어도 박혀있네요. 농업용 창고로 사용되고 있으리라 추정했지만, 사실상 농자재와 농기구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경작지 한복판에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는 얘기가 되겠지요.



핸들과 계기판은 기아 트레이드와 거의 동일합니다.


도어트림도 깔끔하고 대시보드와 계기판 역시 먼지만 잘 닦아준다면 그리 훼손되거나 더럽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기아자동차의 점보타이탄 및 트레이드와 핸들을 공유하였고, 이 콤비의 핸들에는 에폭시 스티커로 아시아자동차의 엠블렘이 박혀있었습니다. 물론 제 발로 굴러서 들어왔겠지만, 빠져 나갈 날은 도무지 언제인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운전석과 조수석의 시트는 탈거되어 있었습니다.


깨져버린 유리의 파편들과 여러 이물질들. 동물의 사체로 보이지는 물체는 낡은 목장갑입니다. 대체 어떤 이유에서 멀리까지 굴러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릴적 보던 차량이 낮선 타지에서 초라한 말년을 보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안타깝기만 합니다.



이 버스가 세워져 있던 모습을 보았던 자리는 현재 한 어린이집의 정원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10년 전 로드뷰에도 흔적이 나타나지 않고 유일하게 찾아낸 흔적은 2008년의 위성사진이네요. 대략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그저 평범한 공터였고 그 옆으로 사람이 다닐 수 있는 샛길이 나 있었습니다. 어릴적 초등학교 통학로이기도 했던 길인데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어린이집 건물이 생겨 샛길도 사라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차를 타고 지나가던 길. 세워진 낡은 콤비를 보고 차를 세워 가까이 다가갔습니다만, 어릴적 본 기억이 남아있는 차량이였습니다. 뒷유리에 붙은 스티커가 없었더라면 알아보지 못했을 확률이 매우 높았겠지만, 유리창 뒤에 붙어있던 스티커로 구석에 박혀있던 어릴적 기억을 꺼내왔습니다.


타지에서 버려진 버스를 보고 탐구를 위해 가까이 다가갔는데 어릴적 동네에서 학원차와 유치원 통학차량을 타고 지나가며 혹은 걸어서 초등학교에 등교하던 길에 익히 보아 눈에 익었던 버스라면 여러분은 과연 어떤 느낌이시겠습니까. 


비록 세월은 흘러 잉여인간으로 자란 성인과 10년 이상을 그 자리에 방치된 버스로 다시 조우했지만, 언젠가 둘 다 빛을 볼 날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과연 콤비의 기약없는 방치가 언제까지 계속될진 모르겠지만, 더는 처참한 모습으로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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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29세 도태남의 처절한 삶의 기록. sinc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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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송대학교 면접 후기.. 그 세번째시간입니다. 면접을 모두 다 마치고 면접을 본 학생들은 바쁘거나 다른 학교의 면접이 급하게 있지만 않는다면 졸업작품을 전시해놓은 "학술제"를 구경을 하고 갔습니다. 학술제에는 안드로이드 어플리케이션과 유용한 프로그램등 4년동안 배운 전공을 살린 작품들이 전시되어있었습니다.


학술제 이야기는 굉장히 많았고 프로그램마다 자세한 설명을 할 수가 없어 사진을 모두 올려놓는것으로 대체하려 합니다. 중간에 SDK의 스마트폰 연동기능을 활용한 프로그램의 컴퓨터 사양에 관련된 질문과(필자의 똥컴은 매번 연결만하면 렉을 열심히 드셨다.) PC관리프로그램(마에스트로 비슷한.)의 관리를 받는 PC에서의 프로그램 삭제문제 그리고 회원가입시 한번 입력을 해놓은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어플의 암호화 및 보안문제에 관련된 질문을 했었습니다.
(같이 학술제를 구경하던 면접인들은 필자를 어떻게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그냥 빨리 가고싶은데 자꾸 잔소리를 해서 방해하는 사람으로 생각했으려나..) 

그렇게 학술제를 열심히 구경하던중.. 같이 와서 면접을 필자보다 일찍 본 친구는 한남대 면접이 있다고 먼저 가버리고..(필자를 기다리다가.) 필자는 열심히 질문을 해가며 학술제를 다 보고 우송대 사회관 건물을 나섰습니다.






그렇게 면접을 보았던 우송대 사회관건물을 나섭니다. 앞으로 다시 오게될지.. 아니라면 오늘이 마지막이 될지는 나중에가서 봐야 알겠지만.. 첫인상부터 첫번째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대학 면접이기에 모든게 다 환상적으로 보이고 학술제에 출품된 작품들을 보고 웬지모를 동경심리까지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면접을 보고 나오니 시간이 꽤 되는군요..


사회관 앞쪽에는 이런 석탑이 있었습니다. 이 석탑이 어떤 석탑인지는 아무런 안내가 없었지만, 나름 신식 건물들이 줄지어 서있는 대학 캠퍼스 안에 조금은 고전적인 석탑이 있다는 신과 구의 조화도 볼만했었습니다.

그렇게 슬슬 대학 캠퍼스를 빠져나가기 위해 처음 들어왔던 길로 다시 돌아갑니다.


현위치가 제대로 표시되지 않아서 사람 참 고생하게 만들던 캠퍼스 안내도....

그래도 다행히 찾던곳이 가까이에 있어서 쉽게 찾았지만... 조금의 보완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면접을 다 보고 나온 교복떼들... 여기 나오면서 본건 다 여자애들이였다. 뭐 그냥 그랬다..

웬지 대학 캠퍼스를 나가려고 하니 뭔가모를 아쉬움이 밀려온다. 뭐.. 그냥 내가 쓴 학교 모두다 붙어서 행복한 고민을 하는 날이 꼭 왔으면 하는 바램이다.(그럴 확률은 매우 적은편이지만;;)

그렇게 다시 전철을 타고, 시간은 좀 늦었지만 애드센스를 환전하기 위해 중간에 서대전네거리역에 내려(인터넷상에서 찾아보고오니 3번출구 바로 앞에 기업은행이 있었다.) 기업은행을 찾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3번출구로 제대로 나왔음에도 계속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서(우체국,농협 충청본부방향) 042-120(서울로치자면 다산콜센터. 요즘은 대부분의 도시들이 비슷한 민원실을 운영중이다.)에 전화를 하여 자세한 지리를 물어보았다. 그리고 필자가 잘못왔음을 깨닫고.. 다시 돌아왔는데...

위치를 알려주고 다시 상담원분께서 전화를 주셔서 더 자세히 알려주시고.. 바로 내가 3번출구로 나오고 온갖 개 잉여 뻘짓을 했음을 새삼 실감케 해주었다. 그리고........


애드센스 환전은 물건너갔다..

또 언제 시간내서 당진으로 가야한다... 이 타지까지 와서 한참을 헤멘데다가 매정하게 닫아버린 은행문을 보고 온갖 욕은 다 퍼부었다. 뭐 내가 늦게온것도 있지만 우리나라 은행들 특히나 몇년전부터 한시간 일찍 문을 닫으면서 은행원들의 업무량은 좀 줄었겠지만 가지나 일과중 은행에 가기 힘들었던 직장인이나 학생들에게는 더 찾아가기 힘든 곳이 되어버렸다.

고객이 찾아가기 힘든 은행.. 동네 농협은 간혹가다가 조금 늦게갔어도 정산중에 업무를 봐주는경우도 있던데... 흐음....

필자가 열이 제대로 받아서 다시 전철을타고 유성온천역으로 갔을때.. 이미 대전까지 올때 타고갔던 버스에서 기사님이 얘기해주던 그 차를 타기는 틀린 시간이였다.


한 두달만에 다시 오는 이곳.. 지난 8월 말일에 소니코리아의 새로운 DSLT와 미러리스 신제품 설명회때 왔었다. 웬지.. 지금 분위기가 꼭 그때와 비슷하게 진행되는것같다.

(당시도 당진으로 가는 차가 없어서 천안에서 하룻밤을 자고 천안에서 등교를 하는 크리티컬..)


"역시나!" 왜 충남고속에서 그랜버드 파크웨이 충남 76아 7420을 운행하던 아저씨께서 4시 20분차를 곡 타라고 하셨는지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다음으로 당진방향으로 가는 차는 오후8시에나 있다. 그차가 합덕으로 바로 가기는 하지만.. 일단 더 기다리기는 그렇다.

그래서 결국 예산으로 갈까.. 아님 천안에서 한번 환승을 해서 올까를 고민고민하다가 고속도로를 경유하여 천안으로 가는 차량을 타게 되었습니다. 이미 옛 32번국도의 추억은 느끼고 또 느껴 다시 느끼기는 싫었고. 그냥 조금 곧게 뻗은 길을 달리는 차를 타고싶었던것이죠. 


마침 공주에서 통학하는 고등학생과 필자처럼 면접을 보고 각지로 돌아가는 고등학생. 그리고 주말을 맞이하여 집으로 돌아가는 대학생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립니다. 버스가 주차를 하려는데도 그냥 가만히 서있는 사람들도 있고... 참....

만약 예산표를 끊었더라면 저 차를 탔겠죠... 


유성에서 천안.. 학생은 3500원. 나름 합덕에서 천안가는것과 비슷한 금액입니다.

예산으로 가는 차가 떠나고, 바로 천안으로 가는 차가 등장합니다!


차는 도착했지만 우루루 몰려드는 대학생떼.. 공주,유구,예산 차량은 고등학생이 주를 이루었다면 천안으로 가는 차는 대학생이 대부분이였습니다. 그 대학생들 사이에 끼어 버스에 타고.. 버스는 타는 사람이 많아 서서가는 사람들도 여럿이 있었습니다.


버스에서 좀 졸다가.. 전화가 와서 깨어보니 차는 천안휴게소정도를 지나고.. 금방내 신세계백화점(야우리)가 있는 천안터미널에 도착합니다. 다행히 아다리(?)도 시간대가 딱 맞아서 합덕으로 가는 버스가 바로 있었습니다. 재수가 좀 좋았던것이죠.


확실히 금요일밤은 전국 각지 자신의 고향으로 흩어지는 사람들 천지입니다. 심지어 서울이나 수도권쪽으로 상경하는차를 타려는 줄은 다른라인까지 세개 이상을 잡아먹더군요;;;;;;

천안만 해도 전국적인 도시입니다.


뭐.. 그랜버드로 시작해서 그랜버드로 끝난다고.. 여튼 버스에 올라타고 집을 향해 갑니다. 상습 정체구간이긴 하지만 천안 시내에서 한시간을 소비하고 여덞시가 좀 넘어서 집에 도착을 하더군요.

8시 25분 차를 타고 출발해서.. 8시 20분쯤에 왔다.. 참.. 12시간동안의 긴 여정이였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고생하면서, 또 길을 잘못찾아 애드센스 수익에 대한 환전은 하지 못했던 다사다난했던 하루가 지나갔습니다. 이렇게 고생했고.. 또 교수님들께서 특히 저한테 조금 더 많은 질문을 하셨는데 분명 좋은 결과가 있겠죠ㅎ 아니 좋은 결과가 있을것이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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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29세 도태남의 처절한 삶의 기록. sinc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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