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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해가 흘러간다.


무더웠던 여름을 뒤로하고, 부쩍 추워진 날씨와 바람에 날리는 낙엽들을 바라보니 더더욱이 슬퍼진다. 우여곡절도 많았고, 어려워진 경기가 체감이 되어 더 그리 느껴지기도 한다. 나만 어려운건 아닐테지만 말이다.


거기에 주변에서 들려오는 인간관계와 관련된 여러 이야기들, 네이버 검색정책의 변화와 티스토리의 대대적인 개편 이후 반토막 난 블로그 방문자 및 수익문제로 기분도 영 좋지 않다.



그렇다고는 해도 집에서 바라보는 해가 지는 모습은 찾아와서 볼 수준은 아녀도 나름 괜찮은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저 멀리 용봉산 너머로 사라져가는 태양은 내일도 또 모습을 비추겠지만, 나의 내일에도 해가 뜰까. 앞으로 60번 남짓 해가 더 뜨면 1년이 지나고 나이를 또 먹어갈텐데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영위하고 있을까. 저 멀리 사라지는 해가 만드는 노을과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을 지켜보며 여러 생각에 잠겨보곤 합니다.



한철 푸른 이파리를 뽐내던 단풍나무의 나뭇잎 역시 빨갛게 익어버렸습니다.


하늘도 빨갛고, 땅도 빨갛습니다. 노랗게 물든 나무도 있고, 이미 정들었던 나뭇잎을 놓아 준 나무들도 있습니다.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도 앞으로 몇 주 안으로 집에 들어가 놀겠죠. 가을은 그렇게 점점 깊어져만 가고, 추운 겨울 어떻게 보내야 할지 걱정만 늘어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단풍을 봐도, 붉은 노을을 봐도 기분이 그리 좋지만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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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31세 도태남의 처절한 삶의 기록. sinc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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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오산터미널 건물이 헐리고 10년이 넘는 기간동안의 오산터미널 가건물 생활을 청산하고 지난해 11월 1일 오산역환승센터가 문을 열었습니다. 전국에서 유일한 철로 위에 지어진 환승센터라는 기록도 가지게 되었구요. 전철을 타러 나가기도 매우 용이합니다.





오산 구도심 도로사정이 매우 좋지 않은지라 연착이 잦은편입니다.


그럼에도 적당한 규모에 전철을 타러 내려가기도 매우 용이한. 개념환승이 가능한 터미널입니다.



아래로는 기차가 지나가고, 위로는 버스가 정차합니다.



시간표는 수도권 강원권 방향의 상행과,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방향의 하행으로 나뉩니다.


장지,가락시장,잠실 동서울행이 15~30분 간격으로 10시까지 다니고, 인천공항행 버스는 이른시간부터 10분에서 30분 간격으로 꽤 촘촘히 들어오네요. 수원을 거쳐 인천터미널로 가는 버스도 일 4회 존재합니다.


김포공항을 거쳐 고양터미널로 가는 버스 역시 일 9회 운행하고, 성남(야탑)행 버스 역시 일 17회 운행합니다. 의정부를 거쳐 양주와 동두천을 가는 버스 역시 존재하고, 광명역과 철산역으로 향하는 버스도 일 5회 경유하며 김포를 거쳐 강화도로 가는 차도 있네요.


그 외엔 강원도 대표도시인 강릉,원주행 시외버스가 일 6회. 춘천행은 일 3회. 속초까지 가는 버스는 일 1회 정차합니다. 



대부분 수원이나 안산을 거쳐 내려가는 하행선의 경우 심야버스까지 존재합니다.


충청권으로는 일 26회의 청주 가경터미널행과, 일 20회의 대전행. 그리고 일 15회 중 4회는 세종정부청사와 세종시를 경유하기도 하는 공주경유 부여로행 버스와, 일죽터미널을 거쳐 충주로 가는 차량이 일 6회. 평택 안성 장호원을 거쳐 제천까지 넘어가는 버스도 일 2회 있습니다.


호남권으로는 일 7회 광주행, 일 6회 전주행. 그리고 일 5회 군산을 경유하여 익산으로 가는 차량과 일 3회 운행하는 남원으로 가는 차량이 있네요.


그 외에는 경상도행 차량들입니다. 일 4회 서대구행과 일 2회 북대구행. 2회의 노포동터미널행과 10회의 해운대행이 존재하는 부산행 버스와 일 7회의 울산행. 일 3회의 진주행과 일 5회의 김해행. 구미를 거쳐 의성과 안동으로 가는 6대의 버스와 마산을 거쳐 창원으로 가는 버스가 이 11회 정차합니다.


그 외에도 북대구,경주,울산,부산,김해,마산행 노선의 심야버스가 존재합니다. 



요금표입니다. 현재 운행하지 않는 노선의 요금까지 나와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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