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만에 그냥 일반적인 주제로 다시 이어집니다.
올해 첫 장거리 운행을 다녀왔네요. 흔히 시내바리만 하는 차량입니다만, 장거리 용차가 잡히지 않는 경우 오후 3시쯤 순번대로 장거리 강제 배차를 받게 됩니다. 장거리 강제 배차를 받으면 시내 순번은 넘어가지 않고, 배차수수료도 받지 않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면 보상책으로 화성이나 평택 같은 시내바리 꿀 코스를 배차해줍니다. 사무실 룰이 그렇습니다.
지난 목요일. 다음날 아침착 장거리 오더가 양양, 울산, 포항으로 총 세 개가 나왔습니다.
제 순번은 좀 멀어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울산 포항이 추레라 말고 카고차만 오라고 하는 카고 짐이라 가장 빨랐던 카고차인 제가 울산에 강제 배차를 받게 되었네요. 강원도 영동지역은 단가가 좋아 장거리라도 선호하는 지역이고 포항은 울산보다 단가가 조금 저렴하지만 한 시간은 덜 갑니다. 울산은 포항보다 단가 차이도 나지 않고 부산에 준하게 가야 하는지라 이 셋 중 가장 선호하지 않습니다.
뭐 어쩌겠어요. 가기 싫으면 웃돈 몇만원을 지원하거나 요소수를 줘서라도 배차를 잡으면 됩니다. 그렇다고 막상 돈도 다 까먹고 사는 병신 도태한남충이라 웃돈을 올려서라도 용차를 잡기도 어렵습니다. 간단한 시내바리 하나 타고 울산행 짐을 상차했습니다. 톤수라도 좋으면 모르겠는데, 톤수도 25톤이 조금 넘어가네요. 여튼 일찍 집에 들어와서 잠을 좀 자고 밤 10시쯤 일어나 씻고 울산으로 출발했습니다.
밤 10시 40분쯤 울산으로 향합니다. 집에서 341km 정도 나오네요.
급한 건 없으니 연비나 낼 겸 그냥 노래나 불러가면서 80km/h 정속으로 주행합니다. 내리막에서만 후리 잡아서 속도를 올리고 느긋하게 갔습니다. 생각보다 많이 졸릴 줄 알았습니다만, 그래도 컨디션이 괜찮아 김천 이남까지는 잘 갔습니다.
졸리면 휴게소에서 자고 가려고 했는데, 아시다시피 평일 새벽 고속도로 휴게소는 이미 장거리를 가는 화물차들이 모두 자리를 잡고 잠을 잡니다. 자리가 없어 입구와 출구 옆에 세워두고 자는 차량들도 많습니다. 아싸리 자고 갈 생각으로 자리를 잡았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그냥 목적지에 가서 차를 세우고 자는 것이 차라리 낫습니다.
논스톱으로 계속 달렸습니다.
당진대전선을 타고 내려가다가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대구 부산 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다가 함양울산고속도로로 갈아타고 쭉 가서 청량ic로 내리면 바로 보이는 공단의 공장 신축 공사현장입니다. 승용차로 쭉 밟고 가면 세 시간 안에도 충분히 도착하겠지만, 화물차로 80km/h 언저리로 달리니 느립니다. 예상 도착시간은 점점 늘어나고 결국 4시간 30분이 걸리더군요.
도착하니 3시 10분. 울산에서 잠깐 뵙기로 한 분이 계셨는데, 오시지 않아 일단 잤습니다.
자다가 누군가 문을 두드려서 깨어보니 도착하셨더군요. 근처 편의점이나 가서 간단히 음료라도 마시려 했었습니다만, 근처 편의점이 모두 문을 닫았습니다. 그래서 간단히 승용차에서 얘기나 좀 하고 다시 들어가서 잤습니다. 하차는 7시 30분부터 해준다고 하네요. 그래도 집에서 좀 자고 나와서 아주 피곤하지는 않았습니다.
무시동 히터 특유의 소음과 운전석과 침대칸 사이의 공간에서 뜨거운 바람이 올라오는 그 느낌이 싫어서 조금 따뜻해지면 그냥 꺼버립니다. 열선도 옛날 차들은 키를 돌리지 않아도 작동했는데 요즘 차는 키를 on에 돌려놓아야 작동을 하더군요. 아직 배터리 상태가 나쁘지는 않습니다만, 그렇게 배터리 수명을 까먹는 게 싫어서 열선도 한두 시간 켰다가 꺼버립니다. 그러니 추우면 또 깨서 다시 켜고 자는 행동을 반복합니다. 깊은 잠을 자기는 어렵습니다. 아무래도 더 두꺼운 이불이나 침낭을 가져다 놓아야 할 것 같습니다.
대략 6시 이후부터 현장 문이 열리고 덤프가 여러 대 들어가고 작업자들이 출근하더군요.
지게차가 현장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따라서 들어왔습니다. 한대 더 온다고 했는데, 차를 세우고 자면서 한대 더 온다는 차의 모습은 보지도 못했네요. 나중에 하차하고 돌아가다가 공단 입구에서 철근 차 한 대가 들어오는 모습을 봤습니다. 현장에서 저보다 먼저 온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저보다 한참 늦게 왔네요.
7시 20분부터 하차가 시작됩니다. 7톤 지게차가 철근을 들어 올립니다. 하차가 매우 빠릅니다.
그나마 하차가 빠른 편이라 다행입니다. 하차를 다 마치니 7시 40분 정도. 다른 짐을 기다렸다가 잡고 올라오기엔 시간이 너무 이릅니다. 하차가 늦었으면 밥이나 먹고 혹시 철근이나 빌레트 같은 짐이 나올지 기다렸다가 잡고 올 텐데, 일단 네비를 찍어보니 12시면 당진에 들어갑니다. 언제 나올지도 모르는 짐을 기다리느니 일찍 올라와서 시내바리 하나 타는 거나 장거리 잡고 올라오는 거나 큰 차이는 없습니다. 일단 공차회송을 하기로 합니다.
다시 청량 ic에 진입하여 공차로 회송합니다.
흔히 콜바리라고 하는 어플로 오더를 잡아 움직이는 차량의 경우 주종목이 있어도 닥치는 대로 잡고 다녀야 해서 이런저런 장비가 구비되어 있습니다만, 철근만 했고 막상 다른 짐을 상차했던 경험도 없는 데다가 중축에 평 카고인 차로는 상차 가능한 화물의 한계가 있습니다.
제가 가진 장비라고는 한쪽이 끊어진 실링 바 두 개. 멀쩡한 실링 바 두 개. 체인블록 하나가 전부입니다. 후축이라면 적재함을 넘어가는 빔 같은 장재물도 상차가 가능할 테고, 콘크리트 PC같은 중량물도 상차가 가능하겠습니다만 가변축이 가운데 달려있는 중축차라 길거나 뒤로 무게가 많이 나가는 짐은 좀 어렵습니다. 아 글고 적재함 문짝이 없는 평카고라 빽자루 같은 짐도 좀 어렵습니다. 파렛트나 빽자루도 가능은 하기야 하겠지만, 손이 엄청 많이 갑니다.
중간에 상주영천고속도로 삼국유사군위휴게소에서 주유만 하고 바로 올라왔습니다.
바로 시내바리 당일착 다녀오고 다음날 조출까지 받은 다음 퇴근했습니다.
천천히 다녀와서 그런 건지 기름은 생각보다 많이 먹지 않더군요. 이전 주유 시 트립을 초기화했었는데, 이후 시화공단-복귀-안산-복귀-집-울산-고속도로에서 주유-복귀-화성 장안면을 거쳐 내려오면서 연료소모량이 300리터 조금 넘어갔습니다. 울산 왕복만 놓고 보면 200리터 조금 더 먹었다고 보면 되겠지요.
여튼 꽤 피곤합니다. 주로 장거리만 다니시는 사장님들은 매일같이 이런 일상이 반복될 텐데 존경스럽습니다. 저는 한 달에 한두 번 나오는 거 하차라도 이렇게 빠르다면 몰라도 단가가 괜찮은 지역에 가지 않는 이상 장거리를 전문으로 다닐 일은 아마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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