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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새 출발을 앞두고 있는 필자에게 벌써 이게 올줄은 몰랐습니다!!!

징... 징병검사라니!!!!!!!!!

대학생활을 맞이하기도 전에, 국방부주관 무료숙식캠프 적격자심사를 받으러 오라니!!!!!!

처음에는 "올게 드디어 왔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저질체력이고 잉여력이 넘쳐나서 규율적인 군대와는 매치가 잘 안되는데.. 필자 자신이 국군의 전투력 저하와 사기저하 그리고 블랙홀이 될거같은 생각이 들긴 하지만 현역이던지 상근이던지 산업기능요원이던지 무엇이 되던간에 잘 버텨내야합니다. 

아주 잠시동안 "벌써 내가 군대갈 나이가 됬나"라는 생각이였지만 곧 현실적으로 돌아오더군요.




병무청장님께 편지가 왔습니다. 중요한건 전 대전충남지방병무청장님이 어떤분이신지 몰라요.

물론 저한테만은 아니지만 이렇게 편지를 보내주시다니... 일단은 감사드립니다^^ㅋㅋㅋㅋㅋ 


이제 편지봉투를 뜯을 차례가 왔습니다. 20년도 더 된 미아찾기 문구가 붙어있고.. 조심스럽게 봉투를 뜯어내봅니다.

조심스럽게 봉투를 뜯어낸 뒤에 이제 편지의 내용물을 확인해봅니다. 병무청장님께서 어떤 말씀을 저에게 주시려는지....ㅎㅎ 이미 답은 나왔지만요. "신체검사 받으러 오세요"라고요ㅋㅋㅋ


"1993년생은 2012년도 징병검사를 받으셔야 합니다."
병무청 홈페이지에서 징병검사 날짜를 선택하세요.
(날짜별 선착순입니다.)


젊은 날의 특권이자,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이행해야 하는
병역의 의무!!
건강하고 자랑스러운 병역문화!!
그 중심에 투명하고 공정한 징병검사제도가 있습니다.

누구나 이행해야 합니다. 방법은 각자 다를지 몰라도 이행을 해야합니다. 이제 뒷장을 한번 참고해서, 병무청 홈페이지에 가서 어떠한 방법으로 징병검사를 신청해야하는지 확인합니다.


일단 뒷장으로 넘겨서 가장 잘 보이는 말은 "귀하께서는 병역법 제 11조의 규정에 의하여 2012년도 징병검사 대상자(1993년생)임을 알려드립니다." 이 긴 문장 하나.

전국적으로 2012년 징병검사 대상자(93년생)의 경우에는 2012년 2월 8일부터 11월 30일까지 징병검사 기간인데 대전,충남지방 병무청의 경우에는 2012년 5월 16일부터 11월 30일까지 진행된다고 합니다.

이제 직접 날짜를 신청해야합니다. 신청 권장기간은 3월 31일까지라고 합니다.

재수생이고 누구고간에 93년생이라면 신체검사는 모두가 해당사항입니다.



병무청 홈페이지(www.mma.go.kr)에 접속해서 민원마당-민원신청-징병검사민원-징병검사본인선택의 절차로 진행하면 되겠습니다!

참고로 공인인증서를 소지하고있어야만 징병검사 본인선택이 가능합니다. 접근성이 많이 개선되어 굳이 IE뿐만이 아니라 크롬과 파이어폭스에서도 진행이 가능하니 참고해주세요. 방금 신청절차를 마치고 왔는데. 이후 신청절차에 대한 자세한 포스팅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P.S 아직 여름방학때도 그렇고 여유가 많이 남아있네요. 대전충남청 기준으로 4400명정도만 신청을 해둔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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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29세 도태남의 처절한 삶의 기록. sinc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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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나름 멀리에 위치한 관광지를 소개해보려 한다.

대한민국 동부전선의 최전방.. 6.25이후 대한민국의 영토로 편입된 38선 이북의 강원도 양구군에 위치한 관광지이다. 인구가 2010년 2월말 현재 2만 1404명에 불과한 대한민국 중동부전선 최전방의 양구군.. 펀치볼을 비롯한 이런저런 6.25 고지대 전투지, DMZ와같은 문화관광지에 그리고 지자체에서 대대적으로 밀고있는 한반도의 중심이라는 슬로건까지..(한반도 배꼽축제라는 행사도 기획하고, 파로호에는 한반도모양의 인공섬을 만들었다고 한다.) 인구는 적어도, 관광지는 매우 알찬 양구군의 대표적인 관광지라 하면, 양구통일관-제4땅굴-을지전망대로 이루어지는 이 코스가 아닌가 생각한다. 오늘은 필자가.. 안개낀 아침부터, 이 코스를 돌게 되었다.

1996년에 펀치볼분지 북단에 세워진 양구통일관.. 이 양구통일관은 제4땅굴과 을지전망대를 가기 전 출입에 대한 업무를 마치고 가야하기 때문에 꼭 들려가야 하는 곳이지만,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데에 대한 전체적인 시설은 약간 아쉬웠던 편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깔끔한 박물관에는 제1 전시실과, 제 2 전시실 그리고 전쟁기념관과 625시절 운용되었고 지금은 퇴역한 군의 장비들이 외부에 전시되어 있다. 제1 전시실과 2 전시실에서는 북한의 생활과 생활용품 그리고 실상에 관련된 자료들이 정리되었고, 모아져있었다.


북한에서 생산된 제품들, 그리고 북한의 생활용품들.. 거기에다가 남북 합작으로 만들어진 북한제 CRT 모니터에, LG(당시 "금성[Goldstar]")의 OEM 방식으로 생산된 TV까지 있었다. 다소 작은 제 1전시실과 제 2 전시실 안에 빼곡히 전시해놓은 제품들을 좀 더 넓은 전시실에 더욱 상세히 전시해놓았으면 어땠을지 궁굼하다.


양구통일관에 마련된 전쟁기념관. 이 건물 3층 전망대에서 바라본 양구통일관 주차장이다. 앞에 크게 세워진 아홉개의 기둥은 6.25당시에 양구군에서 있었던 전투지의 해발 고도들처럼 높이 솟아올라있다. 전투의 이름과 참전한 아군과 적군에 관련된 정보와 함께 각 전투지의 해발고도가 쓰여져 있었다. 이 전투들을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진 전쟁기념관은 이 상징물들을 지나서, 심오한 느낌을 주는 조형물들을 지나 들어갈 수 있게 된다. 볼거리는 충분했지만, 낙후된 시설과 제대로 작동이 되지않는 시설도 있어서.. 그리 좋은인상을 심어주지는 못했다.


다음으로 향한곳은 통일관으로부터 약 5km 떨어진 제 4 땅굴이다. 북한군이 유사시 이용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땅굴중 우리나라가 가장 최근에 발견한 땅굴이며, 다른 땅굴을 포함하여 유일하게 전동차가 다니는 곳이다. 1990년 3월 3일 군사분계선에서 약 1.2km 떨어진 곳에서 이 땅굴이 발견되었다. 이 땅굴을 발견하기 위해 우리군은 381m나 화강암을 파들어갔고, 90년 3월 제4땅굴 소탕작전 당시에 조선인민군이 설치해놓은 지뢰를 탐지해서 자신의 몸을 던져 백두산부대 소대원의 목숨을 구해주었다고 한다. 이 忠犬 헌트님은 당시 군견 최초로 "소위"라는 계급으로 추서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땅굴의 입구 옆에 그의 충견묘가 자리잡고 있다.

먼저 제4땅굴에 입장하기 전, 땅굴에 관련된 영상을 보고.. 땅굴로 들어갔습니다. 역시 땅굴 안은 사진촬영이 금지된 곳이라, 촬영할 수 는 없었지만..(맘만먹으면 촬영했을수도..;;) 조선인민군이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파놓은 땅굴과, 그 땅굴을 찾기위해 우리군이 파고 들어간 흔적은 아직도 생생히 남아있었으며, 전동차를 타고 군사분계선이 있는 곳까지 가서 북한군이 만들어놓았던 레일과 주기적으로 넓게 만들어놓았던 구역들을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제 4땅굴 주변에도 역시 퇴역한 육군 정찰기와 기념비가 있었습니다.


제4땅굴에서 바라본 휴전선. 저 위로 보이는 철조망을 지나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의 땅이란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있는 전망대 중에 가장 북한과 가까이에 위치한 "을지전망대"를 올라가면 다 볼 수 있는 구역들이였다. 저 높은곳에서 활약하고있는 대한민국 육군 제12보병사단 을지부대의 장병분들은 매번 수고가 많으시다..


그렇게 우여곡절끝에, 험한 고갯길을 지나 을지전망대에 도착한다. 사실 안개때문에 사진을 찍어도 잘 보이지 않고, 산 한가운데의 매서운 겨울바람과 바로 옆으로 보이는 철조망 이후의 지역은 "촬영금지"딱지가 역시나 붙어있었기에, 이번에도 사진을 찍기는 거의 포기하다시피하고 전망대 위로 향했다.

전망대 2층에는 을지부대의 활약상과 봉사 공헌활동등에 대한 소개가 되어있었고, 망원경에 500원을 넣고 북쪽의 군사분계선과 초소를 볼 수 있었다. 양구군청 공무원이자 해설사이신 분의 해설을 듣고, 안개가 끼지 않으면 금강산도 보이고 여기저기 다 보인다고 했지만 이리저리 살펴보아도.. 역시 안개때문에 볼 수 없었다.

아침부터 안개가 자옥하게 끼었고, 역시나 보안이 중요한 군사시설들이였기에 사진으로 미처 담지 못한 부분들이 굉장히 많았었지만, 통일에 대한 열정은 나를 막을 수 없었다. 나라를 위해 고생하시는 군인분들도 계시고, 분단된 나라에서 생이별을 하게 된 사람들도 많은 이 나라. 3대세습이니 핵개발이니 하면서 같은 민족끼리 총을 겨누고 굳이 싸워야만 하는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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