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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스도리닷컴 '추억팔이' 시리즈는 다음 클라우드 서비스 종료로 인해 백업된 폴더에서 발굴된 고전 사진들을 기반으로 추억을 다시 구성해 보는 '제목이 곧 내용인' 문서입니다.



포스팅거리 고갈을 해소할 그때 그시절 추억팔이 시리즈! 



지난번 첫 이야기는 어떠셨는지요. 근 한달만에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이번 이야기 주제는 자전거 폐차. 아시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지금 저 위 이상한 차가 탄생하기까지 많은 변천사가 있었답니다. 비스토 이야기는 이미 잘 아실테니 넘어가구요.


고등학생 시절에 타던 자전거가 있었는데, 동네 건강달리기 행사 행운권 추첨으로 받아오게 된 자전거입니다. 약 3년간 주행 후 폐차를 결정하고 부품을 탈거한 뒤 고물상까지 가져다 주었습니다. 부품은 부품대로 탈거해서 창고에 박아두었는데.. 아직도 몇몇 부품들이 창고에서 자고 있네요.


여튼간에 이번엔 세 글을 모두 보셔야 이해가 되실겁니다.




잡설은 길었습니다만, 폐차를 결정하게 된 요인은 잦은 고장입니다.


3년 내내 타면서 남들 잘 교환하지 않는다는 허브베어링을 무려 두번씩이나 갈고 탔습니다. 요즘이야 저가에 하이브리드나 픽시같은 가벼운 자전거들도 많이 찾아 볼 수 있지만 저 시절만 하더라도 대부분 저가자전거는 저러한 21단 기어가 장착된 철티비. 유사산악용 자전거였습니다.


당시 글을 조금 참고하자면 2010년 11월에 교환했던 허브베어링이 2011년 3월에 또 나가버렸기에 이렇게 야마가 돌아 폐차를 결정했을겁니다. 허브베어링 교환이 상당한 난이도를 가진 작업이기에 당시 공임도 4만원 이상 나왔던걸로 기억하고, 또 돈을 들이기엔 정이 떨어졌던 것이죠.


처음에는 아무래도 바퀴만 다시 달아 고물상에 가져다 주자는 생각으로 앞 뒤 바퀴부터 탈거하지 않았나 싶습니다만, 마지막엔 그냥 수레에 싣고 고물상으로 다녀왔습니다.



그시절 글을 잠시 인용해보겠습니다.


2008년 4월.. 동네 달리기행사 행운권 당첨으로 그때 당시 1년을 타고다녔지만, 지금의 이 자전거 상태와 비슷한 자전거를 창고에 들여두고 이 자전거와의 인연이 시작되었고, 몇달만에 대형사고로 변속기계통 다 갈아버리고.. 그동안 이리저리 교체하고 또 갈고 또 사고나고 또 부셔지고 또 고치고 또 돈을 붓고 또 고치고 또 열심히 꾸미고를 반복하여 수명을 다하고 폐차를 하게 되었네요..

여태까지 부었던 돈으로, 사실.. 중급 MTB 새걸로 한대 뽑아도 됬던 값이군요....

그마만큼 자동차로 치자면, 차량가액 100만원밖에 안나오는 똥차의 몸값보다 더 비싼 돈을 주고 고쳐가면서, 그 몇배에 달하는 돈을 부어서 꾸몄다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그만큼 나름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자 나의 유용한 교통수단으로서 큰 일을 해주었었는데....

그리고 몇가지의 일화도 생각납니다.작년에는 이거 끌고서 신창역에 가서 직접 전철도 태웠었는데
.. 특유의 무광블랙 도색과 일본 번호판이 사람들을 압도하고 다니던게 당장 1주일도 지나지 않았는데....


저기 '차량가액 100만원도 안나오는 똥차의 몸값보다 더 비싼 돈을 주고 고쳐가면서라는 내용이 지금 봐서는 조금 거슬리네요. ㅋㅋ 저 글을 작성한지 딱 2년 뒤에 그런 행위를 했으니 말입니다.


신창까지 끌고 가서 자전거를 전철에 태웠던 일.. 그리고 특유의 무광블랙 도색과 밤에 진가를 발휘하는 LED 그리고 일본 번호판으로 나름 튜닝의 맛을 알아가던 이야기.. 한번 더 상기해 봅니다.



어느정도 분해하고 이상태로 두고는 많은 고민을 했었습니다. 다시 도색을 해서 살릴지 말이죠.


결국 뭐 없던 일이 되어버렸고, 아파트 복도에 이런걸 오래 두기도 뭐하다보니 며칠 세워둔 뒤 시간이 나던 토요일에 마무리 겸 분해를 했던걸로 기억합니다.



요 아래 몇가지는 미공개 사진입니다만, 짐받이를 탈거하는 모습입니다.


뭐 탈거라고 해봐야 거창한건 아니고.. 그냥 볼트 풀고 해체해서 옆에 잘 쌓아두는게 탈거라면 탈거였습니다. 몇가지 품목은 자출사 카페에 올려서 무료분양을 했었던걸로 기억이 새록새록 돋아나네요. 나름 학생시절에 비싼돈 주고 사서 장착했던 시마노 기어도 탈거를 하려 생각했지만, 약 2년간 혹사당하면서 이가 다 나갔기에 탈거하진 않았습니다.



사이드미러 시마노 기어래버 그리고 밤에 불도 들어오던 속도계와 LED바..


속도계는 친구가 기변을 하면서 타라고 줬던 자전거에 옮겨달았습니다만, 다른 친구 자전거로 전국일주 한다고 빌려줬다가 거기서 가던길에 폐차. 저는 그 자전거 상태 안좋다고 얘기를 해 줬는데도 그거 빌려달라고 가져갔었는데 뭐 크게 미련은 없었습니다.


방금 생각나서 찾아보니 아직도 저 속도계를 판매하긴 하는군요. 괜히 추억돋습니다.

+ LED 바는 그동안 책장 위에 신문지에 돌돌 말린 상태로 있다가 작년 말에 새 주인을 찾았습니다.



당시 약 3~4주전에 펑크로 바람이 빠지고 질질 끌려서 새 타이어를 교환했었는데..


결국 트레드가 많이 남은 타이어는 버리기 아까운지라 그대로 탈거해서 창고에 박아두기로 합니다. 휠 같은 경우에는 도색을 한다고 무광블랙 락카를 칠한게 다 까지기 시작하고 어느정도 휘어진 부분도 있어 딱히 재탕은 못하겠더군요.



고물상으로 가져다주던 날 마지막으로 부품 탈거를 진행하던 사진입니다.


한동안 대형사고 이후로 전륜 브레이크 없이 다니다가 폐차 한달 전 시마노 V브레이크 세트를 사서 교환했었습니다만, 이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탈거됩니다. 그와 함께 플라스틱 브레이크 래버의 파손으로 함께 사서 교환했던 스테인레스 재질의 브레이크 래버와 고무재질의 핸들바 손잡이까지 같이 수거합니다.


기어래버는 나름 소프트하게 변속되는 일제 시마노社 제품입니다만, 손잡이 고무가 다 헤지고 원터치에 비한다면 그리 비싼 가격에 판매되는 물건도 아니였던지라 탈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저냥 수확품은 여기 보이는 물건들에 사이드미러 타이어 짐받이가 전부.


그 당시엔 몰랐습니다만, 생각해보니 썩 많이 건져낸 느낌도 아니네요. 일부는 무료분양을 보냈고, 일부는 아직도 신발장이나 할머니댁 차고에 아직도 잘 있을겁니다.



집에 좀 있던 파지들과 함께 손수레에 적재를 마칩니다.


지금이라면 뭐 차에 대충 집어넣고 차타고 갔겠지만.. 저시절 유일한 교통수단인 자전거가 저 상태로 있으니 당연히 뭐 타고 갈게 없지요. 걸어서 갑니다. 예나 지금이나 걷는거 참 싫어했네요.



그래도 걸어가면서 파지나 철사를 마저 더 주워서 갑니다. 어짜피 고물상으로 가는 길이니 말이죠.


당시 글을 다시 보자면 질질 끌고가는데도 상당히 무거웠다고 기록을 해뒀습니다. 그래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임에도 한 서너번 쉬었다가 다시 끌고 갔었답니다.



지금은 사거리 대신 원형교차로가 생겨 어느정도 도로의 선형이 변경되었습니다만,

4년전 그시절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건 없다 느껴지는군요.


고물상은 저기 차가 지나가는 자리 바로 건너편에 있습니다.




결국 고물상 앞까지 겨우겨우 도착. 열심히 끌고 가서 3000원을 받았습니다.


신품 가격이 못해도 5만원 이상은 하던 유사산악용 자전거의 마지막 몸값은 파지와 함께 삼천원 수준으로 책정되었습니다. 뭐 고물상이라는 사업이 고물을 저렴하게 구매해서 원자재값이 비쌀때 판매하여 시세차익을 남기는 사업이지요. 겉으로는 허름할지 몰라도 고물상 사장님들 웬만큼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날 이후로 자전거의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낡은 경운기 적재함 엔진오일 깡통 그리고 전축등과 함께 철스크랩 운반차량에 실려 용광로에 들어갔겠지요. 지금쯤이면 아마 다른 용도의 물건으로 다시 탄생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지금쯤 무슨 물건이 되어 있을까요. 조금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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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스도리

만 29세 도태남의 처절한 삶의 기록. sinc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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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스도리닷컴 '추억팔이' 시리즈는 다음 클라우드 서비스 종료로 인해 백업된 폴더에서 발굴된 고전 사진들을 기반으로 추억을 다시 구성해 보는 '제목이 곧 내용인' 문서입니다.


티스도리 새 기획 시리즈 추억팔이.


그 첫번째. 2011년 5월 15일 스승의 날이자 일요일. 당시 신분은 고등학생이던 티스도리는 컴퓨터 자격증 시험을 보기 위해 아침부터 버스를 타고 당진에 갔었습니다.



추억 돋는 당시 글부터 먼저 보고 오시죠. 그날을 다시 한번 곱씹어 보는 시간이 될 겁니다.



지금은 출근때문에 매일 지나다니는 구터미널 로타리지만...


그 당시엔 누가 당진으로 출퇴근 할 줄 알았겠습니까. 그냥 합덕에서 학교만 다니던 평범한 학생이였습니다. 지금은 대차되어 사라진 농어촌도색 BM090 로얄미디도 다니고, 당시만 하더라도 탈만 했던 2006년 출고 로얄시티는 여기저기 부식이 일어나고 대차를 앞둔 차량이 되었습니다.


이날 ITQ 파워포인트 시험을 보기 위해 당진에 유일한 상업고등학교인 당진정보고에 가려는 목적에 버스를 타고 왔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시험은 열두시시였는데 사진에 남은 정보상으로는 열두시가 가까워진 시간에 당진에 도착한걸로 찍혀있네요. EXIF 정보에 나타나는 시간이 약 15분정도 빠르다고 당시에 기록을 해 둔 내용이 있습니다.


이전엔 자격증 시험을 보기 위해 너무 일찍 왔던 일도 있었습니다만, 이날은 딱 적당히 맞춰서 왔습니다.



로터리에서 쭈욱 구도심을 타고 내려가면 다리를 건넙니다.


당진 1교, 2교, 3교인데.. 3교다리는 현재 공사중이고, 여튼 다리를 건너고 당진천을 따라 시험장인 당진 정보고등학교를 향해가며 촬영한 사진입니다.


지금과 달라진 모습은 크게 없습니다만, 이 도로에 막아두었던 우회전 차선이 다시 부활했습니다.



모교는 아닙니다만, 그래도 자격증 시험 탓에 여러번 왔던 당진정보고입니다.


요 날 이전에 시험시간보다 너무 빨리 도착해서 이 학교 구석구석을 촬영해서 포스팅했던 일화가 있었는데.. 그 사진을 보고 이 학교에서 근무를 하시던 선생님이 사진을 잘 봤다며 댓글을 남겨주었던 일이 기억나는군요. 시험을 보러 온 학생들을 태우고 온 차량들로 인해 운동장은 주차장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이날 이후로 앞으로 지나만 다녔지, 당진정보고 정문 안으로 들어가거나 한 적은 없는듯 하네요. 

딱히 뭐 갈 일이 있겠습니까.




ITQ는 한국생산성본부에서 주관하는 국가공인 자격시험입니다.


실무 능력 중심의 검정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어느정도 구성만 숙지하면 쉽게 합격이 가능합니다. 이 당시 숙련해둔 실력 덗에 지금도 파워포인트 엑셀 워드 등의 오피스 프로그램들 단축키 써가면서 아주 잘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도 누구 가르켜 줄 수준의 실력은 되는군요.



당시 수험번호가 43110057 3교시에 시험을 봤었군요.


파워포인트는 도형의 크기와 모양을 얼마나 정확하게 표현해내고, 문제지에서 나오는 위치에 얼마나 잘 배치하느냐가 관건이였습니다만, 당시 시험 후기를 살펴보면 도형의 위치를 맞추는 문제 때문에 제한시간을 3분여 남겨두고 겨우 마무리를 한걸로 기록되어 있네요.


사실 엑셀이나 아래아한글은 남들 어려워 하는 함수나 표 만드는 부분을 금방 처리해서 기본 20분씩 남기고도 끝낸 적이 있어서 불패신화를 이룩하던 중 큰 충격을 받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렇게 내 인생에서 가장 씁쓸했던 자격증 시험중의 하나로 영원히 기억할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1시가 되어서 모두가 밖으로 나옵니다. 차량통행량은 좀 더 늘었고.. 이건 순전히 여름날씨임에 틀림없습니다.


당시 글을 인용해 왔습니다만, 내 인생에서 가장 씁쓸했던 자격증 시험이라 기록을 했군요. 이후로 살아가면서 더 씁쓸했던 일들이 많이 벌어졌는데 말입니다.



여튼 시험을 다 보고 나오니 점심시간입니다.


당시엔 갤로퍼를 좋아하는 친구라 적어두었지만, 지금은 직접 자신의 갤로퍼를 사서 애지중지 하는 친구가 점심을 먹으러 당진에 온다고 했었답니다. 그리고 그 당시 한번 안면이 있었던 카탈로그 수집이 취미던 이모군과 같이 식사를 했었네요.


P.S 언급된 두 사람의 근황을 얘기좀 하자면,


갤로퍼를 타던 친구는 아버지 갤로퍼와 자기 갤로퍼 두대. 10월 13일자로 휴가에서 부대로 복귀했음.

카탈로그 수집이 취미던 이모군은 현재 부산 해운대에서 정비병으로 복무중. 아버지께서 근무하는 사무실이 일하는 곳 바로 앞인지라 종종 아버지께서 끌고다니는 로체를 보고, 애지중지 하며 열심히 복원중인 각그랜져가 서 있는 모습도 가끔씩 봄.



7000원 하던 돈가스 정식을 먹었습니다. 


일본식 돈가스에 우동까지.. 단무지도 하나 안남기고 잘 먹었다고 하는군요. 



아직도 그 간판 그대로 영업을 하는걸로 알고있습니다.


상호가 메차쿠차. 오랜만에 추억돋으니 한번쯤 가보고 싶어지는군요.



여튼 카탈로그 수집 광과 만났으니, 카탈로그 수집을 위해 자동차 영업소를 돌아다녔습니다. 그 당시 올란도를 보고 감동받아 왔던 기억이 있네요.



넓고 아름다웠던 올란도. 모터쇼 이외의 장소에서 직접 타보기는 처음으로 기억됩니다.


경쟁차종 카렌스가 풀체인지를 하고 나와도 판매량에서 압살해버리는 한국GM의 몇 안되는 효자차종. 최근 유로6 적용으로 2016년형 올란도가 새롭게 출시되었지만 전반적인 디자인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벌써 4년이나 지나버린 그날의 추억.. 다시 한번 살펴보았습니다. 결국 자격증 시험도 쿨한 점수로 합격했고, 이래저래 맛있는 밥도 먹고 차도 구경했던 하루가 아녔나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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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29세 도태남의 처절한 삶의 기록. since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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