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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부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본격적인 도쿄의 번화함이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알록달록 형형색색의 간판들 그리고 높고 높은 고층빌딩들과 비교적 이른 시간임에도 도로 위 가득한 자동차들과 수많은 사람들이 번화가에 온 기분이 들게 합니다.



시부야역 광장으로 나섭니다. 


낡은 폐 전동차는 현재 키티 그림이 붙어있는 관광안내소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비교적 이른 시간대에도 사람이 이렇게 많이 있었는데, 1~2시간이 지난 후 다시 오니 사람으로 미어 터지더군요.



시부야역 광장은 시부야 지역의 랜드마크이자 만남의 장소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물론 옆에 흡연구역이 있어서 흡연자들은 담배를 물고 있기도 하구요. 스시남 아저씨도 카와이하게 차려입고 나온 스시녀도 나무에 둘러앉아 스마트폰을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과연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걸까요.



하치코상 앞으로는 역시나 세계 각국에서 찾아온 관광객들이 몰려있습니다.


아 물론 제가 갔던 시간대가 이른 시간대인지라 가까이에서 접근이 가능했지, 조금 뒤에 보니 하치코상 근처로도 엄청난 인파가 몰려있더군요. 카와이한 충견 하치코를 보시려는 목적이 있으시다면 시부야에는 조금 이른시간에 방문드리는걸 추천합니다.



'하치코'가 이름이 아니라 '하치(ハチ)'가 이 개의 이름입니다.

'충견 하치공(忠犬ハチ公)'이라 부르는데, ''을 읽으면 ''가 되는지라 오해를 하곤 합니다. 


하치는 1924년 아키타현 오다테시에서 태어난 순종 아키타견입니다. 다만 태어날 때 부터 몸이 약했던 하치는 도쿄제국대학 농학부 교수인 '우에노 에이자부로'교수에게 입양된 뒤 교수가 지극정성으로 돌봐주어 잘 자라게 되었고, 그러한 정성에 보답하고자 기차를 타러 시부야역에 갈 때 배웅을 나가기도 했고 기차를 타고 돌아오는 교수를 마중나가기도 했다고 합니다.


다만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고, 1925년 우에노 교수는 도쿄제국대 농학부 건물에서 교수회의를 마친 뒤 갑작스레 뇌출혈로 쓰러져 생을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모르고 농학부 건물에서 주인을 기다리던 하치는 집으로 돌아와 식음을 전폐하며 울었다 하네요.


그렇게 이집 저집 전전하던 하치는 결국 시부야로 돌아오게 되고, 시부야역에서 주인을 하염없이 기다리게 됩니다. 이리저리 박해도 받고 했지만 하치의 사연이 신문을 통해 알려지게 되고 '충견 하치공'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네요.



비록 주인을 다시 볼 순 없었지만, 이렇게 동상으로 남아서 후대에 많은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여튼 하치상은 사연을 들은 사람들이 모금운동을 벌여 하치 생전에 제막되었습니다만, 태평양 전쟁 당시 헐려나갔고 지금의 하치상은 1948년에 다시 세워진 동상이라 하는군요.



국내에도 오수의 개, 돌아온 백구 이야기를 비롯한 충견 이야기가 많이 전해져 내려옵니다.


개와 관련된 이야기는 세계 어디를 가도 많이 전해져 내려 오겠지요. 파트라슈 못지 않은 인지도를 자랑하는 충견 하치는 10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많은 세계인의 심금을 울리고 있습니다. 1987년 그리고 2009년 리메이크까지. 무려 두번이나 영화의 소재가 된 개입니다.



키티 전차 위에는 비둘기가 앉아있습니다.


하치상을 보러 온 관광객들이 빵쪼가리 하나 둘 주니 비둘기들도 광장 근처로 모이더군요.



시부야의 명물. 겁나 복잡한 스크램블 교차로입니다.


보행자 신호가 한번 떨어지면 복잡한 횡단보도에 수많은 사람들이 건너갑니다.



스크램블 교차로 관람의 명소인 스타벅스 역시 이른시간임에도 사람들로 가득하더군요.



저도 직접 건너보았습니다.


다시 내려올 때에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았던지라 그저 그런 횡단보도가 관광명소가 되었다는 사실이 느껴지더군요.



일요일 아침부터 열심히 돌아다니는 쿠로네코 트럭.


우리나라로 치자면 서울55급인 품천(시나가와) 번호판을 달은 야마토 운수의 트럭이 시부야 거리를 지나갑니다. 남들 다 쉬는 일요일에도 일을 하고 계신 택배기사 아저씨를 보자니 측은하긴 합니다만, 일요일에도 배달이 되는 일본 택배의 시스템을 보고 있자 하니 부럽기도 합니다.



츠타야 부근으로 향해봅니다.


어젯 밤 사지 못했던 음반들이나 살 겸 갔습니다만, 11시에 문을 연다 하네요. 케이팝이 확실히 인기가 좋긴 좋은지 B.A.P의 새 앨범을 알리는 현수막이 큼지막하게 걸려있습니다.



츠타야를 뒤로하고 시부야 거리를 거닐다 보니 109 건물에 큼지막하게 익숙한 무언가가 걸려있네요.


시부야109는 여성 의류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쇼핑몰입니다. 사실상 일본 패션의 중심지이자 트랜드를 선도하는 건물이죠. 여튼 여름 세일을 알리면서 모델로 트와이스를 기용했습니다.


트와이스 일본 데뷔가 6월 29일. 사진 촬영 일자는 7월 2일. 트와이스가 데뷔부터 엄청난 폭풍을 몰고 왔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합니다만, 생각해보니 그 폭풍이 불어닥칠 때 시부야에 방문했네요.



좀 더 가까이에 가서 확인합니다.


개인적으로 대한민국 내에서 트와이스의 인기가 좋던 이유가 스시녀 멤버가 셋이나 있어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긴 한데, 일본에서의 인기투표 역시 자국 멤버들이 상위권에 랭크된다 하더군요.



스크램블 교차로 못지않게 어지러운 109 앞 교차로.



시부야 109 역시 10시 넘어서 문을 엽니다만, 그럼에도 죽치고 대기중인 인파들이 꽤나 많습니다.



일요일임에도 교복을 입고, 가방까지 매고 온 스시녀를 따라(?) 시부야 거리 구경에 나섭니다.


위 아래 옆으로 엄청난 상권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시부야의 번화한 거리 이야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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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에서부터 이어집니다.



낮에 오면 꽈리시장이니 나카미세니 순수하게 관광객을 맞이하는 시설들만 문을 열고 있겠습니다만, 불타는 토요일 밤인지라 관광객을 위한 시설보다는 현지 주민들을 위한 위락시설들 위주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보다 더 흔히 보이는 맥도날드. 그리고 2층에는 음반 판매점인 츠타야가 있습니다.


신주쿠 신오쿠보 롯본기같은 도심에 비한다면야 고층건물도 적고 그리 번화하지도 않긴 합니다만, 나름 저녁식사와 술한잔 할 수 있는 가게들. 그리고 화려한 드러그스토어와 밤 늦은 시간에도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상점들이 몰려있습니다.



우리나라 번화가 근처 밤거리엔 불법주차된 자동차들이 점령하고 있습니다만, 여기는 자전거입니다.


불타는 금요일 핫한 시간대에 선릉,한티역 뒷편,홍대,이태원을 다 들어가 봤습니다만 그런 번화가에서 자동차가 담당하는 포지션을 일본에서는 자전거가 담당하고 있습니다. 인도고 어디 문 닫은 상가 앞이고 일단 자전거를 바치고 보기 바쁩니다. 이런거 보면 차냐 자전거냐의 차이지 우리나라보다 딱히 더 나은건 없어보이네요.



밤은 깊어가고, 센소지 방향으로 향합니다.


드러그스토어는 일단 구경이나 다 마친 다음에 들어가보도록 합시다.



기념품을 파는 상점들은 이미 문을 닫았습니다.


다만 셔터에는 에도시대를 연상시키는 그림들이 그려져 있네요. 이런 그림들이 쭈욱 이어집니다. 비록 문이 열린 상가는 보지 못하더라도 전통 양식으로 그려진 이런 그림들을 보는 재미는 있었네요.



지나가다 보니 포차 거리가 있습니다.


멀리서부터 웅성웅성 거리는 소리가 들리기에 근처로 왔습니다만, 아주 활기찹니다. 시끌벅적합니다. 어느 누가 일본사람들은 조용하다 했던가요. 양복을 입은 스시남 아저씨도 카와이한 스시녀 처자도 술이 들어가니 친구들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시끄럽게 이야기 하기 바쁩니다.


포차를 쭉 돌아보니 서양에서 온 외국인들도 보이네요.


보통 보이는 외국인들은 일본인과 합석을 한 상태입니다. 아무래도 타국에 사는 지인이 놀러왔으니 술한잔 하자며 포차로 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뭐 대부분 캐쥬얼한 의상을 입고 있는걸로 보아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주말에 얼굴이나 보고 한잔 하러 왔으리라 짐작됩니다.


여튼 아까 봤던 인도 위의 자전거를 타고 온 사람들이 이 포차거리 안에 최소 한명 이상은 있겠죠.



우리나라 포차거리를 보면 뒤죽박죽인 경우가 많습니다만. 여긴 잘 정돈된 느낌입니다.


정해진 선을 넘지 않습니다. 사과박스나 맥주박스도 깔끔하게 잘 정리해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다시금 에도시대의 정취를 느끼며 센소지로 향해봅니다.



그냥 셔터만 눌러도 작품입니다.


나름 전통적으로 생겼지만, LED에 CCTV까지 잔뜩 달린 첨단의 가로등입니다.



센소지 근처의 지도입니다. 잘 참고 해봐야 외국인한테 크게 도움되는건 없었네요.



이미 문을 닫은 가게들. 그 사이를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



그 앞을 지나가는 커플들..


뒤에 사람이 지나가는걸 아는건지 모르는건지. 여자가 남자 바지 속으로 손을 집어넣네요. 상황을 촬영한다 하다가 결국 순간은 놓치고 손을 빼는 장면만 촬영되었습니다.



가로등에 달려있는 계량기함에는 어느 누군가가 붙여둔 스티커로 가득합니다.


떼고 지워도 계속 붙이는건지, 아니면 그냥 놔두는건지는 잘 모르겠네요.



화려한 조명이 우리를 반겨줍니다. 그리고 저 뒤에 보이는 센소지의 정문인 호조몬.


사실상 형광등처럼 보입니다만 간판입니다. 니카미세도리의 기념품가게 간판들입니다.



이쪽은 셔터 위로 그려진 그림들도 블럭별로 하나같이 이어지는군요. 신기합니다.



그렇게 도쿄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 센소지. 우리말로 하면 천초사(浅草寺)의 정문 앞까지 왔습니다.


살면서 봤던 불교사찰 중 가장 웅장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냥 입이 떡 벌어집니다. 물론 백제의 불교문화가 일본으로 유입된게 일본 불교문화의 시작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나라엔 거의 소실되고 없는 백제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좋은 문화유산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센소지의 정문. 호조몬(寶藏門). 우리말로 보장문이라 합니다.


2층 규모의 웅장한 센소지의 정문입니다. 그저 평범한 절의 입구로 보일 수 있겠습니다만, 단순 입구가 아닌 문화재 보관 창고로도 활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많은 관광객들이 이미 저 앞에서부터 사진을 찍고 왔겠습니다만 이 앞에서도 또 사진을 촬영합니다. 암요 그럼요. 우리나라에서 단층 규모의 절만 바왔던 저로써는 그저 신기했습니다.


뭐 여튼간에 일본을 대표하는 불교사찰로 유명한 이곳이 세워지게 된 계기 역시 백제계 일본인 어부가 주워온 불상을 자신의 집에 극진히 모시고 출가를 하게 됨으로써라 하는군요. 국뽕에 취해봅니다.



건축 양식이 우리가 흔히 보던 모습과는 다르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우리내 절과 많이 비슷합니다.


1960년대 다시 지어진 건축물이고 같은 불교 사찰인데 다를게 어디 있겠습니까. 뭐 우리나라 유명 사찰들 역시 수많은 전쟁과 재해를 거치며 소실되어 재건되고 하니 말이죠.


6부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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