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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자동차야 르노 자본에 인수되어 르노삼성자동차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지만, 트럭을 만들던 삼성상용차의 경우 법인 자체가 공중분해 되어 버렸습니다. 르노가 삼성상용차도 함께 인수했더라면 한참 수입에 열을 올리는 마스터 상용밴이나 대형트럭들이 삼성상용차 대구공장에서 태풍마크를 달고 생산했을지 모르는 일이지만 말이죠.


여튼 오늘의 올드카 목격담의 주인공은 삼성상용차에서 생산했던 1톤 트럭. SV110 야무진 견인차입니다.



야무지게 생겼지만, 삼성상용차의 파산으로 데뷔 2년만에 사라진 비운의 트럭 야무진.


1998년 11월 닛산의 1.5톤급 트럭인 아틀라스의 디자인을 고쳐 SV110으로 출시하여, 1999년 9월부터 야무진이라는 이름을 병행해서 사용하기 시작한 뒤 얼마 못가 삼성상용차가 망해버리고 말았습니다. 후발주자인만큼 당시 시장을 양분하던 봉고와 포터 대비 저렴한 가격을 책정하여 판매했었지만, 과적이 만연한 현실을 간과한 빈약한 프레임과 이미 경쟁차종은 10년 전 가져다 버린 케이블식 파킹 브레이크 등 태생부터가 문제가 많았던 차량이였습니다.


여튼 태생부터 문제가 많았던 차량이고, 이후 삼성상용차의 파산으로 외장부품은 물론이고 UD트럭의 한국 진출 이전까지는 그 흔한 오일필터조차 비싸게 일본에서 수입해다가 쓰던 실정이라 빠르게 폐차 혹은 수출길에 오르며 사라졌습니다. 



여튼 짧은 시기동안 태생적인 결함만 확인되고 시장에서 퇴출된 야무진은 순정 견인차가 있었습니다.


삼성상용차에서 직접 특장 견인차를 팔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리베로가 견인차의 주류가 되기 전까지는 야무진이 대다수 견인차의 주류를 이뤘습니다. 지금이야 대부분 언더리프트나 셀프로더인지라 폐차 견인용이 아니고서는 붐대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그시절만 하더라도 사실상 대부분이 붐대 방식의 견인차였으니 야무진 견인차도 붐대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나름 고급스러운 직물시트와, 직선 일색이던 경쟁차종 대비 둥글둥글한 세련된 디자인이 채택된 트럭이였습니다.


그래도 뿌연 먼지가 깔려있는걸 제외한다면 실내 상태는 직물시트의 찢어짐 하나 없이 매우 온전히 보존되어 있더군요.



주행거리는 약 43만.


오디오는 기아차에 달리던 물건이 달려있었고, 나머지 작업등 스위치를 장착한 부분을 제외한다면 순정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닛산의 바네트를 들여와 피만 봤었던 대우의 전철을 밟지 않고자 한체급 위의 트럭을 들여왔던 삼성상용차 역시 디자인과 가성비만 놓고 본다면 경쟁차종보다 떨어지는 부분은 없습니다만, 애석하게도 험난한 대한민국 실정에는 맞지 않아 도태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야무진이 가진 몇 안되는 특장점 중 하나. 기어봉이 접힙니다.


가도식 쉬프트 레버의 사용법을 설명하는 스티커도 그대로 붙어있더군요.


가도식 쉬프트 레버


* 부쯔 상부를 손가락으로 잡아 올리면서 레버 상부를 화살표 방향으로 누르면 레버는 조수석 쪽으로 젖혀집니다.

* 레버를 원위치 시킬 때는 레버를 화살표 반대방향으로 일으키면 자동적으로 돌아 옵니다.

* 레버를 젖힐 때에는 변속기를 중립위치상태에서 엔진정지, 주차 브레이크를 당긴 후 시행하십시오.


나름 생소했던 기능인지라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었습니다.



새로 도색을 했는지 전반적으로 깔끔합니다. 거의 사용하지 않는듯 보이더군요.


요즘이야 뭐 시골동네에도 견인차가 많으니 공업사 렉카가 출동할 일이 별로 없겠지요. 그래도 깔끔한 상태로 오랜 세월 공업사의 견인차로 진가를 발휘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동안의 삼성상용차 야무진 목격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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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한글날 오전. 경부고속도로에서 본 차량입니다.


웬지 미국차 느낌이 물씬 풍겨오는 디자인. 그렇습니다. 세피아의 5도어 해치백 모델 레오(LEO)입니다.



경기40(평택시) 지역번호판이 부착된 이 차량. 세피아 레오가 맞습니다.



이 차량의 모태가 된 세피아 이야기는 7년 전에도, 올 초에도 많이 했으니 생략하고 넘어갑니다.


96년 말부터 97년까지. 아주 잠깐 팔린 차량이지만 나름대로 기아자동차의 첫 고유모델이자 공도의 제왕으로 불리던 세피아의 해치백 모델로 이미 개발된 상태였습니다. 구형 세피아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세피아 레오의 사진이 남아있고, 구형대비 둥글게 다듬어진 뉴세피아보다는 구형 세피아에 어울리는 후미등 디자인이 그러한 사실을 뒷받침 해주지 않나 싶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94년 부분변경 모델인 뉴세피아와 함께 출시가 예정된 상태였으나, 기아자동차의 자금사정으로 뉴세피아 출시 이후 한참이 지난 1996년 10월에. 이미 구아방이 준중형차 시장을 씹어먹던 출시되어 이렇다할 빛을 보진 못했답니다.


약 1년간 얼마나 팔렸고, 그 중 남은 개체는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미 뉴세피아도 죄다 수출 아니면 폐차로 도로 위를 달리는 모습을 그리 쉽게 볼 수 있는 차량도 아니거니와 그런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 볼 사람도 없으니 말이죠.



범퍼에 달린 직사각형 모양의 반사판(리플렉터)는 당대 국산차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물건이 아녔습니다.


비록 수출형 차량에 후방안개등을 장착하여 나가기 위해 뚫어놓은 구멍을 그냥 놔두기 뭐해 리플렉터라도 박아놓은 꼴이지만, 이런 요소들이 가뜩이나 흔치도 않은 세피아 레오를 좀 더 이국적인 자동차로 느껴지게 하는 요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1.8도 아닙니다. GLX도 아닙니다. 선명하게 LEO라고 붙어있습니다.


레터링이 살짝 틀어진걸로 보아 제치가 아니라 다시 붙인듯이 보입니다. 97년 8월에 등록된 이 차량은 상대적으로 후기에 생산된 모델이라 볼 수 있겠죠. 뉴세피아의 후속 모델인 '세피아2'가 97년 8월에 출시되었고 세피아 레오의 실질적인 후계차종인 슈마 역시 97년 12월에 출시되어 세피아 레오는 그렇게 짧은 판매기간을 뒤로한 채 역사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이들의 후속모델인 '세피아2'와 '슈마'는 IMF사태와 기아자동차의 부도. 린번엔진 아반떼와 파워노믹스 누비라의 피터지는 싸움 속에서 제대로 존재감 하나 내비치지 못하고 2000년에 스펙트라에 자리를 내주며 단종됩니다.



아줌마가 타는 차라 외관 상태는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여기저기 찍히고 긁힌 자국들이 보입니다. 이 귀한 차의 진면목을 알아보는 사람에 발굴되어 새 삶을 살게 될 확률이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머지않은 세월 안에 폐차장의 이슬로 사라지리라 생각됩니다. 부디 남은 차생 무탈하게 보내고 제 생각과는 달리 오랜세월 주인아줌마와 함께 도로를 누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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