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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성화대학의 정문을 넘어섰습니다.



낡은 현수막 두개가 걸려있는데, 하나는 골프웨어 전문점의 세일 소식을 알리는 현수막이고

가려진 또 하나의 현수막은 골프대회를 알리는 현수막입니다.


여튼간에 맘대로 자란 나무들 사이로 색이 빠진 현수막은 그대로 걸려있습니다. 그래도 학교 정상에 소재한 골프연습장만은 제대로 운영이 되는지라, 골프를 치러 올라가는 고급 승용차들의 모습은 꽤 흔히 볼 수 있었답니다. 여튼 골프를 배우는 아저씨들을 대상으로 걸어 둔 현수막이겠죠.



성화대학 정문을 지나기가 무섭게 성화파크텔이라는 간판이 하나 보입니다.


성화파크텔. 아파트 이름처럼 보입니다. 아파트가 맞습니다. 작은 평수의 소형 아파트가 이 학교의 기숙사 건물이였다 합니다. 동이 하나밖에 없는 아파트도 아니고, 무려 두 동이나 존재하는 아파트입니다. 단층건물 말곤 2층이상 되는 건물이 거의 없는 성전면 소재지 한복판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아닐까 싶네요.


여튼 성화파크텔 방면으로 들어가 보기로 합니다.



잡초가 무성하고 보도블럭 사이에서 나무까지 자라나는 그런 환경입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그래도 나름 아파트인데 사람이 살겠거니 싶었습니다만, 아파트 두 동 모두가 그냥 빈 건물이라 보면 되겠습니다. 족히 100세대는 넘어갈 법 한 아파트가 텅 비어있다 이 말입니다.



뭐 성화대학이라는 커다란 글자만 지운다면 평범한 소형 평형의 아파트라 볼 수 있겠습니다.


11층 규모의 시골마을, 그리고 대학 기숙사 치고도 상당한 규모를 자랑하는 아파트는 조그마한 면소재지의 랜드마크(?)가 되었습니다. 여튼 폐교 후 5년이라는 세월이 지났고, 이 아파트형 기숙사에 거주했던 학생들은 어엿한 사회인으로 아마 잘 살고 있겠죠.



차가 그래도 좀 세워져 있기에 사람이 있나 싶었습니다만, 폐허입니다.


한민학교 축구부 건물 올라가는 그 이상으로 무섭습니다.



편의점으로 사용되던 컨테이너 박스 역시 시뻘건 녹물만 흘러내릴 뿐, 5년째 굳게 닫혀있습니다.



화단에 심어져있던 나무들 역시 제멋대로 자라고 있습니다. 


거기에 잡초는 주차라인을 그려둔 아스팔트까지 침범하고 있네요.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의 모습입니다. 당장 예초기와 톱을 가지고 와서 정리를 하고 싶다는 충동이 드는 화단입니다.



나름 대학 기숙사인데 놀이터도 있었습니다.


놀이터 역시 상황은 화단과 크게 다르지 않네요. 사실상 모래바닥이였을 놀이터에서 나무가 자랍니다.



나름 학생들이 밀집한 시설이라고 단지 내 상가도 있습니다.


말이 상가지 1층은 헬스장과 여학생 세탁실, 2층은 종합복지센터, 3층은 당구장입니다. 나름 학교 소유가 아닌 제 3자의 소유였던 건물인진 모르겠습니다만, 임대 및 매매를 원한다는 현수막이 붙어있습니다. 학교가 다시 개교하거나, 이 자리에 성전면 전체를 확 뒤집을만한 시설이 들어오지 않는 한 저 건물을 매입하려는 사람도 세를 들어오려는 사람도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열대나무 뒤로 보이는 텅 빈 베란다.


간간히 잡동사니를 모아둔 방도 있었지만, 대다수의 방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아파트형 기숙사 단지 내 상가.


헬스장 건물 역시 운동기구는 죄다 사라진 상태였고, 빨래방 역시 세탁기의 모습은 볼 수 없었습니다. 나름 아파트라면 아파트인데 세대 안에 세탁기가 없었단 이야기인데 상당히 불편했으리라 추정됩니다.


상가건물과 기숙사 101동 앞으로 들어오면 이렇게 버려진 농구코트와 폐가가 보입니다.



생각해보니 학교 부지 내에 폐가가 있네요. 신기합니다.


아무래도 학교가 잘 운영되던 시기에는 사람이 살았으리라 추정만 해 보고 있습니다. 저 낡은 폐가에는 누가 살았을까요. 학교 학생들과 함께 살던 이웃은 과연 누구였을까요.



비교적 최근에 올라가는 언덕길을 낸 것으로 보입니다. 포크레인의 흔적 같군요.


여튼 철거를 앞두고 있는 폐가인지 싶습니다.



폐가 앞에서 바라본 성화대학 기숙사.


입구 방면에서 바로 보이는 동이 102동. 안쪽에 들어가 있는 동이 101동입니다. 백세대 아니 두 동을 다 합쳐서 220세대정도로 보이는군요. 관리사무소와 경비실을 두고 유지되는 소규모 아파트단지 수준입니다.


특이하게도 9,10,11층 세대에만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아무래도 교직원이나 교수가 사용하던 세대가 아닐까 싶네요. 학생들은 찜통더위에 선풍기로 버티고, 교직원과 교수들은 시원하게 에어컨을 켜고 여름을 보냈나 봅니다.



폐가 앞 이상한 풀밭은 축구장이더군요.


잔디는 보이지 않고, 이상한 잡초들만 무성합니다.



뻐큐모양 로고가 선명하게 박힌 구형 삼성 냉장고. 


아마 저 폐가에 살던 분이 쓰던 물건이겠죠. 나름 그시대 최신식 냉장고는 3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고 폐교 부지 내에 소재한 폐가 앞에 버려진 폐기물 신세가 되었습니다.



더이상 진입은 포기. 다시 돌아갑니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베란다에 수건이 널려있는 세대가 보입니다.


누군가가 거주한단 이야기겠죠. 그렇다고 아예 사람이 살지 않는건 아녔습니다.



가스관이 붙어있음에도, 가스통에 호스를 연결해서 2층에 수건이 널린 세대로 올라갑니다.


그 외에도 유선방송 시청을 위한 안테나선으로 보이는 줄이 들어가네요. 여튼 방치된 건물이라 한들 전기와 수도는 정상적으로 사용이 가능한 상태라 추정됩니다.



그리고 가스통 두개를 추가로 확인했습니다.


2층에만 세 세대에만 사람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겠죠. 다만 처음 목격했던 가스통과는 달리 가스통 앞으로 잡초가 무성한걸로 보아 이 두 가스통이 올라가는 세대에는 예전엔 사람이 살았지만, 지금은 살고 있지 않을 확률이 있어보입니다.



세탁기가 설치된 모습도 보입니다.


즉, 사람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겠죠. 건물 관리를 위해 상주하는 사람인지, 어떠한 사정에 의해 이 황량한 기숙사 건물에 사는 사람인지는 저기 거주하고 계신 분 말곤 모릅니다.



102동의 입구는 폐쇄되어 있습니다.


출입구 주변으로도 잡초가 무성하고, 주차장 라인 역시 희미해져만 갑니다.



전기 설비실로 보이네요. 


담쟁이덩쿨이 이 작은 건물을 집어삼키고 있습니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고 제멋대로 자라는 생명체입니다만, 다른곳에 자라나는 잡초와 작은 나무들에 비한다면 이런 덩쿨은 그래도 보기 나쁘진 않습니다.



복도식 아파트의 양식을 그대로 채용한 성화대학의 기숙사 건물입니다.


아마 이 건물에 거주하고 계신 분의 차량이 아닐까 싶네요. 깔끔한 스포티지가 서 있습니다. 그래도 사람이 사는 건물이라고 102동에 비해 입구 주변은 깔끔합니다.



안내문이 붙어있습니다. 


대법원 판결까지 기다린 뒤, 요 근래 와서 학교법인의 재산에 대한 청산절차가 진행중인 모습으로 보이네요. 경매를 신청한 채권자는 국민은행이고, 채무자는 학교법인 세림학원입니다. 여튼간에 등기부를 확인해보지 않아 상세한 사항에 대해선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 아파트 건물도 곧 새 주인을 찾으리라 봅니다.



버려진 정수기와 파손된 우편함. 그리고 간간히 보이는 5년 넘게 찾아가지 않은 우편물들.


복도도 생각보단 좁습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2012년 11월 30일부터 지금까지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승강기.


세탁기는 그럼 직접 들어다 올렸을까요.



학교 주변 상가들의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낡은 PC방 간판과 학원 간판만 걸려있을 뿐. 작은 면소재지의 3층규모 상가건물도 학교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경비초소처럼 생긴 요 건물이 사감실이라 하네요.


사감실 역시 굳게 닫혀있습니다. 사감이 있을 이유가 없죠. 학생들이 없는데.



그 옆으로 도서관이라 적힌 작은 조립식 주택이 하나 있었습니다.


무슨 도서관을 조립식 주택으로 짓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도서관이라 붙어있는 이 건물 역시 문이 굳게 잠겨있네요. 그렇게 기숙사 주변 지역의 탐방을 마치고 본격적인 학교 시설을 보기 위해 올라갑니다.


3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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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32세 도태남의 처절한 삶의 기록. sinc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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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오늘은 일이 잘 풀려서 깔끔하게 집에 왔습니다만, 어제는 그렇지 못했답니다. 


보령에서 춘천으로 가는 활어차 신차를 탔었고, 바로 춘천에서 동두천 상패동의 폐차장으로 무쏘를 몰고 갔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아다리가(?) 딱 맞아 떨어집니다만, 전철을 타러 걸어가던 중 동두천 상패동에서 양주의 또 다른 폐차장으로 가는 콜이 올라왔더군요.


사실상 동두천이나 양주나 의정부나 거기서 거기인(?) 거리고, 동두천의 동쪽에 치우쳐진 상패동에서 양주시 남면 입암리는 사실상 바로 옆동네나 다름없는 수준인데 2만원이라는 가격에 오더가 올라왔기에 얼씨구나 하고 잡고 갔지요.



경기41. 지역번호판이 달린 1인신조 구형 렉스턴. 구렉입니다.


그냥저냥 세월의 흔적이 있는 걸 제외한다면 딱히 문제 될 건 없어보이긴 합니다만, 폐차 오더를 받았을 땐 먼저 차주분께 차량이 폐차장까지 가는데에 문제가 될만한 요소가 있는지 확인을 합니다. 


그동안 수많은 똥차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데려다 주었지만 비교적 운이 좋게 가다가 시동이 꺼졌음에도 다시 시동을 걸고 갔던 차량도 있었고, 크게 문제가 되었던 차량들은 없었습니다.


여튼간에 차주분 말씀으론 차가 고속주행시 핸들이 확 돌아가고 조향이 안된다 합니다. 물론 상패동에도 폐차장이 있긴 합니다만 옆동네 양주 남면까지가 그리 먼 거리도 아니고 하니 천천히 조심해서 가면 된다고 하더군요. 물론 여기까지만 듣고 보면 가까운 거리고 하니 큰 문제가 될 건 없다 느꼈습니다만...



03년 1월 2일에 등록된 이 렉스턴은 128,476km를 끝으로 차생을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차를 후진으로 빼는 과정에서도 차가 출렁출렁 합니다. 마치 상다리 하나가 부러졌거나, 제대로 펴지지 않은 것 처럼 말이죠. 천천히 가라는 말을 50~60km/h 수준으로 주행하라는 이야기로 이해해서 별 생각없이 가속을 했습니다만, 속도계 바늘이 40km/h 가까이 올라가기도 전에 차가 미친듯이 요동을 칩니다.


핸들도 도저히 컨트롤이 불가할 수준으로 돌아가고, 차는 요동치고. 그렇습니다. 운전석 뒷편 현가장치를 고정하는 프레임이 다 썩어서 외관도 엔진도 실내도 모두 멀쩡한 차가 사실상 주행이 불가능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니 차생을 마감하러 폐차장에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30km/h 가까이 속도가 올라가도 정상적인 운행이 힘들어집니다. 적정속도가 20km/h입니다. 그 이상 밟다가는 제 의지와는 달리 어디 전봇대에 꼬라박거나 하천 밑으로 떨어질 분위기입니다. 거기다가 설상가상으로 이루 말하지도 못할 수준의 장대비가 쏟아집니다. 와이퍼도 수명이 다 된 물건이라 잘 닦이지도 않고, 폭우로 인해 코앞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비상등을 켜고 뒷차들한테 비켜가라는 수신호를 위해 창문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니 차 안에 습기도 가득 찹니다. 에어컨도 그리 신통치 않습니다.


약 6km 가까운 거리. 정말 목숨걸고 20여분만에 도착했습니다.



사진으로도 장대비가 내리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폐차장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언덕을 타고 내려가서 도로는 그냥 계곡으로 변해버리네요.


30여년의 차생을 마감하고 쉬러 온 포니픽업도 보이구요. 포니픽업보다 반도 더 못살은 렉스턴도 무사히 폐차장에 도착했습니다. 진짜 목숨 걸고 왔습니다. 차선이 잘 보이지 않고 갓길로는 커다란 계곡이 생성되어 중앙선을 넘어서 가는 아반떼 탓에 핸들도 급하게 돌리지 못해 식겁하기도 했었고, 초 긴장 상태에서 운행을 하고 왔습니다.



폐차장 사무실에 서류를 전달해 주고, 제 가방을 찾으러 렉스턴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일단 급한데로 서류와 우산만 들고 사무실에 들어가서 일 처리를 마치고 왔네요.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 이 폐차장에 가지고 왔던 차량도 가다가 큰 '펑'소리와 함께 시동이 꺼졌던 카렌스였습니다.



프레임이 형태도 없습니다. 비가 와서 제대로 확인하진 못했습니다만, 

보이는 부분이 저 수준이니 보이지 않는 부분 역시 뻔하겠죠.


제발 목숨을 담보로 타야하는 이런 차는 부디 렉카로 견인했으면 하는 바램이네요. 탁송기사의 목숨도 소중합니다. 부디 탁송회사 관계자 여러분, 그리고 폐차장 관계자 여러분. 제발 부탁드립니다. 로드 기사들 쓰는게 커다란 5톤 렉카가 움직이는 일 보다 싸게 먹히는 일이긴 합니다만, 우리 기사들도 부디 오래 살고 싶습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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