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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만의 동호회 번개모임입니다. 눈이 오면 안가려고 했는데 마침 눈이 안오더군요,,, 


그렇게 당진에서부터 양평군 서종면사무소를 목적지로 삼고 출발하였습니다. 일어난게 아홉시라 서둘러 밥먹고 준비하고 올라갔네요...



더럽던 차 손세차 맏겨서 떼도 벗겨내고... 모처럼만에 지하주차장에도 넣어두었습니다.


한번 싸악 닦아주면 깔끔한데 말이죠.. 눈오고 하는 겨울철엔 닦아야 하지만 닦기가 참 귀찮습니다. 어짜피 썩을데는 썩었으니 걍 두고 보자는 심산일까요.. 뭐 그건 그렇고요... 지하주차장에서 출격 준비를 합니다.



역시나 평범하게 고속도로를 타고 갔습니다...


처음 진입할때 하이패스 카드를 단말기가 인식을 못하더니만 잔액도 없어서 미납요금도 나중에 가서 냈네요.. 여튼 쿵쾅소리밖에 안들리지만 하루종일 하이패스때문에 신경을 썼네요..





그렇게 고속도로를 달리고 또 달려서 도착한 양평군 서종면 주민센터입니다.



여느 평범한 동네 면사무소랑 다를게 없어보이고, 그냥 평범한 면단위 동네인데

글쎄 이동네가 경치가 좋아서 펜션이니 별장이니 잔뜩 자리잡고 있답니다.


땅값도 겁나게 비싸겠죠.. 평범한 시골 면치고는 놀러오는사람도 많고 경치도 좋은 동네입니다. 그나저나 양평도 시 승격을 준비하는듯 하더군요. 별장을 가진 타지인들에게 주소를 옮겨놓으라는 현수막을 비롯하여 조만간 시가 되기 위해 노력하나봅니다. 최근에는 여주군이 시로 승격되었죠.


양평까지 시 승격을 하게 된다면, 경기도에 남은 군단위 지자체는 연천군,가평군 두군데밖에 없겠네요.



제가 늦게왔다보니 다른 회원분들은 많이 와계십니다. 


저 흰색과 검은색 그랜져 두대만 빼고 아토스 두대와 투스카니 한대는 우리 회원님 차량입니다. 투스카니는 얼마전까지 자주 사진에 등장하던 검은색 비스토를 타시던 지역장님 차량이지요....



여기도 우리 회원님들 차량이 보입니다.


제일 끝에 후기형 세라토는 양평에 사시는 회원님, 그리고 그 옆에는 얼마전 사고로 수리를 마친 서울경기지역 부지역장님 차량, 그 옆에는 총무를 맏게 되신 회원님 차량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경기도 광주에 거주하시는 회원님의 한달된 빨간 스파크도 도착했네요...

(사진이 쭉 찾아보니까 없...)



그러던 와중에 면사무소로 xd 한대가 들어왔는데 상태가 심상치 않습니다...



누가 봐도 현저히 바람이 빠져있더군요.. 카센터도 모두 다 문을 닫은 상황에서, 양평에 사시는 회원님과 현직 정비사로 일하고 계신 회원님이 합세하여 비스토동호회의 위상을 드높여주셨습니다.


전날만해도 멀쩡하던 타이어에서 이날 아침에 보니 바람이 빠져있었다는 차주분의 증언에 따라 쟈키로 들어올린 뒤 휠타이어를 탈거하여 바람이 새는 곳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열심히 봉사활동중이신 두 회원님..



타이어를 탈거하여 타이어에 흠집이 나 있는지 확인해봅니다. 

사실상 타이어 트레드도 많이 닳아서 교환 할 때도 다 되었습니다.



짐작가는곳이 한군데 있었는데 아니였습니다..



그렇게 작업은 계속되었고... 


비스토동호회 회원들과 아반떼 차주분 일행은 경과를 초조히 지켜보았습니다.



결국 바람이 새는곳은 찾아내지 못했는데, 일단은 타이어에 에어를 충분히 주입해주었습니다.

아반떼 차주분은 집으로 가셔서 타이어를 교체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지렁이 박고 더 타는것보단 낫죠.


그렇게 하나의 에피소드를 겪고.... 아반떼 차주분이 비스토동호회에 선물을 하나 주셨습니다.



수여하는 장면까지는 남아있지 않았고... 음료수 한박스를 받게 되었네요...


기분 좋은 하루였습니다.



그럼 밥을 먹어야지요... 다른 회원님들은 식당에서 담소를 나누고 계신 사이에 저는 잠깐 농협에 가려고 걸어서 시내쪽으로 나와봤습니다.


다리를 건너는데 물이 참 깨끗하네요. 높은 산 깊은 골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입니다.



평범한 면소재지 같지만.. 이래뵈도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명소입니다.....


연인과 함께 가족과 함께 즐길만한 자리이고 여러 동호회들의 모임 장소가 되기도 하는 곳입니다.



밥은 이집에서 먹었습니다. 도토리 막국수,묵밥전문점입니다.


제가 농협에 다녀온 사이에 미리 제 메뉴를 주문해놓으셨더군요... 비빔막국수를 먹게 되었습니다.



막국수 전에 전병도 하나 먹어보구요... 정갈하게 잘 나왔습니다.


막국수나 묵밥은 나오자마자 흡입하게 되었네요... 먹을만 했습니다. 국수도 밀가루가 아니니까 부담없이 맛있게 먹은 것 같네요. 한 일주일 밥 양을 줄였다고 살도 좀 빠지고 양꾸레도 좀 줄은듯 하네요.



잘 보이지는 않는데 50년대 전쟁통에나 쓰였던 제무시 트럭이 지나갑니다.


블로그 초창기에 제무시트럭에 대해 쓴 글이 하나 있네요.. http://tisdory.com/99



아까는 xd를 도와줬다면 이제 우리 회원차ㅏ량들 공기압을 체크해주시고 계십니다.


제차야 언제 공기압 체크했나 생각해보니 인치업할때 그때 한번 만지고 안만졌네요.. 그게 7월입니다.



그렇게 공기압 체크도 끝나고 기념촬영이 있었습니다.


기념촬영 후 거리가 먼 회원님들은 중간에 가게 되었고, 저도 천안에 볼일이 있으니 좀 일찍 나와서 천안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괜히 비싼 경춘고속도로 타느니 잘 뚫린 국도를 잠깐 이용하기로 했지요..



현수막 참 유용합니다.


P.S 아주 오래전에 '너먼저 울지마'라는 소설을 감명깊게 읽었는데.. '마당을 나온 암탉'등으로 유명한 작가 황선미씨가 서종면 도서관에 다녀가셨군요...



남한강변을 따라 구불구불 나있는 지방도를 타고 옵니다. 

지방도를 타다가 6번국도를 타고 하남에서 고속도로로 올라탔네요..



사진으로 표현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가서 보시는 수밖에... 절경입니다.



천안에 왔으니 추억의 그곳도 잠깐 들리고....



막사진도 한번 찍어봅니다.



오늘도 그곳은 평화롭습니다. 



순천향대병원 주차장에서 매그너스 택시를 목격했네요.. 예산면허 차량입니다.


요즘 사실상 보기 힘든 택시중에 하나죠... 뉴이엡도 거의 보이지 않고, 매그너스는 더 보이지 않는데 이렇게 반갑게 매그너스 택시를 보았습니다. 최후기형 06년식일경우 못해도 2015년까진 생존이 가능하겠더군요. 제발 후기형이길.. 제발 오래 살아남아주길 기원합니다. 매그너스 택시....



여튼 기승전병으로 글이 끝나버립니다. 즐거웠던 하루고 참 다사다난했던(?) 하루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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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31세 도태남의 처절한 삶의 기록. sinc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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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또 방전이 되었다. 수도없이 방전이 되고 충전도 제대로 되지 않는듯 싶다..


배터리를 충전하기 위해서 얼마전 새로 개통된 70번 국가지원지방도를 한번 쭉 타보고 내경쪽으로 해서 길을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강문리를 거쳐 부리포라는 곳을 가게 되었다.



뭐 이리 집가까운데에 항구가 있나... 했는데 진짜 있었다.


이름은 부리포. 우강면 부장리에 위치해있다. 70년대 후반 방조제로 삽교천이 막히기 전까지는 양곡을 실어나르던 배도 드나들었고, 인천항으로 향하던 여객선도 드나들었던 자리다. 현재는 삽교천변이 공사가 진행중이다보니 약간 어수선한 감이 없지는 않다.



시멘트로 덕지덕지 발라진 항구에 소형 어선 몇척 없는 이곳이지만 한때는 부흥했던 곳이다.


수십년전 충청도와 전라도에서 이주해온 인구들이 정착하여 지금의 인천이 발전했듯이 인천 이민 1세대들이 떠난 곳이 한진포구와 바로 이 부리포고 수많은 지역사람들이 육로 대신에 비교적 가까운 시간에 인천에 닿을 수 있는 항구를 택했던게 아닐까 싶다.


P.S 한진포구는 아직까지도 관광지로써 그 명성이 자자하다.


인터넷상에서 긁어온 글이기는 하지만, 부리포는 산업화가 진행되던 시절 먹고살 것 없던 서해안 주민들의 루트 역활을 해주었다. 초창기에 특히 서산 당진지역 사람들이 인천으로 많이 이주를 했지만, 이후 이주해온 전라도사람들의 강한 사투리 억양과 호남향우회등 나름 눈에 띄는 행동으로 인해 비교적 조용히 살던 충청도 이주민에 비해 전라도 이주민들이 더 많이 부각되어온 듯 하다.



그 당시 충남 해안, 특히 당진군과 서산시는 해로를 통한 인천시와의 교통이 원활하고 또한 그 시간 거리(3~4시간)가 비교적 짧았다. 1960~70년대 당진군 한진․부리포(부장리), 서산시 생길포․구도․팔복(대산면)은 인천항을 오가는 선박들이 정박하는 포구로 이용되었다. 이러한 포구에 대한 접근이 용이한 충남도민은 새로운 직업의 기회를 찾아 해로를 통하여 인천시로 이주하는 것이 육로를 통하여 다른 도시로 이주하는 것보다 더 유리하다고 판단하였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인천시에 거주하는 충남출신자 중에서 당진군, 서산시, 태안군 출신자가 가장 많은 것이다. 


충남도민은 인천시로의 이주 초기에 대부분 취업의 기회가 많은 중구와 이에 인접한 동구와 남구에 정착하였다. 여기에는 대성목재, 항공유리, 대한중공업(인천제철의 전신), GM대우 등과 같은 대형 제조업체들이 입지하고 있었다. 충남도민은 우선 이러한 제조업체 근처에 집을 얻은 다음 직장을 구하는 방식으로 객지 생활에 적응해 나갔다. 충남도민의 출발지는 포구에 대한 접근성과 내륙성을 기준으로 다음과 같이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1) 당진군․서산시․태안군, (2) 공주시․논산시․금산군 또는 연기군․대전시․천안시, (3) 부여군․서천군․보령시․청양군 또는 홍성군․예산군․아산시. 


여기에서 출발지 ‘(1) 유형’은 해안을 끼고 있는 곳으로 인천시로의 초기 이주에서 주류를 형성하였다. 당진군과 서산시 출신자들은 해상 교통을 이용하여 인천항으로 들어온 다음 중구와 동구를 중심으로 정착하였으며, 그 후 인천시의 성장에 따라 남구(주안 포함)와 남동구로 거주지를 이동하였다. 그 결과 1990년대 당진군 출신자들은 부평구를 제외하면 남구, 남동구, 동구 순으로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었다. 그들의 거주지 집중률이 가장 높은 순서는 주안동, 송림동, 숭의동, 구월동, 도화동, 용현동, 만수동이었다. 서산시 출신자들은 초기에 중구를 중심으로 정착한 다음 인천시의 성장 방향을 따라 용현동, 송림동, 주안동으로 거주지를 확장하였다. 1990년대 그들은 당진군 출신자들과는 약간 다른 양상으로 남동구, 남구, 부평구 순으로 집중적인 거주 상태를 보이고 있었다. 그들의 거주지 집중률이 가장 높은 순서는 주안동, 만수동, 구월동, 간석동, 용현동, 부평동, 십정동이었다. 태안군 출신자들은 특이하게도 당진군․서산시 출신자들과 다르게 거주지가 부평구에 가장 집중되어 있었다. 그들의 거주지 집중률이 가장 높은 순서는 부개동, 십정동, 송림동, 청천동, 만수동, 구월동, 부평동으로 배열되었다. 


출발지 ‘(2) 유형’은 충청남도에서 가장 내륙 방면에 위치하고 있는 시․군으로 인천시로의 이주 인구가 ‘(1) 유형’ 다음으로 많다. 여기에서 특기할 만한 사실은 공주시․논산시․금산군 출신자들이 ‘(1) 유형’ 출신자들과는 달리 효성동에 가장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천안시․연기군․대전시 출신자들은 산곡동에 가장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출발지가 충청남도 내륙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해로보다는 육로를 이용하여, 서울시를 거쳐 서울시에 가까운 효성동과 산곡동으로 이주하였다고 추정된다. 1980년대부터 효성동과 산곡동은 공업단지가 대대적으로 조성되어 새로운 일자리가 많이 창출되면서 공주시․논산시․금산군 출신자와 천안시․연기군․대전시 출신자들을 집단적으로 흡인하였던 것이다. 


출발지 ’(3) 유형’은 인천시로 이주한 충남도민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낮은 시․군으로, 예산군을 제외하면 기여도가 지극히 미미하다. 그러는 가운데 ‘(3) 유형’ 출신자들은 서천군과 예산군 출신자를 제외하면 공통적으로 십정동과 부개동을 중심으로 거주지가 집중되어 있는 특징을 보인다. 특이하게도, 서천군 출신자는 거주지가 청천동에 가장 집중되어 있으며, 예산군 출신자는 거주지가 주안동에 가장 집중되어 있다. 홍성군 출신자와 아산시 출신자는 공통적으로 십정동 다음으로 부개동이 아닌 구월동에 거주지가 가장 집중되어 있다. 이러한 집거현상(集居現象)은 ‘동족(同族)’과 ‘동향(同鄕)’이라는 연고(緣故)를 매개로 하는 연쇄이주(連鎖移住: chain migration)에 의한 결과로 추측된다.




물은 똥물이지만 주변으로 섬들도 간간히 보인다. 물론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작은 섬들은 사유지로 쓰이는 경우도 있긴 하다만, 지금 항구의 역활은 그냥 삽교천 주변에서 붕어나 낚아 올리는 어선들의 선착장과 외딴 섬에 왔다갔다 하는 수준의 항구밖에 되지 않는다.


한때 크고 작은 배들이 드나들던 항구이다보니 네이버 뉴스캐스트 옛날신문을 통해 몇몇 애피소드를 찾아낼 수 있었다. 좋은일로 기사가 나온건 아니지만 말이다.




동아일보 1931.03.27


부리포를 출발해서 삽교천을 건너 바다로 나간 인천기선회사 소속의 증기선 '삼영환(三榮丸)'이 한진포구 즈음에서 종선 역활을 하는 목선과 충돌해서 목선이 침몰하고 7명이 빠졌으나 6명은 구조되었고, 당시 신평면 운정리에 거주하던 김봉군(33)씨는 사망하였다고 하는 슬픈 이야기다.


8년 후, 이 삼영환이라는 배를 보기 위해 십리를 걸어 부리포에 온 아홉살 소아가 있었는데...



1939.08.15 동아일보


합덕 장수남씨의 장남 장영진군과 친구들은 약 10리를 걸어서 범천면(현 우강면)의 부리포에 발동기선을 구경한다며 집을 나섰으나, 발동선을 대는 깊은곳에 들어가 수영을 하다가 실종되었는데.. 다음날 오전에야 공뿌리(공포리)에서 시신을 찾을 수 있었다는 내용..


장영진군이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여든살 드신 어르신이 되어계실거라 생각된다...


그리고 일본선적 삼영환은 한참 시간이 흘러 54년에 제주도에서 밀항자 20여명과 밀수품을 싣고 일본으로 향하다 검거되어 한국 정부에 압수가 되었는데... 그 이후로 삼영환이라는 배는 과연 어찌되었는지 알 방도가 없다. 이 배를 추적해보는것도 나름 재미있어 보인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54101200329202006&edtNo=1&printCount=1&publishDate=1954-10-12&officeId=00032&pageNo=2&printNo=2667&publishType=00020




여튼 부리포 주변 수문으로 올라왔다. 사람도 없고 물안개만 끼어있을 뿐이다.


돌맹이를 하나 던져보았다. 풍덩하고 빠지는게 물이 상당히 깊은가보다. 1930년대 깨끗했던 물도 아니고 더러운 물에서 수영하려는 사람은 당연히 없겠지만 조심하자...



환경정비한다고 파헤쳐둔 땅으로 내려와서 사진도 한번 찍고.....


여기 꿩도 돌아다니고 별별 야생돌물들이 다 돌아다닌다. 비둘기떼도 그렇고 나름 생명의 보고....



신흥지구 2공구 환경정비사업 결사반대.


무슨 이유일까.. GAKA의 4대강 사업에 포함된 곳은 아니지만 환경정비를 한다며 도로를 포장하고 주변에 논으로 이용되던 땅에 나무를 몇그루 심어두었다. 설마 이런 외딴데에 산책로 만들고 하려는건 아닐테고.. 반대하는 이유가 궁굼하기도 하다.


육상교통이 발전함과 동시에 방조제로 인해 포구의 기능을 사실상 상실한 부리포... 한때 번성했던 포구였지만 지금은 일부러 찾아오는이 거의 없는  그곳은 오늘도 역사와 아픔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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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31세 도태남의 처절한 삶의 기록. sinc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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