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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가에 피아노가 있었습니다. 그 피아노를 처분하게 된 이야기입니다.


집을 내놓고 이사를 계획하면서 잘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을 버리거나 매각하고 있습니다. 대략 제가 중학교 2학년생이던 시기에 이사를 왔던 집이니 13년정도 살았었네요. 그 시절 태어난 아이가 이제 중학교 1학년생이니 오래 전 일이 아닌듯 느껴져도 막상 돌아보니 꽤 오랜 시간이 흐른 이야기입니다. 


잘 연주하지 않는 피아노 역시 정리 대상에 올랐습니다. 


가지고 가면 좋으련만 사실상 집 한채를 없애고 기존에 제가 살고 있는 집으로 살림을 합치는 형태인지라 피아노를 놓을 자리가 없어 결국 처분하기로 합니다. 집에 피아노가 생기게 된 건 20년 전이던 2000년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저와 동생은 피아노학원에 다녔었고, 초등학교 1학이이던 어느 날 당진의 한 매장에 방문하여 중고피아노를 구입해 왔습니다. 


당시 가격으로 100만원을 주고 구입했던 피아노입니다. 피아노 표면에 그림이 그려져 있는 흔히 아르떼 피아노라고 부르는 모델인데, 지금의 기준으로 본다면 매우 촌스러운 그림이 아닐까 싶습니다. 피아노도 중고차처럼 수출이 나간다는 얘기를 듣고 관리 상태가 좋지 않아 큰 돈을 받겠다는 생각은 접었고 여러 피아노 업자들에게 연락했지만 언제 온다는 얘기도 없어 결국 당진에 있는 업체에 연락을 하여 지난 토요일 피아노를 처분하였습니다.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어쿠스틱 피아노의 인기는 좋았습니다. 

다만 지금은 예전같지 않다고 하더군요.


저출산의 여파는 피아노를 배우는 학령인구의 감소로 이어지고 피아노 수요의 감소로 이어졌습니다. 거기에 공동주택에서의 소음 문제 탓에 큰 공간을 차지하는 어쿠스틱 피아노 대신 전자피아노를 장만하는 추세라고 합니다. 조율이 필요없는 전자피아노도 나쁘진 않습니다만, 배우는 입장에서는 좋지 않다고 하더군요. 


저는 대략 피아노를 3~4년정도 배웠습니다. 체르니 30 중반정도까지 진도를 나가지 않았나 싶네요. 피아노를 배운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삶에 꽤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피아노를 배우며 최소한의 음악적인 감각을 익혀놓아 지금도 처음 청음하는 노래라도 대략 계이름에 연주를 할 수 있는 수준의 음감이 생겼습니다.



촌스러운 그림이 트레이드 마크인 아르떼 피아노입니다.

나름 파격적이고 2세 경영의 상징적인 제품입니다.


90년대 초반 대한민국 피아노산업의 황금기에 삼익악기에서 제작된 피아노입니다. 물론 중저가형 위주의 라인업이였지만, 당시 경쟁업체던 영창악기와 함께 고군분투하여 일본으로부터 세계 1위 피아노 생산국 타이틀을 가져왔었고 전 세계로 수출하기도 했었습니다. 


코스피 상장기업이고 고도성장기 시절에 대한민국의 대표 수출 브랜드로 이름을 날렸던 삼익악기는 화려했던 과거를 뒤로하고 충북 음성의 작은 공장을 제외하고 대다수의 생산시설은 동남아로 이전되었습니다. 거기에 창업주의 타계 이후 2세의 방만한 경영으로 법정관리를 거친 뒤 현재 삼익악기는 창업주의 2세가 아닌 전혀 다른 사업가에게 매각되었습니다. 새 오너 체제 출범 이후 독일의 유명 업체를 인수하는 등 그럭저럭 건실히 운영되고 있습니다. 한때 영창악기를 인수하기도 하였으나, 현재 영창악기는 얼마 전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한 범 현대가의 현대산업개발에 인수되었습니다.



피아노 의자를 정리하다 보니 옛 악보들도 튀어나오네요.


지금은 인터넷으로 피아노 악보를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만, 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피아노 악보를 쉽게 구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을지출판사라는곳에서 악보를 만들어 대략 500원 수준의 가격에 판매하였는데, 이 역시 동네 음반집에서 구입한 악보들입니다.


을지악보, 을지피아노키타피스라는 이름으로 판매되었던 악보들인데 지금은 가끔 추억팔이를 위해 소환하는 사람들과 일부 창고에서 잠을 자고 있던 악보를 매각하는 사람들의 글이 올라오곤 합니다.


김종환 - 사랑을 위하여

조성모 - 아시나요

핑클 - 당신은 모르실거야

달의요정 세일러문 - KBS만화영화 달의 요정 세일러문 주제곡



김범수 - 하루

조성모 - For your soul


당시 초등학생이던 제게는 매우 어렵던 악보들이였습니다만, 그럭저럭 가지고 가서 선생님께 가르쳐달라고 하면 가르쳐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세일러문 오프닝과 사랑을 위하여는 같은 악보가 몇개 더 발견되었습니다. 막상 까놓고 보니 지금도 그럭저럭 듣는 노래들이네요.



그 외에 피아노 의자에서는 현 한화이글스 한용덕 감독의 싸인도 발견되었습니다.


제가 다녔던 초등학교에 야구부가 있었는데, 매 시즌이 끝난 뒤 유소년 선수의 일일 훈련을 위해 한화이글스의 유명 선수들이 학교를 방문했었습니다. 학교에 방문하여 야구부원의 지도 뿐만이 아니라 환영행사와 함께 전교생에게 싸인도 해주고 싸인볼도 나눠주곤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 싸인을 받았던 한용덕 선수는 현재 한화이글스의 감독이고, 장종훈 선수는 현재 한화이글스의 수석코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물론 당시에도 말년 고참급 선수였지만 코치를 거쳐 감독이 된 지금의 모습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아닐까 싶습니다. 



피아노의 모델명은 SU-118NE. 일련번호는 IMG06162.


93년에 제조된 피아노입니다. 피아노를 사면서도 93년식이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만, 부모님은 기억하지 못하고 있던 사실을 저는 선명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일련번호를 대조하니 93년식이 맞네요. 만 7년정도 된 피아노를 2000년 어느날에 중고로 구입해 왔으니 두번째 주인이겠죠.



악보대 경첩의 피스가 다 떨어져 나갔습니다.


이건 한참 피아노를 치던 시절에 다 떨어져 나간 부분입니다. 그래도 다른 경첩은 잘 살아있기에 사용엔 큰 문제가 없어 그냥저냥 사용했었습니다. 피아노를 리폼한다면 이런 부분은 쉽게 수리가 되니 큰 걱정이 필요 없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 외에도 피아노 표면의 블랙 하이그로시가 들고 일어나거나 떨어졌습니다.


어느순간 이 방의 커텐을 떼어낸 이후 이런 현상이 가속화 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건조한 환경에서 지나친 난방이 주된 원인이라고 합니다만, 대부분의 아파트에 보유하고 있는 피아노들이 원목 스타일을 제외하곤 이런 문제점을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하이그로시가 심하게 떨어져 나간 부분은 한두군데가 아녔습니다.


뭐 여튼 견적을 위해 사진을 여러장 찍어놓았고, 여러 업자들이 20만원 15만원의 가격을 불렀습니다. 그러니 뭐 당연히 매각하면 다만 얼마라도 받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실물을 보니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피아노도 중고차나 건설장비처럼 수출이 나갑니다. 보통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바이어들이 가져간다고 합니다. 국산 삼익과 영창피아노를 비롯하여 일부 대우와 중소기업의 낡은 제품도 수출이 나간다고 하네요. 중고차와 마찬가지로 바이어들이 눈에 불을 켜고 매입하는 피아노도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당진에서 피아노 업자 아저씨께서 오셨습니다. 여러모로 피아노의 상태를 확인합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 피아노 뒷면의 향판에 금이 갔다고 하네요.


하이그로시가 뜨는 부분을 제외하면 그럭저럭 관리가 잘 된 상태라고 합니다만, 피아노의 뒤 향판에 금이 갔다고 하네요. 마치 자동차로 비유하자면 하체 중요부위에 부식이 생겨 구멍이 난 상태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이런 경우 내수는 어렵고 수출이나가긴 한다고 합니다만, 지금 시점에서는 수출도 여의치 않다고 합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2월부터 사실상 중국 수출이 막혔다고 합니다. 사실상 쌓아놓은 피아노도 포화상태에 이르게 되어 매입도 잘 받지 않는다고 하고요. 일부 업자들은 중국인 바이어에게 대금도 지급받지 못해 전전긍긍 하는 상황이라더군요. 



이 부분까지는 미처 보지도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결국 큰 감가요소가 되었습니다.


사실상 수출도 중단이 된 상태고, 점점 가면 갈수록 바이어가 갑이 되고 일부 후려치는 업자들 탓에 수출단가도 떨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여튼 가지고 있는 것이 낫다고 하십니다만, 처분을 원했기에 결국 무상수거로 처분하게 되었습니다. 


그럭저럭 내부 상태가 괜찮아 비용이 발생하지 않았지 더 오래된 제품이였다면 운반비나 폐기비가 발생했으리라 예상됩니다. 다만 처리비용 없이 처분을 한 사실에 위안을 삼기로 합니다.



피아노를 이동시킵니다.


사실상 혼자 다 하시더군요. 좁은 방문도 중문 역시 떼어내지 않고 통과했습니다. 피아노를 비스듬히 세워 수레에 올려놓는 과정과 일부 턱을 넘을때 조금 도와주는걸 제외하면 혼자 피아노를 옮기셨습니다.



살면서 피아노 바닥은 처음 보는 느낌이네요.


바닥도 좀 특별할줄 알았더니 그저 평범한 합판이네요. 아파트 입구 앞까지 큰 문제 없이 꺼냈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라면 엄청난 난이도를 자랑하는 작업이였겠지만, 그래도 계단식 아파트에 코앞에서 엘리베이터에 타고 조금만 밀고 나오면 밖이니 피아노 이동에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피아노를 트럭에 싣기 위해 트럭을 가까이에 주차합니다.


봉고3 더블캡 위로 이미 다른 피아노가 올려져 있습니다. 이 역시 비슷하게 수거하게 된 피아노인데, 수출이 나가는 것도 아니고 마땅히 피아노를 내려놓을 공간이 없어 트럭에 그냥 싣고 다닌다고 하시네요.





그래도 어떻게 올리긴 올렸습니다.


집에서는 나름 큰 공간을 차지하던 피아노가 기존에 적재함 위에 있던 피아노들과 비교하니 훨씬 작네요. 얇은 이불을 대어 피아노의 파손을 막고 운행 중 피아노가 움직이지 않도록 깔깔이로 잘 결박해줍니다. 물론 피아노 세대가 트럭 적재함을 가득 채운 상태가 되어 아무래도 하나정도는 어디 내려놓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게 아저씨와 인사를 나누고 트럭의 시동이 걸렸습니다.


20년간 함께했던 피아노와 작별인사를 나눕니다. 부디 폐기가 아닌 수출길에 올라 중국에서 새 주인을 만났으면 하는 바램이네요. 코로나를 이겨낸 중국이여도 동남아여도 좋습니다. 향판이 나가 결국 20년 전 100만원에 구입했던 피아노는 그저 무푼으로 떠났지만, 피아노와 함께했던 추억은 영원하리라 생각됩니다.


마지막 가는 길은 영상으로 남겨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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