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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부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붉은 벽돌의 구 도청사 건물 1층에 소재한 홋카이도 역사 자료 갤러리로 향합니다.



문서관 내에 소재한 작은 전시실입니다만, 아쉽게도 우리말 안내는 없습니다.


다만, 한국어 안내 책자는 출입구에 비치되어 있더군요. 다음번 리모델링 때엔 꼭 일어와 영어 설명 옆에 한국어 설명도 같이 병기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홋카이도(북해도) 개척 전 부터 개척사를 거쳐 현세에 오기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미 여러번 강조하고 지나쳤던 부분입니다.



열람용 책자가 아닌 가이드북 아니 팜플렛이라도 하나 만들어 줬다면 좋을텐데 말입니다.


열람실에서 쭉 둘러보고 책자 역시 정독하고 왔습니다만, 하나하나 다 기록하고 쓰자니 노잼이라는 반응이 많고 호응도 썩 좋지 못하니 기억에 남는 부분만 짚고 넘어가도록 하죠.



빨간 벽돌로 지어진 1911년 이후 아카렌가의 모형입니다.




처음엔 그냥 재건축 당시 나온 벽돌인 줄 알았는데, 도로 위에 깔렸던 목재라 합니다.


1924년 홋카이도에서 최초로 깔린 카카타마리 포장도로의 기반이 되었던 나뭇조각들입니다. 지금이야 아스팔트나 콘크리트를 기반으로 도로를 포장합니다만, 이시절엔 그럴만한 기술도 없었고 나무를 보도블럭 깔아놓듯이 깔아두었다 합니다.



개척 전 북해도 지도.


여러 소수민족이 살고 있었던 꽤 큰 섬은 개척이라는 명목 하에 일본국 영토로 자리잡았습니다. 물론 그 위의 러시아령 사할린 역시나 일본의 야욕이 닿았던 땅이지요. 2층 이야기가 나올 때 다시 한번 더 얘기하고 넘어가도록 합시다.



의외로 100년 가까이 된 건축물임에도 지하실까지 존재하는 듯 보입니다.



후세에 와서 인위적으로 만든 공간은 아닌 것 같아 보이는군요.


지하실은 어떤 용도로 활용되고 있는지 따로 설명이 된 부분이 아닌지라 잘 모르겠습니다.



비록 도청은 뒤에 새로 지은 건물로 옮겨갔지만, 공무원들이 활용중인 공간은 꽤 남아 있습니다.


요렇게 관광객의 출입을 금한다는 표지판이나 팻말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2층으로 올라왔습니다.


국제교류, 도산품 전시실이 눈에 띄더군요. 일단 들어가 보았습니다.



홋카이도와 교류중인 지자체의 특산품 그리고 서로 주고받은 선물을 전시하는 공간입니다.



많고 많은 나라 중, 우리나라에서만 세군데의 지자체와 자매결연을 맺은 상태였습니다.


그 외에도 바로 위에 붙은 러시아의 사할린을 비롯해서 캐나다 사할린 중국 미국의 여러 州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었습니다.



대마도는 우리땅?


2005년 부산광역시와 자매결연을 맺은 뒤 경상남도 그리고 서울특별시와 차례로 자매결연을 맺었습니다. 다만 자국 영토인 대마도도 노란색으로 색칠해 두고 화살표에 같이 박아두었습니다.


우리 선조들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섬이고 부산에서 매우 가까운지라 부산사람들은 배를 타고 대마도로 당일치기 해외여행에 나가곤 합니다만, 자국 나가사키현 쓰시마시를 부산광역시에 편입시켜 주셨습니다.



2010년 10월 15일. 

서울특별시와의 친선교류 행사 당시 서울시에서 선물한 금관 장식입니다.



부산에서는 자개로 광안대교를 그려놓은 접시를 선물했네요.



사할린에서 보내온 선물도 보입니다. 이렇게 크고 작은 답례품들이 전시되어 있더군요.



대권주자에서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진 5세훈..


우리가 잘 아는 그 정치인 입니다. 무상급식 캐삭빵으로 한순간 사라진 정치인 오세훈 말입니다. 변호사 시절 TV에 출연하면서 다져온 인지도와 깔끔한 인상으로 국회의원 그리고 시장까지 올라갔던 촉망받던 정치인입니다만, 4월 총선에서 정치 1번지라 불리는 서울 종로 지역구에 출마하여 재기를 노렸지만 더불어민주당 전 당대표를 지냈던 정세균 후보에게 압도적으로 패하고 맙니다.


방문 당시가 선거철이던지라 과연 오세훈이 재기를 할 것인지 관심을 가지고 사진을 찍었습니다만 여론조사 내내 앞서다가 크게 지는 모습을 보여주며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정세균의 주가를 올리는 결과를 보여줬습니다.


10부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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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스도리

만 29세 도태남의 처절한 삶의 기록. sinc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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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부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지난 줄거리 요약


비행기를 타고 신 치토세 공항에 도착한 뒤, 레일패스를 끊어 삿포로행 급행열차를 타고 삿포로시에 도착한 티스도리. 무거운 짐이나 좀 떨궈보자며 호텔로 향했지만, 체크인 시간이 되지 않은지라 체크인은 하지 못하고 밥을 먹으러 나갔다 오며 시계탑을 발견합니다. 시계탑을 발견하고 입장료를 내고 시계탑을 구경한 뒤 체크인을 마치고 다시 밖으로 나오게 된 그는 빨간 벽돌조 건물인 구 도청사를 향해 가게 되는데..




문화재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존재합니다.


중요문화재 구 도청 본청사


붉은 벽돌이라고 불리우는 북해도청 구 본청사는 1888년에 북해도 행정의 거점으로서 건설되었습니다. 도청의 기사들에 의해 디자인된 이 미국식 네오바르크양식 건물은 북해도의 건축 자재를 풍부하게 활용하여 만들어졌습니다.

건축 당시에는 일본에서 몇 개 안 되는 대단히 드문 고층 건축물이었습니다. 화재가 있어 1911년에 개축, 그 후 1969년 3월에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구 도청사에 대한 설명을 적어 둔 표지판입니다. 보시다시피 미국의 네오바르크 양식에 따라 만들어진 서양식 건축물이지만, 건축에 필요한 자재들은 수입 없이 홋카이도에서 공수해서 만들었다 합니다. 


요즈음 양산형 건축물을 지을때도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를 위한 목적이 아닌 단가때문에 수입산 자재를 쓰는 경우도 많은데, 그 당시 홋카이도 도민 그리고 개척사 직원들의 열정이 엿보입니다.



아카렌가 청사 (중요문화재 홋카이도청 구 본청사)


입장은 무료. 다만 내실은 꽤 알찹니다.


1층에는 홋카이도 역사 자료 갤러리(문서관 전시실)와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문서관 열람실이

2층에는 기념실과 홋카이도 박물관 분관. 사할린 자료실, 북방영토관 국제교류관등이 있습니다.


관광객의 출입이 제한된 몇몇 공간을 제외한다면, 입장료 없이 꽤 많은 걸 보고 누릴 수 있습니다.



홋카이도청 구 본청사 정원의 수목 맵


번역투가 상당히 애매하게 나왔습니다만 홋카이도청 구 본청사 주변으로는 나름 규모있는 정원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제가 간 시점이 우리나라 2월 말에서 3월 초 날씨인지라 정원에 아름답게 피어난 꽃도 풀 한포기도 없이 황량하기만 했습니다.


여튼 소개에 따르면 '홋카이도청 구 본청사의 정원에는 약 100여종 1,000그루의 수목이 심어져 있어 계절에 따라 다른 풍경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라고 합니다. 뭐 제가 보고 온 것도 계절에 따라 다른 풍경 중 하나겠죠.



바람이 거세게 부는 정원에는 그 어떤 카와이한 처자도 없었습니다.


단지 토요일임에도 뼈빠지게 일하고 바쁘게 퇴근길에 오르는 스시남 아저씨들만 지나갈 뿐이고, 저같은 관광객들이나 이래저래 둘러보고 갈 뿐이죠.



LED 조명은 죄다 철거가 된 상태. 


기나긴 북해도의 겨울을 보낸 나무들에겐 아직까지 짚단이 쌓여 있는 상태입니다.



4월 말에 한번 더 폭설이 내렸다 합니다만.. 부디 나무들이 잘 살아있길 바래봅니다.



건물 주변에는 자전거도 불법주차가 되어있습니다.


의외로 시내를 지나다니다 보면 자전거 주차 금지구역도 존재하더군요. 게다가 거센 바람에 잘 쌓여있던 낙엽도 이리저리 굴러다니다 건물 구석으로 몰리기 시작합니다.



100년이 넘은 건물임에도 피뢰침이 존재합니다.


작은 굴뚝처럼 보이는 부분은 환기탑이라고 하는군요. 그 외에도 천연 슬레이트로 만들어진 지붕이 올라가 있고, 약 250만개의 삿포로제 벽돌을 프랑스 방식으로 조적했다고 합니다. 



다시 한번 더 확인합니다. 입장은 무료입니다.


암요 그럼요. 입장료가 단 한푼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우리의 홋카이도청에서 무료로 관광객들에게 개방해주는 그런 건물입니다.



건물 내부로 진입합니다. 


두개의 작은 아치와 정 중앙의 계단으로 이어지는 큰 아치. 그리고 엔틱한 장식문양은 전형적인 서양식 건물임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계단 역시 목조인지라 올라가고 내려가는 사람들로 인해 삐걱거리는 나무소리가 울려퍼지더군요.



관계자 이외의 출입을 금합니다.


분명 인기척은 들립니다만, 아마 관계자 분들이 들어가 계시겠죠. 출입을 금한다 하는데도 일부러 문을 열어보는 몰상식한 관광객은 없었습니다. 요즘 요커들에게 관광지가 되어버린 서울 모 대학이 출입금지 표지판을 아무리 붙여놓아도 무턱대고 들어오는 몰상식한 중국인 관광객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는 이야기가 뉴스에 나오고 하는데 말이죠. 



방화문은 아마 후대에 와서 달아둔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미 화재로 한번 소실되었던 건물인지라 방화문의 존재는 더욱 더 중요하게 여겨지겠죠. 웬지 느낌상 60년대 복원 당시에 달아둔 느낌입니다. 1911년 건축 당시에 만들어 둔 방화문은 아무래도 아닌 것 같습니다.


P.S 언어만 능통하다면야 지킴이 봉사를 하고 계신 어르신들께 물어보겠는데.. 그러질 않으니..

 

9부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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