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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부터 2019년까지.. 벌써 7년째 참석하는 비스토동호회 최대 행사 전국정모.


항상 이 즈음 진행되었던 행사로, 비스토를 타지 않은 기간이 탔던 기간보다 훨씬 더 길어진지는 오래지만 마치 연례행사처럼 자리잡았습니다. 지금은 첫 자동차 동호회라는 애정으로 함께 하고 있습니다.


파국으로 치달았던 2017년에 총회로 대체되었던 일을 제외하고 매년 꾸준히 전국정모가 개최되었습니다. 말 그대로 전국의 회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친목을 도모하는 행사인데, 단종 15년이 넘었고 죄다 수출길에 올라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버린 차량인지라 가면 갈수록 흥행에 힘들어지는 실정입니다.


그럼에도 2017년부터 약 2년동안 총무를 맏아 자금관리와 숙소 선정. 그리고 장을 보는 과정까지도 제 업무였던지라 여러모로 업무의 연장이였습니다.



먼저 대구에 들려 폐교탐방을 마치고 문경으로 향했습니다.


대구 끝자락 칠곡에서 국도 25호선을 타고 상주로, 상주에서 3호선으로 문경의 중심지인 점촌으로 왔습니다. 점촌 홈플러스에서 장을 봅니다. 일찍 내려오신 회원님과 함께 대략적인 먹거리 위주로 구입했네요.


까르푸 시절부터 존재했던 대략 20년 이상 된 홈플러스입니다. 물론 안동이 훨씬 더 크지만 예천과 상주 문경만 놓고 본다면 80년대에 이미 시로 승격되었던 점촌. 문경의 시내인 점촌이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점촌에서 정해진 숙소까지는 약 25km. 점촌을 벗어나 함창 이안 은척 등지의 작은 동네를 거쳐 농암면 소재지에서도 약 7km 떨어진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숙소에 택배편으로 먼저 도착한 고기.


삼겹살과 목살 4kg 분량. 그리고 양념이 된 돼지껍데기. 대략 8인분을 보고 준비했습니다만, 8인이 배 터지게 먹고도 조금 남았습니다. 명색이 전국정모인데.. 못해도 수십명이 모였던 시기가 있었습니다만, 지금은 그냥 모이는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하고 또 감사한 실정입니다.



민박집의 큰 방 두채를 빌렸습니다.


평범한 민박집. 한 방에는 쇼파가, 한 방에는 와이파이 공유기가 있습니다. 취침 인원은 7인. 한 방에 셋 혹은 넷으로 나뉘어 일체의 불편함 없이 매우 쾌적하게 잠을 잤습니다.



SM3는 아니고.. 비스토들이 점점 모이기 시작합니다.


작년만 하더라도 비스토는 겨우 하나 둘 수준이였으나, 올해는 비스토만 다섯대가 모였습니다. 아토스는 없었고 잡차는 저 혼자. 단종 15년차를 맞이하는 비스토라지만, 아직 건재함을 느낍니다.



잠시 손을 거쳤던 옥색 비스토.


주행거리는 조금 많은 수준이지만, 하다못해 앞 휀다와 지지대조차 따지 않은 무빵차입니다. 거기에 하체 부식도 하나 없지요. 벗겨진 천장 칠을 제외하면 매우 뛰어난 상태를 자랑하는 최후기형 비스토입니다.



첫날 비스토 네대. 잡차 한대.


노란차와 흰차는 고인물이고 옥색 비스토 위주로 집중 탐구합니다.



그와중 일찌감치 바베큐 파티를 준비합니다.


주인어르신께서 불을 피워주십니다. 쌈채소와 파채도 준비 완료. 새우도 함께 구워먹습니다.



혹시 김치 좀 얻을 수 있느냐 여쭈어보니 김장김치를 내주시더군요.


정말 먹기 좋은 수준으로 적당히 익었습니다. 여튼 김장김치 한포기로 다음날 아침까지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정작 상은 다 차려놓고 불 앞에 옹기종기 모여서 먹네요.


고인물 셋. 뉴비 넷. 매번 고인물들끼리 함께하는 모임에 고인물보다 뉴페이스가 더 많으니 분위기도 훨씬 더 좋습니다. 새우도 닭이 들어가지 않은 소시지도 삼겹살도 숯불에 노릇노릇 구워집니다.



일찍 시작된 바베큐파티는 상대적으로 일찍 끝났고..


남녀노소 하나되어 찬조품과 경품을 얻어가는 레크레이션 겸 이벤트도 진행했고, 술상은 계속 이어집니다. 맥주를 두어잔 받아 마시고 정신을 차리니 자정에 가까워진 시간. 시끄럽고 후덥지근한 방 대신 옆방에서 조용히 잠을 청했습니다.


사실 처음 몇년은 방에서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덥다 느껴지면 잠에 들지 못하는 성향인지라 보일러를 세게 틀어놓은 방을 피해 차에 가서 쪽잠을 잤던게 약 3년. 그 이후로는 찬바람이 들어오는 창문 옆에서 자거나 난방을 거의 하지 않은 방에서 잠을 잤습니다. 다행히 이번에는 매우 편히 잤네요.



아 숙소 얘기를 깜빡했군요.

문경시 농암면에 소재한 해돋이쉼터라는 민박입니다.


비수기임을 감안해도 매우 저렴한 방값과 친절하신 사장님 내외분이 손님을 맞이하는 작은 민박집입니다. 물론 이날 저희 일행 말고도 가족단위의 한팀이 더 왔습니다. 곧 단풍철이니 아마 방이 가득 차지 않을까 싶습니다.





2일차 아침이 시작되었습니다.


새벽에 참가신청글을 남기고 노원구에서 달려오신 회원님까지 비스토만 다섯대. 예상치 못한 성벙입니다. 전날 자정까지 달렸던 회원들도 슬슬 일어나 아침식사를 준비합니다. 그리고 멀리서 달려오신 회원님과 함께 아침식사를 합니다.


2부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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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31세 도태남의 처절한 삶의 기록. sinc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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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휴일따위 없는 노예생활 2주차 일요일이였습니다.

9월 어느날부터 10월 말까지 토요일 일요일 공휴일 없이 출근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암담했지만 계속 일-집-일-집을 반복하다 보니 체념하게 되더군요. 그런 상황에서도 똥차와 고물과 같은 물건들. 폐교같은 장소를 좋아하는 제가 좋아할만한 물건들을 보는 일도 생기더랍니다.



에어컨도 고장나고 여러모로 외관 상태도 불량한 포터.

주유경고등이 들어와 기름을 넣은 돈을 제외하곤, 나머지 돈은 그대로 사장님께 헌납.


지난 일요일. 현장 대청소를 진행하며 나온 고철을 한차 가득 싣고 갑니다. 그리 무게가 나가보이지는 않지만 판넬 껍데기를 접어서 꾹꾹 눌러담은 상태입니다. 여튼 이런식으로 현장과 고물상을 2회 왕복하여 고철값으로 약 27만원을 받았습니다.



방문한 고물상이 집게차는 있지만, 직접 사장님이 까대기로 내리는 형태인지라 시간이 좀 걸리더군요.


그래서 고물상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버려진 물건들을 구경했습니다. 남들이 보기엔 그저 쓰레기 고물로 보이겠지만 최소 20년의 세월을 버텼고, 현재도 상태가 괜찮은 물건들은 비싼 가격에 거래되는 귀한 물건들이 많이 나오더군요.



빨간색 내쇼날(National) 전기밥솥. 그리고 테팔 튀김기.


1983년 부산의 한 부녀회 회원들이 코끼리표로 유명한 조지루시 전기밥솥을 들고 입국하는 사진이 기사화 된 뒤 질타를 받으며 여행사 직원 두명이 구속되고 여행객 한명이 입건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일제와 국산 전기밥솥의 기술격차는 상당했었고, 이후 90년대를 기점으로 IH전기압력밥솥이 개발되어 국산 전기밥솥의 품질은 일제 대비 월등히 좋아졌습니다. 


지금은 반대로 한국산 전기밥솥이 외국인들의 주요 쇼핑 아이템으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관광객에 의해 한국으로 들어왔을 일본 내수용 빨간 내쇼날 전기밥솥도, 외관은 투박해 보이지만 2000년대 초반 생산된것으로 추정되는 테팔 튀김기도 머나먼 타국의 고물상에서 최후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사실상 모두 사라진 두꺼비집과 다 썩고 눌려버린 이 쇳덩어리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무려 1970년대에 제작된 전압조정기입니다.


220V를 110V로 낮춰주는 변압기. 즉 도란스입니다. 아까 위에서 본 일제 전자제품을 사용하는 경우나 정말 오래된 110V 전용 전자제품을 사용하는 경우가 아니고서는 일반적인 환경에서는 딱히 볼 일이 없는 물건이지요. 


약 40년 넘는 세월을 버틴 뒤 곧 용광로에 들어갈 운명입니다.



한켠에 버려진 타자기. 마라톤 88TR.


마치 자동차에 합판 박아놓고 부니휠캡 껴놓는 빈티지 튜닝을 해놓고 복원이랍시고 온갖 유세는 다 떠는 사람들처럼 뉴트로(New-tro) 열풍에 힘입어 이런 타자기도 비싼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제품 역시 외판은 멀쩡하여 그런 사람들에게는 비싼 가격에 거래되지 않을까 싶은데 고물상 한켠에 버려져 있습니다.


진한 밤색은 지금 봐도 전혀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오 구닥다리 컴퓨터가 보이네요. 근데 슬림(LP)케이스입니다.


사실상 사무용과 관광서 납품용 PC의 대세는 이 규격이 차지하고 있지만, 팬티엄3 로고와 구형 윈도우즈 로고가 선명한 이 구닥다리 컴퓨터가 출시되던 시절만 하더라도 일반적인 미들타워 규격의 PC가 절대적인 대세였습니다. 



윈도우즈 정품 시리얼도 붙어있고 일련번호도 그대로 살아있네요.


이미 사장된 브랜드인 드림시스(Dreamsys) 이름을 달고 판매되었던 PC로 2001년 8월에 제조되었습니다. 물론 삼보컴퓨터는 IT 버블이 꺼지고 확장했던 여러 사업이 실패하며 어려움을 겪었지만, 지금은 관공서 업무용 컴퓨터 납품계의 큰 손이자 다이소에 여러 주변기기와 용품들을 납품하며 그럭저럭 잘 살아있는 회사입니다.


Windows Millennium Edition. 

XP도 보기 힘든 마당에 흑역사로 기록된 Windows Me의 시리얼은 너무도 선명하게 붙어있습니다.



구닥다리 삼성 로고가 붙어있던 브라운관 TV.

대략적인 생산년도를 확인하기 위해 전선을 보니 1993년에 제조되었습니다.


지금은 사장된 규격이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비디오 플레이어는 필수품에 가까운 물건이였습니다. 물론 VHS 플레이어가 브라운관 TV에 붙어있는 일체형 TV 하나만으로도 비디오 녹화와 재생이 가능했으니 나름 공간을 아낄 수 있었죠. 


90년대생이라면 이러한 형태의 TV를 많이 보았으리라 생각됩니다. 저희 집에도 대우에서 나온 비슷한 형태의 TV가 있었으니 말이죠.



에어컨 본체는 보이지 않고.. 리모콘만 덩그러니 남아있습니다.


대우전자 에어컨의 리모컨. 나름 대우전자가 암흑의 길을 걷고 있던 시기에도 에어컨은 판매되었습니다. 간간히 모텔이나 원룸에 가면 볼 수 있었죠. OEM이지만 말입니다.


물론 현재는 만도기계로부터 위니아를 한참 전에 인수했던 대유그룹에 대우전자가 인수된 이후 위니아 에어컨이 뱃지 엔지니어링을 통해 대우마크를 달고 판매되고 있습니다.



뻐큐모양 삼성 로고까지 찍혀있는 구형 VHS 플레이어.


SV-598이라는 모델명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정확한 정보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후 DVD 플레이어 혹은 DVD 콤보에서나 볼 수 있는 슬림하고 세련된 디자인이 이 기기의 특징이 아닐까 싶습니다.



잠을 자는 고양이와 그 앞에 놓인 구닥다리 디지털 카메라.


고양이는 사람의 손이 닿자마자 여기도 저기도 쓰다듬어 달라며 손에 자신의 몸을 비빕니다.



HP에서 나온 메탈바디의 디지털 카메라.

2004년 출시된 HP Photosmart R707 모델입니다. 


510만화소, 광학 3배 줌을 지원하며 당시 40만원대 후반이라는 비싼 가격에 판매되었습니다. 지금은 사실상 보급형 스마트폰만도 못한 스펙이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최신 문물에 가까웠던 디지털 카메라입니다.


작은 액정과 뷰파인더가 공존하네요.



무선전화기의 시초격 모델. JAPAN MEG-80000

벽돌폰 아니 무전기처럼 생긴 무선전화기입니다만 수장되어 있었습니다. 모델명에서 볼 수 있듯 일제입니다. 물론 국내에도 극소수 이 제품을 보존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긴 합니다만, 해외 포럼 혹은 판매글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현재도 약 2만원대에 거래되는 물건이라고 하네요.


금성 왕관로고가 선명한 물펌프.


지하수 펌프로 보입니다. 금성사는 1969년 대한민국 최초로 물펌프를 개발했고, 이후 펌프사업은 LG전선의 사업부로 분리되었으며 2000년에 세계 2위 펌프제조업체인 독일회사 윌로심슨에 매각되었습니다. 2004년까지는 LG윌로펌프라는 법인명을 사용하다가 그 이후로는 윌로펌프라는 브랜드로 펌프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선풍기와 소형가전으로 이름을 알린 한일펌프와 함께 윌로펌프는 국내 펌프시장의 양대산맥입니다.



구형 신일 벽걸이 선풍기.


초등학교 저학년때 일부 교실의 선풍기가 교체되었는데 그 당시 이렇게 생긴 선풍기도 교체되었던것으로 기억합니다. 대략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에 제작된 제품이라 볼 수 있겠죠. 


요즘 판매되는 벽걸이 선풍기는리모콘 혹은 줄을 잡아당기는 형태로 편리한 조작이 가능합니다만, 이 당시만 하더라도 풍속은 단 한가지. 회전 조절 역시 레버로만 가능했었습니다.


이 외에도 많은 물건들이 버려져 있었습니다만, 하차작업이 다 끝나고 다시 회사 현장으로 돌아왔습니다. 비록 고물로 버려진 운명이지만, 한 시대를 풍미했던 물건들이 가득했습니다. 비록 고물로 사라지지만 누군가의 추억 속에서는 영원하리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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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31세 도태남의 처절한 삶의 기록. sinc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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