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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8개월만에 처음으로 하루 연차를 내고 쉬게 되었답니다. 뭐 그동안 이래저래 눈치를 보고 쉬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졌습니다만, 매년 가던 병원에 갈 겸 해서 연차를 냈고, 새벽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네요.



동생이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떠납니다.


뭐 그래서 새벽같이 나왔네요. 80정도 밟고 천천히 가니 정말 상상 이상의 연비를 보여줍니다. 인천공항은 한국인 반, 중국인 반입니다. 이른시간임에도 중국 관광객을 기다리는 버스들도 꽤 있었고, 각 항공사 발권창구마다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습니다.


출국심사를 받으러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바로 청량리로 향합니다. 청량리가 누군가에게는 기차역으로, 누군가에게는 홍등가로 또 누군가에게는 다른 무언가로 각인이 된 장소겠지만, 저는 뭐 청량이 전농동 용두동 이 근방은 그저 병원의 추억 말곤 없습니다.


1년만에 외래진료를 왔습니다. X-RAY 촬영을 하고 오라 하는군요.



촬영실 앞에서 기다리다가 고관절 그리고 그 근처 사진을 찍습니다.


촬영 후 나오려는데 나이좀 있으신 방사선사 아저씨가 많이 아팠겠답니다..


뭐 심각한게 있냐 물으니 뭐라뭐라 얘기는 하시는데.. 아니나 다를까 매년 문제가 있던 부위가 아닌 다른곳에 검은 무언가가 보입니다. 생각보다 큽니다. 딱히 아프거나 그런건 없었는데 말이죠.


일단 뼈결핵이 의심되는 상황이라 하는데.. 당장 입원 후 검사를 하자 하는군요.


그래서 금요일 퇴근 후 청량리로 달려와 입원을 합니다.



뭐 주사바늘 꼽고 피 뽑고 AST 검사도 진행합니다.


내일 아침정도 가서 MRI 촬영도 있을테고.. 여튼간에 또 입원했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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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다녀오긴 했습니다. 와이파이가 터지는 환경도 아니고, 전에는 자판기형 PC의 랜선을 잠깐 끌어다가 인터넷을 하곤 했는데 그마저도 사라져서 뭐 그냥저냥 인터넷 없이 버티다 나왔네요.


뭐 사실상 검사를 위한 입원이였습니다. CT MRI 그리고 피검사만 한 네건정도 한듯 합니다.

보호자 없이 혼자 입원하는 처지.. 그래도 짧은 하루동안 문안도 많이 와주셔서 외롭진 않았네요.



환자복으로 갈아 입고, 족쇠도 차고.. 수액도 하나 맞고..


여튼 그랬습니다. 오후에 입원 해서 저녁 먹고부터 본격적인 검사에 들어 갔는데.. MRI CT 기계가 새걸로 둘 다 바뀐 상태더군요. 아무리 새 기계라고 해도 MRI 특유의 우당탕탕탕 거리는 소음은 어쩔 수 없나봅니다. 


종전의 오래된 기기보다는 소음이 적다는건 체감이 가능했는데 그래도 시끄럽긴 시끄럽더군요. 귀마개 역활을 해주는 헤드셋에서는 클레식 음악이 흘러나왔습니다. 다만 활발한 분위기보다는 우중충한 분위기의 음악들인지라 오히려 두려움을 자극시켜주는 그런 역활이 아니였나 싶기도 하구요.


MRI 찍고 바로 CT도 찍고.. 밤에 피도 뽑고.. 바로 다음날 아침 회진시간때 결과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밥도 전보다 잘 나옵니다.


여튼 밥도 잘 먹었고, 수련의 선생님들이 새벽같이 와서는 촬영상 이상이 없다고 하더니만 갑자기 다시 와서는 문제가 발견 되었는데 교수님이 설명 해 주실거고만 하고선 가십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경험이 부족한 전공의들이 볼때는 발견을 못했던 무언가가 있었던거더군요.


여튼 회진시간에 오신 선생님은 이따가 내려오면 알려주겠다고 하시고...

여기서 말 못할 건지 물으니 생명에 지장은 없다고 하시네요.


여튼 퇴원수속 밟으라고 해서 퇴원수속 밟고 시간맞춰서 외래진료실로 내려가니 영상을 보면서 설명을 해주십니다. 석회병변은 사라지는게 보이는데, 고관절 대퇴골두에 괴사가 진행중인지 혹은 골절인지는 영상을 봐도 아리송하다고 하시더군요. 고관절 대퇴골두의 괴사 소견으로 보이는데 다른 선생님들과 상의 후에 다음 외래진료때 한번 다시 보자고 하십니다.


다행히 괴사 부위는 적은편이라 수술은 필요 없다고 하시네요. 다른 가능성도 배재하지 못하는데 운이 없으면 멀쩡하더라도 두달은 목발을 짚고 다녀야 한다고 합니다. 모두 건강 조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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