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3년 10월부터 단 한해도 빼먹지 않고 꾸준히 다녀오는 행사가 있습니다.
제 차를 처음으로 가지게 된 이후 단 한 번도 빠짐없이 참석했고, 가을에 이 행사를 거쳐가야 한 해가 거의 다 지나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연례행사처럼 굳어진 비스토동호회의 전국정모입니다. 남들이 보기엔 퇴물을 넘어 단종 20년 차를 맞이하는 특색 없는 똥차 비스토와 아토스 동호회 모임에 아직도 참석하냐 생각할지 몰라도 제 카라이프에서 상징성이 꽤나 큰 행사입니다.
지난봄에 비스토 터보를 매각했기에 실제 비스토를 타고 행사에 참석했던 해는 2013년과 2020년 2021년 2022년으로 얼마 되지 않습니다만, 차량 기변 이후에도 꾸준한 활동으로 2019년 11월부터 이 동호회의 카페지기를 맡고 있습니다. 파국으로 치닫게 되어 당일치기 총회로 대신한 2017년을 포함하여 2013년부터 2022년까지 이 동호회 전국정모에 참석했던 10년 치의 기록이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세월이 흘러가며 차량 자체가 폐차 혹은 수출로 소멸하고, 지난해 다음 ID 통합 이후 계정이 사라졌거나 연동에 실패하여 접속을 하지 않거나, 연락처가 바뀌고 활동을 중단하며 연락이 되지 않는 회원들도 많아졌지만 이 시절의 만남을 바탕으로 인연을 계속 이어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지난 5월 일본여행을 함께 갔던 분도 얼마 전 에버랜드에 함께 다녀오셨던 분도 지금은 이곳을 탈퇴했지만 이곳에서 알게 된 분들입니다.
2013
2014
2015
2016
2017
2018
2019
2020
2021
2022
그간 카페도 많이 조용해졌고 참석 인원도 참석 차량 중 비스토와 아토스의 비중도 꾸준히 줄어들었습니다만, 다음카페 서비스가 종료되는 그날까지 명맥만이라도 유지하고 이어오겠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모임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번 모임의 경우 참석률이 상당히 저조할 것을 우려하고 지난 2021년에 묵었던 숙소를 한번 더 예약하여 다녀왔습니다.
2021년에 방문했던지라 익숙하게 느껴지는 펜션입니다.
애초에 인원이 별로 없을 거라 생각하여 여섯 명 정도를 예약했고, 숙박 세명에 당일치기 두 명까지 총 다섯 명이 모였습니다. 시간이 되면 참석하겠다고 하셨던 회원님들이 계셨으나 아쉽게도 부득이하게 참석하지 못하셨네요. 이 펜션을 방문했던 2021년 전국정모를 기점으로 지난해 유스호스텔도 그렇고 직접 장을 보고 뒷정리까지 하는 펜션이나 민박집 대신 식당을 가거나 알아서 밥을 주는 곳으로 다니고 있습니다. 내내 장을 보며 들어가는 비용이나 숙박업소에 좀 더 주는 비용이나 큰 차이가 없습니다.
저녁으로 삼겹살을 비롯한 고기를 굽습니다.
성인 넷에 중학생 하나. 10년 넘는 세월을 보고 지내오며 한분은 결혼을 하여 배우자와 함께 오셨고, 처음 봤을 때 다섯 살 유치원생이던 한 회원님의 자녀는 중학교 2학년 막바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돌아보면 저만 딱히 바뀐 게 없네요. 한분은 비스토를 지금까지도 유지하고 계시고 한분은 작년까지 타다 놓아주셨지만 저는 10년 동안 메인으로 타는 차만 여러 대 갈아치웠습니다. 고기를 구우며 지나간 일들과 그간 함께했던 회원들을 회상하며 회포를 풀었습니다.
2013년엔 10년 뒤에도 이 모임에서 얼굴을 마주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까진 하지 못했습니다만, 10년 뒤에도 이 모임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앞으로 유입되는 인원은 거의 없을 것이고 전국정모라 쓰고 사실상 사모임이 되어있겠지만, 10년 뒤에 어떤 모습으로 2023년 오늘의 일을 회상하고 있을지 잠시 상상하는 시간도 가졌었네요.
비스토 아토스 없는 전국정모가 정말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대우차가 두 대 기아차가 한대네요.
언젠가는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 예상했고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한대 두대라도 볼 수 있었는데, 참석자 중 현재까지도 유일하게 비스토를 보유하고 있는 전임 카페지기님께서 장거리 운행이 힘들어 배우자분과 함께 말리부를 타고 오셨던지라 비스토는 없습니다. 다음날 출근을 하셔야 한다고 해서 간단한 총회를 마친 뒤 밤늦게 올라가셨습니다.
다음날 아침 퇴실 전에 숙박비를 정산합니다.
인원이 많아질수록 방값 포함 인당 가격이 줄어드는 구조인지라 인원이 적은 우리 입장에선 상당히 불리합니다만, 그래도 뭐 가격대비 괜찮게 잘 먹고 잘 쉬었습니다. 보령해저터널을 한 번도 가보시지 않으셨다고 하셔서 안면도 남쪽으로 원산안면대교를 타고 원산도와 해저터널을 거쳐 대천해수욕장에 가서 점심을 먹기로 합니다.
안면도와 원산도를 잇는 원산안면대교를 건너갑니다.
태안군은 육로를 통해 타 지역으로 나가기 위해 꼭 서산시 땅을 밟아야 했는데 원산안면대교가 개통되며 서산땅을 밟지 않고 태안 밖으로 나가는 길이 생겨났습니다. 오전시간대라 그런지 사람이 그리 많지 않네요. 오후시간대에는 올라가는 차들이 꽤 많아 정체가 이어지던데 말이죠.
원산안면대교를 건넌 뒤 원산도 북쪽의 선촌항으로 이동하여 바다 경치를 보고 갑니다.
선촌항에서 바라본 원산안면대교와 영목항의 모습입니다.
그냥 바닷바람 맞아가며 푸른 하늘과 푸른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불과 몇 년 전에는 배를 타고 들어왔어야만 하는 섬이 몇 년 사이에 차로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어졌으니 참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선착장에 정박 중인 작은 어선들 그리고 드문드문 낚시꾼들도 보입니다.
평화로운 어촌마을 바닷바람을 쐐며 물멍을 때립니다.
선촌항에는 빨간 등대도 있었습니다.
주로 어선들에게 항로를 비춰주는 작은 무인등대입니다.
안면도의 영목항이나 바로 앞 효자도나 대천항으로 가는 배가 다니는 선착장입니다.
해저터널이 생기고 다리가 생겼음에도 배는 아직 잘 다닙니다. 인천국제공항이 소재한 영종도로 들어가는 다리가 개통된 지 20년이 넘었음에도 아직 월미도에서 영종도로 가는 배가 다니고 있는데 뭐 이런 작은 섬을 이동하는 배가 아직도 다니는 건 이상하지도 않습니다.
보령해저터널을 타고 대천해수욕장으로 이동합니다.
해저터널을 타고 나오면 바로 해수욕장과 대천항입니다. 일단 차량을 주차하고 백사장과 파도치는 해변을 바라보며 또 물멍을 때립니다.
파도 앞에서 노는 사람들, 간간이 지나가는 보트를 보며 물멍을 때렸습니다.
물멍을 때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 3~40분 정도 나누고 근처 횟집 거리를 돌다 한 횟집에 들어가서 삼합구이를 먹었습니다.
스페셜 육해공 삼합 세트라는데 공(空)은 없습니다.
메인 메뉴인 삼합구이와 함께 맛보기 회와 모짜렐라 치즈를 올린 랍스터가 나왔습니다. 어차피 셋밖에 없고 회비를 쓰기도 뭐해서 제가 냈습니다. 제가 냈다고 해야 다음에 다른 분들도 더 오시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주중에 잠을 제대로 못 자고 다녀서 피곤하긴 했습니다만, 즐겁고 행복하니 평일의 피곤함은 모두 사라져 버렸네요.
일본어로 된 노래를 한국어로 의역한 가사인데 집으로 돌아오며 이 노래가 생각나서 듣고 왔습니다.
변해가는 것들도 변하지 않는 것도 매번 싫증내는 내가
이제서야 알게 된 지금의 이 순간을 너에게 약속할게
사소하다고 해도 둘도 없는 추억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작은 거짓말조차 진실이 되고 마는 너의 곁으로 갈게
가사 전체 보기. Sheldon이라는 분이 처음 개사했다고 하는데 명확한 기록이 없다.▽
지난 10년의 세월을 돌아보면 변해가는 것들도 변하지 않는 것들 역시 존재했습니다. 자잘한 구성원도 매개가 된 차량도 변해갔지만, 사람들은 변치 않았죠. 그런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과 행복한 추억을 되새기며 오늘도 더 나은 하루를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점점 작아지는 규모와 사실상 전국정모의 이름을 걸고 있지만 사모임이 되어가는 현실은 생각할수록 슬프기만 합니다.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 이 땅의 비스토와 아토스가 모두 폐차장으로 향한다 한들 비스토 아토스 동호회는 영원히 변치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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