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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올드카 목격담은 대우자동차의 마지막 중형차 매그너스입니다.

 

문어발식 경영으로 사세를 확장하던 대우그룹은 매그너스의 개발과 출시 시점에 큰 위기에 봉착하게 됩니다. 매그너스는 브로엄의 후속차종을 목표로 개발되었는데 상위급으로 계획되었던 쉬라츠와 P100은 개발이 무산되었고, 당시 출시된 지 2년밖에 지나지 않았던 레간자가 동급 차량 대비 열세를 보이고 있었던 상황에 매그너스와 함께 데뷔 예정이던 직렬 6 기통 XK엔진의 개발은 완료되지 않아 결국은 준대형 대신 고급형 중형차의 포지션으로 데뷔하였습니다.

 

2000년대 초반 준수한 디자인과 직렬 6기통 엔진의 적용으로 상당히 좋아했던 차량인데 2010년대 중반부터 대우차 특유의 비싼 수리비 탓에 급격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2011년까지 판매되었던 스킨체인지 모델인 토스카조차도 근래 보이는 폐차장 렉카에 꼭 한 대씩 달려있더군요.

 

차령 20년이 넘어가는 동시대 경쟁차종이던 뉴 EF쏘나타나 1세대 SM5가 돌아다니는 모습을 간간히 볼 수 있음에도 유독 매그너스를 보는 일은 어렵게 느껴집니다. 그런 매그너스를. 그것도 초기형 모델을. 지역번호판이 부착된 상태로 보게 되어 잠깐이나마 사진으로 남겨놓게 되었습니다.

 

2000 DAEWOO MAGNUS 2.0 DOHC

상징과도 같은 6기통 엔진이 적용되기 전 초기형 매그너스입니다. 정말 오랜만에 보네요.

레간자에 적용되던 2리터급 D-TEC 엔진이 적용된 차량입니다.

 

정말 가끔 보이던 매그너스도 대부분 직렬 6기통 XK엔진이 적용된 중기형 혹은 후기형 차량들인데 초기형 매그너스는 언제 봤었는지 기억도 없네요. 뒤 엠블럼만 신형인 GM대우의 것으로 교체되어 있었고, 번호판은 수원에서 발급된 '경기 30'으로 시작하는 지역번호판이 부착되어 있었습니다.

 

최초등록은 2000년 3월. 매그너스가 99년 11월 말에 출시되었고, 본격적인 출고는 2000년부터 시작되었을 테니 사실상 극초기형 모델이라 봐도 무방 할 겁니다. 극초기형의 경우 SOHC 모델은 무조건 후륜에 무조건 드럼 타입의 브레이크만 적용되었는데 후륜 브레이크가 디스크 타입인 것으로 보아 DOHC 엔진이 적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000 DAEWOO MAGNUS 2.0 DOHC

생각보다 깔끔합니다.

 

세기말 혹은 21세기 초반의 대우차가 부식에 상당히 취약했는데 일단 육안상 보이는 부식은 거의 없습니다. 차령은 만 20년을 넘어섰지만, 전반적으로 10년 안팎정도 탄 차량과 비슷한 느낌이네요.

 

출시 당시 캐치프라이즈는 'BIG'. 동급 대비 큰 차량이라는 의미에서 붙였다고 합니다만, 동급 대비 커지기만 커졌지 레간자와 같은 엔진이 적용되어 중기형 이전까지는 판매량도 신통치 않았고 그저 그런 차량 중 하나였습니다.

 

본넷에 부식이 있다.

당시 대우의 패밀리룩이던 3분할 그릴이 인상적입니다.

그릴 옆으로 본넷에 부식이 약간 존재하긴 하네요.

 

그런 부분을 감안하더라도 상당히 깔끔합니다. 대우그룹의 공중분해도 20년 전 일이고, 대우자동차를 인수한 GM이 미제 고급차 브랜드를 표방하며 대우를 부정하기 시작했던 것도 10년 전 일입니다. 거기에 지난해 매그너스를 생산했던 공장마저도 가동을 멈추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특유의 3분할 그릴이 장착된 대우시절 매그너스는 아직까지도 건재합니다.

 

틴팅도 20년 넘는 세월을 함께 보냈으리라 추정.

틴팅(썬팅)조차도 20년 넘는 세월을 함께 보냈으리라 추정됩니다.

 

당시 첨단사양으로 뒷유리에 자랑하듯 스티커로 붙여줬던 운전석 에어백이 적용되었고, 초기형 캐치프라이즈인 'BIG' 스티커도 붙어있습니다. 올해 한국나이로 스무살들이 04년생인데, 그런 갓스물 청년보다도 나이가 많은 스티커입니다. 아마 틴팅 필름을 제거한다면 함께 제거되겠지요.

 

식당에서 짧게나마 볼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만 23년의 세월을 버텨왔습니다. 이젠 영타이머 반열에 들어서게 된 이 매그너스가 부디 건재한 모습으로 오랜 세월 달릴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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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스도리닷컴 새 콘텐츠 초딩일기는... 


초등학교 재학 당시 작성했었던 일기장을 펼쳐 당시 있었던 일을 회상하고 여러분께 공유하자는 취지에서 공개하는 콘텐츠입니다. 좋은일도, 그렇지 않았던 일도 있었겠지만 한 시대를 살아가던 평범한 어린이의 일기장을 본다는 마음으로 재미나게 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일기장은 무작위로 공개됩니다.


오늘의 초딩일기는 2000년 8월 20일 일요일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지난 토요일에 피아노를 매각했던 포스팅을 보셨던 분들은 아시겠죠. 


그 피아노를 사오던 어느 여름날에 작성했던 그림일기입니다. 분명 20년 전 피아노를 사러 갔던 날에 일기를 작성했던 기억이 있어 잘 찾아보니 나오긴 나오네요. 이 일기를 보기 전까지 제 기억은 왜곡이 되어있었는지 당진에서 피아노를 사왔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 당진이 아닌 천안에 있는 매장에 가서 피아노를 사왔습니다.



지난 포스팅을 보고 오지 않으셨다면 구경하고 오심을 추천드립니다. 정확한 위치는 모르지만, 대략 낮에 가서 구매한 뒤 그날 밤에 피아노가 배송되어 왔습니다. 어릴적 그림일기가 있었기에 피아노의 처음과 끝을 모두 기록으로 남길 수 있었네요.


그림일기인지라 이미지가 두장입니다. 일단 보고 얘기를 하도록 하죠.



제목 : 피아노


피아노를 사러 갔다. 근데 천안인데 너무 멀었다.

기름도 넣고 갔다. 너무 (가게를) 찾았다.

피아노를 골랐다. 근데 박자기까지 줬다. 카바는 3개를 받았다.

피아노를 사서 밤에 많이 쳐 봤다. 기분이 좋았다.

 

※ 정수에게


기분 좋으니? 정수가 기분이 좋다고 하니 엄마 아빠도 매우 기쁘구나.

조금씩 발전해 가는 정수 모습을 보며 엄마 아빠는 정수가 하고 싶은 것 가지고 싶은 것 모두 다

해주고 싶단다. 정수야 사랑한다,,

방학이 며칠 남지 않았구나. 방학 마무리 잘하고.....


그렇습니다. 지금같으면 내비게이션 혹은 스마트폰이 있어 주소만 알려주면 쉽게 찾아 갈 수 있었지만, 그 시절만 하더라도 내비게이션이 존재하긴 존재했지만 대중화되지 않아 대부분은 지도책을 보고 다녔습니다. 


지금은 보기 어려워진 지도책에 상호검색 기능이 있는것도 아니고 대략 어디서 어느 방향으로 어디쯤 가다가 어디 옆에 있다는 설명을 듣고 찾아가야만 했죠. 물론 지금도 이런식으로 위치를 찾곤 합니다만, 이 시절에는 지금처럼 쉽게 길을 찾을 수 있는 수단이 없으니 훨씬 힘들었지요. 피아노를 사기 위해 천안까지 가는 길이 멀게 느껴졌고, 여러 피아노를 쳐본 끝에 그림이 그려진 아르떼 피아노를 선택하였습니다.


당시 돈으로 100만원. 며칠 전 피아노를 처분하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엄마는 원목 재질의 피아노가 마음에 들었는데 그 피아노는 150만원이라 부담이 가 100만원짜리 아르떼 피아노를 선택했다고 하시더군요. 현장에서 일부 계약금을 주고 메트로놈과 피아노 커버를 받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어두컴컴해진 밤에 피아노가 천안에서 트럭을 타고 집에 도착했습니다. 느지막에 피아노의 설치까지 마치고 원없이 피아노를 쳐본 뒤 잠에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일기는 아마 개학이 임박한 시점에 일기를 몰아서 쓰지 않았나 싶습니다.


당시 제게 남긴 편지를 보면 어느 부모 마음이나 자녀에게 모두 다 해주고 싶은 마음은 같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 큰 어른이 된 지금도 하고 싶은 것, 가지고 싶은 것이 매우 많지만 현실에 타협해 가며 살고 있지요. 비록 20년을 함께한 피아노는 떠나갔지만 피아노를 사러 천안에 갔던 일과 일기장. 그리고 엄마의 편지는 영원히 추억속에 남아있으리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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