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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의 입원이 굉장히 장기화됨에따라 더이상 손을 놓고있기는 뭐한 관계로, 슬슬 이전처럼 활동해보려고 합니다. 그동안 밀렸던 답글도 천천히 달고 또 달아드리고, 그동안 뵈러가지 못했던 이웃분들께도 모처럼만의 안부인사도 드릴겸 해서 말이죠..

여튼 글은 많이 남아있습니다. 보령 동부시장에 다녀왔던 이야기와 김문수 경기도지사 간담회에 다녀왔던 이야기 등등.. 많이 남아있는데.. 제 몸만 멀쩡하다면 금방 마무리 할 수 있었겠죠..

그렇다면 한참 전에 다녀왔던 시장이야기... 쭉 꺼내보겠습니다!

진통제 투혼



천안에서 장항선 열차를 타고 대천역까지 들어가는 루트를 선택했습니다.

천안에서 차를 타고 가는것보다도 시외버스를 타고 가는것보다도 보령땅으로 들어가는데에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아무래도 철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시간대가 잘 맞아서 새마을호 열차를 타고갔더라면 더욱 더 일찍 도착할 수 있었겠지만, 시장에 가던 당일날에 단국대병원에서 검사결과를 듣고 오는것때문에 새마을호 열차는 놓쳐버리고 말았습니다. 
(사실 그날 본스캔검사의 결과가 나왔으나, 역시 이상소견이 없었죠. 그리고 정확히 이틀 후.. 필자는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되어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올라오게 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배낭에 든건 카메라랑 수첩밖에 없을텐데.. 배낭이 이리 무거울줄이야!!!
 


곧 열차는 웬일로 1분의 연착도 없이 역에 도착하고, 지정된 좌석에 올라탑니다.

평일 오후시간대라 그런지 승객은 별로 없었긴 합니다만 잠을 자려고 열차 안에서 잠을 청해도 잠이 안오더군요. 그렇게 홍성역정도 지났을즈음에 앉아있는것조차도 다리가 아픕니다. 버티려고 해도 더이상 버티기 힘들정도까지 가더군요.. 열차는 열심히 철로를 따라 달리고있고, 전 결국 앉아있는게 정말 아픈관계로 일어섭니다.

그렇게 홍성역정도 지나갈즈음 더이상 참지 못하겠어서 열차카페칸으로 향합니다. 혹시 진통제같은 약은 팔지않느냐고 물어보고.. 팔지는 않는데 전무님을 찾아가라고 하더군요. 여기서 기차 안에 전무님이라는분은 검은 제복을 입은 아저씨를 의미합니다. 그러면서 열차카페 직원분은 혹시 드실 물은 없으시냐며 도시락과 함께 나오는 물 하나를 그냥 주십니다.. 그렇게 검은제복의 아저씨를 찾아 진통제를 하나 먹고.. 잠시 후 열차는 대천역에 도착합니다.


대천역에 도착하고, 그나마 시장으로 향하려 할때쯤이 되어서야 약기운이 돕니다. 걸어도 그렇게까지 아프지 않은걸 보면 말이죠. 대천역에서 동부시장까지 가는 거리와 교통편에 대한 내용은 이전에 한내시장에 갔을때 직접 비싸고 실속없는 좌석버스까지 타가면서 분석해둔 자료를 함께 활용하면 되기에 그 자료로 대체를 하겠습니다.

간단한 팁으로 장날이다보니 택시비가 평소보다 조금 더 나올 수 있다는점은 숙지해두시고 아래의 글을 참조해주세요.



다시찾은 보령시내입니다. 불법주정차와 사람들로 인한 극심한 정체가 지속된다죠...
장날이 아닌날도 상습적으로 정체되는 구간이지만, 장날엔 더 심해보입니다.


지난번엔 장날은 아니였지만 대보름 대목에 이 주변을 찾았더라면, 오늘은 장날입니다. 중앙시장부터 한내시장 동부시장 현대시장등으로 이어지는 연쇄적인 장날이라죠. 사실상 택시기사아저씨 말씀을 들어본다면 사실상 다 중앙시장으로 부르기도 한다는걸 보아서도, 지난번 한내시장때의 경험과 여타저타 들려오는 이야기를 종합해본다면 대천동의 많은 시장들은 크게 범위를 나누는것이 무의미합니다.

그럼에도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중앙시장의 이름에 모두 흡수되어 중앙시장이라 불리고 있지만 말이죠.. 그리고 깔끔한 아케이드와 함께 구역정리가 꽤 인상적이던 이날의 주인공인 동부시장은, 조금 깊숙히 들어가서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칠은 조금 벗겨졌지만, 깔끔한 간판과 아케이드의 디자인이 맘에드는 그곳!!

규모는 작아도 갖출건 모두 갖추고있는, 인정만은 풍부한 그곳은 보령동부시장입니다.

(2부에서 이어집니다..이 글을 잘 읽으셨다면 손가락버튼을 눌러주세요! 로그인 없이도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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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곳에서 생활한지도 열흘이 지났습니다.

참 기나긴 열흘이였죠.. 힘들게 몸을 이끌고, 오지도 않는 잠을 찾아 고통스럽게 지내던 밤도.. 이런저런 검사를 하러 다녔던 낮도.. 몸을 이끌고 가게 된 화장실도.. 자취방에서 집에 요양차 들렸다가, 집에서 급히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올라온게 딱 일주일이 지났답니다. 제 자취방에서 썩고있을 상추와 봄동은 주인집 아저씨께 치워주시기로했고.. 옆방 친구한테 카톡으로 방상태도 확인해달라고 부탁해놨네요.

그리고 지금 제가 서울에있나 천안에있나 당진에있나 어디에있나 구분도 못하고 산다는걸 확인했습니다. 저는 지금 서울바닥에 있지만, 그런것같지도 않은 이 느낌은..... 창살없는 감옥에서 살아가고있다는걸 확실히 알려주는 바 입니다. 그동안의 주말은 병문안의 러쉬가 이루어졌습니다. 많은 친구, 지인들이 이렇게 저렇게 병문안을 찾아오게 되었고.. 그럭저럭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를 하고 지내다보니 주말은 꽤 빨리 지나갔습니다.(하지만, 전 앞으로도 많이들 오실거라 믿고있습니다..ㅠ)

월요일까지 병문안 행렬은 계속되었고. 오늘은 병문안 일정이 잡혀있는게 없습니다. 주말을 앞두고 다들 퇴원해서 비워있던 병상이 새로운 환자들로 가득 채워지게되었고, 지금도 609호 5인실은 모두 차있는 상태입니다. 병원에서 쭉 한주를 있다보니 어느정도 병원의 섭리에도 적응해나가는듯 해보이네요...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빨리 나가야할텐데..ㅠㅠ


오늘은 그래도 조금은 좋은 소식을 들고 왔습니다.

약 열흘만에 그동안 펴지 못했던 다리를 피게 되었습니다. 제대로 펴지지 않던 왼쪽다리가 펴지고, 병상에는 다리를 펴기 위한 이상한 도구까지 동원되었네요;;

월요일 아침회진때 의사선생님께서 제 다리를 사정없이 펴기 시작합니다. 아픕니다. 죽어라 아픕니다. 미치고 환장합니다. 참는데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느껴온 통증 그대로를 소리로 표현했더니만, 6층 병동 전체에서 구경거리가 났다고 구경들 나옵니다;; "난 아파서 그랬을 뿐인데.."

다들 제 아픔을 엄살로 치부해버리고... 여튼 한번 펴진 다리는 그 이후로 서서히 통증히 사라져 앞으로 펴는데에는 크게 지장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큰 지장은 없었으나 이상한 도구를 이용해서 이 상태를 유지하게 한다고해서 지레 겁을 먹게 되었네요.. 쇳덩이(추)를 달아놓는다기에 설마 수십kg의 어마어마하게 큰 추를 생각했던 제가 이상한거였지만 말이죠. 오전회진때 얘기가 나오고서 언제쯤 그 이상한 도구에게 발을 맏겨야 하는 상황이 올지 기다리다가 오후 4시쯤이 되어서야 이 괴상망측한 기구를 조립하기시작했습니다.

"지옥으로의 카운트다운이라니!!!!!!!!!! 이제 내발도 내맘대로 못움직이는구나!!!!!"

시설팀에서 나와 침대의 식판을 떼어가고 그자리에 봉을 하나 덧댄다음에 도르레와 함께 노끈을가지고 회진때 전문의 교수님을 졸졸 따라다니던 1,2년차 인턴이랑 레지던트 절차를 밟고있는 의사들이 열심히 조립을 합니다. 사실상 2년차가 1년차를 가르쳐주듯이 설명하면서 작업이 진행되고.. 1년차 인턴은 열심히 테이프나 붕대만 잘라줬는데 말이죠;;;;;


엄청나게 무거운 추는 아니였고, 한 1kg정도의 무게를 자랑하는 추 입니다. 1,2년차 초보의사들이 잘못 셋팅해놓은 상태가 위와 같지만, 제대로된 이용법은 내 발과 수평선을 맞추어야 합니다..

처음에는 편합니다. 하지만, 점점 있다보니 이것도 힘드네요.... 중간중간 빼고 또 끼고를 반복하고있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누구의 도움 없이도 혼자 걸을 수 있는 날만을 위해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있습니다. 다음에는 혼자 걷게되었다는 소식으로 찾아뵙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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