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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나름 멀리에 위치한 관광지를 소개해보려 한다.

대한민국 동부전선의 최전방.. 6.25이후 대한민국의 영토로 편입된 38선 이북의 강원도 양구군에 위치한 관광지이다. 인구가 2010년 2월말 현재 2만 1404명에 불과한 대한민국 중동부전선 최전방의 양구군.. 펀치볼을 비롯한 이런저런 6.25 고지대 전투지, DMZ와같은 문화관광지에 그리고 지자체에서 대대적으로 밀고있는 한반도의 중심이라는 슬로건까지..(한반도 배꼽축제라는 행사도 기획하고, 파로호에는 한반도모양의 인공섬을 만들었다고 한다.) 인구는 적어도, 관광지는 매우 알찬 양구군의 대표적인 관광지라 하면, 양구통일관-제4땅굴-을지전망대로 이루어지는 이 코스가 아닌가 생각한다. 오늘은 필자가.. 안개낀 아침부터, 이 코스를 돌게 되었다.

1996년에 펀치볼분지 북단에 세워진 양구통일관.. 이 양구통일관은 제4땅굴과 을지전망대를 가기 전 출입에 대한 업무를 마치고 가야하기 때문에 꼭 들려가야 하는 곳이지만,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데에 대한 전체적인 시설은 약간 아쉬웠던 편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깔끔한 박물관에는 제1 전시실과, 제 2 전시실 그리고 전쟁기념관과 625시절 운용되었고 지금은 퇴역한 군의 장비들이 외부에 전시되어 있다. 제1 전시실과 2 전시실에서는 북한의 생활과 생활용품 그리고 실상에 관련된 자료들이 정리되었고, 모아져있었다.


북한에서 생산된 제품들, 그리고 북한의 생활용품들.. 거기에다가 남북 합작으로 만들어진 북한제 CRT 모니터에, LG(당시 "금성[Goldstar]")의 OEM 방식으로 생산된 TV까지 있었다. 다소 작은 제 1전시실과 제 2 전시실 안에 빼곡히 전시해놓은 제품들을 좀 더 넓은 전시실에 더욱 상세히 전시해놓았으면 어땠을지 궁굼하다.


양구통일관에 마련된 전쟁기념관. 이 건물 3층 전망대에서 바라본 양구통일관 주차장이다. 앞에 크게 세워진 아홉개의 기둥은 6.25당시에 양구군에서 있었던 전투지의 해발 고도들처럼 높이 솟아올라있다. 전투의 이름과 참전한 아군과 적군에 관련된 정보와 함께 각 전투지의 해발고도가 쓰여져 있었다. 이 전투들을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진 전쟁기념관은 이 상징물들을 지나서, 심오한 느낌을 주는 조형물들을 지나 들어갈 수 있게 된다. 볼거리는 충분했지만, 낙후된 시설과 제대로 작동이 되지않는 시설도 있어서.. 그리 좋은인상을 심어주지는 못했다.


다음으로 향한곳은 통일관으로부터 약 5km 떨어진 제 4 땅굴이다. 북한군이 유사시 이용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땅굴중 우리나라가 가장 최근에 발견한 땅굴이며, 다른 땅굴을 포함하여 유일하게 전동차가 다니는 곳이다. 1990년 3월 3일 군사분계선에서 약 1.2km 떨어진 곳에서 이 땅굴이 발견되었다. 이 땅굴을 발견하기 위해 우리군은 381m나 화강암을 파들어갔고, 90년 3월 제4땅굴 소탕작전 당시에 조선인민군이 설치해놓은 지뢰를 탐지해서 자신의 몸을 던져 백두산부대 소대원의 목숨을 구해주었다고 한다. 이 忠犬 헌트님은 당시 군견 최초로 "소위"라는 계급으로 추서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땅굴의 입구 옆에 그의 충견묘가 자리잡고 있다.

먼저 제4땅굴에 입장하기 전, 땅굴에 관련된 영상을 보고.. 땅굴로 들어갔습니다. 역시 땅굴 안은 사진촬영이 금지된 곳이라, 촬영할 수 는 없었지만..(맘만먹으면 촬영했을수도..;;) 조선인민군이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파놓은 땅굴과, 그 땅굴을 찾기위해 우리군이 파고 들어간 흔적은 아직도 생생히 남아있었으며, 전동차를 타고 군사분계선이 있는 곳까지 가서 북한군이 만들어놓았던 레일과 주기적으로 넓게 만들어놓았던 구역들을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제 4땅굴 주변에도 역시 퇴역한 육군 정찰기와 기념비가 있었습니다.


제4땅굴에서 바라본 휴전선. 저 위로 보이는 철조망을 지나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의 땅이란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있는 전망대 중에 가장 북한과 가까이에 위치한 "을지전망대"를 올라가면 다 볼 수 있는 구역들이였다. 저 높은곳에서 활약하고있는 대한민국 육군 제12보병사단 을지부대의 장병분들은 매번 수고가 많으시다..


그렇게 우여곡절끝에, 험한 고갯길을 지나 을지전망대에 도착한다. 사실 안개때문에 사진을 찍어도 잘 보이지 않고, 산 한가운데의 매서운 겨울바람과 바로 옆으로 보이는 철조망 이후의 지역은 "촬영금지"딱지가 역시나 붙어있었기에, 이번에도 사진을 찍기는 거의 포기하다시피하고 전망대 위로 향했다.

전망대 2층에는 을지부대의 활약상과 봉사 공헌활동등에 대한 소개가 되어있었고, 망원경에 500원을 넣고 북쪽의 군사분계선과 초소를 볼 수 있었다. 양구군청 공무원이자 해설사이신 분의 해설을 듣고, 안개가 끼지 않으면 금강산도 보이고 여기저기 다 보인다고 했지만 이리저리 살펴보아도.. 역시 안개때문에 볼 수 없었다.

아침부터 안개가 자옥하게 끼었고, 역시나 보안이 중요한 군사시설들이였기에 사진으로 미처 담지 못한 부분들이 굉장히 많았었지만, 통일에 대한 열정은 나를 막을 수 없었다. 나라를 위해 고생하시는 군인분들도 계시고, 분단된 나라에서 생이별을 하게 된 사람들도 많은 이 나라. 3대세습이니 핵개발이니 하면서 같은 민족끼리 총을 겨누고 굳이 싸워야만 하는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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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29세 도태남의 처절한 삶의 기록. sinc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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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26일 추석연휴의 마지막날이자, 일요일인 이날 이른 아침..(약 8시)

그토록 한번은 와보고싶었던 경남 김해시 진영읍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생가가 있는 봉하마을의 비교적 이른시간의 풍경이다. 전날 낮에만해도 도로가 주차장이 되어버릴정도로 붐비었다던 봉하마을의 아침은.. 평화롭기만 하다.


저 멀리 보이는 사자바위.... 처음에는 저 곳이 부엉이바위인줄 알았다.


비교적 한산한 주차장... 

대부분 전국번호판을 달고다니는 차량이였지만, 지역번호판을 보게된다면 주변지역인 "경남"과 "부산"번호판을 달고있는 차량들이다. 아직은 이른시간이라 멀리에서 온 사람은 거의 없다는것을 알 수 있었다.

TV에서 봤을때는 이 주차장도 굉장히 크다고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는 작은편이였다.


예전에 KBS 1TV(현재는 2TV 방영중) "다큐 3일" 봉하마을편에서 한창 공사중이였던 마을회관을 이용한 노란 기념관은 문을 9시 30분에 연다고 한다.. 그리고 채 문을 열지도 않은 노점들과 경호실(경호원 관저? 아래에 주차장도 있는 으리으리한 곳)등을 지나서 복원된 생가로 향했다.


돌로 포장되어있는 길을 지나 들어간.. 작은 초가집... 집 앞에는 텃밭도 있었고, 전형적인 50년대 서민의 생활상을 옮겨놓은듯 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5~60년전 봉하마을의 작은 초가집에서 자란 노무현이라는 한 사람은, 대한민국의 16대 대통령이자 국민을 사랑하는 대통령으로 길이 기억되고 있다.



생가는 걷모습만 초가지붕으로 그럴듯하게 꾸며놓은곳이 아니라, 내부도 당시처럼 정갈하게 꾸며져 있었다. 부엌의 아궁이, 안방의 책상도 외양간(창고?)도, 또 화장실까지도..(사용불가라는 팻말이 있었지만,) 생생하게 복원되어 있었다.


그리고, 아직 열지 않은 기념품점을 지나.. "뉴스에서 많이 보이던 곳" 노무현 대통령께서 서거하시기 직전까지 거주하셨고, 권양숙 여사님께서 현재 거주하고계신 그 대통령 사저 앞에 와있다.

이곳 역시도 등산복을 입은 경호원이 지키고 있다. 

사저의 입구도 으리으리할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작고 아담한편이였다.


그리고, 대통령님께서 편히 쉬고계신 묘역으로 향합니다.. 엄숙한 분위기.. 여기도 역시 자원봉사를 자처하는 국민참여당 경남도당 당원으로 보이는 분과, 경호원 한분이 "아주 작은 비석" 을 지키고 있습니다.


아주작은 비석, 그리고 대통령님이 계신곳까지 가는 길목에는 그분을 그리워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메시지가 담겨있습니다. 걸어가면서 아래 타일들을 읽어봅니다


묘비 앞에 가서 조심스럽게 묵념을 하고, "아주작은 비석" 아래의 금속판에 관련된 설명을 봅니다. 묵념을 하고 오느냐 사진은 묘비를 정면에서 찍지 못했지만, 작은 묘비 아래에서 편히 쉬고계실 노무현 대통령님을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묘역 옆에 작은 자갈이 깔린 길로 향합니다. "봉화산"에 올라가는 길.. 해발 140m의 작은 산이지만, 누워있는 마애불상과 사찰 그리고 두개의 거대한 바위에다가 관음상까지.. 볼거리는 해발 1400m의 높은 산처럼 많습니다. 먼저 마애불상을 거쳐 부엉이바위를 향합니다.


올라가는길목에 보이는 부엉이바위.. 


부엉이바위... 대나무로 만들어진 울타리가 이 바위의 사방을 가로막았습니다. 노대통령님이 걸으셨던 마지막 길목을 따라왔습니다.


봉화산에 있는 작은 사찰인 정토원에 도착했습니다. 49재 기간동안 노대통령님께서 계셨던 그 사찰..


정토원 전망대에서 바라본 봉하마을.


정토원에서 살고있는 犬.. 이 바둑이는 추운건지 이렇게 동그랗게 말아져서 자는듯 하다.. 이후에 사자바위와 관음상을 거쳐서 다시 정토원방향으로 내려왔을때.. 이 犬은 다른 위치에서 똑같은 자세로 숙면을 하고 있었다. 


바둑이가 숙면을 취하고 있었다면, 이 사찰에 살고있는 닭님... 아침식사를 하고계신다..


그리고 정토원 본당.. 부처님 옆으로 오른쪽에 신도로 보이는 분들 영정과 노무현 대통령님과 김대중 대통령님의 영정을 모시고 있습니다.


본당 앞에는 100년된 백일홍나무가 있습니다. 다 벗겨진 껍질과 앙상해보이는 나무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다니 신기할 뿐입니다.


사자바위에 도착했습니다. 사자바위가 사실 부엉이바위보다 휀스가 열약해서 더욱 위험했던 곳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래도 부엉이바위나 정토원보다는 더욱 전망이 좋았습니다. 먼 옛날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봉수대가 있는 사자바위...... 사자바위에서는 저 멀리 큰 글씨도 보입니다


"사람사는세상" 검은벼로 글씨를 만들어놓은 논... 정말로 사람이 사람대접받고 사는 세상을 만드시기 위해서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후에 생각해보니 저 뒤에 뱀산이랑 노대통령님이 사시공부를 했던쪽은 못가봤네요..;;)


사자바위에서 보는 사저.. 사자바위 방향에서 비추어보이는것을 염려한것인지, 조경수가 굉장히 많이 심어져있다. 조경수 뒤로 보이는 건물이 사저... 그리고 마당........


("모자쓰고 찍은 사진은 흔들린다.") 사자바위보다 뒤쪽에 있는 관음상을 거쳐..


다시 왔던길로 내려옵니다. (멀리서 보이는 초상화.)


그리고 가게 된 곳은 노무현대통령 추모의 집..

입구에 나열된 사진들을 하나씩 보고 들어간 그곳은, 아직 도서관이나 제대로 건물이 지어지기 전에 해놓은 임시 가건물이라고 한다.. 가건물이여도, 그곳에서 노대통령님의 일대기에 관련된 동영상을 보고,
생전 사용하셨던 유품이 전시된 전시관으로 향했습니다.


어두운 전시관의 가운데에는 촛불이 켜져있었는데.. 각각 성금을 내고 초에 하나씩 불을 붙여서 올려놓는곳이였다. 5000원을 큰 돼지저금통에 넣고, 필자도 작은 초 하나를 저 행렬속에 참가시켰습니다.

이 전시관에서는 노대통령의 생애에 관련된 정리와, 생전에 앉아서 식사를 하시던 의자, 메모지, 자전거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아! 그사진에 나온것이 이거구나!"라고 생각할 정도로 많이 언론에 알려진 유품들도 있었고, 집에서 사용하시던 유품도 함께 전시되어 있습니다.


봉하마을에 온 기념으로 티 한벌과 봉하빵(봉하마을 특산품 빵이라고 한다. *성분*보리빵+팥 앙금), 그리고 옥수수를 사먹고 마을회관을 개조한 노란 건물에서 노사모에 관련된 내용들도 관람하고,  봉하마을을 떠날 준비를 합니다.

그동안 멀리서 와보고 싶었던 곳이였고, 미처 둘러보지 못했던 곳이 있었지만 오늘 찾아온 그곳.. 그곳에서 마음으로 무언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것을 느끼고 다음을 기약합니다.

봉하마을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를 나에게 알려주었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언가는 내마음속에서 영원히 간직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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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29세 도태남의 처절한 삶의 기록. sinc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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