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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지금은 병원에서의 입원생활을 끝마쳤습니다.

정들었던 6층병동도, 병원 이웃들에게 빨리 쾌유해서 퇴원하라는 인사도 이젠 마지막.

말장난하고 자알놀았던 간호사누나도 모두 굿바이.

입원생활도 마무리되었으니, 특별기획 역시나 5부로 완결을 지어보려 합니다.

어떻게 제 사정을 참작해서 몇주 더 입원치료가 필요했지만 통원으로 바뀌게 된 제게는 재활치료가 매일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병실에서의 20여일간의 생활은 참 빨리도 지나갔고, 어느정도 발을 이용하고 목발을 짚고 이리저리 다닐정도는 되었습니다. 그동안 잊고지내왔던 일상으로 돌아와서 찾아간 학교에서 저는 3주전 상태에서 답보된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제가 일상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던 그 시기 역시나 다른이들에게는 평소와도 같이 흘러간듯 보입니다.

성바오로병원 6층 병동 간호실.

3월 말일까지, 병원에서 지내고.. 그렇게 다시 집으로 내려와서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새로이 하다보니 퇴원 후 오늘까지의 시간은 바쁘게 흘러갔습니다. 앞으로 다시 일상에 완벽하게 적응하고, 투병 이전상태로의 블로그의 정상화까지는 조금의 시간이 더 소요될테지만 언제나 노력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제 다음 통원일은 4월 12일입니다. 담당 교수님의 외래시간과는 제 시간표가 하나도 맞지 않다보니 일단 12일날은 다른 교수님을 만나뵙고, 채혈을 한 뒤에 담당교수님께서 외래를 보는 4월 마지막주 토요일에 결과를 듣기로 했습니다. 아직 다 나은상태가 아니다보니 "조금이라도 더 심해지면 다시 와라"라는 의미심장한 말씀을 남겨주셨습니다.

성바오로병원 물리치료실. 이곳은 거의 유일하게 내 아군이였다.

후유증으로 비틀어진 골반뼈와 함께 자세를 다시 잘 잡아줘야합니다.

그럼으로.... 물리치료와 재활치료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해줘야 하지요. 

치료는 굳이 서울로 통원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일상속에서도 매일 계속될 예정입니다. 

오늘은 입원 전까지 외래진료를 받았던 단대병원에 가서 재활치료에 관련된 상담을 받았습니다. 먼저 불과 몇주전까지 검사를 위해 다니던 단국대 정형외과부터 향한 뒤 그동안 응급실로 향했던 일들을 이야기하고, 당시 MRI 자료를 가지고 조금 더 분석을 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단국대병원 진료시 촬영했던 X-RAY와 뼈스캔 결과들과 MRI 자료들.. 분명히 그 당시에 정형외과에서 가장 연륜이 있으시던 담당 교수님께서는 아무런 이상도 없다고 했었는데, 이번에 뵙게 된 비교적 젊은 교수님은 x-ray에서도 뼈스캔에서도 아주 미세하게 활막염 증상이 나타나있던것을 찾아내었습니다. 그리고 성바오로에서 찍어온 MRI CD를 확인하시고 대강 이러저러했다는걸 알려주시더군요.

멘붕...........

그때 알고 치료에 들어갔더라면 걷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는 막을 수 있었을텐데요ㅠㅠ

여담으로 외래진료를 봤던 단대병원이니 입원해있던 성바오로병원이니 여러 정형외과 선생님들을 거쳤습니다만, 다 개성이 강하신 분들입니다.ㅋ

초저녁.. 병동의 복도..

정형외과를 거쳐 재활의학과로 가서 몇가지 수치를 재보았습니다. 

짝이 맞지 않는것같은 두 다리의 길이차이는 의외로 1cm밖에 나지 않더군요. 큰 차이는 없었지만, 재활치료가 필요한 수준이라 운동치료와 함께 전기치료(물리치료)가 병행되게 되었습니다. 운동치료는 역시나 알다시피 이리저리 불편한 신체를 운동을 통해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곳이고, 전기치료는 보통 물리치료실에 가서 받는 물리치료와 동일하다고 보면 됩니다.

이제 매일같이 단대병원으로 재활치료를 받으러 가야되는군요. 조금 아프고 힘들더라도 제 의지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열심히 움직이지 않는 왼쪽다리에 힘을 주고 병원에서 하라는데로 따라하는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여튼 병원은 벗어났습니다. 그동안 미처 완결짓지 못했던 김문수 도지사 간담회보령 중앙시장 탐방기 완결글로 곧 찾아뵙겠습니다^^

P.S 병역문제는 퇴원하는날 살짝 물어보니, 요즘은 웬만해서는 다 보내는 추세라 정형외과적으로 반병*이 아닌이상 면제는 꿈꾸지 말라덥니다. 이렇게된거 부디 병역문제를 해결할때쯤 가서도 아프지 말아야할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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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29세 도태남의 처절한 삶의 기록. sinc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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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의정부까지 넘어가서 PET-CT검사를 마치고 왔습니다.

빨리 병원을 벗어나야 좀 관리가 되던지 하고, 이웃분들을 많이 찾아뵐 수 있을텐데요.. 오늘은 그나마 안도할 수 있었던 소식과 조금은 기쁜 마음을 가질 수 있었으니 제가 다 나을때까지 며칠만 더 기다려주세요! 분명히 빠른 회복과 함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거라 믿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아픔을 나타내던 포스팅들도 일기형태의 기획물로 다듬어서 정리해놓아볼려고 합니다. 아프고 정작 심혈을 기울여서 써야할 글들을 쓰지 못하는 상황에 도달했지만, 이 상황에서도 글로 표현하려는 모습을 보이는게 블로거의 모습이 아니려나 하는 생각에서 이러한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조금씩 회복되면서 이웃분들을 찾아뵙고, 저도 그동안 밀려있던 글들을 순차적으로 업로드 할예정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참고로 밀려있는 글이 꽤 많네요;;ㅠ)

그리운 안서동의 일상이여. 답답한 병동을 벗어나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리운 안서동의 일상이여. 답답한 병동을 벗어나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다.


자세히 서술하지 못한 며칠전까지의 이야기


사실 블로그를 만지지 못했던 3월 13일의 이야기를 해보기 전에 3월 12일에 숨겨져있던 이야기를 해보자면 이렇습니다. 3월 12일 MRI촬영 이후의 이야기부터 잠시 꺼내보죠.

검사를 마친 뒤 다시 병동으로 올라오면서 담당 선생님을 만나뵙게 되었는데 염증증상이 있다는 식으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만, 이후 5시에 올라오셔서는 PET-CT라는 검사를 또 추가로 하고 토요일쯤에나 정확한 병명을 알아보자는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듣고 갑자기 패닉상태에 돌입되었습니다. 가톨릭대학교 계열병원중 가장 처음 지어진 청량리에 있는 성바오로병원에는 이 검사를 위한 기기가 없기에 반포동에있는 서울성모병원이나 여의도성모병원 혹은 의정부성모병원으로가야한다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강남이나 여의도는 이 검사를 위해 시간을 빨리 낼 수 있을정도로 스케쥴이 넉넉한편이 아니고, 의정부는 조금 비는 시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게 3월 14일이랍니다. 하루를 공백으로 보내야하는 저는 그저 암담할 뿐이였습니다. 거기다가 회진때 의사선생님께서 오셔서 PET-CT 이야기를 하실때에

"그거 뇌종양이나 암같은거 검사하는거 아니에요??"
라는 검색의 힘으로 얻은 궁굼증을 묻는 제 질문에 조금 멈칫하셨던 한교수님(담당의사)

염증이나 다른 증상들도 검사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로 둘러주셨는데.... 3월 13일 아침에 부친의 전화를 받던 모친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 이건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다는걸 느꼈습니다. 생업을 제쳐두고 서울로 올라오신다던 그 이야기도 심상치 않았구요.

그렇게 3월 13일 하루는 정말 침대에서 엉덩이하나 떼지 않고 답답하게 지냈습니다.

과연 언제쯤 병명을 알 수 있을지.
그리고 언제쯤이면 PET-CT검사의 일정이 확실히 잡힐지...


답답하고 또 복잡한 마음을 가지고 지내던 3월 13일 오후.. 의정부성모병원에서 1시 30분 검사가 잡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검사전에 금식이 필요하고, 14일 오전 11시 30분에 물 세컵을 먹어야 한다는 이야기. 그리고 최소 12시까지는 엠뷸란스를 타러 1층으로나와야 된다는 이야기까지 말이죠..

그 이야기를 듣고 희망을 가지나 싶었지만, 그날 밤은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새벽 4시가 되어서야 잠을 청할 수 있었죠..

아.. 학교도 그립다.

아.. 학교도 그립다.


3월 14일


새벽에 잤으니 아침이 밝아도 그리 아침같지는 않습니다. 밥이 도착했을때 즈음에[각주:1] 깨어보니 갑자기 대학친구 이름을 물으시더군요. 조금 친한 여자애였습니다. 제가 세상모르고 자고있었을 6시 30분쯤에 전화가 왔었답니다. 전 기억에도 없이 세상모르게 잘 자고 있었고 가장 중요한건 전화 올 일이 없는데.. 대신 전화를 받은 보호자 엄마님 말씀대로 교수님 번호를 물어보려는 전화였답니다. 기록을 확인하니 전화가 왔었습니다.
 
그렇게 아침을 열었습니다. 밥맛이 없습니다. 속이 미식축구를 하고싶을만큼 미식거립니다.
약이 독해서 그런거랍니다. 하지만 밥맛이 없어서 월요일까지만해도 한그릇을 뚝딱 비우던 저도 요 최근에 반정도밖에 먹지를 못하는데, 먹기가 싫어도 좀 버티려면 억지로 먹어야합니다. 그렇게 먹고 이렇게 답답한 현실이 싫었고, 탈피하고싶었던 저는 금식을 시작하며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절대 아빠 오시면 짜증내거나 그런 내색 비추지 마. 암일 확률도 있다고 해서 일도 안되시고 목소리도 안좋으시니까.."

이게 저 혼자만의 아픔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부모님 동생까지 연쇄적인 걱정과 아픔으로 이어집니다. 저는 이때 알았습니다. 내가 암일수도 있다니..;;; 앞날이 창창한 이 젊은나이에....... 어제의 눈물의 이유를 알았습니다. 그리고 잠못이루던 새벽밤 안타깝던 눈으로 저를 바라보던 이유를 알았습니다.[각주:2]

조금은 충격적이였지만 답답하게 있는것보다는 도전을 해보는게 효율적이라는 생각에서 도전을 해봅니다. 조금 나아진 다리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화장실도 가보고.. 직접 휠체어도 타봅니다. 사실상 왼쪽다리가 안쪽으로 전혀 굽혀지지 않는 상태이다보니 좁은 휠체어에 제대로 타기는 힘들었지만, 바퀴달린 휠체어를 타고 병원 복도를 잠시 돌아다닌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비록 제가 직접 밖으로 나간건 아니여도 바깥 공기를 잠시 쐐어볼 수 있었고, 만신창이였던 몸도 샤워실에서 청결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지요. 그렇게 의정부로 갈 시간은 다가옵니다.

이곳이 가톨릭대학교 성바오로병원 본관.

이곳이 가톨릭대학교 성바오로병원 본관. 1970년대 지어진 건물이라 노후화되었지만 별관과 함께 대형병원으로써의 위엄은 보여준다. 이 옆에 경동시장에서 장사를 하시는 옆자리 아저씨의 말씀을 빌리자면, 지가가 굉장히 비싼 청량리 역세권의 이 부지를 팔고 더 넓게 곧 이전해갈것이라 한다.


 그렇게 병원 로비로 나오니 엠뷸런스 한대가 대기해있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나온 저.. 그리고 부모님과 제가 탄 휠체어를 밀고 로비로 온 실습나온 학생간호사... 왼쪽다리를 쓰지 못하고 작은 접촉에도 고통을 호소하는 저를 들것에 옮기는것도 굉장한 일이였습니다. 엠뷸런스 아저씨까지 네사람이 붙어서 저를 옮기지만 타이밍이 잘못맞아 저는 고통을 호소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구경거리라도 난듯 잠시 구경을 합니다. 젊은사람이 저렇게 다리를 못쓴다며 안타깝다는듯 이야기를 하고갑니다만, 여튼 엠뷸런스에 올라타는데까지는 성공합니다!

그런데.. 청량리역 주변 경동시장과 속칭 청량리588로 불리는 집창촌을 벗어나 큰길로 향하는 차에서 제 고통은 극에 달합니다. 지나치게 많은 과속방지턱과 고르지 못한 노면의 요철이 그 주인공입니다.

"젠장..이... 이스타나........."

응급차량은 조금 년식이 된 이스타나였습니다. 진리의 승합차였고 쌍용의 잘나가던 시대를 대변해주었던 차량인 이스타나.. 후기형이래봐야 벌써 8~9년이죠. 참고로 초중기형이였습니다. 작은 스쳐감에도 통증을 호소하는 저에게 이스타나의 승차감은 지극히 최악이였습니다. 우당쾅쾅콰과괃 요철을 밟을때마다 외마디 비명소리는 더더욱 울려퍼집니다.

그렇게 동부간선도로를 타고 30분정도를가서 의정부성모병원에 도착합니다. 도착하자마자 핵의학과로 가서 검사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으니 곧 검사를 위한 절차가 마무리됩니다. 일단 검사를 위해 단대병원에서 뼈스캔때 맞았던 방사능주사를 또 맞고. 한시간을 작은 방에서 안정을 취한뒤 검사를 시작합니다.

CT 기계에 들어가서 20여분을 참는것이 검사의 끝입니다만, 좁은 CT의 구멍에 제 절대 안으로 구부러지지않는 왼발이 다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압박을 하는 밴드등으로 묶어서 발을 집어넣고, 검사는 시작됩니다. 그러한 상태에서 몇분 지나니 아팠지만, 잠이들었었는지 나중에 저를 깨우더군요.

그렇게 검사를 마치고 다시 청량리로 돌아가는길에 좋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악성종양(암)이 아니랍니다! 이거 하나만으로도 모두 기분을 펼 수 있었지요. 엠뷸런스 기사아저씨도 제 엄청난 통증을 인지하시고 방지턱이나 요철을 넘을때 꽤 조심하시는것 같으셨고, 그렇게 힘겹게 병원에 도착합니다.

이젠 진통제 뿐만아니라, 새롭게 항생제를 투여시켜주시더군요. 중간에 신도림에 사는 아는 형이 병문안을 와줘서 즐겁게 시간을 보냈고.. 여튼 거부반응검사는 매우 아팠지만, 내일 아침 회진때 정확히 병명을 말씀해주실거라는 말을 듣고 오늘은 그래도 기쁩니다!

병원에서 탈출하는 그날까지. 제 몸부림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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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검사시간이 오후인관계로 아침밥을 먹은 뒤 금식을 진행하기로 했다. [본문으로]
  2. 서울의 다른 병원들을 놔두고 이 병원으로 오게 된 이유가 부친의 초등학교 동창이신분께서 이 병원 흉부외과의 교수로 재직중이시기 때문이였다. 그래도 아는사람이 있는 병원으로 갔기때문에 몇가지의 혜택을 볼 수 있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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