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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히 아시다시피 전동킥보드를 타고 있습니다.


뭐 대략 3800km를 주행했고, 킥보드가 없으면 온갖 경비가 수도없이 깨지고 시간 역시 마음대로 활용을 할 수 없으니 비나 눈이 내리지 않는 이상 거의 대부분 킥보드를 타고 다닙니다. 여튼 코로나 여파로 일도 별로 없습니다만, 그동안 덜렁거리던 키박스의 배선이 끊어져버렸습니다. 


그런고로 그동안 미루고 또 미뤄왔던 킥보드의 정비를 하러 가기로 합니다.



덜렁덜렁거리면서 다녔는데, 결국은 선이 끊어져 운행이 불가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항상 그렇습니다. 평소에는 정비를 하지 않다가도 운행이 불가해지면 꼭 정비를 하게 됩니다. 사실 작년 연말인가 올해 초에 키박스를 교체하고 이틀만에 깨져서 테이프로 붙이고 케이블타이로 묶고 다녔습니다만, 케이블타이가 끊어지고 덜렁덜렁거리며 다닌지 며칠 지나지 않았습니다만 저 꼴이 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성격이 매우 급한것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업무에 꼭 필요한 킥보드이기에 빠른 수리를 원합니다. 먼저 당진 유로휠에 연락하니 부품이 없다고 하네요. 그래서 지난번에 한 번 갔었던 천안 쌍용동에 있는 유로휠 대리점에 문의를 하니 부품이 다 있다고 하네요. 결국 천안으로 가기로 합니다. 



마침 이 킥보드 구입 후 단 한번도 교체하지 않은 뒷타이어도 같이 교체하기로 합니다.


전에 타던 TS600은 뒷타이어만 대략 두어번 갈았습니다. 이번에는 좀 더 타다 갈아야지 하다가 결국 평지에서도 미끄러지는 수준까지 왔네요. 사실상 슬릭타이어에 가까운 상태입니다. 또 언제 올지 모르니 그냥 간 김에 갈아주기로 합니다.



유로휠 충청점(천안점)


쌍용동에 있습니다. 여튼 어지간한 부품들은 다 가지고 계시더군요. 물론 요즘 대부분 중국산인지라 부품 수급이 원활하지 않다고 합니다만, 그래도 빠른 수리를 원하는 저는 어지간한 부품은 전화로 물어보면 다 가지고 있다고 하니 천안까지 차를 끌고 가게 되었습니다.



뭐 킥보드 수리가 다 그렇듯이 그리 어렵지만은 않습니다.


기존의 망가진 키박스를 철거하고, 새 키박스의 배선을 연결합니다. 작업은 금방금방 진행됩니다. 그래도 똑같은 킥보드를 두대째 신차로 구매하여 타고있습니다만, 이번 킥보드는 좀 오래 타는 느낌입니다. 한번 겪어보니 그럭저럭 극한의 상황에서도 최악은 피하며 타서 그런게 아닐까 싶네요.



키박스의 교체 이후 뒷 타이어의 교체작업을 진행합니다.


구동모터가 달려있고 그 위를 통타이어가 감싸는 형태로 되어있습니다. 발판 커버를 열고 컨트롤러에서 나오는 모터선을 분리해준 뒤 모터를 분리합니다. 그런 다음 기존의 통타이어를 밀어서 빼고, 새 타이어를 끼워준 뒤 다시 분리했던 순서대로 끼워서 넣어준다면 모든 작업이 마무리됩니다. 


다음에는 여유가 있다면 직접 부품을 구입하여 직접 DIY를 해 보기로 합시다. 근데 뭐 항상 예방정비가 아니라 사황에 닥치면 정비를 하는 처지인지라 DIY를 해 보고 싶어도 당장 타야하니 공임 내가면서 고치네요.



새 키박스와 함께 고무줄로 핸들 봉에 키를 묶어두었습니다.


이번에 교체한 키박스를 교체하기 전에도 꼽아두었던 키가 빠져 도망가 이런식으로 다녔었습니다만, 결국 그 키박스는 깨져서 키가 돌아가지 않아 교체했었죠. 키박스만 벌써 세번째 교체한 느낌입니다. 직전 키박스는 교체한지 이틀만에 박살났고요. 여러모로 일도 잘 안풀리는데 킥보드도 잘 망가집니다.



뒷 타이어 역시 트레드가 선명한 신품으로 교체되었습니다.


대략 8~900km 타면 트레드가 어느정도 지워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확실히 새 타이어는 잘 미끄러지지 않습니다. 보통 2,000km 혹은 3,000km정도 타면 교체를 합니다만, 미루고 미루다가 대략 3,800km 탄 뒤에 처음으로 교체를 하게 되었네요.


킥보드가 위험하다는 사실은 익히 얘기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킥보드를 타고 다니며 얻게 되는 시간절감 및 경비 절감의 효과를 무시 할 수 없기에 킥보드에 맛들린 이상 킥보드를 놓고 다니기 힘들더군요. 여러모로 일도 없는데 큰 돈 들여 정비를 마쳤으니 앞으로도 잘 달려주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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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31세 도태남의 처절한 삶의 기록. sinc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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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스도리닷컴 새 콘텐츠 초딩일기는...


초등학교 재학 당시 작성했었던 일기장을 펼쳐 당시 있었던 일을 회상하고 여러분께 공유하자는 취지에서 공개하는 콘텐츠입니다. 좋은일도, 그렇지 않았던 일도 있었겠지만 한 시대를 살아가던 평범한 어린이의 일기장을 본다는 마음으로 재미나게 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일기장은 무작위로 공개됩니다.


오늘은 2005년 4월 7일에 있었던 이야기를 가지고 왔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재학 당시의 일기입니다. 폭력 강점기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데, 사실상 강점기라기보다는 당시 다니던 공부방의 실태를 적어놓은 일기에 가깝습니다. 선생님께서 봐주길 바라는 마음에 쓴 일기인데, 그 이후 며칠 일기장 검사 없이 그냥 다시 돌려주었던것으로 기억합니다.


여튼 이 공부방을 3월 초에 다니기 시작했었는데, 대략 한달만에 이런류의 일기를 썼으니 대략 지옥같은 생활을 했다고 보면 되겠죠. 이 공부방은 7월까지 다닌 뒤 그만 두었습니다만, 매우 악몽같던 시간이였습니다.


여튼 악몽같던 그 시기가 떠오르네요. 함께 보고 마저 얘기 드리겠습니다.



제목 : 폭력 강점기


나는 그곳이 싫다.

잘나지도 않고 욕, 협박, 야한말만 하는 작은 공부방이 싫다.

사소한일, 관계없는 일로 때리니까도, 억울하게 누명씌우기, 애들에게 먹을거 빼앗기에다, 별 고문, 또 각목 굵기만한 빗자루(나무)로 머리를 목탁소리가 나게 탁탁 두드리고 협박을 전문으로 한다.

오늘도 한명이 협박을 당했고 (학교)선생님들 욕은 무진장 한다.

교장선생님한테는 돈 밝히는 [욕은 뺌], 또 옆에옆에 3반 선생님한테는 엉뚱한거 잘 내주는 [욕은 뺌]

또 5-2 선생님한테는 정신병원 갈 [욕은 뺌] 같은 심각한 말만 하고, 19세 미만은 못들어야 할 야한 이야기만 한다. 이 사건에 관하면 방구아저씨의 이장역할과 딱 OK이다. 

누가 나와 이야기를 하여서 내 머리에 이 기억을 아무도 모르게 지워주었으면 간절히 부탁한다.


여튼 두서 없는 내용이지만 일기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당시 다니게 된 공부방은 작은 규모였습니다만, 그 당시 초등학교 4학년생과 3학년생 아들을 둔 학부모가 운영하던 공간이였습니다. 물론 두 아들들의 공부를 매일같이 가르치면서 겸사겸사 다른 초등학생들까지 가르키던 무허가 공부방이였는데, 학교 끝나고 가서 오후 7시즈음까지 꽤 오랜시간 공부를 시켰습니다.


아 물론 공부를 오래 한다고 성적이 오르지는 않더군요. 오히려 못해도 80점대 중후반을 유지하던 시험 평균점수가 크게 떨어졌습니다. 강사나 선생이라고 부르기도 호칭이 아까운 그 여자의 자식들 역시 매일같이 저녁을 먹고 잠시 TV를 보는 시간을 제외하곤 사실상 억압되고 기본적인 욕구조차 통제받는 삶을 살았는데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학교를 간 것 같지는 않고 지금은 어떻게 사는지 모르겠네요. 관심도 없지만, 집에서 조금 덜한 수준의 통제를 받던 저 역시 나이 다 쳐먹고 삐뚤어져서 씹덕차나 타는데 말이죠.


여튼 이 공부방은 그 여자의 두 아들은 책상에서, 그 외 학생들은 좌식 탁자에서 우등생평가와 해법수학류의 문제집을 풀었던것으로 기억합니다. 개인별로 혹은 같은 학년이 있는 경우 같이 지도를 한 뒤 이후 수많은 문제를 푸는 방식으로 수업이 이루어졌던것으로 기억합니다.


물론 수업 외에도 문제를 풀던 도중 일기 내용에 적힌 학교 교사에 대한 욕이나 학생들에게 협박이나 누명을 씌우고 음담패설을 하는 등 전혀 교육적이지 못한 행동들도 다수 발견했습니다. 물론 자기 아들들이 문제를 잘 풀지 못하거나 딴짓을 하면 대놓고 다른 학생들이 있는 자리에서 혼내고 때리는 등 자존감을 낮추는 행위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기억이 가물가물 합니다만, 제가 연필깍이를 세게 눌러 사용해서 망가졌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잘 돌아가던 연필깎이를 집 벽에 집어던져서 부셔놓고 새거 이자까지 붙여서 내놓으라는 얘기를 진심을 담아 하던 사람입니다. 물론 어른이라면 강력히 항의를 하고 끝날 일이겠지만, 엄마가 무서워서 집에 제대로 얘기도 못한다는 약점을 잡고 어린아이를 심리적으로 꽤나 잔혹하게 가지고 놀았습니다.


이 외에도 대략 4개월의 시간동안 엄마가 무서워 오히려 본인들이 혼날까봐 집에 제대로 얘기를 하지 못한다는 약점을 잡아 동생과 저를 꽤나 많이 괴롭혔습니다. 여러모로 예상치 못한 스트레스가 늘어 성적은 성적대로 떨어졌고, 심리상태는 심리상태대로 나빠졌습니다. 결국 공부를 하는 시간이 길다고 성적이 오르는게 아녔다보니 여름에 이 공부방을 그만 두게 되었습니다만, 그 이후로는 근처도 지나다니지 않았습니다.


하다하다 그 여자가 자식들을 학대한다고 이후 SBS에서 방영하게 된 긴급출동 SOS 24라는 프로그램에 아동을 학대하는 공부방이 있다고 제보를 해 볼 생각까지 했었으니 말이죠. 물론 지금처럼 머리가 컸으면 진작 경찰이던 어느 기관이던 쫒아가서 있었던 일을 다 얘기하고 권리를 찾았겠지만 초등학생의 사고 수준은 거기까지 미치지 못했습니다.


제발 누군가가 이 기억을 지워주었으면 좋겠다는 글로 일기를 마쳤습니다만, 결국 아무도 이 기억을 지워주지 못했습니다. 악몽과도 같은 기억도 꽤 오래 전 이야기입니다만, 가뜩이나 힘든 세상 더 힘들게 만들어 주네요. 그렇습니다 잊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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